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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 의의의 첫째로는 적국의 침입으로부터 자국 방위를 위한
방파제로써의 기능이 있다. 그리고 둘째로는 반대로 적국에 대한 대규모 침공을 위한 병참
기지로써의 역할로써 그 의의가 있다. 셋째로는 요새의 존재 하나로 적에 대한 압박감을
가하면서 적에 대한 심리전을 전개함도 있다. 넷째로는 요새 그 자체가 무기로써 작용하여 적
대군을 공격하거나 적국에 대한 대규모 정복 전쟁에 있어 사용됨으로써 그 존재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요새에 대해 여러가지 존재 의의가 있을 것이다. 요새의 기원은
정확한 기원이 없이 다만 인간이 전쟁이라는 인재(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물리적인 재앙)가
인류의 탄생 이후 시작됨과 함께 그 요새의 존재도 출발했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요새의 존재는 아마도 성(城)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초기의 요새는 주로 필시 앞서 언급한 요새의 존재 의의에서 첫째와 둘째의
의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참으로 비참하고 비정하기 그지없다. 그런
만큼 전쟁이라는 것은 가능한한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인류의 역사의 1/3 이상은
끔찍하고 피비린내나는 전쟁의 역사 그 자체라 하겠다. 그런 만큼 고대의 수많은 용병가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전쟁은 정치의 기술 중에 가장 최악, 최후의 수단이며 전쟁 자체가
목적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부득이하게
일어날 시 그 전쟁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용병술의 존재 의의가 있으며 이에 따라
자연스레 요새의 존재도 세월이 흐르며 더욱 견고해지고 또 그 기능도 치밀해졌으며 요새의
존재에 반해 이를 공략하여 전쟁을 빨리 종결시키고자 하는 전략 전술도 더욱 오묘해져 왔다.
오늘 지금부터 전략 전술 연구 첫 강의로써 요새 공략전을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요새 공략전의 모델이 될만한 세 개의 전투를 비교 분석하겠다.
사례 1번: 티레 성 공략전
지휘관: 1) 마케도니아 진영의 지휘관: 알렉산드로스 대왕(영어로 알렉산더 대왕)
2) 티레 성 방위군 지휘관: 불명
병력수: 불명.
<공략전의 배경>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부왕 시절부터 반역을 일으켜온
트라케와 엘리스 두 지방을 평정하는 한편 국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방면을 안정시켰지만, 마케도니아로 연결되는 해상 교통로가 아라비아 반도를
차지한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력 신장에 한계가 있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 제국 공략의 칙명을 내리고 스스로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친정(親征)을 개시한다. 그라코니스 강에서 벌어진 첫 전투에서 승리한 뒤 소아시아
방면으로 진출하여 페르시아의 교두보가 되는 여러 도시 국가와 페르시아 본국 사이의
통신망을 차단했다. 해군은 페르시아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해상 전투를 피하면서 육상 전투로 승기를 잡으려고 하는 한편 승리를 거듭함으로써
페르시아 산하에 있는 여러 도시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이소스 전투에 승리한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군의 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페니키아의 여러
도시를 포섭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신흥 강대국 마케도니아에게 가담했지만
가나안 지역 중앙에 자리잡고 있던 티레는 이 때를 독립의 기회로 삼기로 작정했다. 지중해와
레바논 산맥 사이에는 좁은 회랑처럼 생긴 지역이 있었는 데 티레는 그 출구를 틀어막는 듯
자리잡은 요새 도시였다. 티레는 페르시아로부터의 독립은 물론이거니와 마케도니아에게
조차도 복속될 의사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강대한 페르시아 해군의 약체화를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페르시아 해군은 본국
함대 외에도 키프로스, 페니키아 등 지중해에 세력을 둔 해양 국가의 함대를 흡수하여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육군은 강대하지만 해군이 취약한 마케도니아 군은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키프로스, 페니키아를 산하로 끌어들여서 페르시아에 대항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티레의 중립 선언은 다른 때라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러나
마케도니아보다 훨씬 강대한 해군력으로 지중해의 제해권(당시로는 그런 개념이
없었겠지만)을 가진 페르시아와 자웅을 결하려는 알렉산드로스가 자기 명령을 따르지 않는
세력을 그냥 남겨둘 시에 배후에 급습을 당할 우려도 있거니와 아직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세력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케도니아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멸망당할 것인가. 티레는 이에 대해 속히 결단을 내려라!
그렇게 양자 택일을 강요하며 그 본보기를 보여야만 페르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체재를
갖출 수 있다. 복종을 거부한 티레의 공략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를 따르지 않는 세력은
적으로 간주하고 가차없이 짓밟음으로써 다른 지역에게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교섭은 당연히 결렬되었다. 티레 성 시민들은 방위 태세를 갖추고 알렉산드로스는
전군을 거느리고 난공불락의 전군을 이끌고 난공불락의 해상 요새도시로 향했다.
사례 2번: 우주 요새 이제르론 제7차 공방전. <출처: 소설 은하영웅전설 제1권 여명편>
지휘관: 1) 자유 행성 동맹군 진영의 지휘관: 동맹군 소장 양웬리 제독.
