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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꽃은 영원하리’에 부쳐
李千 윤석환
(미국템플턴대학교 대학원장, 상담학 박사 ․ 건축학 박사 ․ 미술치료학 명예박사, (사)한국미술심리치료협회 법인학술편찬연구원장 겸 교수위원, 시인 ․ 시조 시인 ․ 문학평론가 ․ 소설가, 예민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예민심리상담원장)
1. 들어가기
필자가 겁도 없이 초연 김은자 선생님의 처녀 시집인‘불꽃은 영원하리’에 서평을 쓴 까닭부터 밝혀야 할 것 같다. 정곡 이양우 선생님의 선산인 샘실마을에‘시와 숲길공원’이라는 명제 아래 전국에서 문학 활동을 하고 계시는 문인들의 소중한 마음이 새겨진 시비詩碑 마을에서 만나 이제는 잊지 못할 인연이 돼 버렸던 사연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작년 12월 3일(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기리는 단체인, 흥사단에서 2016년 문학상 시상식 및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수많은 분들이 함께 했었다.
뜻 깊은 행사가 모두 끝나고 연회가 이어졌다. 우연히 같은 자리에 수염을 기른 분들이 앉게 되었는데, 필자를 포함한 세 사람 모두 수염을 자랑하고 있었다. 서로 안면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이양우 선생님이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니면서 정겹게 인사말을 나눌 때에도 몰랐었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나서 이양우 선생님이 소개를 하면서부터 급속도로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었고, 석계 윤행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이참에 세 사람 도원결의를 맺도록 하자.”며 제안을 해 오셨고, 하당 현승엽 선생님과 필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시간이 가기도 전에 석계 윤행원 선생님의 살가움은 전화로 이어졌다. “시비 공원에 시비 건립을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할 생각이 없느냐!”는 말씀에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필자는 지금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문예춘추’창간호에 현대시로 등단을 했던 시점이 2004년도 후반이었다. 그 해 연말에는 한국문예춘추문인협회 창립식이 63빌딩에서 개최되었는데 초대 부회장을 맡으면서 이양우 선생님과 인연의 싹을 피울 수 있었다. 2005년에 회장직을 맡으면서 당시 원로 문인들을 모시고 여러 차례 학술 및 세미나를 열어 기성 문인들도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던 시간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기억의 한편에 남아 있다. 이때 시비를 건립할 수도 있었지만 참았다. 너무 빠르다는 점과 아직 훈련되지도 않고 성급하게 시어詩語가 새겨질 경우에 빗발치는 원성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등으로 포기를 했던 게 바른 표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3여 년이 지난 후에는 용기가 생겨서 소중한 자리의 한편에 앉게 되었다.
필자가 시비에 새길 작품을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한 분의 작품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초연 김은자 선생님이었다.
2. 불꽃은 영원하리 : 펼쳐보기
초연 선생님을 만나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평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초고를 받고부터 고민만 했었던 것 같았다.
필자가 독자들에게 미리 밝혀둘 것이 하나 있다. 초연 선생님의 처녀 시집이 된‘불꽃은 영원하리’의 서평을 처음에는 석계 선생님께 의뢰를 했으나 그 공이 필자에게 넘어온 것밖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우선 독자 중심으로 서평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처녀 시집의 신비로움을 하나 둘 벗겨보려고 한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초연 선생님은 수필가로서 정평이 나 있는 분인 것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출판된 수필집도 다수인 것으로 확인했다이 책의 끝부분을 참조. 그리고 최근에 출판되었던 수필집‘내 귀에 말 걸기’는 작가로부터 우편으로 받아 독자로서 편안하게 잘 감상했다. 수필집에는 게재가 되지 않은 또 다른 평론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석계 선생님께서 쓴 두 쪽짜리 소중한 글이었다. 몇 번을 감상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석계 선생님이 쓰신 평론을 본 후에 다시 한 번 더‘내 귀에 말 걸기’를 독서할 수 있었던 것이 어쩌면 초연 선생님을 더 가까이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어 기쁘기 한량없다.
한편 석계 선생님의 두 쪽짜리 서평 가운데 한 부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한 권의 수필집隨筆集을 읽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온 인생을 읽는 것이다. 그가 살아 온 간난艱難의 역사와 사물事物을 보는 가치관과 세상을 읽는 세계관을 알게 된다. 글마다 배여 있는 인격의 생김새를 보게 된다.”
- 석계 윤행원,「내 귀에 말 걸기」서평에서 발췌
필자는 가끔 후학들에게‘수필隨筆’과‘시詩’의 차이를 묻곤 한다. 수필은 그야말로 작가가 지금 현재의 일상이든 삶의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즉‘정물화 같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거의 대부분이 한 편의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또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조망해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편 시詩는 무엇이 다를까? 시에도 여러 갈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현대시’는 작가가 어떤 물상이든 시상을 떠올린 순간부터 수필과는 다르게 수많은 수사법 가운데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작가가 발현하려는 시어들을 발굴해내는 속칭 시어詩語를 발굴하고 다듬는 전문가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또한 시의 갈래를 집家으로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 큰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고층 집합주택아파트이라고 한다면, 수필은 전원주택빌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현대시를 단독주택으로 본다면, 우리의 겨레시인 시조는 단칸방원룸으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위 단칸방은 잠만 자는 방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뿐이다. 흔히들 45자 내외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시조時調다. 각 행은 창窓과 문門이 되고 공간과 환경이 되지만 작가는 그 공간을 나눌 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방 한 칸을 만들어 비로소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한편, 시조보다도 더 짧은 시가 일본의 하이쿠はいく다. 17자 시라고도 하는 5 ․ 7 ․ 5는 우리의 겨레시인 단시조에서 종장 부분만 가지고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맛을 우려낼 수가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숱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가 있어 독서의 효과와 감상의 맛도 다양하다.
초연 선생님께서 첫선을 보이는 처녀 시집은 어떨까? 참으로 조심스럽게 작가가 보내 준 초고의 순서를 쫓아서 살펴보기로 하였다.
이 시집은 전체 6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는 10편씩 소개되고 있으며, 1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5부의 각 대표 부제는 첫 편에 배치시켜 놓았다.
각 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부‘불꽃은 영원하리’편에서는‘시와 숲길 공원’에 세워진 시비의 얼굴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단번에 작가의 성향과 인품, 그리고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부‘사위어 가는 무릎아’편에서는‘지공세대’라는 은어를 통해서 노인세대의 현상학을 노래했다.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품격과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봐진다.
