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선생집 발문
후손 정건(鄭鍵) 삼가 지음
이 책은 우리 선조이신 충익공(忠翼公, 백곡선생의 시호)의 시와 문을 모아《백곡선생집(栢谷先生集)》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 선조께서는 일찍이 아우 한강공[寒岡公=정구(鄭逑)]과 함께 퇴도(退陶, 이황)의 문하에서 학업을 받으셨고, 우리 목묘(穆廟, 선조대왕)께 알아주심을 받기에 이르셨다.
그분의 아름다운 덕업과 성대한 공적, 그리고 뛰어난 문장은 유림(儒林)에 뚜렷이 나타나 있고 국사(國乘)에 실려 있으며, 문장가들의 글에서도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일컬어지는 『세 가지 썩지 않는 것(三不朽: 덕, 공, 말)』을 우리 선조께서는 실로 겸비하셨도다.
다만 그 유집(遺集)이 전쟁(임진왜란 등)의 불길 속에 흩어져 없어졌으니,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마치 표범의 무늬 중 점 하나(一斑)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고기 한 점을 맛보고도 솥 안의 국 맛 전체를 알 수 있듯이, 식견이 있는 자라면 한 번만 보아도 (선생의 위대함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책의 분량이 많아야만 하겠는가.
임금님(숙종) 즉위 2년(1675년) 을묘년에 선조의 외증손인 심곡(沈谷) 조극(趙櫟) 씨가 창평 현감으로 재직할 때, 비로소 유집을 판각하려 하였으나 공을 마치지 못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늘 애석하게 여겨왔다. 이제 불초한 내가 삼가 예전에 모아두었던 것과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것들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창평공(昌平公, 조극)의 아들인 정희(廷熙) 군과 함께 옛 판본을 대조하여 오류를 바로잡고, 연보를 작성하여 참고할 수 있게 하였으며 상·하편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이를 사재(四宰) 민진후(閔鎭厚) 공에게 받들어 감수를 청한 뒤 비로소 나무판에 새겨 간행하게 되었다.
아아! 선조께서는 이미 앞서 말한 세 가지 썩지 않는 업적을 갖추셨으니, 진실로 문집이 전해지고 전해지지 않고에 따라 (명성이) 좌우될 분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이 멀어질수록 남기신 글들이 점점 사라질까 두려웠는데, 다행히 민공(민진후)의 덕을 숭상하고 의리를 사모하는 정성이 없었더라면 선조의 유집은 하마터면 세상에 행해지지 못할 뻔하였다.
슬프도다! 후손이 조상에 대하여 비록 평소 가지고 노시던 물건이나 즐기시던 음식이라도 오히려 삼가 지키며 차마 버리지 못하는 법이다. 하물며 시와 문은 그분의 정신과 마음공부가 깃든 곳인데, 어찌 부서진 조각이나 짧은 편지글이라고 해서 차마 인멸되어 전해지지 않게 하겠는가.
글을 수집하고 엮은 것은 실로 심씨(조극) 부자가 마음을 쓴 것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 성사시킨 것은 모두 민공(민진후)의 힘이다. 이에 감히 전말을 대략 기록하여, 조상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羹墻之慕)을 기탁하노라.
숭정 기원 후 83년(1710년, 숙종 36년) 경인년 중춘(2월) 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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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栢谷先生集跋 - 鄭鍵 撰
此我先祖忠翼公詩若文。目之曰栢谷先生集者也。惟我先祖蚤與弟寒岡公。受業退陶門。逮乎受知我穆廟。其德業之懿。功烈之盛。文章之美。著於儒林。載於國乘。見於詞家。古所稱三不朽者。我先祖實兼有之矣。第其遺集見逸於兵燹。今所存者。特文豹之一 斑。然一臠足以識其全鼎。染脂者一目當別矣。何必編帙之多乎哉。
上之二年乙卯。先祖外曾孫沈谷櫟氏宰昌平。始以遺集付剞劂氏。未訖功而遞歸。每爲之慨惜矣。今不肖謹摭舊所裒稡者及得於爲人傳誦者。與昌平公胤廷熙甫。叅互舊本。以正紕繆。撰次年譜。以資考閱。釐爲上下編。奉質于四宰閔公鎭厚。而鋟諸梓。嗚呼。先祖旣有此三不朽。固不待文集之傳不傳。而竊懼夫人代寢遠。而篇什寢逸。倘撤閔公尙德慕義之誠。則先祖之遺集幾乎不行于世矣。噫。後裔之於祖先。雖其服玩嗜好之物。猶將謹守而不忍廢。況乎詩文。其精神心術之所寓。則雖殘篇短牘。豈忍使泯沒而無傳也哉。其收輯而編摩者。實沈公父子所用心。而終始贊成之者。皆閔公力也。玆敢略敍顚末。以寓羹墻之慕云爾。
崇禎紀元後八十三年庚寅仲春日。<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