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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여 안녕
김 유 택
석양에 하사는 우리들의 병동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연병장 서편으로 지던 낙조의 노을이 유리창에 드리운 커튼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때였다. 요란한 공수부대 마크를 단 얼룩무늬 복장의 하사는 외모와는 달리 몹시 피곤하고 지친 얼굴이었다.
토요일 오후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그때 창문 밖으로 혹은 베란다의 열린 문짝에 기대서서 정신과 병동의 환자들이 연병장을 구보하는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일종의 치료 행위인지는 몰라도 정신과의 군의관들은 환자들에게 매일 거르지 않고 지독한 구보를 시키고 있었다. 통합병원 각 병동에 수용된 환자들 중 유일하게 그들에게만 강요되는 일과였다.
연병장을 뺑뺑 도느라 녹초가 되어버린 그들의 대오는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었다. 무리를 지은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계속된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땅, 황토의 흙먼지는 철책선 저편의 야산 기슭으로 날아갔다. 숨을 헐떡거리며 달리는 환자들의 얼굴은 벌겋게 익은 채 줄줄 흐른 땀으로 번들거렸고 푸른색 환자복의 등짝은 축축하게 철썩 달라붙었다. 세 바퀴, 네 바퀴 연병장을 돌던 흰 고무 신발들은 발바닥의 땀으로 미끈거려 벗겨지곤 하였다. 그리하여 등을 구부리고 땅바닥에 엎어져 자신의 신발을 찾아 헤매는 동료들을 피해 대오는 부딪치고 허물어졌다. 이미 눈동자가 풀린 환자들은 뒤처져 입을 벌리고 걸었다. 그중 하나가 허연 거품을 내뿜으며 폴싹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앰불런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얀 복장의 위생병이 달려 나왔다. 그때 또 한 명이 힘없이 맨땅에 몸을 뉘었다. 마치 모로 세운 종이가 옆으로 쓰러지듯 그 동작은 순간적이었고 소리 없이 이루어졌다.
붉은 노을이 끝나는 사막을 횡단하는 칭기즈 칸의 병사들처럼, 볼가 강에 유배되어 사역하는* 러시아의 죄수들처럼 그들은 묵묵히 또는 비통한 신음을 참아내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행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사는 바로 이때 소리도 없이 우리들의 일반외과 병동에 나타났다. 처음 우리들은 하사가 중환자를 면회 온 것으로 생각하였다. 중환자를 면회 온 사람들은 민간인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요일에 관계없이 병동 내부까지 들어와 환자의 수술 경과를 지켜보고 간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들어온 순간부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병동 입구 5프로 포도당 주사를 꽂고 누워 있는 중환자들의 침상을 둘러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뒹구는 놈들 중 누군가를 붙들고 말을 붙이려는 기색도 없었다. 하사가 선 자리는 지는 해의 잔광이 정면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마치 빛의 포로라도 된 것처럼 그 위치에 붙박여 꿈쩍도 않은 채 붉은 얼굴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 입실해 온 녀석인가. 그러나 그는 달랑 혼자였고 또 빈손이었다. 간혹 통합병원에서 관장하는 인근 부대의 환자들은 개별적인 명령서를 휴대하고 병원의 등록과에 입원 수속을 밟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 전방 부대에 배속되었다가 부상당하고 발병한 축들은 일주일에 한 번 야간의 군용 열차 편에 실려 와 인적도 드문 낯선 도시의 썰렁한 역에 내려 침울하게 줄을 서고 다시 트럭에 실려 병원에 들어서면 각자의 병명에 따라 분류되어 뿔뿔이 각 병동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기록 카드는 회수되는 거였지만 더블백만은 각 병동에 마련된 창고 안에 보관되는 것이었다.
“누구 찾아오셨슈?”
