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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의 기초
1.수행(修行)의 방법(方法)
방편(方便)과 삼매(三昧)
우리가 지금껏 받아 온 학교 공부에서도
국민학교 때 공부하던 방법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 공부하는 방법이 모두 틀립니다.
국민학생을 대학생의 공부방식으로 가르친다거나 대학생을 국민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가르친다면
공부가 어려워 할 수 없거나 공부의 효율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을 하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과 그 방법에 알맞는 방편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선지식의 지시를 받아 자신의 수행 정도에 알맞게 사용해야
수행하는 것도 쉽고 수행의 진전도 빠르게 됩니다.
역으로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수행이 너무 어렵거나 타성에 젖어
수행의 진전이 없을 뿐 아니라 수행을 포기하게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제시하는 수행의 방법과 방편이 어떤 단계 어떤 경우에 쓰이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둡시다.
1.1 수행(修行)의 방법(方法)
수행의 방법으로 기도, 관법(觀法),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의심법(疑心法) 등 4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도는 그 자체로 수행방법은 아닙니다.
단지 지혜의 상징인 부처님의 거룩한 상호 앞에 머리 숙여 절함으로써 자신의 어리석음을 절감하여
수행의 길로 접어들도록 유도하는 조도(助道)역할을 하는 것 뿐입니다.
따라서 실제의 수행방법은 크게 관법(觀法),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의심법(疑心琺) 이렇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① 관법(觀法)
관법은 수행의 길로 처음 들어와 속세의 때가 많이 묻어 있는 사람에게 주로 시킵니다.
관법은 어떤 한가지 대상을 생각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공부방법을 말합니다.
관법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앞에서 언급했던 어떤 한가지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관법을 여러가지로 구분하는데 대표적인 3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백골관(白骨觀)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시키는 공부방법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살이 검어지고 고름이 생기며
살이 썩어 들어가 벌레가 꼬이며 나중에는 백골만 남는 것을 차례로 관(觀)하게 합니다.
이렇게 백골만을 관(觀)하게 함으로써 욕심을 없애고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입니다.
둘째 자비관(慈悲觀)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성내는 마음이 많은 사람에게 시키는 공부방법입니다.
지장경에 나오는 지옥의 참담한 모습을 항상 생각하게 함으로써 성내는 마음을 없애고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입니다.
셋째 수식관(數息觀)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어리석은 사람에게 많이 시키는 것인데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을 관찰하는 공부방법입니다.
또는 호흡에 맞추어 1부터 시작하여 100까지를 세게 하고
다음에는 거꾸로 100부터 1까지 다음에는 홀수만 세게 하고 다음에는 짝수만 세게 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어리석음을 없애고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입니다.
이상으로 관법에 대한 공부는 마치고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②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이 방법은 공부가 관법(觀法)의 수준을 넘어선 수행인에게 주로 시키게 됩니다.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은 어떤 한가지 번뇌를 생각 생각 이어지게 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공부방법입니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추번뇌를 없앨 수가 있으며 이 방법을 분류하면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염불법(念佛法)입니다.
부처님의 명호들, 예를 들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지장보살 등등 중의 하나만을 생각 생각 이어지게 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입니다.
둘째 주력법(呪力法)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언들, 예를 들면 옴마니 반메훔,옴 치림,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신묘장구 대다라니 등등 중의 하나만을 선택하여 그것만을 생각 생각 이어지게 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입니다.
③ 의심법(疑心法) - 화두법(話頭法)
이 방법은 최후에 공부를 마무리할 때 즉 세번뇌를 없앨 때 쓰는 방법으로서 이 때는 스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스승이 제자를 보니 공부가 거의 끝나갈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때 스승이 제자에게 격외도리(格外道理)를 거량하여 의심을 돈발(頓發)시켜 줍니다.
이렇게 돈발(頓發)된 의심때문에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스승이 제자에게 의심을 돈발시켜주기 위해 거량한 격외도리(格外道理)를 화두(話頭)라고 합니다.
일단 스승이 제자에게 화두(話頭)를 던져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면
제자는 오래지 않아 견성(見性)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병아리가 부화될 때 어미가 껍질을 한번 쪼아 주어 병아리가 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비유하여 '졸탁치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선가(禪家)의 유명한 화두 중에 무자(無字) 화두가 있습니다.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질문한 스님은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됩니다.
분명히 부처님께서 열반경에 '꿈틀꿈틀 움직이고 영(靈)이 있는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라고 했는데
무라고? 어째서 무라고 했을까? 무엇때문에 무라고 했을까? 왜 무일까? 이러한 의심이 불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강력한 의심의 힘으로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주 깊은 삼매(三昧)에 들게 되므로 언하(言下)에
바로 견성(見性)을 하거나 오래지 않아 견성(見性)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공부를 마무리하는 방법이 화두의심법입니다.
