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성지 순례라고 말하는데 그건 매우 잘못 된 겁니다. 성경의 유적을
돌아본다면 좋을 법 한데 꼭 성지순례라고 하니 어감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습니다.
구약이나 예수님의 발자취가 역사적인 가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떠나셨습니다.
예컨대 소아시아 7교회의 터를 돌아보는 것도 성지순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성지 순례는 바로 시48:12절입니다.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편답하고) 그곳을 둘러보고(순행하며) 그 망대들을 세어보라”
이전의 성경의 편답이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진짜 성지순례이죠.
사실 자연이나 인공적으로 세운 환경이나 시설은 일시적으로 잠깐의 유익은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신전처럼 꾸미거나 또는 공원처럼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것은 다 유행처럼
지나가는 풍조일 뿐입니다. 과거 한 때에 미국에 선진교회(?)를 견학하러 간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 덕에 실용주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도입한 변질된 복음과
근사한 교회 건물을 본 떠 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의 건물이 현대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지정한 장소나 건물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7절을 보면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고 하십니다.
이런 광풍노도와 같은 하나님이시지만 자기 백성에게는 금방 얼굴을 바꾸십니다.
9절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이 말은 주의 전에서 그 분의 사랑이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교회라는 건물의 안온함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 곧 진리의 성령 안에서 주의 자비를 느끼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인자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롬11:22) 아직 그들에게 말씀이 비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직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동해보상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느끼는 것이
아들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복입니다.
유대인과 같이 종의 영으로 두려워 벌서듯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다른 점입니다.
10절 이하는 간증과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13절)
따라서 12절의 말씀을 따라 성지순례를 잘 해야 합니다.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고후3:17-18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합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육체에서 해방이 되어 그의 영안에 있음을 알고, 그 영 안에서
아들의 형상을 얻은 다음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가는 성지순례를 항상 해야 합니다.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므로 들은 바 복음의 말씀이 실제로
증험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믿음의 결부(화합)이 일어납니다(히4:2)
8절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셀라)” 그곳은 바로 2절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온 세계가 즐거워합니다. 그곳은 항상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는 곳입니다(시47:6)
그리고 그곳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입니다.
3절 “하나님은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그곳은 피난처이며 바로 견고한 성입니다. 하늘 아래의 땅이 아닙니다.
그곳은 바로 하늘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입니다. 4-5절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열왕들이 치러왔다가
떨림이 그들을 잡으니 그만 꽁무니를 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무기가 없습니다.
경찰 같은 곤봉도 물대포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두려움과 떨림이 가장 큰 무기입니다.
욥4:14절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위력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보좌를 사모하는
백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3절) 이것이 바로 요14:2-3절에서 주께서
말씀하신 처소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하신 바로 그 처소입니다. 이곳은 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장소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의 처소입니다(요14:23)
시온 산은 바로 이 처소입니다. 그 곳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절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받으시리로다”
계14:3절을 보면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습니다(계14:1)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린 양과 함께’ 라는 말씀입니다. 144,000은 숫자보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 그분께서 함께 일으키사 함께 하늘에
앉히신(엡2:6) 자들의 수입니다. 땅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144,000 안에 들려고 하고
증거장막을 땅에 짓는다고 하는 이들은 단언하건데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땅에서 속량함을 받아 그와 함께 해야죠.
신앙생활의 전부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소망(vision)이 생기고,
이 소망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영광을 얻어 하나가 되어 온전해지면 사랑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이 3가지는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은 믿음과
하나님의 형상, 극치에 도전하는 소망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사랑 이 셋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최고의 목표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핵심목표가 시온입니다
그 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우리의 요새가 바로 거깁니다(시48:1-3)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시47:8)
그곳으로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여 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됩니다(시47:9)
히11장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다 이 시온 산을 사모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라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느라”(히11:13-16절)고 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고난 후의 영광을 멀리서 보고 미리 증거하여 그 때를 알고 있었습니다(벧전1:11)
우리는 성령이 임재하셔서 다윗과 같이 그 은혜의 보좌를 바라보고 그 자리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항상 그 길과 진리와 생명을 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회개와 세례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자로
성령의 선물을 받아 진리를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 능히 시온 산을 순례를 하면서
어린 양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그 요새의 망대의 수를 세고 있는 중입니다(시48:12)
첫댓글 아멘.
진정한 성지
시온산을 순례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로 더 가까이...
믿음이 생기면 소망이 생기고
이 소망이 진리로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봄으로 하나가되어
온전해지면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할렐루야!!! 시온산에 이르게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