맨 처음 하사에게 말을 붙인 놈은 병명도 좀 복잡한 훈련병이었다. 그는 사회에서 목수 일을 했다. 그의 인상은 병명만큼 독특했다. 뾰족한 머리팍엔 낚싯바늘처럼 오그라 붙은 고수 머리카락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훈련소 시절 햇볕에 탄 얼굴이라면 이제 그만 벗겨질 때가 되었으나 설사 체질 때문인지 그의 면상은 여전히 까무잡잡하였다. 우리들은 저마다 자대에서의 계급을 군번·성명과 함께 종이에 그려 오려 붙인 후 오른쪽 가슴에 달고 다녔는데 그는 빨간 볼펜 글씨로 훈병이라 적어넣었다. 그러나 그를 민영 식 당에 심부름 보내는데 지장이 있자 우리들은 그에게 작대기 한 개로 계급을 바꾸라고 일렀다. 그리하여 그는 줄창 군의관의 야식, 병동 고참들의 은밀한 술심부름, 라면 끓이기 등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빨래도 제때 못 하고 여전히 환자복 바지의 엉덩이 부위에 푸르죽죽한 물기를 묻히고 다녔다. 그의 항문은 기형이었다. 항문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굳은 똥을 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날 평생 설사약으로 살아왔다. 수술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괄약근 때문이었다. 항문을 잘못 손대어 괄약근을 다치고 만다면, 구멍을 넓힌 만큼 오므라들지 않는다면 배설물은 수시로 새고 말 것이었다. 병동의 과장 이하 군의관들은 이 골치 아픈 환자를 제대시켜버리는 편이 모험보담 수월할 터였으나 대학병원의 원로 교수들과 상의해볼 가치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주마다 수술 스케줄에서 밀려나 여전히 훈병인 채로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도 좋은 놈이었다. 어떻게 신체검사에서 그 부근이 발각되지 않았던가. 사회에서도 고치기 힘든 그의 똥구멍을 조만간 국가에서 알아 처리해줄 것이었다.
“누구 안 찾아오셨슈?”
그러나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아까부터 침대 위에 올라앉아 거칠고 뻣뻣한 다리털을 긁으면서 성경을 읽고 있던 김 병장이 침대에서 내려와 끼 어들었다.
“찾는 사람 이름이 누굽니까?”
특유의 바리톤 음성으로 김 병장은 근엄하게 말했다. 그는 여전히 성경책을 들고 있었는데 그가 읽었던 구절은 검지손가락이 끼워져 있었다. 평소 화장실과 식당에 갈 때를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성경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사실 그의 신앙심은 병동 안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인근 사령부의 감찰 참모부에서 근무하다 응급으로 한밤에 실려 와 맹장 수술을 받은 후 그는 병동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두 달이 다 뛰도록 부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보름이면 퇴원할 충수염* 환자가 돌아가기는커녕 이젠 선교의 폭을 확대하여 간호장교들에게까지 은혜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그는 병원의 흰 쌀밥을 두 달가량 축내고 있으면서 세 명의 간호장교를 주님에게 인도했다. 그들은 일과 중 수시로 하나님을 찬미하다가 느닷없이 옆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였다. 예수님을 내 맘속에 주로 영접한 후부터 그렇게 내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니까요. 그녀들은 수시로 그 말을 되뇌었다. 하여튼 김 병장의 배후엔 끗발이 막강한 실력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하사의 입은 열˙러지 않고 있었다. 병동의 실장 강 하사가 나타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강 하사는 빨래를 담은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복도의 군의관실과 스테이션을 지나 병동의 중앙 통로에 이르렀다. 강 하사는 흘낏 실눈을 치켜뜨고 이 낯선 침입자를 일별한* 후 의연하게 그의 침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고안한 침대의 파이프 옷걸이에 눈부실 만큼 하얀 속곳과 여벌의 푸른색 환자복을 정성스럽게 펼쳐 걸었다. 사실 그의 빨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참으로 지극한 바가 있었다. 매일 그는 세면장에서 하이타이 가루를 뿌리고 옷을 주물렀다. 그 옷을 몇 번이나 헹구고 다시 또 하이타이 가루를 뿌린 후 전기곤로의 플러그를 꽂아 삶았다. 600와트 용량이라 전기도 꽤 먹힐 터였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전기는 군대물자였다. 그는 하루 이상 옷을 입눈 법이 없었다. 그는 매일 옷을 갈아입었다. 옷 입기로 말하면 병동 누구도 그를 따르지 못했다. 환자복만 하여도 그랬다. 지급받은 한 벌 외에 병원 구내 세탁소에서 맞춘 여벌이 두 벌이나 있었다. 밤이면 군의관실 당번에게서 빌린 다리미로 잠옷 같은 환자복을 다리는 그의 이마에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군복처럼 풀을 먹여 어깨와 허리며 바지에 주름도 세웠다.