2) 은하제국군 우주 요새 이제르론 진영의 지휘관: 이제르론 요새 방위 사령관 제국군
대장 슈톡하우젠/ 이제르론 요새 주둔 함대 사령관 제국군 대장 젝트 제독
병력수: 동맹군 - 6, 400 척. 제국군 - 주둔 함대 1만 4,500 척/ 요새 방위군 약 500 만 대군
<공략 배경>
전 인류가 지구에서 벗어나 머나먼 우주로 올라선 지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은하
연방이라는 거대 통일된 민주주의의 인류의 국가 조직이 건국되어 인류 전체의 평화와
공존의 시대가 흘렀으나 은하 연방 내부의 극심한 부패와 질서의 혼돈 가운데 점차 연방
공화국은 말기에 이르렀는 데 이 무렵에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라는 젊은 소장파 군인이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뒤 스스로 은하 제국 황제라고 일컬었고 그의 정치는 부패한 은하
연방의 온갖 폐단을 일소하는 데 효과가 있었으니 그 부작용이 너무도 지나쳤고 또 그의 압제
아래 전인류는 제국의 공포정치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은
창시자인 루돌프 대제 사후 더욱 굳건히 발전해 나갔고 수백년이 더 지나 제국의 노예였던
아레 하이네센이라는 청년이 드라이 아이스를 이용해 만든 우주선을 통해 제국의 손이 닫지
않는 곳을 향해 머나먼 장정을 개시, 하이네센이 죽고 그의 동지인 구엔 킴 호를 비롯한
수십만명이 자유행성동맹 공화국을 건국하며 은하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거대 민주주의 군사
조직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페잔이라는 우주판 베네치아적인 중립 행성
국가도 건국되고 이렇게 우주는 삼국시대를 맞이하며 수백년에 걸쳐 제국과 동맹간의 항쟁은
끊일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은하제국에서는 자신의 누나가 제국 황제의 후궁으로 들어가면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 전쟁의 천재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나타났듯 동맹측에서도 그와
대등한 천재 용병가가 태어나게 되는 데 그가 바로 불패 신화의 전설인 양웬리였다. 양웬리는
본의와 상관없이 사관학교에 입학에 군인의 길을 걸어야만 했고 행성 엘파실에서 그의
활약이 처음 시작된 이후 아스타테 회전에서 동맹군 4만여 척이 세 갈래로 나누어
은하제국군 측 원정함대 총사령관이 된 라인하르트 폰 로엠그람 상급대장의 2만 여척을 맞아
포위 섬멸하려다 오히려 각개격파를 당하고 남은 1개 함대로 최후의 일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마지막 남은 1개 함대의 지휘관이 중상을 입고 대리 지휘권을 물려받은
양웬리가 전군의 붕괴를 막고 오히려 라인하르트에게 일격을 가해 동맹군의 전멸을
저지하는 데 성공, 동시에 제국군을 동맹령에서 몰아내는 데 활약을 보이게 되면서 그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우주력 796년 제국력 487년 2월의 아스타테 회전
직후 그 동안 6차례나 제국군의 최전선에
위치한 유일무이한 우주 요새 이제르론을 상대로 공략 실패해온 동맹군 총사령부인
통합작전 본부에서는 같은 해 5월 양웬리로 하여금 고작 7천척도 못미치는 적은 함대로
강력한 요새 주포-한번 발사하면 수백 여 척~수천 척 이상을 궤멸시킬 수 있는-
토르해머를 보유한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 아울러 이제르론
요새에는 1만 5천 여 척에 달하는 주둔 함대가 있었으며 요새 방위 사령관과 주둔 함대
지휘관 모두 동급의 제국군 제독들이 요새 이제르론을 지키고 있었다.
사례 3번: 돌도레이 공방전<베르세르크 7권~8권에서 발췌>
지휘관: 1) 미들랜드 왕국 원정군: 용병단 매의 단 단장 그리피스
2)튜더 제국군 : 튜더제국 최전선 방위 사령관 게논 총독/ 요새 돌도레이 성 방위 사령관 겸
주둔군 자서성 기사단 단장 보스콘 장군.
병력수: 미들랜드 왕국 매의 단 - 5천 여 명(보병 3천, 기병 2천.) 튜더 제국 방위 요새
돌도레이 요새 방위 병력 - 3만여 명(중핵 1천 자서성 기사단)
튜더 제국의 침공으로 전개된 백년 전쟁도 서서히 그 종막에 치닫게 되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양대 강국인 미들랜드 왕국과 튜더 제국은 안팍으로 심히 피폐되어 있었으며 튜더
제국은 적국인 미들랜드와의 전쟁 중임에도 제국의 수뇌부가 분열되어 내란의 조짐이 보여
점차 전의를 급속도로 상실해가고 있었다. 한편 그 가운데 미들랜드 원정군은 튜더의 침공을
막아낸 뒤 오히려 튜더의 영토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는 데 그 가운데 한때 미들랜드 왕국의
요새로 천연 지형을 지닌 난공불락의 요새 돌도레이가 있었으며 미들랜드 총사령부는
빼앗긴 이 돌도레이를 회복함과 동시에 백년 전쟁을 종결짓기로 결심을 굳힌다. 수차례 이
돌도레이를 공략한 미들랜드 왕국은 번번히 공략을 실패했으며 미들랜드의 최정예 기사단
중에 하나인 백소 기사단 마저 공략은 커녕 튜더의 맹장 보스콘이 이끄는 요새 돌도레이의
튜더 제국 주둔군인 자서성 기사단에게 전멸까지 당해 공략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강화
조약등을 통해 공략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해 미들랜드 총사령부는 두 파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매의 단 단장인 그리피스는 자진하여 겨우 5천명에 불과한 자신의 매의단 만으로
자서성 기사단을 중핵으로 한 돌도레이 요새 주둔군 3만여 명에 맞서 요새를 탈취하겠다라고
나선다. 이에 장군들의 강력한 반대에 무릅쓰고 미들랜드의 국왕은 그리피스에게 매의단
만으로 돌도레이를 공략하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전투의 경과>
사례 1번: 티레 성 공략전
제1단계 해상의 공방 ㅡ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돌격용 제방 건설 시도.
