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대 앞, 히데의 시선은 사람들의 모습에 꽂혀 있다. 표정은 못마땅함의 극치였다. 이리저리 다니는 빨간 머리의 천국. 왠지 굉장히 불쾌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당연히 담배가 있을 리 없었다. 생각해보면 다시 살아난 어제부터 단 한 개피의 담배도 피지 않고 있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은 담배를 피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돈이 있었다. 혹시나 루시가 챙겨준 것 같았다.
"잠깐만.. 꼬마.. 나 담배 좀 사고.."
"응? 그래."
"그런데 여기 마일드 세븐 슈퍼라이트 파는 곳이 있어? 음.. 난 잘 모르겠어."
"사다줄게. 잠시만.."
은우는 쪼르르 구멍 가게 같은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왠지 그런 그녀를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15~6살은 어린 소녀..
- 아아.. 범죄야.. 이건 진짜 범죄야.. 키킥.. 하긴 지금 나는 젊디 젊지 않나.. 그래도.. 훗.. 아저씨인 건 분명해.. 정말.. 난 아저씨인 걸.. -
"여기.. 사왔어.. 저기 가게에 안팔아서.. 저 쪽에 편의점까지 다녀왔어. 헉헉.. 힘들어.."
"응..응..응.. ありがとう ."
(고마워.)
그는 마일드 세븐 슈퍼라이트를 한 개피 물었다. 아마.. 4년 만에 피는 담배일 것이다. 용케도 끊어진 기억.. 죽은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애인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어쩌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쭉 들이켰다. 그 순간 목 안은 매캐한 연기로 울렁대어 그만 담배를 바닥으로 뱉어내고 말았다.
"콜록! 콜록! 제..젠장! 늘 피던.. 건데.."
"괘..괜찮아? 담배 처음 피는 거야? 무리해서 피지 않아도 되는 데.. 그런 것 하나도 안 멋있어.."
"원래 피던 거야! 젠장.. 한 4년(?) 안 폈더니.. 젠장.. このような乞食をする場合がすべてあって? " (이런 빌어먹을 경우가 다 있어?)
"괜찮아? 거의 다 왔는데.."
"알았어.. 콜록.. 당분간.. 피지 말아야 겠어.."
그녀는 조잡한 그래피티가 벽에 그려져 있는 한 라이브 하우스로 향했다. 히데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에 추태는 잊어버린 채 이리저리 구경하기에도 바쁜 모양이었다.
"얘들아, 나 왔어! 어제 말한.. 보컬할 애야."
"안녕하세요. 어? 진짜 히데랑 똑같이 생겼다. 우와.."
"안녕하세요.. 진짜야! 우와.. 누가 보면 진짜 히데가 살아 돌아온 줄 알겠어!"
- 아아.. 기분나빠.. 내가 날 닮았다니.. 이보다 더 기분이 더러울 수가 있을까.. 젠장.. 옆에 포카리 스웨트 병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 -
"안녕하세요. 박 희대라고 합니다."
멤버들은 별달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히데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족속. 그저 튀는 것 하나 없이 평범한 옷차림에 선량한 얼굴. 얼굴이 맘에 들지 않았다. 다소 심술궂게 생긴 얼굴을 지닌 히데는 그런 좋은 사람 같은 이미지의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멤버들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데도 냉큼 이리저리 다니면서 악기를 보고 있었다. 일본에 비해 여건은 좋은 듯 했다. 드럼.. 8기통.. 갑자기 요시키의 크리스탈 12기통 드럼과 비교되는 것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드럼.. 누가 치는 데?"
대뜸 반말을 하는 히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지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은 인상을 썼다.
"내가 치는 데?"
"잘 쳐?"
"야! 너 몇 살이야?"
"응? 응..응.. 음.. 아마 21살인 걸로 알고 있어."
"야! 나 24살이야. 어디서 건방지게 반말이야?"
- 아쭈? 이 자식아.. 참나.. 난 따지고 보면 40대를 보고 있어, 임마. 난 저런 놈들 정말 싫어. -
"미안.. 한국어 서툴러. 존대가 뭔지 잘 몰라."
"너 일본에서 살다 왔댔지? 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뭐뭐입니다. 뭐뭐인데요. 라고 말하는 거야."
"그냥 형이라고만 하면 안돼? 존대 어려워."
- 헹∼ 내가 너한테 뭐하러 존대야? 웃겨서..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고맙다고 생각해. 아아.. 이게 뭐람.. 정말.. -
"휴.. 너도 참 특이한 성격이네.. 그렇게 해. 이 쪽은 베이스를 맡고 있는 김 현성이라고 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다지 실력은 없지만 열심히 해. 이 쪽은 드럼을 치는 김 은우. 너와 같이 산다고 했으니 별 소개는 필요없겠지?"
"응? 뭐라고 한거야? 희대야."
"응? 응..응.. 열심히 하라고 했어. 나머지는? 리드 기타는 누가 하고 있어?"