이 방법에는 매우 중요한 몇가지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첫째 스승의 역할이 거의 절대적입니다.
둘째 의심(疑心)이 돈발(頓發)되어야 합니다.
즉 옛날 화두(話頭)를 떡 주듯이 그냥 주어서는 의심이 돈발되지 않습니다.
화두는 1회용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한번 씹다 버린 껌은 향기가 없습니다.
만약 옛날 화두를 주려면 그와 비슷한 기연(奇緣)을 만들어 의심을 돈발시켜 주어야 합니다.
셋째 돈발된 의심을 이어갈 삼매(三昧)[제2부 1.2참고]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삼매(三昧)의 힘은 화두법으로 수행하기 전에 벌써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위의 세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화두의심법으로 수행하게 되면
수행의 진전이 거의 없어 공부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지금까지 관법(觀法),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화두의심법(話頭疑心法) 이
세가지 수행방법에 대하여 간략히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세가지 수행방법의 차이점을 연장에 비유하여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불상을 조성한다고 해 봅시다. 처음에 적당한 나무를 베어 와 대략의 불상모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때는 큰 자귀와 같은 연장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같은 연장은 수행에 비유하면 관법에 해당됩니다. 다음에는 좀더 구체적인 형태로 모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때는 조금 더 정교한 연장인 작은 자귀를 사용해야 겠지요.
이 부분은 수행의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에 해당됩니다.
끝으로 마무리를 하여 불상을 완성해야 할 때에는 조각칼과 같이 매우 정교한 연장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 단계가 바로 화두의심법(話頭疑心法)입니다.
처음부터 조각칼을 사용하여 불상을 조성한다면 힘만 낭비하고 칼은 부러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은 3가지 수행방법의 차이점을 정확히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언급할 것은
세가지 수행방법 모두 하나의 대상에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1.2 수행(修行)의 방편(方便)과 삼매(三昧)
① 방편(方便)
수행의 각 방법마다 거기에 알맞는 방편(方便)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수식관에서는 숫자를 세는 것이 방편이고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중
주력법에서는 옴마니 반메훔 같은 것이 방편이 될 것이며
화두의심법에서는 "무(無)"자 화두 같은 것이 방편이 됩니다.
즉 방편(方便)이란 각 수행의 방법마다 직접적인 수행을 가능케 해 주는 도구를 말합니다.
그래서 방편이 좋아야 수행이 쉬워지고 수행시 만나게 되는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방편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요?
수행의 방법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한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방편(方便)은 반드시 번뇌(煩惱)와 무기(無記)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조건이 갖추어 지지 못하면 방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므로 수행의 진전이 없을 뿐 아니라
잘못하면 사마외도가 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스님은 중생들을 가르치면서
'번뇌가 일어나면 주인공[=불성(佛性)] 에게 맡겨라'라고 가르킵니다.
이렇게 하면 번뇌는 조금씩 사라질 수 있을지 몰라도 무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깊은 잠을 잘 때는 누구에게 맡긴단 말입니까?
이같은 방법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번뇌는 많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무기를 조장하게 되므로 엄청난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제1부 2.2 무기조장의 과보]를 참고하십시오.
이외에도 여러가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만 여러분에게 연습문제로 남기겠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여 이야기하면 방편은 반드시 번뇌와 무기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방편을 주는 스님이 있으면 '저분은 엉터리' 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② 삼매(三昧)[=선정(禪定)]
삼매란 방편에 관한 생각만 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수식관의 경우 숫자만을 세고 있는 상태,
주력수행의 경우 옴마니 반메훔만을 생각하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화두의심법의 경우 화두 한가지만을 의심하는 상태를 삼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삼매의 힘을 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수행(修行)의 단계(段階)
우리가 방편을 가지고 수행을 하여 견성을 하게 되는 데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자세한 설명은 취암 강 정진 저(著) 대자유인(大自由人) 제2부를 참고해 주십시오.
2.1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
걸어다닐 때나 머무를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할 때나 말을 들을 때나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항상 삼매를 유지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깨어 있을 때는 항상 삼매에 들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말할 때 삼매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인이 수행과정에서 만나는 세가지 고비즉 상기,
말할 때 삼매 유지, 내외명철 중 두번째에 해당하는 아주 어려운 경지입니다.
이 단계를 통과하는 데는 묵언수행(默言修行)이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 단계만 통과하면 조금 후에 설명할 오매일여(寤寐一如)까지는 무난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2.2 몽중일여(夢中一如)
삼매가 깨어 있을 때 완벽하게 유지가 되면 나중에는 꿈속에서도 깨어 있을 때와 꼭 마찬가지로 삼매가 유지가 됩니다.
이것을 몽중일여라 합니다.
2.3 숙면일여(熟眠一如)
공부가 몽중일여가 되고 나면 의식이 끊어진 깊은 잠에서도 삼매가 유지되는 숙면일여의 경지까지 가게 됩니다.