“누구냐구? 그래…… 내가, 누굴까?”
그러나 의외였다. 처음으로 입을 연 하사의 대답치곤 앞뒤가 맞지 않는 어법이었다. 그는 음절 마디마다 간신히 발음하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그 음성은 몹시 가늘고 침침해서 흡사 희박한 공기의 밀폐된 지하실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 같았다.
“뭐라구?”
김 병장의 언성이 높았다. 그제서야 병동의 우리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그곳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저 녀석은 누군가. 빈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낀 강 하사가 그에게 다가섰다.
“너 누구니?”
실눈을 뜨고 강 하사가 물었다. 꼬막 껍질을 엎어놓은 것 같은 눈두덩, 양 볼에 움퍽 튀어나온 광대ㅂ벼, 뿌리가 깊은 여드름을 굳이 짜다가 생긴 보라색의 반점, 그 상판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너가 누구냐고 물었잖어?”
이미 군대 오기 전에 사회에서 태권도 유단자였음을 평소부터 강조해왔던 강 하사가 몹시 비위 상한 표정을 과장하며 재촉했다. 그러나 베레모는 심한 통증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얼굴을 하고 병동 출입구를 기웃거리기만 할 뿐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너가 누구냐고 내가 묻고 있잖아, 이 자식아!”
강 하사의 인내가 드디어 한계에 이르렀는지 돌연 그의 옆구리에 끼여 있던 세숫대야가 이 낯선 정체의 면상으로 날아갔다.
“억!”
흔히 하는 말로 목에다 힘을 준다, 어깨에 힘을 준다 하는 말은 있어도 다리에 힘을 준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강 하사는 달랐다. 그는 평소 다리에 힘을 주었다. 엉덩이 윗살에 양손을 밀착시키고 다리를 약간 벌리고 적당히 배를 내밀었다. 지금 세숫대야를 날렸던 강 하사의 자세가 꼭 그러했다. 그러나 아뿔싸 양은 대야는 그 뒤에 섰던 우람한 체구, 전도사의 얼굴을 어처구니없게도 정통으로 맞히고 말았던 것이었다. 시멘트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뒹구는 소리는 요란하게 병동의 정적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는 병동을 빠져나가 가까이는 정형외과·정신과·신경외과·피부비뇨기과 등 이 층의 복도에 연한 전 병동은 물론 멀리 중환자실까지도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의 같은 순간에 대리석 바닥으로 쿵 하고 엎어지는 둔탁한 음향이 있었고 다시 고통스러운 강 하사의 비명이 길게 뒤를 이었다. 베레모가 슬쩍 고개를 낮추면서 강 하사의 다리를 걷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베레모는 고통스러운 통증을 참아내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 이 돌발적인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얄지 난감한 표정으로 누가 좀 나서서 수습을 해주지 않겠느냐는 듯 우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물론 방법은 있었다. 그때까지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관망해왔거나 혹은 흥미있게 지켜보던 병동의 환자들이 저 새끼 죽여,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벌 떼처럼 몰려와 자근자근 밟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병원 등록과의 행정병과 중환자실의 위생병이 헐레벌떡 우리들의 병동에 뛰어들어 오기까지 우리들은 좀 심했다 할 만큼 병원의 군기를
심어 주었다.
“얌마, 넌 곧장 수술실로 가는 거야, 한참 찾았잖아? 관장을 할 테니까 중환자실에서 대기하랬지 누가 니 발로 이리 오랬어?”
그들이 하사를 부축해 나가면서 말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등록과의 행정병이 한마디를 더 보태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들 했수. 염산을 마셨는데.”
가뭄은 계속되고 있었다. 도시의 수돗물을 끌어다 쓰는 통합병원의 물 사정도 한심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우리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세면장으로 직행하여도 이미 물을 저장해둔 타일 욕조의 수위는 거의 바닥이었고 그 물도 흙과 이물질로 몹시 불결하였다. 게다가 병원 식당에서 얻어 온 더운물을 세숫대야에 붓고 어둠 속에 드문드문 쪼그리고 앉아 항문을 덥히고 있던 치질 환자들의 꼬라지를 볼작시면 이빨 닦을 생각은 영 가시고 마는 것이었다.