3부‘치유의 미소’편에서는 작가의 약력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대한 수지의학회 부회장과 일본 아시안 핸드테라피협회 상임고문이기도 해서 치유힐링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필자가 몇 차례 작가를 만난 덕분으로 기억에서 찾을 수 있었던 부분이 바로‘그녀의 미소’였다. 어쩌면 소녀 같은 그런 삶을 살았을까? 부럽기까지 했었는데 작품을 통해서 조명된 삶은 달라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단 한 마디의 말을 끄집어 내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녀의 속을 알 수가 없을 것인데 시비 건립을 위해 함께 모인 문인들에게도 당당한 목소리로 사부곡思夫曲이라고 노래했다. 그런 점이 어쩌면 작가가 지금까지 지탱해 온 삶의 깊이로 재해석됐다.
무릇 우리 얼굴에는 80여 개의 근육이 자리하고 있어 온갖 표정과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웃을 때는 그 중 40여 개의 근육이 운동을 하는데, 이 근육들은 양쪽 볼과 입 주변에 몰려 있다.고 한다.
초연 선생님을 만나면 빠질 수 없는 것 중에 대표적인 하나가 바로 그녀만이 풍기는 미소였다. 그래서 그런지“참으로 젊게 사시는 분이구나!”라는 것을 그 어떤 누구도 필자의 의견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
4부‘함께하면’편에서는 독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즉 칠정七情은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일곱 가지 감정을 작가가 어떻게 묘사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5부‘철부지 너스레’편에서는‘인생에도 24절기가 있다’를 통해서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삶을 조망해 보도록 한다.
끝으로, 6부‘빌려 쓰면서’편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관계성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였다.
즉, 모태로부터 새 생명이 잉태된 순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새롭게 뭔가를 계획하거나 시도하려는 행위는 혈기왕성했던 청춘 때보다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어려워서 새로움을 멀리한다. 하지만 작가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혼밥’등의 은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새로움을 거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받아들여서 이겨내고자 하는 삶에서의 환경을 충분히 읽어낼 수가 있다.
3. 불꽃은 영원하리 : 내면을 찾아서
3.1. 1부 ‘불꽃은 영원하리’ 편
필자는 사실 작가의 깊은 내면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감히 초연 선생님의 처녀 시집에 서평이든 평론이든 논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한다. 더러 지인들로부터 부탁을 받거나 또는 필자 스스로 서평을 꼭 쓰고 싶다는 작가 이외에는 전문적으로 평을 논하지는 않았다.
필자는 지금 현재에도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학자이기 때문에 다소 부족함은 있지만 그렇다고 서평을 못할 일은 더욱 아니라는 생각에서 필자는 필자에게“괜찮아! 뭐가 겁이 나지.”등으로 토닥여 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른다고 착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쓴 필자의 서평은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관찰하거나 이야기로 노래했다. 단 한 번 보지도 만나지도 못했던 그런 사람들의 말, 즉 그들의 언어를 굳이 차용해 오지 않아도 되더라는 점이다. 필자가 경험했거나 늘 만날 수 있는 그런 분들로부터 듣고 느끼고 보았던, 즉 현상학적 관점이 오히려 독자들에게도 신선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필자가 앞서 1부‘불꽃은 영원하리’편에서는 시와 숲길 공원에 세워진 시비의 얼굴을 조망해 봄으로써 초연 선생님이 누군지 보다 선명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먼저 선정했던 이유가 크다. 이 시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단번에 작가의 성향과 인품,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교육자로서의 엄격함이 내재되어 있지만 정도를 걷는 지인들에게는 그 엄격함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점도 필자가 초연 선생님을 존경하는지도 모른다.
작가로부터 귀띔으로 전해 듣게 된, 즉 사부곡思夫曲의 대표 작품이기도 하고 충남 보령에 위치한‘시와 숲길 공원’에 수놓인 시비 작품이라 더 조심이 되지만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작품 또한 접근조차 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전문」을 살펴보자.
어느 오월에 무너진 신음은 가냘픈 음계가 되고
찬란한 불꽃은 내게 다가와 태양처럼 빛났지
유혹의 잔은 세월 속에 시든 꽃다발이 되었구나.
술잔의 환희는 눈물이 되고
침묵의 몸부림은 애달픈 곡조가 되었네.
슬픈 절규는 하루가 길고 긴 천겁의 세월이어라.
숨소리 고함소리 요란한 몸부림은 애수가 되고
스산한 불꽃 심지 속엔 은자殷子가 있네.
이제 술酒을 꾸짖은들 무엇하리.
인간 세상에 빛나리라는 金世煥이란 뿌리에서
바르게 얻는다는 李正得이 품어준 超然
하늘같은 文泰燮의 불꽃은 영겁의 동행일지니.
- 超然 김은자,「불꽃은 영원하리」전문
이 작품은 3행으로 된 4연 구조이다. 시든 시조든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라고 보면 된다. 문학에서 어떤 갈래의 글쓰기든지 문장의 형식은 있다. 그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학위논문의 글쓰기 체계다. 간혹 소설의 경우나 시나리오 등에서는 그 체계가 다를 수도 있다. 결론이 먼저 나오고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서평을 준비하는 시간은 많이 소요되었다.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수필가가 쓴 처녀 시집이라는 점에서 조심스러웠던 점도 없지 않았다. 틈틈이 막힐 때마다 멈춰진 긴 시간을 초연하게 기다려 주신 초연 선생님이었기에 편안하게 한 수 한 수 수를 놓았다.
초연 선생님에 따르면, 이 시집의 근간은 남편에 관한 사부곡思夫曲이라고 했다.
1연에서‘오월’이라는 것은 부군께서 쓰러졌을 때를 말한다고 했다. 다음은 4연 중에서 1연 부분이다.
어느 오월에 무너진 신음은 가냘픈 음계가 되고
찬란한 불꽃은 내게 다가와 태양처럼 빛났지
유혹의 잔은 세월 속에 시든 꽃다발이 되었구나.
- 超然 김은자,「불꽃은 영원하리」1연 부분
술을 좋아해서 얻은 병이라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작가의 부군 또한 교육자였다. 건축공학을 전공하셨고 국내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특히 공대에서 알아준다는 한양대학교 교수로서 건축구조학역학 등을 후학들에게 지도하였다고 했다. 필자 역시 울산대학교 건축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으로 첫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축 또한 예술학 속에 포함된다. 소위 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술은 인간과 늘 공조했던 까닭인지 고대든 현대든 술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실로 크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볼 때, 이 시집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 어쩌면 금주禁酒를 해야 한다는 교훈서를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필자 또한 좋아하고 즐기는 술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쉽지가 않아 염려스럽다. 계속해서 4연 중에서 2연 부분을 보자.