이 경지를 오매일여(寤寐一如)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매일여가 되면 추번뇌는 모두 없어지게 되어 일반 중생과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 단계를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라고 합니다.
즉 다시는 중생의 삶으로 퇴전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보통 성인이라고 이름합니다.
2.4 내외명철(內外明徹)
공부가 오매일여가 되면 6추의 번뇌는 모두 없어지게 되고 3세의 번뇌만 남습니다.
이 때 더욱 수행에 박차를 가하게 되면 3세의 번뇌도 서서히 소멸되고 수행이 극치에 이르면
무기와 번뇌가 밝음으로 꿰뚫어지는 내외명철이 되게 됩니다.
수행의 가장 중요한 단계로 수행인이 최후에 넘어야 할 어려운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장좌불와(長坐不臥)가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이 때는 스승의 도움이 거의 절대적입니다.
2.5 돈오(頓悟) - 첫번째 깨침
방편을 들고 수행하다가 내외명철이 되면 다른 번뇌와 무기는 밝음으로 꿰뚫어지고 오직 방편 하나만 남게됩니다.
이와 동시에 그 방편이 돈제(頓除)되면서 바로 방편 하나가 나오던 곳,
즉 의식의 주체인 불성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돈오라고 이야기합니다.
보통 돈오는 내외명철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돈오(頓悟)를 견성(見性)이라고도 합니다.
2.6 두번째 깨침
돈오 후 선지식에게 인가를 받으면서 돈오했을 때 알게 된 불성 즉 성품을 어떻게 쓰는지를 알게 됩니다.
돈오는 저 언덕에 배가 닿은 상태라 표현한다면 두번째 깨침은 배를 버리고 저 언덕에 내려선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2.7 세번째 깨침 - 오조법연선사 "무(無)"를 깨침
두번째 깨침이 6진(塵)경계에 대한 수동적 자세라면 세번째 깨침은 능동적 자세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참으로 자유자재한 부처님은 되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경지는 중생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터득해야 완전한 대자유인이 된다는 정도로 알아 둡시다.
이상으로 수행의 단계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단계들은 빠르고 더딤은 있어도 결코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뛸 수 없는 것과 꼭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단계들을 거치지 않은 돈오는 결코 돈오가 아닙니다.
오매일여나 내외명철이 되지 않고 돈오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착각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두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수행의 3가지 고비에 대하여 도표로써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3. 호흡(呼吸)
우선 여기서 말하는 호흡은 복식호흡입니다.
수행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호흡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단적으로 '호흡이 수행의 반 이상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호흡에 관한 것을 확실히 알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1 호흡(呼吸)의 의미(意味)
중생의 생명은 호흡에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호흡에 맞춰 수행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번뇌와 무기는 하루 이틀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끈질기고 교활합니다.
이런 번뇌와 무기에 대적하려면 강력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호흡에 걸고 수행을 함으로써 최대의 결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호흡에 걸고 수행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수행시 삼매를 24시간 이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호흡은 24시간 쉬지 않고 이어지므로 호흡에 맞춰 수행을 하게 되면 항상 삼매를 이어나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실제로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둘째 의식은 호흡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호흡을 하면서 수행을 하는 것이 삼매에 드는데 많은 도움을 주게 됩니다.
실제로 호흡이 안정되어 있을 때는 거친 번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셋째 호흡은 수행에 리듬을 줍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어떤 방편을 잡고 그 방편만을 생각함으로써 다른 번뇌와 무기를 퇴치합니다.
그런데 무질서하게 방편을 생각하면 나중에는 머리가 아프고 목이 붓는 등등의 증상이 나타나 수행에 방해를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공부가 단조로와져 타성에 젖기 쉽습니다.
따라서 들숨과 날숨을 이용하여 들숨에는 방편에 대한 생각을 쉬고 날숨에 맞추어 방편을 생각함으로써
공부에 리듬감을 얻을 수도 있고 머리가 아프다거나 하는 등의 증상을 예방할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호흡은 건강증진에도 도움이 됩니다.
항상 배를 움직여주기 때문에 내장기능이 좋아지게 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흡은 수행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아주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호흡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3.2 호흡(呼吸)의 방법(方法)
복식호흡에는 단전호홉, 지식호홉, 태식호홉, 받치는 호흡 등이 있습니다.
① 단전호흡(丹田呼吸)
우리의 배는 배꼽을 기준으로 아랫배와 윗배가 있습니다.
이중 아랫배를 사용하여 숨을 들이킬 때 배를 내밀고 배를 집어넣으면서 숨을 내쉬는 방법으로
호흡을 하는 것을 단전호홉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은 밥을 먹을 때는 하기가 힘들고 성욕을 많이 자극할 뿐 아니라 부작용의 우려가 있는 호흡방법입니다.