티레는 육지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섬에 건설된도시로 둘레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새
도시다. 따라서 육상으로 직접 공격할 방도가 전혀 없고, 해상으로 공략하려 한다 해도
티레 성 요새에는 강력한 요새 주둔함대가 방어할 뿐만 아니라 성벽 위에서 쏘는 엄청난
수의 화살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티레의 함대는 섬의 남북에 튀어나온 두 개의 항만에 배치되어 해상 공략에 대한 방어의
태세를 확실히 갖추고 있었다. 또 그 배후의 가까운 거리에 키프로스 섬이 있어서 그 함대의
원조도 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 도시였다. 반면 알렉산드로스 군은
육상전에 있어서 거의 최강이였다. 중무장을 한 장창 보병들이 탄탄한 대열을 이루는
'팔랑크스' 진형은 타격력과 방어력을 겸비한 진형으로, 그리스부터 소아시아까지의
군대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해상에서는 이렇다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해협을 관통하는 제방을 건설하여 공격로로 삼을 계획을 세웠다.
<티레 성 공략 제1단계> 위 그림과 같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처음에는 거대한
제방을 건설해 제방을 다리로 삼아 횡단하여 티레 성에 대한 상륙을 시도하려 했지만
티레 성의 요새 주둔 함대가 제방 건설 공사를 전개하는 족족 화공(火攻)을 통해
제방을 무너뜨렸다.
폭 8미터, 길이 2킬로미터의 제방을 건설하는 것은 곤란하기 짝이 없는 공사였다. 바다가
얕아 돌을 매립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티레는 성벽 위에서 활을 쏘고 성의 화살 사격
지원 아래 그림과 같이 티레 주둔 함대는 그 공사 작업을 방해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인다 싶으면 폐기 직전의 전투함에 가연 물질을 가득 싣고 돌진해 제방을 파괴하는
전법 등으로 공사를 저지했다.
이 때문에 유럽사상 최초 최대의 천재 천략 전술가 알렉산드로스였지만 해상에 떠 있는
요새는 바다에서 공략하는 것 말고 달리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2단계 전략 성공 ㅡ 페니키아 함대의 지원
그러려면 군함이 필요했다. 방책을 세우고 주변의 여러 도시와 교섭을 하던 알렉산드로스는
먼저 페니키아 해군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는 페니키아의 입지 조건
때문에 가능했다. 바다 위에 떠있는 티레, 키프로스와는 달리 페니키아는 대륙에 위치해
있었다. 지중해에 면해 있어 해상 교역을 생명선으로 삼고 있었지만 페니키아의 실력으로는
정면으로 마케도니아군을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함대를 가진
페르시아에 복속하느니 해군이 취약한 마케도니아에 복속해 마케도니아 제국에서 자기
위상을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페니키아의 계산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리하여 80척의 전투함 대함대를 거느린 페니키아 함대 덕분에 알렉산드로스의 해상
전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페니키아가 마케도니아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키프로스나 로도스 등을 동요하게 하였다. 그 결과 키프로스 섬과 로도스 섬의 제푸들도
각각 함대를 제공했다.
<티레 성 공략 제2단계> 대함대를 거느린 알렉산드로스는 페니키아 함대와
공동전선을 전개해 티레 성 요새의 주둔함대를 항구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철저히
봉쇄한다.
알렉산드로스는 금세 팽창한 해상 전력을 이용해 새로운 공격 작전을 구상했다. 그리고
본국에서 도착한 신병을 함대에 승선시켜, 전투에는 참가시키지 말고 다만 방패를 드는
임무만 맡겼다. 거친 산악 지대에서 성장한 마케도니아 병사를 갑자기 배에 태우면 심각한
멀미로 인해 전투력이 되지 못하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도 몸소 군선에 올아탔다. 총 120 척의 대함대를 본 티에 방어 군은 낙담해
항만 입구를 폐쇄하고 지구전 태세로 나왔다. 하대의 보호를 택한 티레를 상대로
알렉산드로스는 키프로스 함대에게 북쪽의 시돈 항을, 페니키아 함대에게 남쪽 이집트 항을
봉쇄하게 했다. 티레 측의 해상 공격을 그렇게 묶어놓았으므로 제방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월 30일, 알렉산드로스는 총공격 날짜를 결정하기 위해 육지로 물러나 작전 회의를
소집했다. 티레 군은 그 틈에 봉쇄를 돌파하고 항구 밖으로 나와 마케도니아 측 군함을 몇 척
격파했지만 이는 결국 아군의 전력을 분산시킨 꼴이 되고 만 것이였다.
티레 군이 반격을 해왔다는 소식을 접한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전 함대의 출격을 시키되
전력을 둘 로 나누어 항만을 다시 봉쇄하는 한편 항구 밖으로 뛰쳐나온 티레의 전함을
격퇴하였다. 나아가 해군이 출격하지 못하고 있는 호기를 놓치지 낳고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티레 성 공략 제3단계> 티레 군이 봉쇄망을 뚫고 본 요새에서 뛰쳐나오자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함대에 의해 전투다운 전투를 전개해보지 못하고
끝내 포획되고 알렉산드로스의 별동함대와 페니키아 함대는 이집트 항과
시돈항(이집트 항은 티레 성의
항구들 중에 하나의 이름임> 등 남과 북의 항구가 완전히 봉쇄된다.