술잔의 환희는 눈물이 되고
침묵의 몸부림은 애달픈 곡조가 되었네.
슬픈 절규는 하루가 길고 긴 천겁의 세월이어라.
- 超然 김은자,「불꽃은 영원하리」2연 부분
2연에서는 뭔가 모를 모호한 삶의 일상이 엇비치지만 그 어떤 누구라도 일생을 가족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매일 같이 좋고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일 것이다. 때로는 나쁘고 슬픈 일들을 만나면 작가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좋고 나쁜 것이 전이되기 마련이다.
한편 작가도 이 당시에 교수로서 같은 삶을 살고 있었는데 부군께서 갑작스럽게 술로 인해 쓰러짐으로써 어쩔 수 없이 교육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부군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리라. 얼마나 당황했고 황당했을까? 불교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찰나刹那이다. 시간의 최소 단위로 아주 짧은 시간, 즉 순간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렇듯 인간으로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조차도 찰나라고 명명했듯이 그런 순간과 순간들은 각 켜layer로 서로 중첩되는 것이 바로 겁이다.
작가가 노래하고 있는, 즉 2연의 3행에서‘천겁의 세월’이라는 것에서 천겁千劫이라 함은,‘오랜 세월 또는 영겁의 세월’을 뜻한다. 여기에서 영겁永劫의 의미는‘무시무종無始無終의 영원한 세월을 상징하고, 겁劫은 이 세상이 한번 이루어 졌다가 없어지는 긴 시간을 말하는데 그 겁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찰나, 즉 한순간으로 살다 가는 것만 봐도‘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과 닮았다. 내가 우리가 없어도 이 세상은 잘 굴러가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즉 비움無이고 공空이리라.
필자는 작가가 살았던 지난 삶의 궤적을 문장 속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숨소리 고함소리 요란한 몸부림은 애수가 되고
스산한 불꽃 심지 속엔 은자殷子가 있네.
이제 술酒을 꾸짖은들 무엇하리.
- 超然 김은자,「불꽃은 영원하리」3연 부분
작가는 한순간에 찾아온 어려움과 고통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도 삶의 일부분으로 수용함으로써 이겨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꽃 심지 속’,‘은자殷子가 있네.’로 판단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지지와 격려를 받았던 흔적들, 원가족의 건강함에 따른 기능적인 가족 체계였기에 지금 현재까지 현가족도 작가 스스로 그 어떤 어려움이라고 할지라도 버티고 일어설 수 있지 않았을까? 감히 단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 ․ 유아기를 거치면서 청 ․ 장년기에는 교사와 교수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뿌리 깊게 다가왔다.
인간 세상에 빛나리라는 金世煥이란 뿌리에서
바르게 얻는다는 李正得이 품어준 超然
하늘같은 文泰燮의 불꽃은 영겁의 동행일지니.
- 超然 김은자,「불꽃은 영원하리」4연 부분
2연에서 모호했던 부분들은 3연에서 명확하게 알 수가 있었듯이 각 연을 보면 작가가 살아왔었던, 즉 지금까지 삶의 궤적을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작가의 얼굴처럼 투사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무릇 부모님아버지 김세환 님과 어머니 이정득 님이 존재해야만 자식이 누군지 말을 할 수 있다. 부군이신 문태섭 교수님께서 지금은 잠시‘멈춤의 시간에 있다’고 생각을 할 때, 옆에서 보호해 주시는 작가의 존재감이 실로 크다는 것을 느낀다. 한 편의 작품 속에 작가의 일생을 모두 담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연 선생님의 문학 인생이 빚어낸 결과로 잉태된 것으로 이해된다.
3.2. 2부 ‘사위어 가는 무릎아’ 편
필자가 2부에서 관심 있게 주목한 작품은‘사위어 가는 무릎아’이다. 이 작품은 4행씩 5연의 구조로 되어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지공세대’라는 신어를 통해서 노인세대의 현상을 노래했다고 보았다. 우선「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지공세대란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은어다.
오직 같은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너의 몸에 의지한 채
신음을 잠재우는 생체의 약자 대열
몸이 불편한 이들의 전동차에게 필수적인 너는
무릎이 닳아빠진 약자의 구원처
무게가 더해지면 소리 지르니
탑승이 거절되면 마지막 합승조차 계면쩍고
단 몇 초간에 실어다 주는 공간에
어색한 분위기의 공기를 마시며
꾹 참고 인내하는 염치는
무릎이 닳아서 아프기 때문이야!
부서진 연골에게 선사하는 승강기
고마운 마음을 어찌 다 표현할까?
살아서 걷는다는 거룩한 진실 앞에
무던히도 아끼며 쓰다듬는 내 무릎아!
나를 춤추게 만든 핑계를 주고
간신히 버티는 고독한 연골
체중이 늘어나면 아우성치며
통증을 고백하는 너를 의지해
허전한 황혼의 비탈길에서
겨우 걸친 삶이 애처롭고
나를 정지시키지는 말아달라고
오늘도 닭발을 고아먹는다.
- 超然 김은자,「사위어가는 무릎아」전문
필자가 이 작품은「전문」을 통째로 묶어서 비교 분석하는 것으로 하였다. 대개 청년기, 장년기를 지나 인생의 황혼기를 만나면 무슨 일이든지 새롭게 추구하려 하거나 바꾸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이 점은 필자도 마찬가지다. 요즘 운전할 때마다 처음 가는 곳은 버릇처럼 내비게이션에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자주 다니는 익숙한 길이나 굳이‘내비’가 필요하지 않는 곳을 갈 때는 늘 다니는 길만 고수하는 편이다. 간혹 도심지 재개발로 인하여 더 넓고 시원시원하게 만들어진 새 길을 가기는커녕 오히려 에둘러 가는 것도 어쩌면 낯섦에 따른 자기 방어는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만 65세 이상이 되면 경로우대자로 지하철 등을 공짜로 탈 수가 있다. 이를 두고 작가는 소위‘지공새대’라는 신어로 표현한 것 같다.