그래서 수행인들이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② 태식호흡(胎息呼吸)
태식호흡은 배꼽 위쪽 즉 윗배를 사용한다는 것만 제외하고 단전호흡과 같습니다.
이 호흡은 태아가 어머니 배속에서 하는 호흡이라고 해서 태식호흡이라고 합니다.
이 호흡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부작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행인이 하기에 아주 적당한 방법입니다.
③ 지식호흡(止息呼吸)
이것은 숨을 쭉 들이키면 아랫배나 윗배가 나오게 되는데 이상태에서 숨을 내쉬지 않고 숨이 찰 때까지
멈추어 있다가 한꺼번에 내쉬는 방법으로 하는 호흡법을 말합니다.
이것은 수행의 강도를 높일 때 많이 사용합니다.
이 호흡법은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너무 자주 사용하면 무리가 따를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④ 받치는 호흡(呼吸)
이것은 지식호흡과 거의 유사합니다. 단지 지식호흡은 배를 내민 후 완전히 숨을 멈추고 있다가 한꺼번에 숨을 내쉬지만
이 호흡은 배를 내민 상태를 유지하고 잔 호흡으로 숨을 쉬면서 나중에 숨을 한꺼번에 내쉬는 방법입니다.
이 호흡은 수행인이 두번째 만나는 아주 어려운 고비인 말할 때 삼매를 유지하는 것을 통과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이상이 수행인이 주로 사용하는 호흡법입니다.
덧붙여서 한가지만 더 소개하면 태식과 지식호흡을 혼합한 호흡법도 있습니다.
이것은 배를 내밀면서 숨을 들이킨 후 처음 얼마동안은 숨을 참아 지식호흡의 효과를 내고
나중에는 배를 집어넣으면서 숨을 길게 내 쉬어 태식호흡의 효과를 내는 호흡법입니다.
3.3 호흡시(呼吸時) 주의사항
복식호흡은 흉식호흡보다 아주 깊숙히 숨을 들이키는 것이므로 사람이 많은 곳, 지하철역 구내,
도서관 등 공기가 나쁜 곳에서는 복식호흡을 삼가고 흉식호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어도 복식호흡을 해야 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호흡을 너무 깊게 하지 말고
짧게 짧게 하는 호흡으로 바꾸기 바랍니다.
물론 공기가 좋은 곳에서는 깊은 호흡을 할수록 좋은 공기를 많이 마시게 되므로 건강에 좋습니다.
4. 수행(修行)은 왜 하는가?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삼매의 힘을 길러
견성(見性)하여 성불(成佛)하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성불하면 무엇이 좋은가? 만약 수행을 하다가 성불을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이러한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어 보도록 합시다 .
4.1 성불(成佛)하면 무엇이 좋은가?
먼저 중생이 수행을 하여 부처가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우선 이것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제1부 중생의 정신세계에서 중생은 번뇌와 무기의 속성을 지닌 유정(有情)이라고 말했읍니다.
또한 중생의 번뇌와 무기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번뇌는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치면서 아뢰야식에 인(因)으로 남고
무기는 그대로 아뢰야식에 인으로 남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중생들은 번뇌와 무기로 인한 찌꺼기가 아뢰야식에 인으로 남기 때문에
항상 무엇엔가 끌려가는 듯한 삶을 살게 되고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는 번뇌와 무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걸림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중생과 부처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잘 이해도 되지않고 구체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경전과 조사어록의 말들을 인용하여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이고 득락(離苦 得樂)
이 말은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말인데 리일체고 득구경락(離一切苦 得究竟樂)의 줄인 말입니다.
즉 성불의 목적은 모든 고통을 여의고 구경락을 얻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한번 돌이켜 봅시다.
젊었을 때 곱고 탄력 있던 피부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쭈글쭈글해지고 태산이라도 짊어질 수 있을 듯하게
넘쳐흐르던 정기도 쇠진하여 자기몸하나 부지하기도 힘들어지는 늙음의 고통, 건강하던 몸이 갑자기 병이 들어
몸에 열이 나고 온몸이 쑤셔오는 병듦의 고통, 언제 닥쳐올지도 모르는 죽음의 고통을 비롯하여
일상적인 삶속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들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인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이러한 고통들의 끝은 있는 것인지, 이런 의문들은 도무지 알 수 없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들의 삶입니다.
하지만 부처는 무상(無常)한 일상의 현실사를 뛰어넘어 영원한 어떤 진리를 터득한 사람입니다.
번뇌와 무기를 제압하고 열반에 든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경에 말씀하시길 "열반의 성질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열반의 성질은 영원하고 기쁨밖에 없고 진짜 아(我)[=불성(佛性)]가 있으며 맑고 깨끗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가 되면 즉 열반에 들면 고통은 모두 사라지고 항상 락(樂)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구경락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지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성불한다는 것은,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오는 인생의 모든 고통을 뛰어 넘어
영원한 락(樂)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말은 선의 검객으로 알려진 임제선사의 어록에 나오는 것입니다.
