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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洱茶의 普와 普洱 지명에 대한 자료글을 나름 정리해 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참고가 되기를 바래보면서..... 죽천향_()_
어떤이는 普洱茶의 普가 1254년 세워진 普府보부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몽고와 대리국의 역사자료에 맞추어 보면 전혀 맞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먼저 몽고(元)의 연대를 보면
제4대 원 헌종 (元憲宗) 환숙황제(桓肅皇帝)
패아지근 몽가(孛兒只斤 蒙哥)(몽케) 재위 1248년 ~ 1259년
제5대 원 세조(元世祖) 성덕신공문무황제(聖德神功文武皇帝)
패아지근 홀필렬(孛兒只斤 忽必烈) (쿠빌라이) 재위 1260년 ~ 1264년 입니다.
5대 황제인 쿠빌라이는 4대황제 몽케(헌종)가 남송 정벌 도중, 1259년 병으로 사망하자 그뒤를 이어 1260년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사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1253년 아직 왕위에 오르지 못한 쿠빌라이가 대리를 점령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몽케 사후 5대 황제에 등극한 쿠빌라이는 방향을 바꾸어 송의 배후라할 수 있는 대리국을 먼저 점령합니다" 라고 하니 ....첫단추 부터 아주 잘못 끼워진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1253년 12월 대리국의 수도인 대리太和城 을 점령한 쿠빌라이는 몽고제국 중앙 정치세력의 판도에 불안요소가 있어 1254년 봄, 북으로 회군을 합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우리앙카타이(兀良哈台)는 미정복한 대리국의 각지역을 계속 공략하여 그해 가을, 지금의 곤명지역으로 피신한 대리국 황제 단흥지段興智를 생포합니다. 그 결과 1255년 대리국의 5城, 8府, 4郡, 37部는 몽고에 의해 완전 정복되고 남조국 이래 500여년 이어져온 운남의 역사는 사라지게 됩니다.
쿠빌라이의 대리 침공도
원(몽고)은 자신들이 점령한 대리국의 행정구획을 기초로 하여 지방세력의 크기에 따라 10,000호, 1,000호, 100호 라는 체계로 통솔하면서 통치를 강화합니다. 모두 19개의 만호부를 5개의 총관부에서 나누어 다스렸는데 대리총관부의 총관에는 포로가 된 대리국의 마지막 왕인 단흥지段興智를 사면하여 1256년 초대총관으로 임명합니다. 이후 대리총관은 段氏들이 세습을 하게 됩니다. 즉, 중앙정부가 직접 운남의 각지역을 통치한것이 아니라 이른바 지방의 土司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한 것이죠. 이 방법은 청대 이전까지 이어진 중국왕조들의 변방 통치법입니다.
이런 역사기록 속에서 윗글에서 주장하는 元(몽고)이 대리국이 통치하던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우리앙카타이(兀良哈台)로 하여금 1254년 세웠다는 관청인 普府는 당시 대리를 포함한 운남 그 어디에도 세워지지 않았으며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혹, 普洱府라는 이름의 관청을 두고 普府라고 불렀다면 그 명칭에 대한 이해는 어느정도 됩니다만.... 그러나 普洱府라는 관청은 淸 옹정7년인 1729년 세워진 관청이니 1254년 세워진 普府운운하는 윗글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시대인 470여년 뒤의 일 입니다.
대리국이 녕이寧洱지역에 설치한 步日部
元초, 寧洱지역을 다스렸던 대리국의 지방통치기관인 步日部는 思茅지역의 思摩部와 통합되어 그 이름을 普日思摩甸長官司로 고칩니다. 그리고 明 홍무 16년(1383년)에 普日思麽甸長官司省이 景洪에 설립된 車里軍民府에 속해지면서 普日이라는 명칭은 普耳로 바뀌었고, 만력 년간에는 다시 普洱로 그 명칭이 바뀌어집니다. 무엇보다 普洱府라는 이름을 가진 관청의 시작은 淸 강희 3년(1663년) 당시 지역을 다스리던 상급관청인 元江府에서 지금의 寧洱에 이른바 분부(分府)인 普洱通判(=普洱分府)을 설치하였고 옹정7년(1729년) 정식으로 普洱府를 설치하면서 부터 입니다.
普洱라는 명칭은 寧洱지역을 가르키는 이름으로 步日Bu ri - 普日Pǔ ri - 普耳Pǔ ěr - 普洱Pǔ'ěr 로 변해온 것이며 寧洱라는 명칭도 安寧的普洱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 합니다
청대 녕이에 세워진 보이부普洱府
주:清代的普洱府包括寧洱一縣及思茅、威遠、他郎
청대의 보이부는 녕이 1현과 사모、위원、타랑 포함
이런 근거 기록를로 볼때 普洱茶의 普는 普日 - 普耳 - 普洱라는 명칭의 普에서 나온 것이며 普의 근원은 步日Bu ri, 布朗Bu lǎng, 布饒Bu rao, 僕人Pu ren 의 Bu, Pu 에서 왔다는 학설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더불어 <중국차엽> 2004년 6기에 발표된 普洱茶名由來的民族學探析 (보이차명 유래적 민족학 탐석)에서 소수민족들의 茶 발음 을 살펴보면.....