제3단계 방위 시스템의 붕괴 ㅡ 티레의 함락
티레의 군함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육상전에 능한 마케도니아 함대의 장병들에 의해
간단하게 격파당했다. 나아가 알렉산드로스는 투석기나 대형 노를 선상에 탑재하고 성의
병력을 분산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그를 위해 대형 갤리선을 개조한, 공성(攻城) 전용함이
건조되었다. 두 척의 갤리선을 나란히 늘어 세우고, 갑판에 두꺼운 판을 가로놓은 다음
파성추나 투석기를 설치한다. 거대한 쌍동이 선이 된개조함은 아마 판을 댄 현 쪽의
노군(노를 젓는 병사) 자리를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기동력은 크게
떨어졌겠지만 공격 대상은 움직이지 않는 요새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티레
군이 주둔 함대의 수보다 더 많은 해상 병력이 따로 있었다면 이 쌍동 갤리선을 향해 화공을
퍼부었다면 필시 중국 삼국지에서 위나라 조조의 수군 함대를 촉의 제갈 공명과 오나라
주유의 화공 계략에 따라 불타 침몰했었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티레에는
그만한 별도의 병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 강력하던 티레의 함대는 격파 당했으며 남은
함선들은 철저히 항구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봉쇄되어 있었다. 적 함대가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지만, 비약적으로 증강된 알렉산드로스의 함대는 이제 호위함을 넉넉하게 붙일 만큼
여유가 있었다.
<티레 성 공성을 위해 특별히 건조된 공성전용(攻城戰) 갤리선인 쌍동 갤리선>;
이 두 척의 갤리선을 합친 공성전용 거대 갤리선 개조함에 파성투나 투석기를
설치했다.
사방에서 공격해오는 적 함대에 대처하기 위해 티레 군 방위망도 분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해상 공격은 함대로 막고 그것을 돌파하고 들어온 적들은 농성하는 병사들이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그 2단 방어 시스템이 무너졌으므로 티레에겐 이미 승산이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뱃전에 방패를 든 병사를 늘어세워 요새의 공격을 막는 한편 공성 병기
탑재함을 요새 주위에 회항시키며 모든 곳에서 공격을 펼쳤다. 나아가 완성된 대 제방을
따라 마케도니아의 중장 밀집 종대가 티레에 상륙해 침공했다.
티레군은 방어전 일색으로 몰렸다. 믿었던 함대는 항구에 봉쇄되고, 육상병을 출격
시키려해도 요새 주위의 군함마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가득 차 있었다. 곧 저항이
약화된 곳으로 군함이 접근하고 다리가 내려졌다. 성벽과 군함이 연결되자 제일 먼저
방패병이 돌격하였다. 방패를 늘어세워 임시 교두보로 삼고 그 안 쪽으로 궁병이 진입했다.
놀란 방위군이 그 쪽으로 몰려드니 자연스레 다른 곳의 방비가 허술해질 수 밖에 없었다.
섬 주위를 선회하던 함대들이 잇달아 병사를 부려놓았다.
점점 많아지는돌파구에 티레 측 방위망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게 되자 승패가 결판나고
말았다. 성 안으로 뛰어든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성 문을 활짝 열어, 제방으로 건너온 본대를
맞아들였다. 방패로 사방을 가리고 장창을 빈틈없이 꼬나든 밀집 종대에 티레 군은
우왕 좌왕하니, 7개월을 끈 공성전은 티레의 함락으로 종결되었다. 마케도니아 군 전사자는
4백여 명, 이에 비해 티레군 전사자는 8천 명에 이르렀고 점령 후에 노예로 팔린 시민이
3만명 이상이었다.
사례 2번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소설 은하영웅 1권 여명편 전설)
전투 제1단계
자유행성동맹군 소장 양 웬리 제독은 6차례 공략이 모두 실패한 은하 제국군 우주 요새
이제르론이 여태 함락되지 않은 이유가 주둔 함대의 자유로운 활동과 요새의 거대 주력
방위용 공격 대포 토르 해머(북구 유럽 번개 신의 망치) 때문에 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양 제독은 평균 함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7천여 척(정확히는 6,400척)만 가지고
1만 5천척의 주둔 함대와 거대한 요새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선 요새와 함대를
분리시키고 요새를 함대가 요새에서 멀리 나간 틈을 타 요새를 점거해 요새의 전투력을
무력화시키지 않고서는 함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보 공작을 펼쳐
함대가 요새에서 출격해 요새와의 연계 거리를 멀리 떨어뜨린 다음 요새 직접 점거 지휘를
동맹군 최정예 망명 군사 조직인 로젠 리터(장미 기사단) 연대의 제13연대장 발터 폰 쇤코프
대령에게 직접 점거 지휘를 맡기게 되었다.
제2단계 요새, 함락~!!