과장 이하 담당 군의관들의 회진이 시작되는 아침 여덟 시면 중천에 떠오른 해가 우리들을 폭폭 삶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참선하는 스님처럼 부동자세로 앉아 있으면 등줄기로 송골송골 맺은 땀방울들이 뭉쳐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시간은 바늘이 떨어지더라도 그 소리가 들릴 만큼 엄숙하였다. 담당 군의관들과 간호장교, 위생병 들을 대동한 과장의 그 특이한 구둣발 소리가 자신의 침대 앞에 도달할 때마다 환자들은 계급·성명, 그리고 병명을 우렁차게 복창했다. 예! 일병 아무개 위궤양입니다! 결핵성 임파선 염, 서혜부 탈장, 탈항, 치질, 치루, 치핵, 장 파열, 위 천공, 복막염, 십이지궤양, 참으로 별별 지랄 같은 병명들이 쏟아지곤 하였다. 그중엔 하다못해 고향 땅에 휴가 와서 한밤중 논두렁을 걷다가 독사에 물린 녀석도 있었다.
아침 회진이 끝나면 스테이션의 간호장교가 나누어 주는 약을 타먹고 혹은 상처를 드레싱하고* 자유 시간이었다. 이때부터 5프로 포도당 주사 줄로 매듭을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바둑판을 제작하는 전문가들도 있었고 병동 밖으로 나가 휴게실로 사용되는 강당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입으로 씨부렁대는,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축들도 있었다. 결핵균이 침범하여 철사처럼 가는 몸매가 되어버린 복막염 환자는 수시로 울었다. 신참 환자들이 들어오면 며칠 후 그는 기회를 보아 사진을 내보였다.
“이게 나야. 이쪽은 내 여동생이구. 어때? 그때 나 참 건강했지?”
피골이 상접하고 아프리카 난민처럼 눈이 툭 불거진 그는 도대체 약발이 안 닿는 모양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홀로 사셔, 장사를 하시지. 개고기를 해 오신다고 했는데.”
그러나 우리들은 그 후에도 그의 모친이 면회 온 것을 보지 못했다. 장난이라고 할지, 유희라고 할지 그걸 몹시 즐기는 우 상병 같은 이도 있었다. 그는 어린애처럼 순진스럽다가도 갑자기 침울해지는 성미였다.
“저기 스테이션의 거울이 보이지? 간호장교 권 소위는 항상 벤치 이쯤에서 앉거든. 그러면 내가 이 거울을 그녀의 다리 밑에 넣어둔다 이거야. 거울의 굴절 각도에 따라 그녀의 팬티 색깔은 여기 비치게 된다구. 어때 우리 내기 안 할래? 너 무슨 색 할 거야? 나는 좌우간 먼저 빨간색이니까!”
그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우리들은 소설이 무언지는 몰랐지만 그가 지껄이는 소리는 뭔가 그럴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름이었지. 그래, 그때도 여름이었어. 막사 인근엔 여군 부대가 있었고. 하릴없는 것처럼 마음 편한 것도 없어 그날도 그렇게 여군대의 빨래를 먼발치서 바라보았지. 만국기의 종이 깃발처럼 빨랫줄에 매달린 조그마한 팬티들. 여군들의 팬티. 휴일의 하얀 빨래. 일요일의 막사는 거개가 텅 비어 있거나 아니면 한가한 수면에 젖어서 그냥 거기 있는 것으로만 존재할 뿐. 부대 앞에 도열한 탱크나 수송 자동차 대대의 정비창 앞에서 하늘로 포신을 향한 105밀리 곡사포라든가 그런 것들은 인간들이 그 사이에서 어른거리지 않으면 무슨 거대한 장난감이나 되어 착한 기계처럼 보이거든. 그날 나는 염전처럼 하얗게 마른 모래밭을 하염없이 걸어가다 폐품 야적장의 그늘에 몸을 뉘었어. 찌그러진 드럼통들이며 부러진 각목, 쪼개진 판자들이 거기 있었지. 하늘은 벌겋게 삭아 구멍이 숭숭 뚫린 함석지붕,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데. 사위*의 정적. 시간이 멈추어버린 느낌이었지. 그때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휴일의 장소는 휴일의 막사, 그곳의 울타리라던 생각이 들더라구. 그날 일요일의 고즈넉한 정적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그날 나는 여군대의 담을 넘었지. 어때 지금이라도 여군
과 계약 결혼을 하면 어떨까? 저도 여군, 나도 쫄병!”