징포景颇족의 “茶”발음은 “Pa La”( 고越음 쾌독시 “Pona")
하니哈尼족의 “茶”발음은,“Lao bao”(애니爱伲방언)또는 “Lape”(하니哈尼방언)
지눠基诺족의 “茶”발음은 “Lao bu” 혹 “no la.
라후拉祜족의 “茶”발음은 “La”인데
하니(족)어, 라후(족)어, 지눠(족)어 에서“茶”를 뜻하는 발음은 고彝이(족)언어의 영향일 가능이 있는데 彝이(족)어의 “茶” 발음은 “La”또는 “Labo”. 부랑(족)어, 布朗語 태(족)어傣語의 茶발음은 "La". 입니다.
보이"普洱Pǔ'ěr"가 곧 ”보일"步日bu ri 로 와佤(족)언어의 “보이”步耳Bu ěr 와 같은 명칭으로 단지 글자만 다를 뿐이며, 보普Pǔ는 복撲Pū, 포蒲Pu 로 “복濮Pu”족을 가르키는 소리로 글자표기만 다를뿐이다. 복인濮人Pu ren은 차를 기른 최초의 민족으로 보차普茶Pǔ cha 가 바로 복차濮茶Pu cha 인 것이다.>는 연구결과를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보일검 남방南方 즉, 란창강瀾滄江 밖은 차리車里 토사관제土司管制에 속하였고,(란창강)강내江內 대부분의 지역은 보일검에 속하여 강내의 리윤성利潤城과 6대차산도 (보일검에) 포함 되었다. 보일검은 은생절도銀生節度(경동景東)관할이였다.
송대:대리大理(국)은 남조南詔시기 세워진 보일검步日瞼을 보일부步日部로 바꾸었는데, 처음엔 위초부威楚府,후기엔 몽사진蒙舍鎮 관할에 속하였다
원대:보일步日Bu ri을 보일普日Pǔ ri로 바꾸었고, 공식명칭은 보일사요전사普日思麼甸司로 ,사요思麼、보일普日 2개의 전甸 과 남방각지가 속했으며,원강로元江路 관할 이었다.
청대 이전 중앙정부들은 보이 지역를 (직접)관리하지 않고, (지방)토사土司로 하여금 세습관리 하였으며 청 옹정 7년(1729년)에야 “보이부普洱府” Pǔ'ěr fǔ를 정식으로 설치하였다.
청대:순치 16년(1659년),원강부元江府 는 보이普洱에 통판通判(주:분부分府)을 설치하고 ,보이、사모、보등、다산、맹양、맹흡、맹봉、맹갈、맹헐、맹만、상맹오、하맹오、정동 13개판납을 둠.
寧洱에 있는 옛 普洱府 문창궁
민국(시기) 보이부普洱府를 “전남도滇南道”로 개명 하였으나,1년 뒤 민의를 수렴하여 “보이도普洱道”로 다시 개명. 이후 몇차례 개명되었으나 普洱라는 2글자는 명칭의 앞에 들어감.
1950년 “녕이전구寧洱專區” 설치하였으나,민중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다음해(1951년) 지역의 전통적인 명칭을 회복 "보이전구普洱專區”로 바꾸었다.
2007년1월21일,중국국무원비준 사모思茅시 명칭 변경 보이시
주: 步日瞼에서 부터 청대 普洱府가 설치된 곳은 寧洱지역이기에 비록 思茅市가 그 이름을 普洱市로 바꾸었지만 보이차의 근원지가 寧洱라는 역사적 사실은 변할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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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올려 놓으신 자료를 보고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뭐..짜 맞추는 것이 될수도 있겠지만은요. ^^
푸레(pu- la) = 보차(普茶P? cha) = 복차(濮茶Pu cha)
보일검(步日瞼)->보일부(步日部)->보이부(普耳部P? ?r) ->보이부(普洱府” P?'?r f?)