한편 이제르론 요새는 앞서 언급했듯이
요새 주둔 함대 사령관과 요새 방위 사령관이 계급 똑같은 제국군 대장으로 동격이였으며
언제나 서로의 주장을 양보하려 하지 않아 늘 티격태격 하던 사이였다. 요새 방위 사령관은
슈톡하우젠 대장이였고 주둔함대 사령관은 제크트 대장이였다. 신중한 성격의 슈톡하우젠
사령관인 반면에 저돌 맹진적인 성격의 맹장인 제크트는 늘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르론은 지휘체계 계통이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요새 주포
토르 해머의 무시무시한 위력과 주둔 함대의 뛰어난 전투력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즈음 이제르론 사령부 통신에서 적 동맹군(제국군에겐 반란군으로 여기고 있었다.)의
함대가 이제르론을 공략하려 하고 있으며 이 함대에 의해 쫓긴 함정 한 척이 비참한 몰골로
이제르론에 구원을 요청했다. 물론 이 심각하게 파손된 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제국군
순양함 한 척에 발터 폰 쇤코프 대령이 지휘하는 로젠리터 연대가 제국군 장병으로 둔갑해
승선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제크트 대장이 요새에서 당장 출격해 아군을 돕겠다고 하니
신중한 성격의 슈톡하우젠 제독은 이에 반대하였고 특히 제크트 대장의 참모 중에 한
사람이던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령(훗날 은하영웅전설 주인공 라인하르트의 총참모장이
되는 인물) 역시 적의 함정일 지도 모른다고 간언하여 출격을 반대했지만 방위 사령관과
제크트 제독 자신의 참모의 반대를 무시하고 출격하고 말았다. 하지만 통신이 발신되었던
지점을 향해 제크트 제독이 빠르게 출동한 지 몇시간 후 다시 통신이 들어왔는 데
반파된 순양함 함장이라고 자칭하는 폰 라켈 소령이라는 장교(사실은 순양함 함장으로
둔갑하고 있던 쇤코프 대령이였다.)가 요새에 연락을 해 방위 사령관과 면담하고 싶다라는
긴급 통신을 걸었다. 제크트 대장은 적 함대의 위치를 찾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라켈 소령(쇤코프 대령)의 순양함은 요새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온통 피묻은
붕대를 머리에 감싸고 있었기에 동정을 금할 길이 없던 방위 사령관과 요새 방위군은
그렇게 라켈 소령과 그 병사들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라켈... 쇤코프 대령은 방위 사령관을 보자마자 그에게 바짝 다가가 사령관을 인질로 삼고
저항하려는 요새 방위군 병사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가연성 폭발 물질을 꺼내든 채
위협하니 결국 요새 방위군은 항복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쇤코프 대령의 로젠 리터
연대의 중장 기동 보병 대원들은 삽시간에 요새 전체를 완벽히 장악했고 교묘하게
주둔 함대를 따돌린 양 제독의 본 함대는 요새에 입성하게 되었다.
제3단계 요새 주둔 함대의 궤멸!!
한편 이번에는 요새 주둔함대의 기함에 통신이 들어왔다. 그 때는 이미 동맹군이 요새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고 또한 양 제독의 함대 기함 휴베리언이 요새에 입성한 뒤였다.
요새 통신에 의하면 요새 내부에 폭동이 발생해 폭동을 일으킨 병사들에 의해 요새가
장악되어 있으니 구원을 바란다는 것이였다. 이에 슈톡하우젠 제독과 사이가 나쁜
제크트 대장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줌으로써 그의 위상을 꺾을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며 함대의 귀환을 명령했지만 기함에 승선한 제크트 제독의 참모인 오베르슈타인
대령은 이번에는 요새로 귀환하는 것이 함정이니 귀환하지 않는 게 좋다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제크트 제독은 평소 오베르슈타인 대령을 싫어했던 터라 일갈로 그의 간언을
백안시하고 말았다. 그에게 충언해봤자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판단한 오베르슈타인 대령은
결국 주둔 함대 기함에서 탈출하고 만다. 그리고 요새로 돌아온 함대는 놀랍게도
자유 행성 동맹군이라 자칭하는 괘씸한 반도들의 군대에 점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요새의 강력한 주포 토르 해머의 공격으로 함대는 대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요새 지령실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양 제독은 점거에 성공한 쇤코프 대령의 간언에
따라 주둔 함대 사령관에게 항복 내지 도망을 권유하지만 제크트 제독은 이를 거절하고
남은 전 함대에게 돌격을 지령한다. 이렇게 되자 결국 양 제독은 적 주둔함대의 기함만을
포수에게 식별하게 해 그것을 향해 집중 포격하라고 명령한다. 양 제독의 지령이 떨어지고
토르 해머의 굵고 거대한 고열의 빛줄기는 주둔 함대 기함을 삼켜버렸고 남은
주둔 함대는 뿔뿔히 흩어져 제국 본토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제르론 요새는 7번째가 되어서야 신참 사령관 양웬리에 의해 함락된 것이다.
돌도레이 공방전
제1단계 자서성 기사단과 돌도레이 요새 주둔 군대 총 출동!!
자서성 기사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돌도레이 요새 방위 사령관인 유능한 맹장 보스콘 장군은
일제히 총 출격을 명했다. 한편 미들랜드 왕국 측에서 출격한 매의단 단장 그리피스 장군은
난공불락의 요새 돌도레이를 함락시키려면 은하영웅전설의 양웬리 제독이 생각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 따라 요새 주둔군과 요새 방위군 사이를 떼어놓을 필요가 있다라고
판단하여 총 5천 병력 중 절반으로 나누었고 2,500의 기병으로 단번에 자서성 기사단을
중핵으로 한 주둔군에게 돌격을 했다. 한편 남은 절반의 병력 2,500 정도의 부대는
별동 부대로서 이 부대의 지휘를 매의단 부사령관 캐스커에 맡겼다.