무릇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의 주요 부분들이 닳거나 상실됨에 따른 합병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상체의 모든 짊을 지탱해 주는 무릎이야 말로 중요한 부위 중에 하나다. 이 부분이 닳아서 아프기도 하고 지속적인 통증으로 고생하기 일쑤다. 이로 인해 요즘 지하철이나 육교 등에는 승강기EV가 필수적으로 설치되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예전에는 이런 기본적인 편의 시설이 없었을 때,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황혼의 비탈길에서 만나는 전동차와 승강기, 그리고 보호 장비들은 어쩌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신체의 일부분이 되었다. 무릎 연골 때문인지 닭발을 먹어야 하는 처지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필자가 작가를 본 것은 두 서너 번 밖에 되지 않지만 만날 때마다 기분 좋게 미소를 주었다는 점과 함께 살가움과 정겨움을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옆에 앉아“맞아, 맞아.”라면서 동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3.3. 3부 ‘치유의 미소’ 편
3부‘치유의 미소’편에서는 미소의 힘이 만드는 치유의 효과를 살펴보기로 한다. 4행씩 8연으로 되어 있다. 작가는 4행의 4연을 두 번 반복할 수도 있게 배치한 점과 4행을 각 2연씩 조화롭게 연계한 구조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행간의 의미는 다양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의 겨레시인, 즉 시조時調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오언 고시절구와 오언 율시, 그리고 칠언 고시절구와 칠언 율시의 구조에서도 4행과 8행의 구조를 달리 명시하고 있다. 필자는 편안하게 4행씩 2연을 1연으로 해서 전체 4연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 얼굴에
얼마나 미소를 담을 수 있을까.
즐거워서 미소 짓지 않아도
미소의 힘은 치유의 파장이 커
마음의 창窓이라는 눈빛을 지붕삼아
42개 대 협골근과 안와근이 작동하면
전염이 강한 바이러스처럼 기氣를 발산하는
광대뼈가 살짝 만든 자연산 웃음을 봐.
남에게 좋은 기분을 선사하는 미소
긍정의 힘으로 예쁜 치아를 살짝 보이면
사회적 성취의 일부를 담당하고
은밀한 소통의 다리를 놓아 준다.
비언어적 미소가 떠맡아 이미지도 개선하고
냉동된 슬픔이 가뭇없이 풀어진다.
마른 나무에 흙덩이에 심지어 바윗돌에
미소를 새겨 생명을 불어 넣는다.
맑은 미소의 나비 효과는
전 세계를 흔들고
기나긴 세월 동안
액자 안에서 우리 곁에 머물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는
행복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달의 미소를 합하여
너와 나의 가슴에 떠오른다.
좋아하는 마음이 전이되니
환영을 드러내는
자신감도 얻고
의기소침도 깨부수고
소극적 감정도 바꿔가며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니
나는 미소의 나라에 머물러
그 품에 안기고 싶어라.
- 超然 김은자,「치유의 미소」전문
앞서 필자가 8연의 구조를 4연으로 해석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1연을 보자.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 얼굴에
얼마나 미소를 담을 수 있을까.
즐거워서 미소 짓지 않아도
미소의 힘은 치유의 파장이 커
마음의 창窓이라는 눈빛을 지붕삼아
42개 대 협골근과 안와근이 작동하면
전염이 강한 바이러스처럼 기氣를 발산하는
광대뼈가 살짝 만든 자연산 웃음을 봐.
- 超然 김은자,「치유의 미소」1연 부분
작가는 얼굴에서 미소와 웃음의 근간을 말하고자 했다. 한편‘당신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는 웃음의 달인’을 보면,“찡그리는 데는 얼굴 근육이 72개나 필요하다. 하지만 웃는 데 필요한 근육의 수는 단 14개다.”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미치지 않고서는 매일 미소를 짓거나 웃을 수 있는 환경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만난 작가는 언제가 미소를 지어서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었고 조그마한 이야기임에도 부채로 시원한 웃음을 선사하였다.
요즘 웃음으로 사는, 소위 웃음치료사로 인해서 그나마 웃는 경우가 있으니 정말로 다행스럽기만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미소가 머물거나 웃음이 가득한 환경을 만나지 못했다. 좋은 인연이 되어 자연산 웃음을 만드는 작가를 만난 이후로는 미소와 웃음이 우리들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이제 흔한 환경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공이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됨으로써 여러 가지를 배우고 살기 때문에 행복하다. 1연에서 생성된 미소와 웃음이 2연에서는 관계형성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소통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남에게 좋은 기분을 선사하는 미소
긍정의 힘으로 예쁜 치아를 살짝 보이면
사회적 성취의 일부를 담당하고
은밀한 소통의 다리를 놓아 준다.
비언어적 미소가 떠맡아 이미지도 개선하고
냉동된 슬픔이 가뭇없이 풀어진다.
마른 나무에 흙덩이에 심지어 바윗돌에
미소를 새겨 생명을 불어 넣는다.
- 超然 김은자,「치유의 미소」2연 부분
우리가 만나는 타자他者와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것은‘미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비싼 값을 지불하고도 억지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바로‘미소’와‘웃음’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냥“씩~”,“씨~익”웃는 것도 공짜로 가지고 산다. 짐을 진 것처럼 무겁지도 않다.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 웃어른들로부터 자주 듣게 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늘 어른들은 필자가 어렸을 때 웃으면 곧바로,
“웃지 마라.”,“사내가 그렇게 가볍게 웃으면 되겠냐!”는 등으로 마치 웃으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것처럼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한 채 살아온 것도 우리가 벗어던지지 못한 결코 가볍지 못한 무거움의 옷을 입힌 법식은 아닐까 싶다.
이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시집을 만나는 동안만이라도 한 작품에 단 한 번만이라도 미소를 짓거나 웃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두 번, 세 번은 저절로“웃지 마세요.”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웃을 것이다. 계속해서 3연을 보자.
맑은 미소의 나비 효과는
전 세계를 흔들고
기나긴 세월 동안
액자 안에서 우리 곁에 머물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는
행복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달의 미소를 합하여
너와 나의 가슴에 떠오른다.
- 超然 김은자,「치유의 미소」3연 부분
무릇‘나비 효과’란 무엇일까?“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또 이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어, 긴 시간이 흐른 후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과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예에 빗댄 표현이다.”즉,“‘작은 사건 하나에서 엄청난 결과가 나온다’라는 뜻으로, 지구 한쪽의 자연 현상이 언뜻 보면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먼 곳의 자연과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작가는 미소가 만드는, 즉 전이된 웃음으로 인하여 자생적으로 발현한 치유의 힘을 나비 효과에 비유하고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전이되니
환영을 드러내는
자신감도 얻고
의기소침도 깨부수고
소극적 감정도 바꿔가며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니
나는 미소의 나라에 머물러
그 품에 안기고 싶어라.
