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즉석 라면은 1958년 일본에서 태어났다.전직 금융인 출신인 안도 모모후쿠
회장이 라면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국수 몇가닥으로 끼니를
떼우는 사람들을 보고 당시 미국의 원조로 남아도는 밀가루로 빵 대신 국수를 만들되
값 싸고 오래 보관 할수 있는 국수에 착안 하여 1년여의 실패 끝에 아내가 튀김을 만
드는 것을 보고 밀가루를 튀기면 수분이 증발해 오래 보관 할수 있고 맛도 좋고 값도
싸게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기 "유열건조법"이라 이름붙인 라면이 탄생했다.
우리 한국의 최초의 라면은 1963년 9월에 태어났다.이름은 삼양라면 만든 사람은
역시 전직 금융인(제일생명사장)출신인 전중윤 회장이다. 전회장이 라면을 마들기로
결심한 것은 1961년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을 사려고 줄을 서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전 회장은 회사를 접고 라면 개발에 몰두한다.일본 묘조식품의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과 인연이 닿아 63년 봄 묘조식품에서 기계2대와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한국
인의 입맛에 맞고 우리의 식생활을 바꾼 라면을 이렇게 탄생했다.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원조 라면은 닮은꼴로 태어났다.그뒤 삼양라면은 라면의 대명사로 1970년대 1980년대
경제 성장기에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성을 날렸다.
라면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른 기업들도 속속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졌고,
삼양라면은 1988년 라면시장 점유율 60%를 넘어섰고 매출액 5000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1989년 우지파동이 터지면서 삼양라면은 '괘씸죄'에 걸려 희생양이 됐다.
그 당시 검찰은 라면 원료로 사용하는 쇠기름을 공업용 우지에서 추출했다고 발표하여,
그 결과 삼양라면은 큰 타격을 입어 60%의 시장점유율이 10%로 내려앉게 되고,
그 후 삼양라면을 제치고 라면시장을 장악해 나간 것이 농심이었다.
지금 국내에서 160여종의 제품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오늘날 농심의 신(辛)라면은
2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독보적 존재가 되고 있다.
2006년 4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라면총회 때에 세계 각국의 1위 업체가 대부분 참석했고,
이 자리에 일본의 안도 회장은 참석하였으나 삼양의 전중윤 회장의 자리는 없었다.
안타깝고 씁쓸하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라면은 지구상에서 1년 소비량이 파리의 에펠탑 327개를 쌓을 수 있는 부피다.
우리 한국인의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1위를 기록하면서 이제 라면은 국민간식으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첫댓글 "국민간식" 라면의 유래 잘 봤습니다.라면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고 허기진 배를 쉽게 해소 할 수 있는 "국민간식" 입니다.국민간식이란 이름이 정말 적절합니다..감사합니다.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