그러나 우 상병과는 달리 하루 종일 인상을 쓰고 누워서만 지내는 중사 같은 경우도 있었다. 공군 중사의 침대는 병동의 맨 뒤쪽에 있었다. 그는 병동에서 몇 안 되는 직업군인이었다. 그의 나이는 짐작 할 수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가락까지 전신 화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중사의 곁에서는 지독한 닭똥 냄새가 풍겼다. 매일 거즈를 갈고 붕대를 감아주지만 냄새는 진물이 흘러나오면서 금방 새어 나왔다. 살갗이 돋은 부분을 보면 영락없는 햄 소시지였다. 비닐하우스처럼 씌운 침대 위의 덴트 속에 그는 가슴만 조금 내놓고 종일 누워 지냈다. 몸을 움직이려면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부근의 침대는 항상 신참의 차지였다. 그들은 퇴실하는 환자들의 침대가 빌 때까지 그 냄새를 가까이서 맡아야 했다. 더구나 그의 입심은 사나웠다. 하기야 보통 환자라도 몇 달을 누워 지내면 신경질을 부리게 마련인데 온몸의 껍질을 태워버린 중사가 입만 벌리면 우선 욕부터 시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위생병이 중사의 하반신을 감은 붕대를 풀 때 보았지만 그때 다리에 붙은 살은 포장마차에서 파는 닭다리의 살점보다 더 두껍지는 않았다. 이따금 그는 “씨팔놈들” 하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래서 누군가 곁을 지나다가,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는 대꾸도 않고 강도를 더하여,
“개새끼들!”
하고 욕설을 내뱉은 후 아무것도 볼 것 없는 흰 페인트칠의 천장만 주시했다. 그때 중사의 눈초리엔 이슬 같은 물기가 배어 있었다.
“아니, 왜 그러세요?”.
하고 다시 물으면 기어이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그놈들이 나를 놔두고 바둑 두러 가야만 하니? 안 그래?”
그때까지도 감을 잡지 못해 더 묻는 녀석들도 있었다.
“왜 바둑 두고 싶으세요?”
하고 또다시 묻는 놈이 있으면 중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 렀다.
“내가 지금, 싸구 말았잖아!”
냄새는 중사에게서만 풍기지 않았다. 중사의 바로 옆 침대에서도 땀과 에테르*가 특이하게 배합된 냄새가 지독하였다. 그는 수감자였다. 헌병대 감방에서 응급으로 들어온 놈이었다. 우리들은 그가 나체로 몸을 씻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에게는 헌병이 고정 배치되어 항상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어쩌다 그들은 사이좋게 수갑을 나누어 차고 밥을 먹기도 하였다. 그때 헌병은 오른손으로 밥을 먹었지만 수감자는 왼손으로 국물을 떠먹다 흘리곤 했다.
한편 석양에 나타났다가 우리들에게 자근자근 밟히고 말았던 그 하사는 마치 수수께끼의 인물 같았다. 그는 두 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 어느 날 우리들의 병동에서 꺼져버렸다. 우리들의 이목을 끌었던 그 하사는 끝내 자신이 염산을 마셔버린 사연이나 소감 따위를 피력하고 거론함이 없이 시종 입을 다물고 지냈다. 아니 그는 입을 다물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수시로 구토를 하였다. 이른 새벽, 아침을 먹은 후, 점심때, 저녁나절, 취침 전후 세면장에서 들려오는 하사의 구토 소리는 우리들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토해보았자 나올 것이 없는 구토, 군의관의 지시였다. 세상에 그렇게 기이한 구토도 드물 터였다. 염산을 마시고 식도를 태워버린 후 일차 받은 응급 절개수술은 식도를 임시로 손질하고 위에 구멍을 내어 우선 음식물을 소화할 수 있도록 호스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음식물을 삼켜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다 씹은 음식물을 위로 연결된 호스의 끝에 달린 압착기 대롱 속으로 패맡아야* 했다. 결정적인 맛의 본질을,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그 촉감을 그는 박탈당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침을 삼켜서는 안 되었다. 침은 뱉아야 했다. 그렇다면 타액이나 수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식도는 이옥윽 말라버리거나 좁아질 것이었다. 그 공간이 몹시 좁아지는 식도 협착이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구토를 하였다. 칫솔로 혓바닥을 긁거나 손가락을 집어넣어 좁아지는 공간을 넓히기 위해, 달라붙는 식도의 구멍을 유지하기 위해, 잠자는 식도를 깨우기 위해 그는 구토를 했다.