- 超然 김은자,「치유의 미소」4연 마지막 부분
작가는 누구든지 힘들고 고단한 삶의 연속이지만 이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세상살이를 수월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되묻는 것과 같다. 그것은 가지고 싶은 것을 얻는 것도 아니고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도 아닌, 바로 미소가 만든 치유의 힘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잠시 잊고 산 것이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들을 되찾아 오자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현재도 나눔의 삶을 살고 있다.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의 연속이지만 굳이“몇 년이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해가 갈수록 나눔, 즉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서 잃었던 것보다 찾은 것들이 더 많았기에 지속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만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독자 여러분도 필자처럼 한 번 해 보라. 과연“내가 나눌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바로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4. 4부 ‘함께하면’ 편
4부‘함께하면’편에서는 독자들에게‘함께하면’을 통해서 관심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즉 칠정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 작품도 4행으로 구성된 4연 시이다.
칠정七情이라 함은 인간에게 기본적인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한다.‘한국고전용어사전’에 따르면,「유학」에서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또는「예기」에서는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불교」에서는 희노우구애증욕喜怒憂懼愛憎欲을 칠정七情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이‘기쁨’이고,‘즐거움’과‘사랑’을 찾고 싶은 게 지금 현재의 마음이듯이 독자 또한 이 부분은 필자와 공감할 것으로 판단된다.
용감한 장수 아래
약한 병사는 없다는 손자병법
유마거사의 집에는
말단 하인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누구와 더불어 호흡하며 사느냐가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겠지
칠정의 출렁임에
돌팔매는 배역을 준비하나니
가진 것의 겨우 3%밖에
쓰지 못하고 죽는다는
뇌의 바다에서 들락날락
꺼내어 쓰고 저장하는 인간의 그 하찮음
무엇이 어떻다 떠벌린들
한없이 부질없어
아플 때보다 편할 때 기쁨이 찾아와도
마음껏 누리지 말고 아끼라 일러준다.
- 超然 김은자,「함께하면」전문
어느덧 4부까지 오게 되었다. 각 부의 얼굴로 자리 잡고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조망하였지만 작가가 팔순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청춘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작가가 평소에도 투철한 자기 자신의 강함이 있는, 즉 내면의 세계를 엿보니 그 세계에는 작가만의 서재가 있는 것으로 투사되었다. 작가가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부군 또한 교수였고, 자식들도 교육자 집안의 내공을 갖게 되었다고 굳게 믿고 싶다. 필자도 현직 교수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었다고 사료된다.
그런 때문인지 작품 속에 수놓인 각각의 켜에는 서재에 자리 잡고 있는 뭇 스승님들의 삶의 철학들이 배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느끼게 되었다는 점도 필자가 이 시집으로 통해서 배우고 느끼게 된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1연을 보자.
용감한 장수 아래
약한 병사는 없다는 손자병법
유마거사의 집에는
말단 하인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 超然 김은자,「함께하면」1연 부분
똑같은 일을 놓고도 어떤 이는 아무런 변명도 없이 마무리를 잘 하는 반면에 또 어떤 이는 일도 시작하기 전부터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결국은 일은 손끝 하나 못 대고 끝나버리는 경우를 지금도 보고 산다. 평소 자신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불평불만도 없고 짜증도 쉽게 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은 남의 탓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뭐든지‘누구 탓’만 하다가 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모두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필자는 상담학자이기도 하다. 평소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만나는 일이 많은 편이다. 필자의 임상 경험 등으로 비춰볼 때 가정환경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언필칭 유마거사의 이야기는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을 것 같다. 옛말에“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오래오래 보고 듣고 하면 자연히 할 줄 알게 된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조차도 어쩌면 매일‘하루’라는 도전자와 만날 때마다 도전에서의 승리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루를 살아가도 내일을 못 보고 가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나면 비로소 내일을 만나더라도 자신을 갖게 되는 삶이 긍정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라고 필자는 단언하고 싶다. 계속해서 2연을 보자.
누구와 더불어 호흡하며 사느냐가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겠지
칠정의 출렁임에
돌팔매는 배역을 준비하나니
- 超然 김은자,「함께하면」2연 부분
필자가 이 작품을 볼 때, 작가는 2연에서‘관계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너와 나의 관계는 서로 간의 신뢰감에서 비롯되고 의지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대인관계는 깊을 수도 얕을 수도 있다. 결국“누구와 더불어 호흡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인격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칠정 또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바뀜으로 인하여 좋고 나쁨의 연속일 것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자아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그 어떤 누구라도 즐겁고 기쁜 마음을 나쁘고 슬픈 마음이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마음은 무형無形이다. 실체도 없는 것에 우리는 마음의 상처에 아파하고 고통을 겪고 살고 있다. 3연을 보자.
가진 것의 겨우 3%밖에
쓰지 못하고 죽는다는
뇌의 바다에서 들락날락
꺼내어 쓰고 저장하는 인간의 그 하찮음
- 초연 김은자,「함께하면」3연 부분
아무리 훌륭한 지론과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면 죽은 지론이듯이 가진 것의 3%밖에 쓰지 못한 채 죽는다는 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불가에서‘비우고 또 비우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는 불법을 실감하고 있다.
무엇이 어떻다 떠벌린들
한없이 부질없어
아플 때보다 편할 때 기쁨이 찾아와도
마음껏 누리지 말고 아끼라 일러준다.
- 超然 김은자,「함께하면」4연 마지막 부분
필자가‘함께하면’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4연의 결론 부분이었다. 중국 도가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무無’와‘유有’의 관계성을 많이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있고 없음’의 차이는 자아의 존재감 또는 물상에서 분절된다고 본다. 더불어‘함께하면’이보다 더 행복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마치 감나무에 열린 결실조차도 나눔을 진리로 믿고 사는 분이 농부들이다. 날짐승들의 몫으로 남겨 두고 감을 따는 사람들처럼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4연의 결론 부분에서 작가가 보여준 빈틈을 통해서 살가움을 맛보는 것 같아 행복하기만 하다. 아마도 작가로부터 전이된 미소가 아닐까 싶다.
