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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복절 5일차를 후로 미루고
6일차의 독일 아우슈비츠에서 본 일본인들을 보고 느낀점을 먼저 올립니다
동구6국 여행 6일차 금요일 폴란드
버스로 크라카우 서쪽 61km로 지점으로 조금 이동하여 2차 대전 비극의 현장인 ‘오수비에침’역 앞에 있는 독일 명칭인 ‘아우슈비츠’로 이동한다.
150만의 인명의 목숨을 잃은 곳
붉은 벽돌의 28동으로 지은 2층 건물이다
버스 안에서 예비지식을 얻는다.
폴란드의 지정학적 위치는 나치가 볼 때 정확히 유럽 어느 곳에서고 중심 이었다 . 우랄산맥 동쪽의 동으로 루나미아 알바니아 서로 독일 북으로 발트 해 러시아 남으로 체코슬로바키아와 접한다. 유럽에서 유로 존 27국 중 9째로 큰 나라다. 32만km2면적에 인구 3000만 명 구릉지 유럽의 식량창고. 인당 국토면적 대비는 우리나라의 10배다. 이곳은 소규모 공항이 많다.
2010년 폴란드 대통령 일행이 커튼 대학살을 추모하려 러시아로 향하다 풍우로 추락하여 수행원 포함 96명이 모두 죽은 참사가 난다. 카덴 학살은 1940년 러시아가 폴란드인 2,200명을 살해 암매장한 사건으로 줄곧 러시아는 나치 소행이라 발뺌을 하다, 1990년 코르비가 인정하여 2010년 70주년을 맞아 대통령 및 국가적 조문단이 조문을 갔다. 우연히 추락하니 러시아의 음모니 카덴의 저주니 말이 많던 사고다. 이 사고사의 폴란드 대통령 조문도 여러 나라 정상이 오기로 약속했는데 불행이 겹친다. 마침 아일슬랜도 화산이 폭발하여 유럽 전역의 항공망이 마비되어 대표단 일정이 줄줄이 취소된다. 그리고 100년 만의 폭우가 겹쳐서 폴란드 전역이 이곳 수용소까지 물에 잠긴다. 쏘펭의 불우한 조국 폴란드의 불운의 연속이다. 겨우 육로로 온 독일 등 몇 나라 조문단 밖에 참석치 못한다.
며칠 전 이 나라에 큰 경사가 있었으니 2012유럽 컵 축구대회를 개최 한 것이다. 폴란드와 러시아의 모든 운동경기는 우리나라의 한일전이다. 폴란드는 끝없이 러시아 프러시아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등의 침공을 받지만, 러시아와의 악연은 최근 위성국까지 이어져 더욱 그런 모양이다.
결국 폴란드(피바 랭킹60위)는 끝까지 러시아(랭킹 10위)를 물고 늘어져 인 저리 타임에 동점을 만들다. 개최국이 예선통과를 못했지만 러시아에 지지도 않았고, 러시아도 예선을 못 넘게 죽은 선대 귀신까지 덤비어 잡는다.
이 나라는 전쟁을 치를 때 마다 국경이 변경되게 민족구성도 다른 다민족 국이 된다. 2차 대전으로 나치가 유대인을 인종청소를 해주고, 집시들의 대이동 등으로 폴란드 족이 주 민족 국이 된다.
이곳 폴란드 항거라 여성은 참으로 예쁘다 단 처녀 때만 이다 그들이 아줌마로 변하면 정말로 엉덩이만 보이는 드럼통이 되니!!
유럽인의 평균키는 게르만인 네덜란드1위 184센티, 2위 독일인 181cm 등으로 나가고 우리나라는 173cm 폴란드170 cm일본 169cm이란다. 그러니 폴란드 인은 우리만 하지만 사회적 대접은 1위 어린이, 2위 모든 아이 ,3위 여성,4위 애완용 개, 5위 보통남자 순서란다.
과거의 역사도 비슷하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한국이나
독일과 러시아에 낀 폴란드한의 정서도 비슷하다. 123년 나라를 잃어서 애국심이 강하다 애국심을 고취키 위해 중요 광장에 ‘아담리키에리켜’ 폴란드 민족시인의 동상이 있고 마음이 여리며 슬라브어 증 서부 어를 쓴다.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 중 하나란다. 왜냐 하면 동양인은 이렇게 동사가 변하는 언어는 없다 동사 1격에서 7격까지 있고, 남성여성의 동격 변화가 있단다.
