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의 자랑 녹봉정사(綠峰精舍)
칠곡군 지천면 창평동에 위치한 녹봉정사는 450여 년 전(1561년) 강학당인 성정당(誠正堂) 시습제(時習濟), 양정헌(養正軒), 양호루(養浩樓) 등, 격식을 두루 갖춘 4동의 교육시설과 관물대(觀物臺), 천년지(天撚池) 등을 조성하여 아름다운 주변 풍광과 더불어 빼어난 운치를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서원이였다. 또한 창건 당시 조선 유림을 대표한 퇴계가 방문하여 녹봉정사로 명명(命名)하고 친필현판을 증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서 깊은 칠곡의 자랑 녹봉정사는 한강(정구), 석담(이윤우), 여헌(장현광) 등 영남의 걸출한 문인을 배출했으며 실학학문의 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성주, 칠곡, 선산 유림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중류에 한강(정구)에 의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근간으로 하는 실학의 학맥을 태두시켰다함은 우리 역사의 큰 업적이요, 재조명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은 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낙동강 상류인 경상좌도엔 성리학에서 명분과 체면를 앞세우는 예(禮)를 중시하는 퇴계학맥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낙동강 하류인 경상우도에는 의(義)와 절(節)을 중시하는 남명(조식)의 학맥이 굳건히 자리 잡아 영남 유림의 양대쌍벽을 이루었다. 퇴계, 남명의 양대 쌍벽의 그늘에 가려 낙동강 중류를 배경으로한 실천실학의 선구자인 한강(정구)의 학문적 업적이 빛을 보지 못하다가 최근 영남 중심 인문학자들에 의해 녹봉정사를 바탕으로하는 한강(정구)이 주석한 성주의 회연서원, 칠곡 매원 석담의 강호정사, 인동 여헌의 동락서원 등이 재조명되면서 한강(정구)의 학문적 업적이 활발히 연구됨은 여간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녹봉정사 건립 당시 퇴계의 수제자 금계 황준량과 남명의 수제자 덕계 오건이 성균관 유학을 대표하여 파견된 책임교수로 강의하였으며 특히 금계선생은 성주목사로 부임하여 녹봉과 사제를 털어 정사 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퇴계와 남명의 중심사상은 처(處)를 강조하고, 한 곳에 머물면서 제자를 기르는 도학인재양성을 근본 목적으로 한 학문인데 비하여 한강(정구)은 처(處)보다 출(出)의 움직임을 지향했으며, 나아가 퇴계의 예(禮)와 남명의 의(義)를 다 아우르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실천학문이라는 독특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학문을 이루어 낙동강 중류에 한 학문의 맥으로 우뚝 섰다.
한강의 수제자 석담은 후일 매원에 감호정사로 분가하여 왜관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운수(運輸)를 장악하여 돌밭 나루터를 거점으로 소금과 곡물을 교역하여 튼튼한 경제적 기반위에 경세적 실학 학문을 추구하였기에 문중후손 가운데 열 분 이상이 장원급제에 등과하고 4대한림, 3대 당상관을 배출하는 영남유일의 업적을 남겼다. 실사구시를 중심사상으로 하는 실용학문 경산(京山)지를 한림을 지낸 석담의 아들 낙촌(도장)에서 시작하여 영의정추서를 받은 손자인 문익공(원정)에 의하여 완성하고 지리, 역사, 인물 등을 총망라한 정한강의 창산(昌山)지의 완성은 경산지와 함께 실용적인 학문을 대표하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저(名著)라 하겠다.
최근 칠곡군을 중심으로 한 향토 유림의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전란과 화재로 거의 소실된 녹봉정사를 역사적 기록과 고증에 의하여 많은 문화제 예산을 들여 복원할 계획이라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며 후손들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물려주고 사람답게 사는 인문학의 풍성한 고장을 만들고 가꾸어야 할 우리들의 당면한 큰 과제고 책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