비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노란 해는 지글지글 꿇었다. 어찌 보면 해는 검은 것도 같았다. 하얗기도 하였다. 눈을 감으면 해는 속으로 들어왔다. 눈 속으로 들어온 해는 검은 물을 토하고 금방 또 허연 빛이 되기도 하였다.
이따금 검회색의 구름들이 연병장 남쪽 하늘로 낮게 몰려올 때도 있었다. 낮게 깔린 구름은 그 속에 거대한 매장량의 비를 간직한 섬처럼 보였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섬. 그러나 구름은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면서 빗방울을 쏟지 않았다. 섬은 가라앉고 다시 푸른 하늘만 떠있었다.
정신과의 구보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 층 창문까지 올라온 개오동나무의 잎사귀들은 더위에 지친 개들의 혓바닥처럼 축 늘어졌고 그 위로는 수북한 먼지가 쌓였다. 바로 그 창틀에 턱을 고이고 있던 훈련병은 소설가 지망생보다 한술 더 떠 그동안 자신이 관찰했던 정신과 병동의 구보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저 생각엔 말여유…… 비가 올 거 같어유. 요 며칠 전부터 정신과 병동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데유, 저, 왜 비가 올라믄 발작헌다고 허지 않유? 그래서 일부러 그 기운을 빼는 거 같유.”
그러면 소설가 지망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비가 온다면 좋은 일이지. 저 친구들이 비를 내리려고 저리 애를 쓰는데…… 그래, 저들은 비를 내리고 있다는 편이 아름답지.”
밤이 되면 사소한 늑막염의 병이 커져 갈비뼈를 잘라내고 그도 부족하여 세 번째 수술에는 갈비에 붙은 살을 굵어냈지만 결핵균은 여전히 살아 싱을 박은 자리에서 고름이 나오는 제대 말년의 병장이 끙끙 신음 소리를 냈다. 환부가 아프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심란한 마음앓이 때문이었다. 그가 군의관실 당번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 일직* 군의관 누구여?”
목 줄기에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몽울이 달려 있었던 결핵성 임파선 염의 환자, 자신의 애비가 사회에서 호텔을 한다는 아주 피부가 하얗고 머리 회전이 빠르며 볼이 쭉 빤 당번은 재깍 말을 받았다.
“왜, 손을 써보려구?”
“그래, 한 번만 더, 원이라도 없게.”
그들은 깊어가는 밤 도란도란 소곤거렸고 잠시 후 당번병은 훈련병을 깨웠다. 부스스 일어난 훈련병은 이윽고 민영 식당에 가서 큰 쟁반에 신문지를 덮어 내용을 알 수 없는 야식을 준비해 왔다. 당번은 그때 군의관실에서 고양이처럼 얼굴을 내밀고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우리들은 침대에 누워 통로의 불빛 속에 보이는 음식물의 내용을 짐작하곤 하였다. 통닭 몇 마리, 캔맥주, 그리고 과일. 그러나 군의관들은 그 음식을 싸그리 먹어치우진 않았다. 그들은 평소 사회의 음식에도 허친거리지* 않았으므로 철조망 영내의 야식을 대강대강 집어 먹었다. 그리하여 음식은 항상 남았다. 그런 까닭에 얍삽한 녀석 당번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큼 빼돌릴 것이고 강 하사를 비롯한 병동의 고참들과 은밀한 소주 파티를 밤 두 시쯤 벌일 터였다. 물론 훈련병에게도 닭 뼈다귀에 붙은 살점 몇 토막이 주어질 것이었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낸 훈병이 잠자리에 들지 않고 모기장 어둠 속의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노예선의 갑판에 앉아 있는 쓸쓸한 흑인을 연상시켰다. 이렇게 훈병 이 잠들고 있지 않을 때에도 병동의 밤은 깊어만 갔다.
