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입추가 지났다고 가을이라 했나
코스모스 핀 저 길로 아씨가 걸어 오거던 그때 가을이라 해라
나는 아직 커피향 나는 가을을 기다리지 않을 테니..
미경씨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 난다. 이십몇년 전 어느 가을날 티비를 보고있었는데 뉴스가 다 끝나고 미경씨 노래가 나왔다. 그때 이미자의 "아씨"를 미경씨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는데 쇼파에 드러누워 티비를 응시하던 나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티비 앞에 코를 박고 눈이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황홀한 충격 그 자체라면 말이 될까.. 천상의 목소리로 아씨를 불러대는 미경씨는 마치 천국에서 내려 온 천사 같았다. 얼굴도 내가 좋아하는 한국적인 미인이고 목소리 까지 황홀하니 나는 그만 미경씨에게 홀딱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총각이었지만 어찌 내가 미경씨를 만날 수나 있었겠는가.


그날 이후로 음악프로만 나오면 미경씨가 나오는지 확인하는게 일이었다. 그러다 어떤 프로에서 미경씨가 나오길래 환호성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엄마 나 저 여자랑 결혼 할랍니다” 하니까 어머니는 “이눔아 너 같이 월급 쬐메 받는 놈을 좋아 허것냐~ 정신 차리래이” 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날 이후 나는 미경씨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하여 마이마이를 들고 다니면서 해드폰으로 열심히 들었다. 귀가 지겨울 정도로 들어며 미경씨의 목소리를 음미했다. 노래가 좋기도 하지만 순전히 미경씨의 목소리와 예쁜 얼굴 때문이었다. 7년전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미경씨의 “아씨”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시집 온 이후로 친정에 몇 번 못가셨고 대도시로 이사온 35세 이후로는 아예 고향에 못가시고 돌아 가셨다. 돈 많이 벌어서 고향에 멋진 전원주택 지어 어머니께 받치고 싶어던 아들의 꿈을 이루기도 전에 돌아 가신 것이다. 살아 계실 때 고향에 가고 싶지 않는냐고 물어 보면 가고 싶은데 전답을 다 팔고 와서 쉴 곳이 없는데 어떻게 가냐고 하셨다. 그때 나는 미경씨의 아씨 노랫말을 아주 많이 상상했었다.

옛날에 이 강은 열어홉 적에 서방님 따라서 시집 가던 강 여기련가 저기련가 물안개 곱개 피어 나던 강 한 세상 여울져 흘러 가는데 저무는 하늘가엔 노을이 섧구나. 우우우~우~ 옛날에 이 길은 새악씨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든 길 여기련가 저기련가 들국화 한초롬 피어 있던 길 한세상 다 하여 돌아 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엔 노을이 섧구나.
나는 꼭 이 노랫말처럼 어머니께 금의환향?하여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노년을 편안하게 살겠끔 해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기다려 주지 않고 가신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다 그렇게 사셨지만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자식키우며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항상 아려 온다.
미경씨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태어나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여자가 분명하니까 말이다. 팬이라며 행사장을 찿아가 직접 만나 지는 않는다. 그러면 지금 같은 내 마음이 사라질까 두려워서 이다. 그냥 내 가슴에 사는 새로 두고 싶기 때문이다.

장녹수, 춘향이, 양귀비 같은 고고조 할머니 보다 언제든 인터넷을 뒤지면 볼 수 있는 미경씨가 더 이쁘다고 생각한다.
미경씨! 아프지 말고 예쁜 얼굴로 오래 오래 좋은 목소리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가을남자 벼리빈나는바메 올림. |
첫댓글 그때는 꼭 한번 만납시다. 회 사주께요.
가을남자님 글 이쁘게 쓰셨네요
잔잔한 감동을 느끼는것은 예쁜 글에다가
미경씨의 모습을 저가 님을 처음 만났을때
좋아하는 사진만 올려져 있네요 고맙다는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사는새가 아니고 한쌍이 되어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가 될것입니다
그때 또 글 올릴께요 오늘도 그 희망에 살지요
혹시 님이 미경씨인가요?
@벼리빈나는바메 눈치가 구단 이시네
감사합니다.^^
늘건강 유념하세요 .
다녀 갑니다.
님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