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는 천국복음이 증거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세상을 향한 고린도교회,
교회를 통해 자신의 자아실현을 하려 하는 지성적경건의 갈라디아교회,
이런 교회들로 인해 하나님의 계시로 갓 태어난 소자들이 갈팡질팡한다.
아닌 것 같은데 의가 뭔지 진리가 뭔지 모호한 건 우주공간같이 어둡다.
이 시대는 교회의 총체적인 난국이다. 성경적 교회가 보이지 않는 거다.
2, 뱀처럼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숨기신다(마11:25)
어린아이 곧 거듭난 자들에는 나타내신다. 사실 예수 믿는 불신앙이 더 무섭다.
교리적인 예수, 십자가에 죽은 예수만 알고 예수 동행, 십자가 사랑운운 하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의 언설에 주께서 거듭나게 하신 어린 아이들이라도
휩쓸린다. 부활절이면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처럼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다.
천사들에게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핀잔 듣는다. 예수는
우리 죄를 청산하시기 위해 죽으신 분이며 3일 후에 다시 사신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죽은 예수를 보려
하지 말고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어 살아 있는 믿음이 되라.
3,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함께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마11:28-29절)
사역이 수고와 무거운 짐이다. 사역에 지쳐 안식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본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에 세상의 모든 죄를 지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셨다.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사신 거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이 동선을 따라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주님과
함께 멍에 매는법을 아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 소자일 뿐이다.
4, 만일 누구에게 영접을 받고 용납을 받아야 한다면 그 사람은 장성한 자가
아닌 어린 소자이다.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게 자신의 정체감이면 소자이다.
남에게 섬김과 베품을 받고자 하고 남을 섬기고 베풀지 못하면 소자 그룹이다.
문제는 교회에 이런 소자가 얼마나 많은가? 노회총회도 어린 소자들이 많다.
얼레고 달래야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뉴 사탕 한 알이면 헤헤하는 이들이
과연 지혜롭고 슬기로운 뱀의 입의 독을 이길 수가 있을까? 사람들의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자기 말을 전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리의
말씀으로 소자들을 영접하여 주님이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새 언약의 말씀을 외면하려 한다.
5,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의 용납이나 관용을 바라면 소자이다. 다른 사람의
용서가 필요하면 소자이다. 그렇지만 소자들이 말썽을 부려도 묵묵히 받아
주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멍에 매는법을 배운 주의 제자들이다. 남을 긍휼히
여긴다면 천국시민의 추호윤리를 가진 사람이다. 산 위에 오른 제자들이다.
그러나 산 아래에 수많은 이들은 예수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웅성대는 허다한 무리의 소자들이다. 안타깝게도 나이 들어 늙어가지만 이런
애 늙은이들이 가득하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고 긍휼을 얻고 싶을 뿐 자신은
그런 골칫덩이를 받아 줄 마음이 1도 없다. 긍휼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차돌이다.
6, 문제는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인데 이 믿음이 없어 소자가 되고 소자를
영접해 줄 만한 마음의 여백이 없다.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이 메마르다.
인자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제 삼일에 살아나신다고 하니 제자들이 근심을
하듯 예수를 믿는 자리에서 그분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자신의 자리로
건너오라고 손짓을 해도 육신의 미련이 남아 롯의 처와 같이 뒤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도다리나 광어 눈 같이 한쪽에 몰린다. 에서와 같이 신앙으로
생활유익을 바꾸는 장사를 하려든다. 일하면 응당 수고비를 받는 논리다.
7, 과연 개혁주의자들이 바울서신을 잘 못 해석한 걸까?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칼빈을 제대로 모르고 칼빈주의라 나서고 루터를
제대로 모르고 루터를 비방한다. 그건 칼빈을 따르는 자들이나 루터를
추종하는 자들의 오류일 뿐 그분들은 아니라 본다. 언어의 부적당으로
인해 그들의 뜻이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을 거 같다. 그렇다면 교회는
바울서신에 주력해야 한다. 비방자들은 바울의 기독교라는 말을 하지만
그래도 바울서신이 아니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그의 서신에 의한 구원이 아니면 평생 소자신세로 살다간다.
진리의 성령 안에서 보좌를 바라보는 제자들은 바울처럼 단독작전가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영접해 주지 않아도 진리 위를 묵묵히 걸어간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제가 소자입니다.그래도 진리의 길위에 서 있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서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