국교는 국민의 95% 카도 릭이나 미사 참여율은 80%정도며 교황이 배출된 나라임을 영광으로 안다
.8월 성모 승천절 5월 성체 받는 날 12월 크리스마스 11월 만성절 추수감사절 부활절은 6절의 명절인 모양인데,
만성절은 모든 죽은 사람들 순교자들을 위한 밤에 촛불들이고 성묘 가는 날이란다.
해질 때 나서서 새벽까지 성묘를 한단다. 묘지에 촛불을 켜는데 이때는 눈이 많이 와서 아주 묘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날씨는 추워서 화재 염려는 없단다.
버스는 아우슈비츠에 도착한다. 설명수신용 ‘레시버’를 받고 현지 한국어 가이드를 따라 입구를 통과하여 수용소 앞에 선다. 이곳이 150만의 인명을 쓰레기 태우듯 청소한 현장이니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나치의 ‘이데올로기’!
“유태민족은 완전히 멸종시켜야할 인종이다”
“폴란드인 러시아인 유태인 집시로부터 독일민족을 해방시켜야 한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폴란드 저항세력 지도자들의 색출이다, 이를 통해 그들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모든 폴란드 출신 기술자들을 독일군수산업에 투입시켜야 한다. 결국 이들 폴란드 기술자들 역시 세상에서 살아질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개요
1940년 제1 수용소 4만 명을 폴란드인 정치가 신부 등 정치적인 이유로 처형을 한다.
1941년 제2 수용소를 11배 크게 대규모로 만들어 53만 명을 처형한다.
1942년 제3 수용소를 다시 만들어 대형 가스실에 보낸단다.
이중 어린아이를 24만 명 생체실험 연구용으로 살해했다.
이 모든 인원을 150만 명으로 추정한단다.
제1 소용소의 정문에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 란 문자가 바람이 잘 통하도록 걸려있다.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는 기만적인 문구가 쓰여 있다. 이 문을 통해서 매일 강제 노동에 끌러나간 수감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씩 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모든 수용소를 완성 후 그들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현재 보존된 죽음의 블록과 제1화장터 ‘브제진카’의 4개의 화장터/가스실터 겸용, 총살의 벽 ,수감자 소송을 위한 철도 수감 동, 감시탑, 고압전류가 흐르던 철조망, 정문의 기만적인 문구, 등이 전범의 증거가 되고 있다.
독일은 제3국에서 여러 가지 종교, 정치사상범, 전쟁포로, 일반시민, 강제 퇴거한 집시마을 사람, 체포된 현행범, 인종말살이 계획된 유태인, 등을 이곳에 가둔다. 수용소장 ‘루돌프 희스’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히틀러 말을 인용해서 설명한다. “이곳보다 동쪽에 위치한 학살지에서는 대규모 행동이 불가능하다. 그 점으로 미루어보아 나는 그 목적을 위해 아우슈비츠를 선택했다. 교통입지도 유리하고 주의로부터 격리, 처단하기가 용이하다” 이곳에는 12,000명의 러시아 포로가 있었는데 그 중 8,320명을 5달 안에 가스와 총살과 쇄약질병으로 죽는다. 그 증거가 사망자 명부인데 5-10분 만에 죽음을 당한 사인을 거짓으로 적은 것이 명확한 증거다 .그리고 21,000명 집시 학살 죄수명부가 전시되어 있다.
철도 화물칸에 물과 식료품 공급 없이 싣고 와 하역하면 노동이 가능한 사람을 선별해서 수용소르 보내고 노약자 어린이 여자는 가스실로 보낸다. 수용소 소장의 증언은 70-80%가 즉시 독 가스실 행이란다. 사용된 가스는 “사이클론 비(CYKLON B) 고체의 비아그라 크기의 고체로 쓰다 남은 것을 전시 한다. 처형 전 가져온 가방은 이름과 주소를 쓰라하여, 보관한다, 안심을 시키고 머리카락을 삭발 한다. 인모를 모아둔 방에서는 전율이 짜릿하게 왔고 그 것으로 짠 고급 직물도 보관되고, 인모 등은 시한폭탄용 심지를 만드는데 사용 한단다.