풀이하면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게 한다"라는 말입니다.
우선 중생의 삶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중생의 속성인 번뇌와 무기는 바로 우리의 불성(佛性)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즉 불성이 바로 주인(主人)이고 번뇌와 무기는 객(客)인 것이지요.
그런데 중생의 삶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불성에서 나온 번뇌와 무기가 오히려 불성을 가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이 주인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내가 나의 생각을 마음대로 하지못하고 생각에 끌려다니고 있으니까요.
이러다 보니 저지르고 싶지 않은 악(惡)도 많이 저지르게 되고 뜻하지 않은 행동도 하게 되어 뒤죽박죽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하여 부처가 되면 바로 이런 전도된 상황이 바로 잡히게 됩니다.
내가 주인(主人)이 되어 내 생각을 마음대로 쓰게 됩니다.
중생처럼 내가 원하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생각들은 없어지고 내가 원하는 생각만을 필요한 때에 쓸 수 있게 됩니다.
참으로 신나는 일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생각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부처가 된 뒤에 마음껏 쓰는 생각은 중생의 번뇌와는 달리 "반야지(般若智)"라고 합니다.
즉 한마디 한마디 모두가 바로 진리의 말들입니다.
종합해서 이야기하면 내가 부처가 되면 내가 가는 어느 곳이나 내가 주인이 되어 그곳을 진리의 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보람차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③ 보살행(菩薩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수행을 하여 부처가 되면 나에게는 좋은 일인데 남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가?
다음과 같은 널리 알려진 비유를 생각해 봅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헤메고 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횃불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주위는 환하게 밝아지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한사람이 성불을 하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해 셀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게 됩니다.
왜냐하면 무명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지혜 광명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부처가 되신 후 일체중생이 당신과 똑같은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이 그것을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나게하기 위해 동체대비심으로써 49년간 설법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처럼 일단 성불을 하고 나면 고통받는 다른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행 또는 불행(佛行)을 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중생에게 이익을 주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우주내에 보살의 피와 땀이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살들은 자기의 몸과 목숨을 아끼지않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른 법을 설하시어 중생 스스로 이 고통의 바다를 영원히 헤어날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이같은 보살행들이 바로 수행을 통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공덕(功德)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수행하여 견성성불한 공덕은 온 우주법계를 비추어 셀 수 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4.2 수행(修行)을 하다가 견성(見性)을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수행을 하다가 성불을 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견성하기 힘들다면 아예 포기하고 시작도 안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가 수행을 하다가 설사 성불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금생에는 수행의 공덕으로 얼굴빛이 밝아지고 행동이 바르게 되고 판단력이 아주 뛰어나게 됩니다.
뛰어난 판단력으로 일상사를 처리하게 되니 갈등이 적어지게 됩니다.
또한 삼매력이 증진되니 정신집중력이 뛰어나 세속공부도 더욱 잘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의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 적어지니 타인과의 관계도
아주 원만하게 되어 타인의 호감을 사게 됩니다.
이외에도 금생에 바로 받는 수행의 공덕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제 좀더 나아가 생각해 봅시다. 제1부 중생의 정신세계에서 중생의 번뇌와 무기는
모조리 아뢰야식에 인으로 기록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수행을 하면서 수행을 위해 일으켰던 불법(佛法)에 관한 번뇌들은 아뢰야식에 인(因)으로 기록되어
다음 생에도 불법을 만나 수행의 길로 접어들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가 정법을 만나 수행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계시지요?
다음과 같은 비유가 있습니다. 태평양에 눈먼 거북이가 살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구멍이 난 널빤지가 물위를 떠다니고 있습니다.
이 눈먼 거북이는 500년에 한번씩 머리를 물 밖으로 내민다고 합니다.
바로 이 거북이가 물밖으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널빤지의 작은 구멍에 거북 머리가 들어갈 확률정도로
불법을 만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이토록 만나기 힘들고 소중한 불법을 내생에도 만날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해 놓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바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생에 닦아놓은 삼매력은 내생에도 쉽게 찾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는 것은 설사 금생에 성불을 못하더라도 큰 의미가 있으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4.3 성불(成佛)은 가능한 것인가?
경전에 보면 "부처님을 뵙기는 우담화꽃이 피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어렵다" 라는 말과
"시방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수는 항하의 모래수보다 많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의 말은 부처님이나 선지식을 만나 정법을 배우기가 매우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뒤의 말은 정법을 만나 그에 따라 수행하면 성불하는 것이 어렵지않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불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라면 그렇게 많은 부처님이 존재할 수 없을테니까요.
위의 두가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바른 스승을 만나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수행한다면
우리가 성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 수행과정을 통하여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우리가 어떤 방편을 가지고 수행을 할 때 호흡하는 것, 혀 말아 붙이기, 결인하는 것들을 함께합니다.