무료하고 권태로운 나날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병원에선 사소한 어유로 싸움판이 벌어지곤 하였다. 식당에선 서로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했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식기와 목발을 던지고 후려치는 집단 싸움이 일어났다. 정형외과와 정신과 병동 환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난투극이었다.
우리들의 일반외과 병동 내부에서도 예민한 신경질의 발작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전방에서 온 결임* 환자와 저희 형이 이곳 통합병원의 군의관인 후방의 새까만 졸병 사이에서 일어났다. 전방의 환자는 고참 병장이었고 후방의 졸병은 자신의 배경을 과신하고 있었다. 둘은 모기장 걸이의 쇠토막을 들고 상대방의 머리를 병동의 좁은 침대 사이를 뺑뺑 돌며 후려쳤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쪽은 덩치며 체격이며 얼굴 인상이 우월하고 험악한 전방의 고참이었다. 그는 포도송이를 떼어내지 못하고 그 대신 오직 찢어진 머리통에 반창고를 붙인 채 다시 더블백을 챙겨 원대로 복귀했다. 공교롭게도 졸병도 결임 환자였다. 동병상련이라고 같은 병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가엾이 여기지는 못하고 그들은 이빨을 부득부득 갈면서 헤어졌다.
두 번째의 경우는 도망가는 애인을 쫓아가면서 슬리퍼를 던진 희극이었다. 환자는 십이지궤양 수술을 두 번 하였다. 그는 수술한 지 하루 만에 다시 배를 째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그는 방귀를 뀌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와 약혼녀가 간호를 맡았다. 어머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세 개나 끼고 아들을 면회 왔다. 약혼녀도 미인이었다. 가슴, 허리, 엉덩이, 목, 이마, 눈, 입술, 치아 모두가 우리들의 넋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사흘 동안이나 방귀를 뀌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그를 몹시 부러워하였다. 우리들은 약혼자가 매일 우리와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 녀석이 오래오래 아프기를 바랐다. 정확히 만 사흘째의 시간에 맞추어 환자는 피식하고 가스를 배출했다. 그때 우리들은 그녀가 지르던 탄성을 두고두고 기억했다.
“어머니! 방귀예요! 방귀를 뀌었어요! 방귀!”
그 후 어머니는 면회를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온전히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환자에게 부채를 부치던 그녀와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둘만이 간직한 비밀의 사연 따위를 우리는 알 수 없었으므로 그저 우리들은 저들도 싸울 때가 있구나 하고 적이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환자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우리들의 가슴속에 저마다 애인이 되어버린 그 여자가 신도 채 신지 않고 중앙 통로로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슬리퍼를 손에 쥔 환자가 욕설을 퍼부으면서 그 뒤를 쫓았다. 병동 맨 뒤의 베란다 계단을 그녀는 날쌔게 내려꼿다. 그는 그녀에게 슬리퍼를 던졌다. 남자에게 쫓겨 도망가는 여인처럼 볼품없는 장면도 없는 것이었다. 우리들 모두는 그때 심한 배반감을 느끼고 다시는 녀석을 상대하지 않았다.
노래자랑 대회가 열린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토요일의 회진이 끝나고 병동은 괜스레 들떠 있었다. 강 하사도 그 기분에 도취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슨 시집 인가를 읽고 있던 우 상병의 침대 위로 경쾌하게 뛰어올라 엉덩이를 겉치고 책갈피를 훑어보았다. 『허무집』, 강은교. 그러나 그는 무엇이 허무한 건지, 강은교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고 또 사실 관심도 없었다. 그가 말했다.
“우 상병 노래 잘하지?”
“노래는 무슨 노래?”
“오늘 거 있잖아?”
가끔 강 하사는 소설가 지망생에게 엉뚱한 말을 걸어올 때가 있었다. 자기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써도 되겠느냐, 제대하고 나서 면사무소로 돌아가기는 싫은데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느냐는 둥 상병이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수시로 가지고 왔다.