그리고 본대에 작전 총사령관 그리피스에는 100명 베기의 공을 세운 가츠가 선봉장으로
나서 거세게 밀어붙여 적의 기세를 떨어뜨리게 했다. 그리고 캐스커가 지휘하는 별동 부대는
본대가 요새 주둔군을 요새에서 떼어낸 틈을 이용해 방위력이 허술한 돌도레이를
점거하게끔 하는 것이 그리피스가 강구해낸 공략 방책이였던 것이다. 그리피스 본대가
무려 10배 이상이나 되는 강력한 3만여 병력의 주둔군을 상대하게 되는 데 본대는 강을
등지고... 이른바 배수의 진을 친 채 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기세로 10배 이상의
병력을 도발해가며 싸웠다. 특히 가츠의 용맹은 3만여 군대를 공포에 떨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크게 주춤거리는 3만여 군대의 움직임을 바라본 그리피스는
때가 되었음을 판단하고 실컷 3만여 대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본대에게 즉각 퇴각을
명령했다. 이에 의아하게 생각한 보스콘 장군은 추격을 하지 않고 병력 재편을 명하려
했으나 게논 총독이 그리피스에 대한 악취미적 성적인 집착때문에 약간의 병력을 남기고
자신의 직솔 부대를 거느리고 나와 보스콘 장군에게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라고 강요했다.
제2단계 주둔군, 추격하다!! 그러나 매의단 별동 부대는 이렇다할 병력이 없는
돌도레이를 차지하다!!
그리피스를 생포하고자 하려는 게논 총독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스콘은 전 병력에게
추격을 지령했다. 이로써 게논 총독이 보스콘을 통솔하며 전 군이 추격하게 되고 말머리를
다시 되돌린 매의단 본대는 엄청난 수의 대군과 정면을 격돌하게 된다. 정면으로 소수로
다수와 격돌하면 당연히 패배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적 총대장이 쓰러지면 자연히
압도적인 대군도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음을 판단한 그리피스였기에 무모하고도
위험한 최대의 도박에 승부수를 띄우게 되었던 것이다. 처절한 전투는 자연히
매의 단이 열세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가츠의 용맹에 가츠와 정면에 마주친 병사들은
겁에 질려 물러나자 보스콘은 가츠의 용맹에 감탄해 그의 일기토 도전을 받아들인다.
격렬한 일기토가 그렇게 전개되고 있는 동안 캐스커가 지휘하는 별동대는
삽시간에 전광석화같이 이렇다 할 병력이 없고 지휘관이 부재 중인 요새를 간단하게
장악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기는 하지만 캐스커는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별동대는
이렇다할 피해가 없었다. 그렇게 전황이 전개된 후 보스콘과의 격렬한 사투 도중에
가츠는 검이 부러져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불사신 조드 노스페라투의 도움으로
얻어낸 참마검으로 겨우 겨우 간신히 보스콘을 처치했다. 맹장 보스콘이 죽자
당연히 압도적이던 주둔군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했고 더욱이 돌도레이 성이 함락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리피스는 전군에 잔당 소탕을
지령하였으며 지휘관을 잃은 주둔군은 자신들보다 엄청나게 열세인 적의 추격에 의해
도망가기에 바빴고 그 혼란 와중에 게논 총독은 아군 병사들에게 버림받아 갈팡질팡하다
오래 전에 자신이 강간했던 상대인 그리피스에게 살해된다.
이렇게 해서 치열한 돌도레이 요새 공방은 5천의 병력으로 6배나 되는 주둔군을 격파하고
요새를 함락한 매의단과 그 매의단에게 출격을 명한 미들랜드 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공성전 전술>
일반적으로 공성전에는 포위 지구전으로 적을 섬멸시키는 방법 외에 기습, 전력을
투입하는 정면 공격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정면 공격은 용병술 중에 가장 최하책에
속한다. 요새는 방어을 위한 시설이며, 건축할 때 모든 전술과 병기를 계산에 넣고
설계되므로 공격자 측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당연히 요새에 공격을
걸어보려던 자유 행성 동맹군의 양웬리 이전의 장군들이 6차례나 요새 공략에
실패한 것도 그렇고 돌도레이 공략에 정면으로 돌진한 미들랜드 백호 기사단이 전멸하고
백호 기사단 이전의 미들랜드의 요새 공략이 번번히 수포로 돌아간 이유 또한 무모한
정면 공격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전쟁사를 보더라도 정면 공격이 성공한 예는
손으로 꼽을 만큼 극히 적다.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는 앞서 말했듯이 전략적인 요청에 따라
무리를 거듭한 결과일 뿐이다.
기습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지하 터널로 공격하는 방법이다. 외부에서 정도를 들어가 지하로
기습하는 것인데, 이때 터널은 직접 침공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버팀목을 대면서 성벽
바로 밑까지 파고들어 갔다가 이 버팀목을 불태워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성벽이 무너지면 지상 부대가 돌입한다. 화약이 발명된 뒤로는 터널을 폭파해 지상 시설을
무너뜨리는 방법이 채택되게 된다.
그 경우 방어측은 귀 밝은 자를 성벽에 배치해 지하의 소음을 탐지하게 하였다. 공격측이
갱도를 파고 있는 것을 눈치채면 그에 대항하여 갱도를 파고 땅 속에서 격퇴하거나, 혹은
주위에 물을 채운 도랑이나 구정물 웅덩이를 파놓아 갱도가 뚫리는 순간 자동적으로 물
공격이 가해지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말하자면 땅 속에서 백병전으로 적의 침투를
저지하거나 거친 물살의 급류로 격퇴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고대부터 긴 세월 동안
요새를 공략하고 또 이의 방어에 대한 용병술이였다.