"리드 기타는 나야."
"응? 응? 진짜? 기타 잘 쳐? 그런데 처음에 드럼도 친다고 했어. 그런데 기타?"
"은우가 몸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서 나오지 못하는 날은 내가 드럼을 쳐. 그 정도도 모르냐?"
"응? 응? 어디가 아픈데?"
"쉿.. 들려.. 은우는 그 얘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음.. 알았어. 그런데.. 나 리드 기타 할래. 보컬도 할래."
"뭐..뭐라고? 야야! 리드 기타가 얼마나 힘든데.."
히데는 빙긋 웃어 보이더니 엠프에다 기타를 연결을 하였다.
"뭐 연주할까? 히데의 곡이라면 다 알아. X의 곡을 연주해줄까?"
"뭐? 정말 황당한 놈이네? 어디 너 알아서 연주해봐."
" 그럼.. X의 전주곡."
히데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연주는 시작되었다. 당연히 히데가 그것을 연주를 못한다면 말이 안되듯 그는 모든 멤버가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가 될 때까지 현란한 테크닉으로 연주를 계속 하였다.
한참을 연주를 하다보니.. 갑자기.. 토시가 보고 싶었다. 불만이 많기는 해도 언제나 요시키가 하자는 대로 열심이었던 토시.. 무뚝뚝해도 언제나 술을 마시자면 그냥 따라와 줬던 파타.. 아무리 술을 먹고 실수를 해도 다음 날 웃어 주었던 요시키.. 말없이 기분 나쁠 때 이야기 상대가 되어줬던 타이지.. 누구보다 잘 따랐던 히쓰..
드럼 소리가 들려왔다. 강렬하고 파괴적인 음색이.. 그리고 베이스가 들려왔다. 서툴지만 열심히 따라오려던 처음의 히쓰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음색..
눈을 떴다. 은우는 고개를 숙이고 스틱만을 휘두르고 있다. 요시키를 닮았다. 그리고 토시와는 다른 더욱 갈라진 그 목소리.. 자신이 알고 있던 X가 아닌 또 다른 X가 들려온다. 그리고 기타 독주 부분에는 그 잘난척 하던 형이라는 놈은 히데의 테크닉에 따라오려고 열심히 연주했고 히데는 나름대로 귀엽다고 생각했다.
"꽤 노래는 잘 부르는데?"
"노래 부를 때 말시키지 마! 이거 가사를 제대로 못 외웠단 말이야!"
" そうではなくてももう何か所間違った。 そのように?音が惡くてからきちんと歌を歌おう?"
(그렇지 않아도 벌써 몇 군데 틀렸어. 그렇게 발음이 나빠서야 제대로 노래를 부르겠어?)
연주는 끝났다. 은우와 히데를 제외하곤 전부 지쳐 버렸는지 바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히데는 기타를 목에 걸치고 형이라는 사람을 보았다.
"나 리드 기타해도 되지?"
"우와!∼ 너한테 질렸어. 정..말.. 넌 천재야! 어떻게 연주까지 그렇게 완벽하게 할 수 있어? 누가 히데가 살아 돌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 실력이 우선이니까. 좋아."
"응..응응.∼♡ 좋아. 형 이름은?"
" 한..한 겨루. 헥헥.. 네 연주 따라가다가.. 나부터 죽겠어.. 하여튼 잘 왔다. 박 희대. 이름도 희대가 뭐야? 내 참.. 생긴 것도 닮았고.. 야.. 너 무서워, 임마. 하핫!"
"응? 내가? 나 안 무서운 사람이야. 가끔 히데곤.. 아니.. 화가 나면 무서워."
"히데곤? 으하하하하! 그것 참 너한테 잘 어울리는 별명이야. 무대포에 싸가지 없고. 넌 히데곤이야! 임마!"
겨루라는 사람은 굉장히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히데는 이런 성격의 사람들이 좋았다. 술을 마셔도 뒷탈(?)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드럼의 은우는 보았다. 그녀도 확실히 대단한 소질이 있었다. 요시키의 드럼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익숙한 리듬으로 두들겨 주는 바람에 히데는 안정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헤이∼ 꼬마. 드럼 잘 치던데?"
"응.. 노력했어.. 늘.. 들었거든.. 요시키 좋아해.."
그녀는 말하기도 힘든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저 가녀린 체격에 요시키의 파워 드럼을 친다는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키는 예전 자신의 키와 비슷하지만.. 몸은 훨씬 가녀려서 조금만 툭 쳐도 쓰러질 것 같은데.. 어떻게 저런 드럼을 칠 수 있는지..
"꼬마. かなり大丈夫なドラムであった。 "
(꽤 괜찮은 드럼이었어.)
그녀는 히데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는지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히데는 기타를 만졌다. 기타.. 파타처럼 목을 멜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자신도 파타와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깨닫지 못한 소중함. 언제나 기타를 닦으며 히죽거리던 파타의 미소가.. 이제야 히데는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