이것들의 절묘한 조화로 인해 수행자가 방편을 망각하는 시간이 점차로 줄어듭니다.
이때를 즈음하여 수행자의 머리 육계부분에 찌릿 찌릿한 신호가 옵니다.
이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 수행자는 더욱 더 방편을 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오매일여의 경지가 되면 이러한 육계의 신호체계가 완성되게 되어 잠시라도 무기에 빠지거나
순간적으로 번뇌가 일어나도 금방 알아 차리게 됩니다.
이처럼 실제 수행을 할 때 각 단계마다 공부의 향상을 도와주는 장치가 있습니다.
따라서 바른 가르침을 따라 자신만 열심히 한다면 성불의 길은 열려 있읍니다.
부처님 말씀을 굳게 믿고 열심히 해보십시오.
제3부 수행(修行)을 잘하려면...
제2부에서는 수행의 방법,수행의 의미,수행의 단계,호흡 등 수행에 대해서 전반적인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 제2부의 내용을 숙지한 후 수행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어떤 분을 스승으로 모셔야 할까요?
주의해야 할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3부에서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하여 같이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스승
1.1 스승의 중요성
수행의 길로 접어든 수행인에게 있어서 스승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일단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어떤 것이 바른 법인지를 알기 힘들고
수행상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어려운 고비들을 극복해 나가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수행인은 반드시 스승을 만나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스승으로 모신 분에게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수행의 진전이 빠릅니다.
그러면 스승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어떤 분을 스승으로 모셔야 할까요?
특히 요즘처럼 외도(外道)와 마구니가 판을 치는 말법(末法)시대에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스승을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이것에 대해 알아봅시다.
1.2 선지식(善知識) 식별법(識別法)
우리가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 분은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선지식이란 어떤 분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선종의 교과서인 육조단경에 보면 최상승법이 바른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분
즉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의 성품(性品)을 보게 할 수 있는 분을 선지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선지식이란 견성하여 성불하신 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생의 눈으로는 선지식(善知識)과 선지식행세를 하는 사람 즉 엉터리 선지식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간단히 점검해 볼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첫째 선지식은 반드시 오매일여(寤寐一如)와 내외명철(內外明徹)을 알아야 합니다.
법문중에 이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님! 견성하셨습니까? 꿈꾸십니까? 꿈꿀 때 공부는 어떠합니까?
성품(性品)에는 안도 없고 밖도 없다는데 내외명철에서 내(內)와 외(外)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등등.
둘째 처음 수행의 길로 접어든 사람에게 화두(話頭)를 주는 스님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유는 수행의 방법에서 화두의심법은 언제 쓰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셋째 번뇌와 무기를 동시에 제거하는 방편이 아니라 번뇌만 없애는 방편을 주는 스님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가짜입니다.
이런 분(?)은 아주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편은 무기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어떤 과보를 받는지는 [제1부 2.2]를 참고하십시오.
넷째 무념(無念)과 무기(無記)를 구분할 줄 모르는 스님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무념은 수행자가 견성후(見性後) 증득(證得)하여 아는 것이고 무기는 중생의 병입니다.
이를 구별할 줄 모른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다섯째 초보자에게 금강경,법화경,열반경,화엄경등을 강의하는 스님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이런 경들은 초보자에게 가르치는 경전이 아니라 용도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수행의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않고 깨친 후의 경계,
예를 들면 공(空)에 관한 법문만 일삼는 스님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처음부터 좌선(坐禪)하라고 가르치는 스님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좌선이란 우리가 어느 정도 삼매의 힘이 증진되었을 때 더욱 더 깊은 삼매에 들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좌선을 통한 수행을 익혀 놓으면 공부의 영역이 잘 확대되질 않습니다.
조금만 시끄럽고 번뇌가 많이 유발되는 장소에 가도 삼매의 힘은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한마디로 온실 안의 화초가 되어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좌선을 하게되면 무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초보자에게는 여러모로 좋지않은 방법입니다.
처음 수행하는 사람은 잡초와 같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걸어갈 때나 머무를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할 때나 말을 들을 때나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어느 순간에도 삼매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여야 나중에 더욱 깊은 삼매로 이어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의 단계에서 처음 단계가 행주좌와 어묵동정일여(行住坐臥 語默動靜一如)가 되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정도에서 끝을 맺겠습니다.
2. 수행인(修行人)의 3요(要)와 자세
2.1 수행인(修行人)의 3요(要)
수행을 해나가는데 3가지의 요구사항이 있다고 합니다.
대신심(大信心), 대분발심(大憤發心), 대의심(大疑心)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수행시 만나는 3가지 어려운 고비 즉 상기(上氣), 말할 때 삼매유지, 내외명철(內外明徹)을 돌파하는데
요구되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알아봅시다.
처음 수행하는 사람에게 신심과 분발심은 수레의 양바퀴와 같습니다.
