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06,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2010, 정지인 옮김, 2023, 총440쪽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적인 부분이 몇 군데나 있었는데 가장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부분은 바로 다윈이 따개비에 이름을 붙이는 장면이었다. 아주 드라마틱한 어떤 발견 때문에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따개비를 연구하는 그 일상적인 루틴이 바로 발견과 탐색과 이름짓기의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윈에 hommage로써 다윈이 따개비에 이름 붙인 연유를 여기에 적어보았다. 전체 전자책 841쪽 중에서 88~99쪽에 이르는 분량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여 적어보았다.
그 전에 몇 가지를 짚어보자면 먼저 이 책은 분류학 초창기인 18세기부터 최근 분류학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변천사를 다룬다. 인간이 나무, 물고기, 사자 등과 같이 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분류하고 체계화한 것이 분류학이라고 알려준다. 이 분류학은 혼돈투성이인 자연에서 어떤 질서를 찾아내고 그것을 개념화하고 보편타당한 기준을 바탕으로 생명의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과학자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분류학은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인 카롤루스 린나이우스(라틴어 이름, 칼 폰 린네)가 이명법을 만든 뒤 학문의 하나로 자리 잡는데, 다윈이 혜성처럼 등장해 ‘진화’라는 개념을 내놓으면서 패러다임을 뒤흔들어버렸다. 이후 수리분류학, 분자분류학, 분기학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이 분기학에서 비로소 주장하는 것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고정돼 있지 않고 변이하며, 그것이 생명 질서의 핵심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고기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같은 어류가 아니고 오히려 같은 기관을 가진 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감각으로 우리가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분기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기도 하다. 이 책 저자는 이 자연에 대한 감각, 인간이 감각을 통해 지각하는 세계를 ‘움벨트’(독일어로 환경, 주변세계)로 지칭하면서, 움벨트가 분류학 창시의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한다.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움벨트는 과학에 의해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됐지만, 저자에게는 다시 되살려내야 할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그는 생명 세계를 지각하면서 이름 짓고 분류하는 일을 과학자의 소임으로 던져버리고 더는 움벨트를 작동시키지 않고 생명의 세계와 단절된 현대인들의 위험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계에 닻을 잘 내리기 위해서 또 여섯번째 대멸종 시대의 한가운데 들어선 인류가 움벨트에 눈떠야 한다고 역설한다. 분기학자들이 진화적 분류 체계 연구를 통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도 움벨트를 작동해 물고기를 물고기로 보는 우리는 ‘물고기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 책에 대한 기본 요점은 여기서 끝을 맺고 다시 세부사항인 다윈으로 돌아와서 다윈으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다음 부분은 다윈의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나오고 친구로서의 모습, 따개비들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따개비들을 미워하는 모습들도 나온다. 다윈이 따개비들을 미워한 까닭도 바로 따개비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이나 따개비 연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페이지들이 감동적인 것은 우리 모두가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 긴 세월동안 천척하는 모습이 마치 다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더 이 대목에 감동적인 이유는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다윈처럼 최초로 이론을 내놓는 위대한 사상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평범한 삶으로서 존재하는 나를 알기 때문에 다윈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고 더 감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88)다윈이 연구하기로 선택한 이 따개비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따개비였다. 암컷은 겨우 핀의 머리만 한 크기였는데 그런데도 암컷이 더 큰 쪽이었다. 수컷은 더 작아서 'i'의 점보다도 더 작았다. 하지만 분류학에서는 한 가지 유기체만 따로 떼어 연구하는 건 별로 소용이 없다. 그래서 다윈은 전체 따개비들의 자연적 질서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착수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서로 다른 분류군들을 하나로 묶거나 서로 구별하는 핵심 특징을 찾기 시작했다. 두 개의 개체를 살펴보면서 아마 그는 둘이 똑같은지 아닌지 그 종 안에서도 서로 다른 변종의 일원임을 의미할 작은 차이점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려 했을 것이다. 더 둗드러진 차이가 더 많다면 그건 둘이 서로 별개의 종이라는 뜻일 테고 그보다 차이가 더 많다면 서로 다른 속일 것이며 그렇게 린나이우스의 계층을 타고 계속 올라갈 것이다.