그러나 티레 성 공략전에는 그러한 공격 수단도 전혀 쓸 수 없었다. 해상에 떠 있는 섬의
가장자리마다 성벽이 세워져 있어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전술은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케도니아 군은 육군이다. 해군 중심의
티레를 상대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이 하다 못해 공중
병력을 이용해 낙하산 부대를 투입한다든지 폭격기로 요새 방위 시설을 정밀 융단
폭격한다는 방법을 쓸 수 있는 것 조차도 아니였던 시대였으니 해군이 없으면 공략도
자연히 불가능하다 하겠다. 당연히 초기 공략은 한결같이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상에 있는 적은 전함을 이용하지 않고 대적할 수 없다. 이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당연하고도 초보적인 철칙이다. 요새에는 군선으로만 대항할 수 없으며, 군선에 탑재한
병기와 요새에 설치할 수 있는 병기의 사용법이 중요해진다.
당연히 고대의 군함은 목재로 건조된 것이다. 마른 목재로 건조된 선체에, 방수를 위해
기름이나 타르를 칠한 로프로 돛을 조작하기 때문에 화공은 너무도 치명적이다.
이러한 약점이 있는 군선을 향해 요새에서는 투석기로 돌을 던지거나 불화살로
적 함대를 격파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에서도 은하 제국군의
요새 이제르론이 공략하러 온 자유 행성 동맹군 함대에게 엄청난 수의 미사일과 대포와
특히 강력한 요새 주포 토르 해머로 6차례 모두 격퇴해 버렸다. 결국 이것은
수상이나 혹은 지상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허공 위에 뜬 요새 등을 공격하는 데에 있어
함대만으로는 결코 공략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모하게
정면으로 공격한다면 처참한 결과만 낳을 따름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전함의 운용법은 하루 아침에 체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케도니아도 해군력이
있기는 했지만 티레에 비해 역사가 짧고 경험이 극히 부족해 티레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만큼 알렉산드로스는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동맹국을 얻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티레 공략의 승패가 갈라질 것이라고 판단해 주변의 해군국들이던 키프로스,
페니키아, 로도스 등과 손을 잡고 그들의 해군력을 빌림으로서 티레를 손쉽게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그런 해군 강국들을 자신의 산하로 끌어들인 알렉산드로스가
단순한 전술적 천재가 아닌 뛰어난 정치적 수완가이기도 함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갱도를 통한 기습에서처럼 공성전에는 토목 기술이 필요할 때가 많다. 티레
공방전에서도 얕은 바다를 메워 대제방을 축조하는 공사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공성전에 토목 공사를 자주 이용한 전술가로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일본 전국 시대를
평정하고 임진왜란을 일으켜 통일된 일본 대륙의 무사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린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있다. 그는 전국 시대의 전쟁 중에 다카마쓰라는 성을
함락시킨 수공(水攻)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전술을 펼쳤는 데 이보다 무려 2천년 전에
알렉산드로스가 행했다는 것은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전술에 관한 기술이나 전법은
진보할 수 있어도 기본적인 부분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공성전에 사용된 병기
고대에서 공성전은 으례 각 병사가 휴대하는 활, 창, 투석기 외에 각종 고정식 대형 병기가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캐더펄트라 불리는 투석기와 발리스타라 명명된 대형 노이다.
각 무기마다 여러 종류가 있는 데,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사용된 투석기는 가장 간편한
구조의 비틀림식 캐터펄트였을 듯하다. 로프를 꼬아서 생기는 장력으로 돌을 날리는 방식의
투석기는 비교적 경량으로 제조할 수 있으므로 군선에 탑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의 군선은 갤리선으로 레판토 해전 이후 자취를 감출 때까지 고대부터 서구 세계의
각 제국들의 주력 전함으로 흘수(선체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낮다. 길고 폭이 좁은 선체는
안정성이 부족하며 무거운 병기를 실을 수 없다. 대포가 발명된 이후인 14~15세기의
갤리선에서도 대포는 선수에 몇뭍 갖추는 데 머물렀다.
알렉산드로스는 대형 갤리선 두 척을 나란히 늘어세워 쌍동이형으로 만드는 앞서 언급한
그 쌍동 갤리선의 건조라는 기발한 아이디로 그 약점을 해결했다. 노도 마찬가지로
비틀림식을 이용하여 거대한 화살을 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물론 육상에서는 보다 큰
기계류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형 투석기에는 인력으로 기둥을 당겨서 발사하는
방식이나 그것이 발전한 것으로 생각되는 추를 이용한 방식이 있다. 일본에서도 인력
방식의 투석기를 사용하며 적진에 발화탄을 쏘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세에는 대형 투석기를 사용하여 적의 요새 안에 돌림병으로 떼죽음 당한 말의 시체들을
던져넣은 사례가 있다. 이는 돌림병을 성 안에 퍼뜨리려는 시도로 말하자면 최초의
세균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 성벽을 공격하는 병기로는 파성추를 들 수 있다. 이 병기의 원형은 굵은
통나무를 여러 병사가 껴안고 달려서 성문을 부수는(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오크들이 인간들의 성을 공격할 때 파성추를 사용했다. 그것을 참조.) 것이었을 것이다.