그래서 두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수행이 원활히 진행됩니다.
신심이 분발심을 앞지르게 되면 미신이나 기복적인 모습으로 흘러버리게 됩니다.
역으로 분발심이 신심을 앞서나가게 되면 수행의 첫번째 고비인 상기가 오게 됩니다.
상기가 오게되면 머리가 아프고 목이 붓고 팔이 마비되는 등의 증상이 생겨 수행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 때에 대신심(大信心)이 필요합니다. 즉 신심을 크게 올려 이 고비를 돌파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심을 올리는 방법에는 성품, 3보(불, 법, 승)를 생각하는 것과 소리를 듣는 것 두가지가 있지만
이 경우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경전독송 소리를 듣는다든지 목탁치는 소리를 듣는다든지
자신이 경전이나 진언을 소리내어 외면서 그 소리를 듣는 것등을 말합니다.
위의 방법을 이용하여 대신심을 일으키면 첫번째 고비인 상기는 쉽게 돌파할 수 있습니다.
상기를 돌파한 후 두번째 고비인 말할때 삼매(三昧)유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분발심(大憤發心)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거나 토굴(土窟)과 같은 장소에서
혼자서 수행을 할 정도의 아주 큰 분발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강력한 수행관성(修行慣性)의 힘이 유발되어 이 고비를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고비만 통과하면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인 오매일여(寤寐一如)는 금방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수행의 마지막 고비인 내외명철(內外明徹)이 되기 위해서는 대의심(大疑心)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는 스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승이 적당한 기연(機緣)을 만들어 의심을 돈발(頓發)시켜 주면 위의 대의심(大疑心)이 유발됩니다.
이때 아주 심각해지는 의심의 첫번째 특성때문에 깊은 삼매에 들게 되고,
해결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두번째 특성때문에 돈오견성(頓悟見性)을 하게 됩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2 수행인(修行人)의 자세
발심을 하여 수행의 길로 접어든 수행인은 다음과 같은 자세들을 가져야 합니다.
① 스승의 가르침에 절대복종
참선수행은 스승과 제자사이에 만들어 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스승의 가르침과 제자의 절대적인 복종과 실천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수레의 양바퀴와 같습니다.
② 부지런함
수행인은 매우 부지런해야 합니다. 절대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몸도 마음도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③ 정직(正直)함
우선 자기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번뇌가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한 거짓말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남아 수많은 번뇌를 일으키게 됩니다.
④ 배우는 마음
옛날부터 수행인은 올바른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천리길도 멀다않고 달려갔습니다.
항상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수행에 임해야 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수행의 길에서 앞서 있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배워야 합니다.
수행의 길로 접어들어서까지 자존심을 내세우며 배우려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자질을 한번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⑤ 불퇴전(不退轉)의 정신(精神)
일단 방편을 들고 수행을 시작하게 되면 지금 이시간부터 단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수행을 하십시오.
부득이한 사정으로 뒤로 물러서게 되더라도 수행을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겠다는 마음마저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나태해서 물러선 것만 아니면 잠시 물러선다고 해도 금방 다시 나아갈 수 있지만 그 마음마저 물러서 버리면
아예 뒤로 후퇴를 하게되어 나중에는 수행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내 마음속에 물러서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내가 이렇게 좋은 법을 만났는데 왜 비굴한 마음이 일어난단 말인가?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한걸음이라도 나아가지 않으면 언제 나아가겠는가?
라고 자신을 꾸짖고 물러서려는 마음을 바로 퇴치해야합니다. 이런 불퇴전의 정신이 없으면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3. 근기(根器)
선가(禪家)의 책들을 보면 하근기(下根器),중근기(中根器),상근기(上根器),최상근기(最上根器)란 말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수행인의 공부수준에 따라 편의상 이렇게 분류한 것입니다.
수행의 길에 갓 입문하여 처음 수행을 시작한 사람은 하근기라 말하지만
차츰 수행을 열심히 하여 화두의심법으로 수행해야 할 정도가 되면 그사람은 최상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근기란 수행인의 현재 공부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절대적이고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쾌락과 술에 젖어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합시다.
이럴 경우 이 사람은 최하근기입니다. 그러다가 건강이 나빠져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고 발심(發心)하여 불법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아주 열심히 공부하여 예전의 방탕하고 나태한 생활을 청산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이 사람은 하근기에서 상근기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근기(根器)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하기에 따라서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서 상근기도 되고 하근기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수행을 열심히 하여 오매일여의 단계를 터득하면 바로 최상근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을 의심하는 몇몇 후배들을 보면 자신은 하근기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근기의 향상쯤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
상근기냐 하근기냐를 따지기 보다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욱 더 내실있고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
4. 수행시(修行時) 주의할 점
수행을 할 때에 꼭 명심해야 할 사항이나 필요한 사항을 몇가지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어떤 방편을 가지고 수행을 하든 간에 방편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다음의 세가지 즉 호흡(呼吸), 혀 말아 붙이기, 결인(結印)은 반드시 함께 하십시오.