3.5. 5부 ‘철부지 너스레’ 편
5부‘철부지 너스레’편에서는‘인생에도 24절기가 있다’를 통해서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삶을 조망해 보도록 한다. 이 작품은 각 4행으로 구성된 6연 시이다. 필자의 관점으로 볼 때, 이 구조는 전, 후 각 1연을‘기’와‘결’로 구분하면 나머지 4연은 각 2연으로 된‘승’과‘전’으로 나누어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봤다. 필자가 구조적으로 나눈 각 연을 크게 4연으로 묶어서 보기로 한다. 우선「전문」을 보자,
인생에도 24절기가 있다.
세월은 굽이치는 강물처럼 흐른다.
들렸다 가는 듯이 빠르게도 달리고
벅차게 지루한 절기도 있다.
절부지節不知는 철부지의 어원
절기를 모르면 인생농사를 어이 지을까?
어른이 되어도 어린애 같은 한 면은
‘어리석고 사리 분별이 없다’고 일러준다.
나이를 먹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하더니
모습과 반비례로 마음이 유치해지네.
철을 아는 사람, 철든 사람은
지혜로움의 열쇠를 지니고 있더라.
어린 데도 청춘이 숨어버린 애늙은이
늙었지만 영혼의 민낯이 싱싱한 젊은이
남자 같은 여자지만 분명히 여자이고
여자 같은 남자지만 분명히 남자인 철부지가 있다.
철부지가 내어주는 60대에 노인 곁에
황폐되지 않은 방부제 열정이 있기도 하고
장밋빛 청춘의 곁에도 창백한 영혼을 간직한
까칠한 입술을 물어뜯는 몸짓이 있다.
내안의 열정의 관절이 삐거덕 거려도
내 보랏빛 청춘의 상상력을 휘날리며
나이를 세는 숫자를 잊어버리고
남아 있는 젊은 영혼에 방부제를 치자.
- 超然 김은자,「철부지 너스레」전문
무릇 1년 12달을 4계절봄 ․ 여름 ․ 가을 ․ 겨울로 나누면 3개월씩 분절된다. 이를 매월 초순과 하순을 범주로 그 시작을‘입춘’에서‘대한’까지 24절기로 구분 짓고 있다.
한편 필자가 짐짓 보기에 작가는 여러 작품 속에서 관조할 수 있는, 즉 철학자적인 또는 자연주위적인 아우라Aura가 내재된 것 같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
요즘 인생은‘백세 시대’라고 한다. 인생 백세를 네 켜성장기 ․ 전성기 ․ 쇠퇴기 ․ 부흥기로 나누면, 태어나서 25세까지를‘성장기’로 보았을 때‘봄’날로 비유된다. 26세부터 50세까지‘전성기’는‘여름’으로 보고, 51세부터 75세까지‘부흥기’는‘가을’로 삶에서 결실을 맺는 시공時空으로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76세부터 100세까지‘침체기’는‘겨울’로 이해한다면 덤으로 받는 축복된 시간일 것이다. 갈수록 의학의 발전 등으로 인해 기대 수명은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1연을 보자.
인생에도 24절기가 있다.
세월은 굽이치는 강물처럼 흐른다.
들렸다 가는 듯이 빠르게도 달리고
벅차게 지루한 절기도 있다.
- 超然 김은자,「철부지 너스레」1연 부분
작가가 노래하고자 했던 부분이 앞에서 필자가 수놓았던 부분과 같을 것으로 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독자들은 어떤가?”묻고 싶다.“지금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를 말이다. 지금 현재 필자는‘부흥기’에 머물고 있으나 이 시기‘쇠퇴기’에 머무는 독자도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책을 감상하는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독자들이여! 작가의 작품 속에 그대로 내재되어 있음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계속해서 2연을 하나로 묶은 부분을 보자.
절부지節不知는 철부지의 어원
절기를 모르면 인생농사를 어이 지을까?
어른이 되어도 어린애 같은 한 면은
‘어리석고 사리 분별이 없다’고 일러준다.
나이를 먹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하더니
모습과 반비례로 마음이 유치해지네.
철을 아는 사람, 철든 사람은
지혜로움의 열쇠를 지니고 있더라.
- 超然 김은자,「철부지 너스레」2연 묶음 부분
필자가 지금까지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숱한 반복된 과정을 겪으면서 삶에서의 철학을 배우고 산다. 독자들 또한 그럴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자기 자신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수십 년 동안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재능을 기부하며 살고 있다고 앞에서도 말했다. 거의 대부분은 열악한 생활환경에 처한 이들과 심리적, 정신적으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이들과도 만난다. 그리고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지난 순간들은 마치 암각화처럼 남아 있지만 지금 현재의 순간순간은 혼란 속에서 사는, 즉 치매를 앓고 사는 우리들의 부모님과도 만난다.
작가가 작품으로 수놓은 이러한 일련의 행적들 또한 지금까지 살았던‘가정환경과 대인관계는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필자가 상담심리학자이기 때문에 이야기하고 싶다.
작가가 노래한 소위‘철을 아는 사람’,‘철든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좋은 가정환경, 즉 기능적 가족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기를 거치고 나면 저절로 배우고 느꼈던 것을 그대로 빼닮아 기능적 가족으로의 삶을 행복하게 보내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즉‘역기능적 가족’은‘기능적 가족’과 정반대의 삶을 위태롭게 형성하고 살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기를 거치는 사람들은 똑같이 닮은 삶을 대물림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성은 마치 살얼음판처럼 위태롭다.
작가가 노래한‘지혜로움의 열쇠’조차 자기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그 열쇠를 잘 관리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2연 묶음을 보자.
어린 데도 청춘이 숨어버린 애늙은이
늙었지만 영혼의 민낯이 싱싱한 젊은이
남자 같은 여자지만 분명히 여자이고
여자 같은 남자지만 분명히 남자인 철부지가 있다.
철부지가 내어주는 60대에 노인 곁에
황폐되지 않은 방부제 열정이 있기도 하고
장밋빛 청춘의 곁에도 창백한 영혼을 간직한
까칠한 입술을 물어뜯는 몸짓이 있다.
- 超然 김은자,「철부지 너스레」3연 묶음 부분
작가가 수놓은,‘어린 데도 청춘이 숨어버린 애늙은이’를 보는 순간 앞에서 가볍게 밝힌 노자老子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원전 604년 9월 14일, 중국 초나라 고현의 여향 곡인리에 한 여인이 자두나무李樹에 기댄 채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 아이의 어머니는 떨어지는 별을 찬양하면서 62년 동안 임신해 있던 상태였고, 그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주위의 자두나무를 가리키며“나는 이 나무를 따서 성姓을 짓겠다.”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자두나무李에다 자신의 큰 귀耳를 상징하는 이름을 붙여 스스로 이름을 이이李耳라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칼은 벌써 하얀 눈처럼 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자老子라 불렀다. 노老는 늙었다는 뜻이고, 자子는‘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존칭어다.”
