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계를 떼어내며(Trimming the fat)
비계덩어리 같은 인생을 생각한다. 살코기처럼 반듯한 명분과 영광만을 골라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삶은 늘 가장자리의 기름처럼 번들거리며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 기름진 시간들을 나는 한때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타고 남은 것들이 아니라, 타지 않게 지켜준 층이었다는 것을.
나는 한때 어떤 단체에 몸을 담았었다. 이름은 거창했고, 말은 고결했으며, 그들이 내세운 이상은 마치 깨끗이 발라낸 살코기처럼 단정해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속살은 이상하게도 건조했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보다는 체면을 지키는 데 더 바빴다. 겉으로는 정의를 말했으나, 속으로는 이해관계가 미세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점점 숨이 막혀갔다. 말은 높았으나 눈빛은 낮았고, 선언은 화려했으나 침묵은 비겁했다.
결국 나는 떠났다. 비계를 도려내듯, 스스로를 잘라내는 결단이었다. 떠나는 길은 홀가분하기보다 서늘했다. 그동안 내가 믿어온 것들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라, 어쩌면 나 또한 그 위선의 일부였을지 모른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夢中에 대통령의 哭소리를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음은 낮고 깊게 번져나왔다. 그것은 한 개인의 울음이라기보다, 무너진 권위의 속울음 같았고, 감춰진 진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 울음을 듣고서야 알았다. 권위란 결코 단단한 것이 아니며, 가장 높은 자리일수록 가장 깊은 균열을 품고 있다는 것을.
비계는 불 위에 올려지면 먼저 녹는다. 가장 먼저 자신을 내어주며 다른 것들을 살린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내 삶의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단단한 중심에 서지 못했다면, 녹아내리는 가장자리로서라도 진실에 닿을 수 있기를.
비계를 떼어내는 일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위선을 직면하고, 불필요한 보호막을 벗겨내는 통증의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고통 끝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은, 가식이 아닌 체온이다.
비계덩어리 인생이라 불려도 좋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하게 발라진 살코기를 흉내 내지 않겠다. 느끼하고 무겁더라도, 적어도 거짓의 껍질로 굳어버리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울음이 들린다면, 나는 외면하지 않고, 그 소리를 끝까지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톡방을 나왔다 ( I left the group 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