페니키아나 히타이트에서는 피혁이나 나무껍질로 덮힌 전차를 성벽으로 밀어 전차 전면에
돌출된 해머로 성벽을 깨뜨리는 공성 전차가 제작되었다. 또 중국에서는 충차(衝車)라는
인력 추진 방식의 공성차가 제조되었다. 그로부터 약 1천 9백년 후 한반도에서는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가 쇠가죽을 둘러친 귀갑차(龜甲車)라는 공성 병기를 제조해 성을
공략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대형 병기 외에도 티레 공방전에서는 많은 육병이 군선에 탑승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을 육상 전력이 아니라, 단지 방패를 들게 함으로써 방어 전력으로서만
사용하였다.
동시 다발적인 공격으로 방위군의 주위를 딴 데로 돌렸기 때문에 해상에 대한 반격은
한정적이었다. 육상전에서 흔히 사용되는 양동 작전을 해상에서재현한 알렉산드로스의
전술은 기동성과 항양성(航洋性)이 떨어지는 갤리선을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해도 탁월한
것이었다.(이쪽 역시 갤리선이었고, 기동성이 낮은 쌍동선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 갤리선에서 티레 성내로 상륙할 때 이용했을 양륙교(揚陸橋)의 구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훗날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 해군이 카르타고 함대에 설욕전을
전개할 때의 비밀 병기인 '까마귀(끝에 갈고리를 달아 적선에 고정시키는 트랩 것은 것)'와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승리 요인은 해전 전술에만 연연하지 않고 이러한 병기를 유연하게 구사한
응용력에 있었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것은 훗날의 재해권에 해당하는 개념을 당시 22세의
젊은 청년 왕 알렉산드로스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술의 의의>
티레 성 요새, 우주 요새 이제르론, 난공불락 돌도레이 성.... 이 세 요새들은 위치한 지점과
또 이 요새들을 공략하려던 시대 등등 많은 차이점이 있으나 공통점도 많다. 우선 돌도레이
성이나 이제르론은 지휘체계부터 통일되어 있지 않고 무작정 도주하려는 적을 덮어놓고
부하의 진언을 무시해가며 지키던 전군에게 추격을 명령하는 바람에 보기좋게 적의
별동 부대에 의해 난공불락이던 요새를 내주고 말았다는 점이며 돌도레이는 험한 절벽과
산을 등지고 앞에 거친 강물을 앞에 둔 이른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고 있는 요새로써
쉽사리 공략하기가 어려웠고 이제르론은 지극히 비좁은 회랑 한복판에 위치해 있어 막대한
대군으로는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으며 티레 성은 온통 물로 뒤덮힌 섬의 요새라는 점이
있어 세 요새 성은 말그대로 난공불락이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세 요새 성을 공략하던
각 총대장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자유 행성 동맹군의 양웬리 제독,
미들랜드 군 매의단 단장 그리피스 등에게는 각각 부딪친 난관.... 난공불락으로 그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요새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요새의 주둔군과 요새를 갈라놓아
서로 연계할 수 없도록 만들며 동시에 주둔군의 행동의 자유를 구속하며 요새의 방위 능력을
무력화 시켜야 한다는 기본 작전 계획은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르론 요새와 돌도레이 공략의 공통점에서는 아무리 적은 수라 할 지라도
주둔군 본 병력이 없는 틈에 점거 부대가 요새를 침투, 곧장 요새를 장악해버리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라 하겠다. 그리피스는 캐스커를, 양 제독은 쇤코르로 하여금
당면해 있는 요새 직접 점거를 감행했고 요새의 방위 네트워크를 무력화 시켰다. 또한
요새와 요새 주둔군 간의 연락이 통하기 어렵도록 치밀하게 방해 공작 혹은 주둔군으로
하여금 요새가 함락되었음을 크게 선전하여 동요케하는 심리전을 전개하는 등 두 장군의
전법은 매우 흡사하다. 거기에 비해 티레 성 공략 때는 양 웬리도 그리피스도 하지 못한
물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외교 수완을 통해 동맹국의 힘을 빌려 공략했다는 점은
분명 양 웬리와 그리피스의 공략과 큰 차이점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세 명의 천재
전략 전술가들은 요새의 정면 공격의 우매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요새 주둔 병력과
요새를 떼어놓고 요새를 장악해야만 한다는 전법을 펼쳤다는 것은 대단히 놀랄 만하다고
하겠다.
요새 공략은 앞서 언급한 여러 방법들도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 양웬리, 그리피스....
이 세 천재들처럼 요새에 만약 강대한 주둔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 병력을 요새에서
떼어내고 양동 작전을 전개해 요새를 점령한다는 전술은 알렉산드로스 이후에도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천재 용병가들이 ㅡ물론 그리 흔하지 않았다. 얼마 되지는
않고 비교적 소수이기는 하지만 후세의 용병가들은 그러한 용병술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새 점령법 중에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ㅡ 너나 할 것없이 요새 공략의 정석으로
인식하게 되어 자주 채택하게 된다.
첫댓글 전투 경과와 각 전투의 비교 분석론은 계속 진행됩니다.
은영전 내용은 그냥 퍼온거네요 ㅡㅡ;;
은영전은 제 기억에서 비롯된 겁니다. 책을 읽었던 거 기억한 거예요.
글구 세 개 전투의 배경은 전부 다 퍼온 거는 맞구요. 다만 지금은 세 전투들을 비교 분석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