필자가 초연 선생님의 처녀 시집에 서평으로 난삽한 글을 수놓던 중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굳이 이 부분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빼버릴까? 고민을 하던 중에 작가와 사전 협의도 없이 넣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8일 올해 백세를 일기로 영면한 故 황금찬 선생님시인, 1918~2017과의 인연에서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처음 등단을 했던 때가 2004년도 후반이었다. 정곡 이양우 선생님의 추천으로 문인의 옷을 입고 난 후 처음으로 황금찬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때마침 필자가 처녀 시집天 ․ 人 ․ 地을 출판할 때 서문을 남겨 주신 분이 바로 황금찬 선생님이었기에 더욱 더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2005년 7월 27일과 28일 이틀간 보령에서 한국육필시비공원 행사 때의 일화다. 선생님께서 필자의 손을 잡으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윤 군, 자네 손은 참으로 따뜻하네.”
필자가 꼭 잡았었던 당시 황금찬 선생님의 손은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제 손이 따뜻하니까 좋지~예!”
…이어서…
“윤 군, 나이가 들면 몸이 차가워진다네.”
“………”
가볍게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 차를 한 잔 할 때도 자연스럽게 황금찬 선생님 곁에 앉을 수가 있었다.
충남 보령, 한국육필시비공원에서 황금찬 선생님과 함께 허브농원(2005년 7월 27일)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있습니까?”라면서 뜬금없는 질문에도 싫은 내색조차 보이지 않으셨다.
“윤 군, 나는 말일세. 늘 글을 쓸 때마다 일곱 살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글을 쓴다네.”
“………”
“그러면 아주 맑고 고운 글을 쓸 수가 있다네.”
“네에…”
“자네도 나처럼 그렇게 한 번 해 보게.”
“네, 선생님.”
이런 만남 이후부터 지금까지 필자는 故 황금찬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아로새기면서 글을 쓸 때마다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이들을 불가佛家에서는‘소중한 인연’이라고 한다. 어쩌면 필자 또한 소중한 인연으로 인해 초연 김은자 선생님을 만난 것으로 굳게 믿는다.
한편 철부지라고 해도 좋고 어린아이라고 해도 좋다. 맑고 고운 글만 쓸 수만 있다면 어떤 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4연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내안의 열정의 관절이 삐거덕 거려도
내 보랏빛 청춘의 상상력을 휘날리며
나이를 세는 숫자를 잊어버리고
남아 있는 젊은 영혼에 방부제를 치자.
- 超然 김은자,「철부지 너스레」4연 마지막 부분
필자가 4연에서 주목한 부분은 2행의‘보랏빛 청춘’과 4행의‘영혼에 방부제’이다. 대개 심리치료에서 해석하는 보라색의 의미를 긍정적인 측면에서는‘신비한 힘, 자기희생 등’으로 보는 반면, 부정적인 측면에서는‘고통, 내적 긴장 등’으로 본다. 혹자는 그리움과 상처의 색깔이라고도 한다.
즉 지금까지 작가가 살아왔던 삶을 반추해 보는 장면을 투사시켜주는 것 같았다. 작가의 약력을 보면‘일본 아시안 핸드테라피협회 상임고문’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자기 치유가 가능한 치료사들은 소위‘자기 직면’을 통해서‘통찰깨달음’을 하게 된다. 필자가 초연 선생님을 만났을 때에도 여러 번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 부분을 수놓을 수 있었다.
4행의‘영혼에 방부제’는 묘한 느낌을 갖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또는 변하지 않을… 그렇지만 유통기간은 있을 것 같다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한편 문학인으로서 시집이든 수필집이든 간에 작품집을 출판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문학적 사상과 이론, 그리고 내재된 수사법과 관조적 내밀함은 영원무궁할 것으로 사료된다.
필자는 건축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간혹 문헌사료 등을 볼 경우에 더러 그 당시의 역사적 관점 등을 비교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지금 현재의 작가가 표현한 모든 시어와 문체는 마치 박재된 채 변하거나 바뀔 수 없어 독자들에게 거울처럼 비칠 것으로 본다.
3.6. 6부 ‘빌려 쓰면서’ 편
끝으로, 6부‘빌려 쓰면서’편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였다.
씨앗을 파종하려는데
땅이 없으면
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사용료를 지불한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자연의 순환에 잠시 얹어놓은 삶
그냥 그대로 가해하지 말아야 하거늘
개발이라는 이름 걸고 마구잡이 분탕질
반드시 돌아갈 자연의 자궁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선혈을 곳곳에 흘리고
딱지를 앉혀 잡아 뜯어
새살이 나기도 전에 박살을 내는 미련함
임대료 없이 무한 리필이 되는 것들
헤일 수도 없이 많이 있어도
아무것도 고마워하지 않는 무례한들
스스로 지은 교도소에 제 몸이 갇히게 됨을 알까?
어머니가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듯
아픔을 감추며 남은 것까지 모두 내어주는
너그러운 품이 있어 탕아 같은 인간들의 대죄를
그대로 봉합하는 위대한 자연에게 끝 모를 빚을 진다.
- 超然 김은자,「빌려 쓰면서」전문
지금까지 여섯 작품을 다시 한 번 더 감상하는 방법으로 작품의「전문」을 통해서 필자의 관점으로 본‘망원경’과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에 의한 관조는 전체 60편의 작품을 6부로 나눠진, 즉 전체에서 부분으로 살펴보는 것은‘현미경’을 통해서 볼 때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시작詩作의 바탕을 재조명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4행으로 된 5연 구조의 시이지만 필자는 4연 구조, 즉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격식을 즐기는 편이다.
따라서 2연과 3연을 하나의 연으로 묶어서 해석해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봤다.
우선 1연을 보자.
씨앗을 파종하려는데
땅이 없으면
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사용료를 지불한다.
- 超然 김은자,「빌려 쓰면서」1연 부분
1연의 철학적 사고에도 기승전결의 구조가 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태어나 저 세상으로 가기까지 모태의 모태는 자연이다. 그래서 동양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은 우리 선조가 자연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근간이었다.