보관한 짐을 철저히 분류하여 귀중품부터 본국으로 운송하고, 망하기 직전 소련군이 쳐들어오자, 건물을 폭파시키다 남은 창고 6동에서 나온 신발과 가방 안경테 브러시 등이 발견돼 전시하고 있다. 도착한 수감자는 3가지 포즈(정면 좌측면 우측면)의 사진을 찍고 1943년부터는 죄수번호 문신을 했다. 죄수는 삼각형 주기표와 죄수복을 색깔로 분류한다.
빨간색 삼각형은 정치범, 빨간색과 노란색 교차 삼각형은 유태인, 검은 삼각형은 집시, 분홍색 삼각형은 동성연애자 로 세분하나 절반이상이 빨간색이었다. 현재 보관된 인명부 자료는 40만 명인데 그중 3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감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점호시간인데 수감자의 수를 확인하기 위해 몇 시간 씩 점호가 계속되고 쭈그려 앉은 자세나 손을 들고 몇 시간 씩 점호를 받는다. 수감자의 하루 식사는 1300-1700 칼로리를 넘지 못한다. 아침은 커피라 불린 액체 500CC와 점심은 물 뿐인 썩은 야채로 만든 수프 1리터 저녁은 300-350그람의 검은 빵과 소시지 20그람, 또는 30그람의 마가린 치즈가 전부였다. 중노동과 배고픔에 결국 영양실조로 죽어간다. 체중이 25-30KG 으로 줄은 여인의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죽음의 블록에서는 높은 벽으로 막아서 총살 현장을 못 보게 만들었다. 주로 폴란드인을 총살했다. 수감자 시벡(W SIWEEK)씨가 그린 그림에는 총살장면 그림과 채찍으로 구타당하는 그림, 손을 뒤로 묶인 체 말뚝에 매달린 그림과, 이동 교수대 말뚝에 매달린 시신이 전시 돼 있다. 지하 감옥은
최초로 사이클론비의 집단학살 시험실인데, 600명의 소련군 포로와 250명의 폴란드 정치범이 살해당했다. 지하 감방은 죄인, 수감 자을 돕는 부근 일반 시민, 탈주범 탈주자 도운 사람, 수감규칙을 위반한자 등이 수감되다. 수감자 청소라 불리는 행위는 죄수를 선별해서 총살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죽은 폴란드인 ‘막사밀리인 콜베’(Maksymilian kolbe) 신부도 이곳에 가두었다.
콜배 신부는 그림 상 안경 쓴, 키가 큰 사람으로 정문을 통과하는 사진에 있다. 앞줄에 빠짝 마른 수감자들 우측에 돼지처럼 살찐 다른 사람이 ‘카포’라 불리는 직책의 거머리보다 못한 변절자 앞잡이 들이다. 이들은 SS 보다 더 악랄한 같은 수감자중 골라서 교육시킨 변절자로 수감자를 감시하는 개 같은 놈들이다.
신부는 1941년 끌러 온다. 탈주범이 생기자 탈주범을 도운 사람을 찾는다고 10명을 끌어내 자백을 강요하니 내가 대신 가겠다며 콜배가 지하 감방으로 18번 들어간다. 그리고 아사의 방으로 이감된다. 콜베 신부는 9명의 임종을 천당으로 인도하고 죽지 않자 15일 지난 뒤에 독살된다.1982년 사랑의 순교자로 성인이 된단다.
유태인의 표준을 만든다. 이목구비의 간격과 얼굴의 전형으로 만들고, 이름과 성을 따져서 찾아내고, 유대교회에 간자를 찾아내고, 이 인간 분류 도본을 만들기 위해 온 의사가 ‘벵겔라’인데 쌍둥이를 가지고 연구를 한다. 10만 어린이를 죽인다. 벵겔라는 아이의 성기를 자르고 시혐을 한다. 전후 체포됐다 탈출하여, 산부인과 의사로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다 1985년 바닷가에서 시체 한구가 떠 올라왔는데 심장마비로 죽은 벵겔라로 판명된단다.
