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유희적 정치 프레임이 난무하는 사회
유희(遊戱)라는 단어의 의미는 썩 자연스런 상황이거나 점잖은 분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 사전적으로 재미있게 놀다 또는 장난으로 논다는 뜻으로서 의도적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 분야에서 유희를 논한다는 자체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이 주는 의미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음미가 가능하다고 본다.
언어에 있어서나 문장에서는 그 의도성 여부를 불문하고 유희는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마음의 여유를 낳기도 한다. 정치영역에서도 향유(享有)이냐 유희이냐 해석에 있어서 그 기준은 얼마든지 평가가 나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레임은 또 무엇인가. 쉽게 예를 든다면 자동차가 제작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반이 되는 부분이 4개 바퀴의 틀이 된다. 즉 차체가 움직이기 위한 기본 틀이 프레임이 아니던가. 그런데 기계와 같은 물리적 프레임과 문학 또는 정치 언어적 프레임은 또 다른 차원이다.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서 작자나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유자재로 프레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정치적 현안이나 이슈 등에서 언론을 매개체로 이용하다보면 난무하는 유희로 결과 되기도 한다.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하더라도 그 취지나 내용이 공공이익에 기초하거나 장래지향의 비전이라면 나라발전에 기여하고 되고 개인적으로도 명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소위 “아니면 말고” 식의 주의주장들이 공공연하게 매스컴을 타고 국민들의 눈과 귀에 무차별 회자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전국 국민들이 시청하는 국회 회의장에서, 현직 법무부장관에게 대통령과 합석하여 서울 청담동 주점에서 노래를 불렀다며 공개 질문한 사실이 있었으나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 천공 스님이 참여하였다며 주술논란을 벌였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 영부인이 과거 유흥주점에서 근무했었다고 사실처럼 주장하였으나 이 역시 근거가 없다. 이 외에도 괴담과 가짜뉴스들은 수없이 언론 매스컴을 타고 제기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세계잼버리 축제가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개최되었으나 준비부족으로 인하여 나라의 체면이 손상당한 큰 사건도 발생하였는데 이 역시 괴담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회준비 기관인 여성가족부와 대회집행 기관인 전라북도가 서로 책임전가의 양상을 보이면서 떠도는 소문들은 가관이다. 현재의 윤석열 정권을 흠집 내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인 전라북도가 의도적으로 대비를 소홀히 하여 국가적 망신을 획책하였다는 설도 나돌고, 정부가 대회개최에 대한 적극적 대책이 부족하여 집행기관인 전라북도가 행사차질을 빚게 했다는 설 등이 유튜브와 언론 등을 통하여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발설하는 쪽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어 자유롭게 발언하기 때문에 유희가 되고 이를 즐긴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결과가 사회질서를 혼란과 혼탁으로 몰고 간다고 해도 이들은 무책임하다. 따라서 유희적 정치프레임의 양상은 특성상 보수우파 보다는 진보좌파가 더 상위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는 1당 체제로서 프레임 논의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소위 자유민주 국가에서는 자유스런 이념논쟁에 따라 파벌적 프레임을 만들어 향유나 유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느 쪽이 국가관에 더 투철한가, 어느 쪽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더 부합한가 일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국민 개개인의 사적영역이고 가치판단 기준의 성숙도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국민의 의식수준은 현재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것일까. 2,500년 전 공자는 말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따라서 바람이 불면 풀은 쓰러지게 된다고 설파했다. 이를 21세기 한국사회에 적용하다면, 방송 언론이라는 바람이 불면 국민이라는 풀은 맥없이 무너진다 라는 진단도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의 언론 방송이 공기(公器)로서 군자의 덕으로 무장되어 있는가 하는 평가는 좀 더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적어도 군자는 사익보다는 공익에 우선하는 선비정신이 내재되어 있었다. 서구 사회에서 신사도를 기본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는 정신문화와 함께 사회지도층들이 먼저 국익을 위하여 솔선수범하는 전통이 새삼스럽게 클로즈업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