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변기 한때 ‘변기 여왕’이라 불리던 분이 있었지요. 인천시청을 필두로 군부대는 물론 가는 곳마다 화장실의 변기를 뜯어 새 것으로 교체해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부터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그분을 가까이서 모시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기사가 떴더군요. “장관과 공용화장실에서 마주칠 여성 공무원들을 배려하느라” 서울에 올 때만 사용하는 장관실에 새 변기를 설치하고 장관 전용화장실을 만들었답니다. 부임 일주일만의 일입니다. 그들에게 화장실과 변기는 ‘구별 짓기’를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귀족적 자존심의 최저치였을까 싶습니다.
영화 〈헬프〉(2011)에서도 그랬어요. 백인들은 유색인종들과는 절대로 변기를 공유할 수 없다며, 친절하게도 제 집 가정부들에게 전용화장실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고맙지 않냐?”고 물어요. 유색인 전용화장실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히든 피겨스〉(2016)에도 꽤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196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의 인권을 다룬 이 영화들에서 화장실은 계급과 차별의 아이콘입니다. 가장 사적이고 원초적인 영역에까지 뿌리내린 억압이기도 하지요.
전 여성 장관의 전용화장실 기사를 접할 무렵은 공교롭게도 제가 막 〈헬프〉를 다시 보고 난 후였어요. 1960년대 백인들이 유색인종에게 가졌던 생각이 21세기 대한민국 지도자들의 태도와 닮은 것이 새삼 당혹스러웠지요. 그래서 오늘은 변기를 중심으로 이 두 영화 〈헬프〉와 〈히든 피겨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참고로, 변기가 그리움과 소통의 매개가 된 일본 영화 〈토일렛〉(2010)과 모순과 희망의 상징으로 표현된 〈아빠의 화장실〉(2007) 같은 우루과이 영화도 함께 볼만 해요. 혹시, 지금 식사 중이신 건 아니지요?
〈헬프〉의 변기는 저항입니다 1960년대 초 미시시피주 잭슨, “백인에 관한 유색인들의 동등권을 주장하는 글을 인쇄, 출판, 배포하는 자는 체포, 투옥된다”는 ‘소수민족 행동강령’이 주어졌던 시기에 위험하게도, 흑인 가정부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출간됩니다. 유지니아 펠런(엠마 스톤)이라는 “대학물을 먹은” 23세의 여성이 13인의 흑인들을 인터뷰하여 쓴 책입니다. 그는 여느 남부 중산층 가정의 소녀들처럼 흑인 가정부의 손에서 자랐지만, 백인 아이들이 자라 20년 동안 키워준 이들의 상전이 되고 심지어 그들과 화장실도 같이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모순에 의문을 품었지요. 유지니아는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에게 묻습니다. 평생 17명의 백인 아이를 키웠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는 방치해야 했던 기분이 어떤지, 다른 꿈을 꾼 적은 없는지, 그렇게 ‘The Help’ 프로젝트가 시작되지요.
변기 에피소드는 그중 옥타비아 스펜서가 연기한 미니 잭슨의 사연입니다. 잭슨 최고의 요리사인 미니는 비바람이 심하던 어느 날 집 밖의 유색인종 화장실 대신 주인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의 핑크색 변기를 이용하려다가 들통이 납니다. 미니는 결국 폭언과 함께 해고되고 말았지만 미니는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어요. 힐리가 평소 가장 즐겨 먹던 쵸콜릿 파이 속에 자신의 똥을 넣어 두 쪽이나 먹게 합니다. 게다가 “네가 먹는 게 내 똥이다!”라고 알리기까지 하지요. 책에 실린 이 사연으로 인해 힐리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봉변을 당합니다.
〈히든 피겨스〉의 변기는 변화의 씨앗입니다 〈히든 피겨스〉는 〈헬프〉와 비슷한 시기 버지니아 주에 살았던 세 명의 흑인 여성들의 삶에 주목합니다. 수학 천재 캐서린(타라지 P. 헨슨)과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과 메리 잭슨(자넬 모네)은 당대로서는 드물게 배운 여성들이었고, 미시시피의 에이블린이나 미니에 비하면 최고의 기회를 얻은 흑인 여성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무려 ‘나사’(NASA)에서 전산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니까요. 소련과 미국의 우주 기술 전쟁이 한창이던 1961년 무렵의 실화입니다. 흑인 여성 최초로 ‘우주 임무 그룹’에 배정된 캐서린은 유인 우주선의 성공적인 귀환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수학을 찾아 궤도 진입과 이탈 지점을 계산해야 합니다. 한편 도로시는 흑인 최초의 주임 승진에 도전하고, 메리는 흑인 여성 최초의 엔지니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히든 피겨스〉는 결국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최초’가 되어야 하는 여성들의 분투기입니다.
그 선봉에 서 있던 캐서린이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여 가장 처음 직면한 문제가 바로 커피와 화장실이지요. ‘먹고 싸는’ 문제 말입니다. 캐서린은 유색인종 화장실을 찾아 800미터나 떨어진 다른 건물을 오가느라 한 번에 수십 분씩 자리를 비우게 됩니다. 국장 해리슨이 이를 추궁하자 캐서린은 이 건물 어디에도 자신을 위한 화장실은 없다고 항변합니다. 잠자코 듣던 해리슨은 곧 커피포트에 붙은 “유색인용”이라는 스티커를 떼고 화장실의 “유색인 전용” 간판을 때려 부숩니다. 오늘부터 ‘나사’에는 유색인 전용 화장실은 없다고, 누구나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외치면서 말이지요.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 따라서 〈헬프〉와 〈히든 피겨스〉의 그녀들에게 변기는 변혁을 위한 가장 원초적이고 작은 움직임이었습니다. 그것은 통쾌할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술적’이었어요. 저는 지금 〈헬프〉에서 가장 영특한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힐리의 정원에 변기가 잔뜩 널려 있는 모습입니다. 힐리는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와 잔디에 꽂힌 팻말을 붙들고 울부짖는데, 거기에는 “이달의 정원”이라고 쓰여 있어요.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가 〈샘〉(1917)이라는 작품이 되어 현대미술을 개척했듯이, 잭슨 각지에서 힐리 앞으로 ‘기부된’ 변기들은 이제 “이달의 정원”이라는 작품의 오브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일은 지역 저널에서 기자로 일하는 유지니아의 장난이자 복수였어요. 유색인종 돕기 자선단체의 대표인 힐리가 헌옷 기부를 홍보해달라고 독촉하자, 유지니아가 벌인 일이었지요. 기사의 마지막 단어 ‘coat(옷)’를 ‘commode(좌식 변기)’로 바꾸기만 하면 되었더랍니다. 그 와중에 에이블린이 돌보는 꼬마 메이 모블리는 그중 하나에 앉아 세상 만족스러운 응가를 하고 있습니다. 뒤샹도 혹시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여하튼 참으로 예술적이지 아니한가요?
〈히든 피겨스〉에서 화장실 간판을 부순 뒤 해리슨은 이렇게 말했지요. “나사에선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 〈헬프〉의 미니나 유지니아라면 “잭슨에선 모두가 같은 색 똥을 눈다!”라고 했을까요? 지금 여기의 나는,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도 나도 똥 누고 오줌 싸는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똥에도 등급이 있다고 믿는 한 구별 짓기의 마감과 변화에 대해서는 절망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건 자존심도 뭣도 아니겠지요.
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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