일본인은 이곳에 잘 안 오는데 우리 앞 팀이 일본 노인들이다. 우리는 처형장 축구 골대 같은 교수형 대, 전기 철조망을 지나 가스실로 이동전에 웃거나 떠들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다시 듣고 있는데 일본인들이 지나간다. 일본인은 반성하고 사죄하라 구호를 내가 큰소리로 세 번 외치면서 촬영을 한다. 그 일인들은 못 알아듣겠지만 나의 뜻은 대충 감 잡았을 것이다. 우리의 같은 일행들이 놀라 나를 쳐다본다. 가스실 천정은 사워 꼭지도 있다 벽에는 죽어가면서 고통으로 벽에 남은 솥 톱 자욱이 있고 벽 옆에는 소각장 시설이 있다. 나와서 밝은 하늘은 본다.
아! 하늘이시여
하늘에 과연
하늘의 신은 있는가!
나는 반문한다.
인간은 얼마나 악랄하고, 참혹하면서 독한 존재인가!
독일인은 그래도 사죄하고 배상하면서 지금도 죄를 용서를 비는데
‘
저기 지나가는 일본인들은 그저 말이 없다.
일본인 그들도 우리 조상에게 이와 같은 행동을 했고, 만주에서 생체시험을 하고 전국의 애국지사를 잡아 작두로 산사람 목을 자르고, 의병들은 집단으로 운동장에서 목을 메달아 교수형에 처했고, 시체는 그대로 걸어두어 공포심을 유발토록 겁을 주는데 썼다.
평범한 농민들을 토지조사란 명목으로 땅을 빼앗자, 반발했다고 처자식 앞에서 아비의 존엄은 둘째 치고, 집단 공포로 민중을 제압키 위한 악랄한 수법의 총살을 수도 없이 하고, 그 처형을 본 부인은 놀라 미쳐 정신병자가 되고 아이들은 거지로 유랑걸식을 하다 죽었다.
조선에서 우국지사와 독립 운동을 한 애국열사의 투옥과 고문과 그로인한 옥사와, 허울 좋은 제국주의 판사의 사형 언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이 그 얼마이던가?
동경에서 천재인 관동 대지진이 났다고 왜 우리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운동장에 몰아넣고 총검을 찔러 죽이냐 말이다.
수천 명의 우리 조선 징용 노동자 근로자 학생 들이 그렇게 관동대 지진에 죽었는데 우리는 아직 추적하여 보복할 생각도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로 개칭한 영구 국가관 말살교육 일환으로 신사를 전국적으로 만들어 일왕에 충성토록 정신을 개조한 교육의 죄를 어찌 다 나의 둔한 붓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
남지나군도에서 2차 대전의 비행장을 건설하는데 쓴 인력들에 고맙다고 줘야 할 임금을 떼먹고, 군사보안을 위한다는 속셈으로 방공호에 근로자 1000여명을 몰아넣고 수류탄을 까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 제국의 남자군인들을 동물적 생체리듬의 재충전을 위한 성노에로 우리 조선 꽃 같은 여성을 끌고 가 위한부란 미명으로 성 노예로 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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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직도 반성은커녕 극우 늙은 꼰대들이 더욱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는, 나는 대한민국 국민 한사람으로 더더욱 분하고 화나고 우울하다.
일본은 빨리 사죄하고 배상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 길만이 그들이 살길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똑똑한 후세들이 반듯이 지구 끝가지 찾아가 산자는 찾을 것이고, 죽은 자는 그들의 자손까지도 찾아내 책임을 지우고 후 손에게 잘못을 빌도록 해야 한다.
2012 0718
수용소 전경1
수용소 전경2
수용소 입구
죽은자의 안경 들
죽일자의 가방에 주소 이름을 쓰라하고 안심시킨뒤 가스실로 보내고 귀중품은 나치가 챙긴다
수용소의 계단을 결어내려간 사람들에 깍인 디딜판의 인조석이 나를 슬프게 한다
수용소 상징 조형물
이야기속의 신부 안경쓴 사람 꼴배신부와 뚱뚱한 변절자 카포라 불리는 개
전기 철조망
잘 안 보인다는 일본인 관광객이 지나가는 모습 나를 더 열나게 하여 긴 글이 나왔다
가스실 옆방의 소각료 시체 운반 거리를 최소화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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