호흡의 중요성은 앞에서 많이 강조했으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혀말아 붙이기란 혀를 말아서 입천장에 항상 붙이고 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그냥 혀를 입천장에 붙이지 마시고 혀끝을 말아서 입천장에 붙여야 합니다.
결인(結印)이란 엄지와 검지를 가지고 양손가락 끝을 맞닿게 하여 원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결인을 할 때는 손가락끝을 살짝만 붙이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가지 모두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을 할 때 방편을 망각하지 않게 해주는 아주 좋은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잠시만 방편을 망각해도 호흡이 않되고 혀가 떨어지고 결인한 손가락이 떨어집니다.
둘째 수행(修行)은 반드시 도반(道伴)들과 함께 하십시오.
처음 수행하는 사람이 혼자서 있으면 아주 위험합니다.
수행상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미묘한 상황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그릇된 경계에 혹하여 외도의 길로 빠져 들기가 쉽습니다.
반드시 스승의 지도를 받으면서 도반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도 원각경에 초학자는 대중처소(大衆處所)에서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셋째 처음 수행을 할 때는 좌선(坐禪)을 삼가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공부부터 하십시오.
그 이유는 [제3부 1.2]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넷째 무기(無記)를 조심하십시오. 처음 수행의 길로 접어들면 무기(無記)와 삼매(三昧)를 구별하기 힘듭니다.
삼매는 방편 한 생각에 있는 상태이고 무기는 생각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나타나는 외형적인 현상이 비슷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해야 합니다.
무기인 듯한 증상을 이야기 해보면 몸이 나른해지고 편안한 기분이 들 때,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이 들 때,
눈앞이 밝아지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데 방편은 희미해질 때 등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주로 좌선시에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만약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즉시 도반에게 물어보고 대처해야 합니다.
다섯째 기이한 현상을 조심하십시오.
예를 들면 남의 마음이 읽혀진다거나 미래가 보인다거나 관세음보살이 보인다거나
벽을 뚫고 벽 뒤에 있는 물건이 보인다거나 등등의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스승이나 도반에게 이야기하고 그러한 현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혼자서 좋다고 즐기게 되면 외도(外道)나 마구니가 되기 십상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눈을 감지 마십시오. 수행자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눈을 감으면 안됩니다.
눈을 감으면 기이한 경계에 현혹되기 쉽고 잠이 오게 되어 혼침(昏沈)에 빠지게 됩니다.
혼침이란 무기와 같은 상태이므로 매우 좋지 않습니다. 절대로 눈을 감지 마십시오.
일곱째 잠자는 자세입니다. 수행자는 잠을 잘 때는 부처님께서 열반도에 보여주신 방법대로 잠을 자는 것이 좋습니다.
오른쪽 방향으로 누워서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귀의 뒤로 가게하고 손바닥은 귀의 구멍을 덮지 않도록 하여 잠을 자는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잠을 자야 잠을 자면서도 완전히 방심하지 않고 수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참선수행(參禪修行)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잠시 후면 30대 그리고 여차하면 40대 입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이 수행을 하고 싶어도 체력이 떨어져 공부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젊을 때 열심히 수행을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다소 힘들더라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상상한 이상의
수행경지에 도달해 있을 겁니다.
부처와 조사도 옛날에는 나와 똑같은 중생이 아니었습니까?
그들도 나와 똑같이 중생의 몸으로 열심히 수행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중생들의 스승이 되지 않았습니까?
나도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정진(修行精進) 하십시오
이 자료집의 초안은 서울대학교 선우회와 청정회의 신입회원을 위해 기획된 ‘특별 강연회’의 준비자료로써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저희들의 스승이신 취암거사님의 법문과 부처님 경전, 육조단경(六祖壇經),
기타 불서들을 중심으로 하여 선에 입문한 초학자들에게 필요한 사항들을 간단히 요약 정리한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안을 완성해 놓고 보니 선우회와 청정회의 신입회원뿐만 아니라
불법을 공부하는 다른 불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작성된 자료들을 편집하여 이 자료집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모쪼록 이 자료집이 불법을 공부하는 불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참선수행의 기초 청정회(淸淨會) 발췌-
첫댓글 ...()...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되소서.
감사합니다..퍼갑니다
일행님 여기서 또 뵙네요...^^ 요즘 잘 지내시죠^^
기초도 없이 참선한다고 다녔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가르침을 봅니다..고맙습니다.
조은글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려워요...
잘 읽고 갑니다 여러번 보아야할 글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가슴에 새기고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_()_
감사합니다 담아가서 열심히공부하겠읍니다
좋은 글 주셔서 고맙습니다---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좋은자료 스크렙해 갑니다..^*^
감사합니다. 힘껬해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