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광수의 법률 사무소 "시우"의 개소식에 다녀왔다.
시우(時雨)라....
때에 맞춰 내리는 단비라는 뜻인데
수호지에 보면
양산박의 백팔 두령 중에 으뜸이었던
송강을 가리켜서 급시우 송강이라고 했다.
각설하고,
요즘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
사실 나에게 있어서의 토요일은
빼도박도 못하는 날이다.
오늘 개소식이 있는 것을 알고는
그때부터 단단히 작정하고 시간을 빼기는 했지만
토요일에 시간을 내보기는
신학을 한 이후로 처음이다.
애초에는
영만이와 같이 갈 생각이었다.
영만이와는
고등학교 때 늘 붙어다니기도 했고
지금도
그의 집과 우리 집은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그런데
어제 영만이에게 확인 전화를 했더니
영만이는 광수와 중학교도 동창이라면서
중학교 동창들이
12시30분까지 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별 수 없이
거기서 만나기로 하고는
혼자 길을 나섰다.
예정대로 1시에 도착했다.
여기서 한 가지,
나는 시간에 대해서는 극도로 단순무식하다.
약속 시간에 3분 늦는 것과
지구가 멈추는 것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그런데
1시에 가보니 아는 얼굴이 아무도 없었다.
25년만에 만날 얼굴들을 상상하며
토요일에 시간을 내어 갔는데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분명히 1시에 모인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건가.... 그 사이에 다른 곳으로 옮겼나...."
영만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군데군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혼자 밥을 먹기도 멋쩍은 일이고
그냥 집에 가야 하나 하고 망설이는 찰라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형욱이였다.
살은 제법 쪘지만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형욱이와는 고1 때 같은 반이었다.
형욱이를 보고 다가갔는데
일행도 있었다.
영수와 대원이.
영수는 제법 변한 것 같았고
대원이에게서 고등학생 때의 얼굴을 찾는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같이 식사를 나누노라니
그때서야 한두 명씩 나타났다.
1시에 와보고는
아무도 없다고 해서 돌아갔으면
낭패를 볼 뻔했다.
오늘,
누구 누구를 봤더라....
전부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써보면....
광수, 형욱이, 영수, 대원이말고도
동원이, 홍이, 석현이, 찬영이, 순영이, 영만이, 용만이, 석홍이, 원복이, 인숙이 등이었는데
혹시 빠진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력의 한계다.
대부분 25년만에 만나는 얼굴들이었다.
식사를 하는데
축의금 얘기가 나왔다.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나는 목사다.
그런 자리에서 축의금을 챙기는 것이 상당히 서툴다.
교인들이 입원을 한다든지
개업을 하는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찾아가기는 하지만
목사인 나는
늘 성경책 한 권이면 족하다.
하다못해
교인들 가정을 방문해도
늘 빈손이다보니
오늘도 축의금 생각은 전혀 못했다.
3만 원씩 내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올 적에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내주면서 본 바로는
지갑에 만 원짜리가 두 장뿐이었다.
식사를 하고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는데,
마침 흔해빠진 은행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한다던가....
대체 누가 그런 속담을 만들어서
나로 하여금
은행을 찾아 한참을 헤매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은행을 찾았다.
안 그랬으면
모처럼 동창들 만난 자리에서 낭패를 볼 뻔했다.
돈을 찾아서 들어갔더니
마침 개소식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축사와 인삿말 등을 들으면서 느낀 것인데
자고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말을 적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그리 하는지
(아무도 안 듣는 줄은 모르고)
다리 아파서 혼났다.
나는
가급적이면
설교를 짧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굳혔다.
동원이가
목사가 된 나를 가리켜서
"중학교 때부터 특이했다"고 했다.
(동원이와 나는 이른바 뎀뿌라중 동창이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 때
그저 얌전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나 혼자 생각일까?)
내가 왜 특이하게 보였을까?
영수가 얼른 말을 받았다.
동원이가 지금은 나이가 있기 때문에
점잖게 표현해서 특이하다고 했지,
곧이곧대로 표현하면
"뭐 저런 놈이 다 있나?"라는 뜻이라나.....
영수는
고2, 고3 때 같은 반이었는데
그는 그때부터 입담이 좋았다.
25년 만에 만났는데도
입담은 여전했다.
아마 오늘
다른 사람이 한 얘기를 다 합해도
영수가 한 얘기보다 적을 것이다.
그는
광수가 개업했으니
일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오래 산 사람부터 이혼이라도 해서 일거리를 주자고도 했다.
좌우지간
못 말리는 친구다.
하여간
영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제발 우리 교회 근처에는 오지 말아달라고......
원복이는
등산복 차림으로
동부인해서 나타났다.
고1 때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 기억으로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말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키는 나보다 작고
몸은 두 배로 불어 있었다.
하기야
고1 때 나는 키가 158cm이었다.
160cm만 되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고등학교 때를 기준으로 하면
20kg 가까이 불었으니
남의 말 할 때가 아니다.
동부인해서 온 것이 보기 좋았다.
동원이도 두 배로 불어 있었는데
그의 얘기에 의하면
많이 빠져서 그렇다고 했다.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는데
순영이 얘기로는
올챙이 같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흰머리가 는 것 말고는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글쎄....
내가 보는 다른 친구들은 그렇고
나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고등학교 때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나 혼자 생각으로만 그렇겠지....
어쨌든 이렇게 해서
평소와 전혀 다른 토요일을 보냈다.
P/S
오늘 내가 술을 따라준
순영이와 형욱이는
목사가 주는 술을 마신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한 줄 알아라.
카페 게시글
생각나는 대로
따끈따끈한 이야기
강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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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06 17:49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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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런데 집에 오니 배가 고프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어울려 있느라고 아무래도 덜 먹은 모양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육성 참 좋았다.목사님의 관록이 묻어나는 가라앉으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처음엔 잘못 걸린 전화인줄 알았지^^변하지 않은 특유의 웃음소리...굿!
재밌게 잘 읽었다..오랜만에 만나서 무척 반가웠고...나는 형욱이와 순영이와 함께 영수네 '수라'에서 한 잔 더 했다..
* 학종아..너에게 잃어버린 25년을 찾아주기가 힘들구나..초야에 묻혀사는 스님덜도 심심하고 힘들면 곡차한잔에 부채살 한접시 먹는 법...자네같이 대중속에 움직이는 목회자들이야 간단히 한두잔 하는것은 율법에 벗어나지~~~놀리네 지들만 술한잔씩하고...김인숙은 김재철로 개명한지 오랬다,,,교수님이니라..
학종아. 급한 전화가 와서 제대로 인사 주고받지 못했다. 미안하다. 나중에 설가면 연락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