그는 이 따개비가 너무 괴상하고 속속들이 경이롭고 이상해서 다양한 부분들 하나하나와 구조까지 모든 것이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걸 느꼈다. 그는 후커를 자신의 따개비 모험에 끌어들이기를 바라면 이렇게 썼다.
"자네는 이름 짓는 재주가 있는가? 내게 상당히 새롭고 신기한 속의 따개비가 있어서 말일세. 이 녀석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데 이름은 어떻게 짓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감히 안 잡히는 군."
일부 부위가 관절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착안하여 두 사람은 아르트로발라누스(Arthrobalanus)라는 이름을 고안했다 Arthro는 관절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고 balanus는 따개비를 뜻한다. 그들이 "미스트 아르트로발라누스 Mr. Arthrobalanus" 라 부르기 시작한 이 따개비는 이렇게 다윈의 세계로 들어와 금세 그 세계를 장악해버렸다.
다윈이 매일같이 서재에 틀어박혀 취기가 유발하는 보존제의 증기 속에서 현미경의 간유리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어느 끝이 위쪽(따개비의 경우 발끝)이고 어느 끝이 아래쪽(머리)인지 알아내기 위해 방향을 잡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금세 뭐가 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따개비의 몸에 해당하는 작은 조직들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미스터 아르트로발라누스가 조개껍질을 뚫고 들어가며 만들어놓은 작은 입구 구멍 바로 너머에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다윈은 한 때 자유롭게 수영하던 유생이 바로 거기로 들어가 성체로 성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개비는 바로 이 방안에서 몸의 나머지는 안전하게 머물면서 그 작은 입구 구멍으로 발들만 내밀어 먹이를 잡아먹는다. 다른 따개비들은 자기 몸을 온전히 에워싸는 데 사용하는 똑같은 종류의 판들을, 이 작은 따개비는 조개껍질에 자기가 뚫어 놓은 구멍을 덮는 단단하고 견고한 지붕을 만드는데 썼다.
다윈은 따개비를 1500배 확대하여 관찰했고 i자의 머리만한 수컷조차 피자 라지 사이즈 만큼 크게 확대해서 조사했다. 그렇지만 따개비 연구는 고생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다윈은 생각했다. 따개비 아니 미스터 아르트로발라누스는 어디든 제 몸을 붙이고 껍데기를 만들고 나면 따개비 종들은 짝짓기를 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페니스를 만들고 펼쳐서 근처에 고착해 있는 따개비를 수정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먼저 암컷에게 구멍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 꼭 끼어 사는 것으로 짝을 찾는 어려움을 상당히 줄여버린다. 때로는 암컷 하나에 수컷 일곱 마릮지 들어가 있기도 한다. 둘째로 따개비가 사실 한 개체당 페니스가 두 개씩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 페니스는 8~9배는 더 길게 늘어난다.
결국 아이들은 집안 여기저기 어디나 놓여 있는 이 작은 해양 생물 더미 위로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버지에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중 한 명은 친구 집에 갔을 때 집안을 둘러보고는
"그러면 너희 아버지는 어디서 따개비 연구를 하시는 거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 연구의 결과는 이러하다.
(199) 다윈이 성공한 일이라고는 이미 어려워지고 있던 일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여려운 일로 바꿔놓은 것뿐이었다. 그가 더 많이 알아낼수록, 전 세계에서 온 드넓은 지질학적 시간 범위에 속한 따개비들을 더 많이 볼수록, 그것들을 종으로 분류하는 일은 더욱더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그 일은 어려웠고 기를 꺾어놓았으며 참담할 정도로 느릿느릿 진행됐다. 이 이대한 사상가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내놓아 세상을 바꿔놓을 사람이 한 무리의 작은 따개비들에게 패배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그에게 분류학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려웠던 이유는 정확히 바로 그것, 그러니까 진화에 대한 그의 천재성, 가장 혁명적인 그 개념에 대한 집착, 그 지식의 깊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