게다가 동양철학 사상 중에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은‘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말씀이다. 즉 하늘天은 양陽으로서 남성을 뜻하고 땅地은 음陰으로서 여성을 뜻한다. 이와 같은 켜layer가 대지모 사상大地母 思想이다. 다시 말해 땅을 어머니로 여기는 사상이다. 우리의 풍수風水도 여기에 있음으로써 그저 얻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필자가 2연으로 본 부분2연 묶음을 보자.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자연의 순환에 잠시 얹어놓은 삶
그냥 그대로 가해하지 말아야 하거늘
개발이라는 이름 걸고 마구잡이 분탕질
반드시 돌아갈 자연의 자궁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선혈을 곳곳에 흘리고
딱지를 앉혀 잡아 뜯어
새살이 나기도 전에 박살을 내는 미련함
- 超然 김은자,「빌려 쓰면서」2연 묶음 부분
작가가 본 관점은 분명히 무분별하게 자연 파괴를 하는, 즉 환경을 노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개발이라는 단어에는 새로움이 있을 뿐 과거의 모습과 흔적은 눈을 뜨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필자가 여러 학문을 연구한 이점으로 인하여 이 부분에서는 건축가로서 수를 놓고 싶었다. 사실 지금 현재 전국 각지는 개발로 인해 과거는 점점 지워지고 현재가 점령하고 있는 시점이다. 간혹 자연주의적 관점을 지향하는 건축가들은 이러한 점을 오히려 부각시켜서 시공간적으로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요즘 도시든 농촌이든 가보면 서로 닮아서 여기가 도시인지 농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계속해서 3연을 보자.
임대료 없이 무한 리필이 되는 것들
헤일 수도 없이 많이 있어도
아무것도 고마워하지 않는 무례한들
스스로 지은 교도소에 제 몸이 갇히게 됨을 알까?
- 超然 김은자,「빌려 쓰면서」3연 부분
필자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디를 가든 지금 현재의 환경을 기억에 담아 두기 위해서 사진으로 남겨 둔다. 독자들도 필자처럼 그렇게 할 것이다.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해 보라. 요즘 손 전화기의 기능이 너무나 좋아서 카메라가 없어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런 덕분으로 필자는 순간순간에 남겨진 사진을 배경으로 습작을 많이 남긴다. 그런데 도심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초고층 건축물과 주택이 마치 벽처럼 병풍처럼 막고 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사를 모실 때 병풍을 치는 곳이 북향北向이다. 사방팔방 무시하고 병풍을 치는 곳도 북향으로 보는 것도 그 이유이다. 북향을 상징하는 것이 죽은 자들의 공간인, 즉 무덤이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점을 이해했을 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까닭에‘…교도소…’이라는 표현을 빌려 쓴 것은 아닐까?
지금 환경이 앞으로 10년 후, 30년 후와 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고층 주택들이 즐비한 도심도 언젠가는 지금 현재 농촌과 다를 수 없을 것으로 짐작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 촌도 상상해 볼 수도 있지만 미래를 점칠 수는 있어도 그때는 이미 지금 현재의 존재들은 사라지고 과거 속에 점철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 애달픔을 혹여 도시를 농촌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작위적으로 만든 그들은 알까? 모를까?
마지막 4연을 보면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관조한 즐거움에 온점( . )을 찍고 싶다.
어머니가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듯
아픔을 감추며 남은 것까지 모두 내어주는
너그러운 품이 있어 탕아 같은 인간들의 대죄를
그대로 봉합하는 위대한 자연에게 끝 모를 빚을 진다.
- 超然 김은자,「빌려 쓰면서」4연 마지막 부분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대기과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그 자체가‘하나의 생명체’로서‘지구는 살아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여 이를‘가이아 이론’이라고 했다.
한편 지구의 폐에 해당하는 곳이 아마존 강 유역의 밀림 지역이다. 전 세계가 개발이라는 명제 아래 우리 스스로 자연환경을 훼손함에 따른 자연재해를 우리는 지금도 겪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4. 나가기
초연 김은자 선생님은 수필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다. 수필가가 처녀 시집으로 출판하는 이 영광된 자리에 초대를 받은 후 많은 나날을 고민과 갈등 속에서 보냈음을 밝힌다. 중진 작가를 넘어선 문인 선배님의 글을 평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예의가 아닐 것으로 보았던 것도 사실 고민 속에 포함이 된다. 하지만 필자 스스로 용기를 내었고 스스로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내게 된 점 또한 현직 교수로 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피력하고 싶다.
필자가 초연 김은자 선생님의 처녀 시집인‘불꽃은 영원하리’를 조망하게 된 기법은 전체와 부분에 있었음을 다시 한 번 더 밝히고 싶다. 이러한 바탕에는 물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단서가 붙기 마련인데, 필자는 과감하게 하나의 대상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 그루의 나무였다. 미술치료에서 나무 그림을 해석할 때, 나무 자체를 무의식으로 투사해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차용하게 되었다.
필자가 근간으로 보게 된‘나무’라는 대상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가깝게는‘한 그루의 나무’로 볼 수도 있지만, 멀리서 본다면‘숲’이 될 수도 있는, 즉 오류와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는 고민 또한 지워낼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필자가 선택한 관조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물상과 시상을 관찰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깝게‘한 그루의 나무’를 보려 할 때에는 현미경을 통해서 보았고, 멀리서‘숲’을 보려 할 때에는 망원경을 통해서 관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명확한 구분 없이 물상을 본다면 수많은 의혹과 오류를 범했을 줄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직도 막힘이 많은 서평에 자못 먹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도 덤으로 가지기에 조심했고 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필자가 작가의 소중한 작품을 보고 느끼고 스스로 읽고 듣기까지 소요된 시간만큼 지금보다 내일은 더 성숙해질 것으로 믿기에 실망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좋은 책과 선자의 말씀도 독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폐지로 분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연 김은자 선생님은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셨던 분이었기에 필자는 60여 편을 통해 작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여러 각도에서 보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 서평을 쓸 때 서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러 가지로 고민하던 끝에, 교육심리학에서 그 접근법을 차용하였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읽을 수 있는 반복 학습이론이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에「전문」을 다시 한 번 더 소개하게 되었다는 점도 밝힌다.
마지막으로, 작가인 초연 김은자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한 채 이야기를 맺고자 한다. 고맙습니다.
201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李千 윤석환 쓰다.
[사진 설명] 2017년 4월 12일, 시비 개막식 때 모습들
불꽃은 영원하리
2017 · 제1집
인쇄일|2017년 5월 15일
발행일|2017년 5월 20일
지은이|김 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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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값 10,000원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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