이렇게 정리를 해보고나면...보차는 차를 가리키는 말이고, 보일검이 변해간 이름은 그 지역을 가리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차를 가리키는 말과 차가 나오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 합쳐져서 보이차(普洱茶)라는 이름이 완성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므로 보(普pu)는 보이차의 원형이 되는 언어(발음상의 말)인 보차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洱er)는 닝이(寧洱닝얼)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보=푸(普pu)]는 보차를 의미 + [이=얼(洱er)]는 보차의 집결지, 혹은 보차가 나는 그 지역을 의미+ [레(la)는 중국한자 발음 그대로 차(茶)]로서 번역해서 명칭을 한자어로 붙임.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그러므로 보이차라는 이름은 그 지역에서 나는 차와 지역을 최대한 살린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편으로 푸레에서 푸를 떡차로 번역하거나 그렇게 보는 견해들은 운남의 차를 처음 접했던 사람들이 떡차 만드는 방식으로 차를 만든 것을 접해서 그런것과 혹은 사료에서 차 만드는 방식을 보고 떡차 만드는 방식과 흡사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까 연구를 해 놓은 사람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본다면 푸를 떡차로 보는 견해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는 방식이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소수민족들에게 현재 남아있는 차 만드는 방식을 보자면 조금은 분류상으로 떡차에 가깝다.혹은 음식에 가깝게 차를 만들고 먹고 마신다.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아울러 해보게 됩니다. ^^()
좋은 말씀 잘 보았습니다. 님의 생각을 나름대로 되짚어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운남의 특색 음식중 餌塊(Er kuai)라는 우리의 전병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餌塊를 먹는 僕人들이 그와 비슷한 둥근 모습의 차를 만들어 마신다면, 그걸 처음 본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마 저라면 僕(pu)인 들이 둥근 떡 처럼생긴 餌(er)을 茶로 마시니까. 僕餌茶라고 작명을 하였을것 같더군요.僕餌茶 (복이차) 중국발음으로 하면 아주 정확하게 puercha가 되며 복인들의 떡차라는 해석이 가능하기에....님의 글을 보고 한번 상상해보았습니다. 사진은 餌塊를 먹는 모습입니다._()_
네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복인들이 만들어 마셨던 차가 어떤 형태인가만 분명하게 밝혀진다면 더 정확한 해답을 찾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푸얼차에 대한 발음은 복인들이 만들어 마셨던 차를 한족들이 그대로 차용했다고 생각되고, 표기는 한자로 하였기 때문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왜 표기글자가 갖는 의미들을 바꿨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僕人의 복은 그 의미가 한자로 볼 때 별로 좋지 않다고 보입니다. 종 복이라는 말의 어감은 '僕' 그리 탐탁하게 들렸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청나라때부터는 황실로 진상되는 차가 되었으니까요. 步에서 다시 普로 표기가 바뀌었고, 耳에서 다시 洱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보이차의 표기도 普洱茶로 정착 되었습니다. 普洱가 발음상 僕餌와 차이가 없기 때문에, 普洱라는 그당시 지역을 가리키는 의미를 그대로 차용한 것은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발음은 僕餌茶를 그대로 쓰고, 표기는 한자로 普洱라는 지명을 가리키는 말을 거져다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결국 발음에도 복이차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普洱茶라는 지명도 복이차에서 나온 것과 같으므로(복이차가 있었으니 보이차라는 지명이 생겼으므로), 표기하는 한자만 바뀌었을 뿐 복이차를 가리킨다고 저도 생각됩니다. 어쨌든 차는 차나무가 있는 지역과 차가 유통되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있어야 하므로..이 세가지가 다 융합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보이차라는 말은 복인들에게서 나왔고 현재 이름으로 정착된 시기는 청나라때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餌塊(er kuai)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니 재미있는내용이 있더군요. 이런 모습의 떡을 처음만든 사람들이 濮족인들 중에서 한 갈래인 布依(Buyi)족인데 그당시 濮족인들은 이 떡의 모습이 귀를 닮아 耳粑(er ba)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當時被濮族人稱之爲“耳”粑>. 漢대 중국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떡만을 병(餠) 이라 하고, 밀가루 이외의 곡물로 만든 떡은 이(餌)로 표기하였다고 하니 쌀로 만들어진 귀 모양의 耳粑도 한자로는 당연히 餌가 되는것이고 오늘날 餌塊(er kuai)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것이겠지요. 님 덕분에 모처럼 재미있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감사드리며..._()....
우리나라 떡차인 청태전이나 전병류의 음식도 모두 어찌보면 병(餠)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저도 올려주신 자료를 통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普洱茶(pu er cha) 와 운남18 怪의 하나인 전병 餌塊(er kuai)에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공통점이 있더군요. 물론 보이차와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근거자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명칭이라든지 모습에 많은 공통점이 있어 한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普洱茶 : 복차濮茶Pu cha ->보차普茶Pu cha ->普洱茶pu er cha
普洱(寧洱) :보일검步日Buri->보일부步日Buri->보이부普耳puer ->보이부普洱pu er
布依耳粑( 餌塊) : 濮(Pu)족의 갈래인 布依(Buyi)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전병 耳粑(Er ba) 으로 오늘날 운남 특산인 餌塊(Er kuai)
공통점: 濮(pu), 布依(Buyi), 耳(er),餌(er),洱(er). 발음 PU, Bu, Er. 그리고 둥근 떡 모양.
< 발음과 모양으로 가상해 본 布依(濮)족의 떡차 이름 작명>
복濮Pu(족) 포의布依 Buyi(족)
모양 餌 Er 떡 모양
濮餌(布耳)茶 Pu Er Cha
혹, 이것이 普洱茶Pu Er Cha의 명칭이 된 것은 아닐까? 저 혼자 한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를 ....._()_
즐거운 추석명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