“잊었구먼? 원래 소설가들은 건망증이 심한 편이지. 어떤 수필집에서 읽었지만서두.”
“나는 아직 소설가는 아니야.”.
“그렇게 말해도 나는 다 알아. 아무튼 오늘 환자 위안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는 날 아닌'" 우리 병동에서도 세 명을 출전시켜야 하는데……”
“환자들 노래시 키는 게 위안일까?”
“적십자 봉사회하구 장교 부인회서 주관하는 행사 아냐?”
“나는 음치여 .”
강 하사는 우 상병이 읽고 있는 시집의 한 구˙절을 멀뚱하게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닫혔던 문이 열리고
못 보던 아이 하나가
길가에 흐린 얼굴로 서 있다.
모를 소리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병동의 입구 쪽 벤치에 간호장교 권 소위가 앉았고 주위에 웅성웅성 모여있다.
“예수를 내 맘속에 주로 영접한 후로 그렇게 내 맘이 평안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니까요.”
전도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권 소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돌연 훈병에게 소리 쳤다.
“너도 믿어라!”
“그래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세요:”
권 소위가 그윽한 눈길로 훈병을 설득했다. 하얀 달걀형의 얼굴에 약간 주걱턱인 권 소위의 시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훈병은 대리석 바닥만 고무 신발로 문질렀다. 그러나 훈병은 전부터 권 소위가 자신의 항문을 보아버린 점에 대하여 수치감과 또 쓸쓸함을 동시에 느껴오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세요, 네? 하는 말을 풀어쓰면 이렇게 되는 것이었다. 설사를 하세요, 네? 설사약을 먹지 마세요, 네?
“하나님도 좋지만 누구 노래할 선수 없나?”
“참, 상품은 뭘 주는데?”
강 하사가 끼어들자 전도사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잠시 후 토요일의 오후 노래자랑 대회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평소 휴게실로 이용되던 강당은 각 병동에서 몰려온 환자들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단상에는 지역사의 군악대가 자리를 잡았고 그 아래 우측의 심사위원석에는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앉았다. 심사위원 뒷줄로 장교 부인회원들이 남편의 계급 순위로 삼십여 명 자리하고 맞은편 벽으로 병원의 기간병들이 2열로 길게 서서 단상을 향했다. 그 기간병들의 옆줄서부터 정신과, 위장내과, 치과와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정형외과, 일반외과, 신경외과 등의 순서로 앉았고 뒷줄로 자가용 마차처럼 침대를 타고 온 환자들이 5프로 포도당을 꽂은 채 역전의 용사나 되는 것처럼 나 좀 봐줘 하고 적당히 아폰 체 몸을 잡으면서 가장 편한 자세로 머리 쪽 침대를 위로 올리고는 선수들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장교 부인회원들의 옷차림은 매우 화사한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들의 옷매무시는 정결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들은 품위 있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가끔 그녀들 중에서 가벼운 탄성이 일어났다. 목발을 짚은 정형외과 선수가 올라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다리는 한쪽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상의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지 않고 장애물을 건너뛰듯 단숨에 훌쩍 날아 눈 깜짝하는 사이 마이크 앞에 서버린 까닭이었다. 목발을 짚고 성한 사람보다 더 가볍게 저리 몸을 놀릴 수가 있을까요. 저 의연한 자세를 보세요. 그러나 왠지 조금은 축축하게 느껴오지 않아요, 사모님? 저 눈 속엔 망각과도 같은 애수가 깃들여 보이죠? 봐요, 저 남쪽 나라 바다 멀리…… 십자성의 별…… 안됐어요, 살결도 희어 보이죠? 아마도 선수들은 장교 부인들이 지금쯤 그렇게 말들을 주고받고 있으리란 착각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들 있는 것 같았다. 맹목적인 충성심은 이러한 기분일 때 발휘되는 법이다. 돈 키호테의 상상력으로 노래를 부르든 말든 좌우간 노래자랑 대회는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거수경례를 붙일 때부터 겉멋을 잔뜩 부리고 있었다. 손등을 기역자로 구부리고 귀에다
뽀짝(바짝), 무슨 소리가 안 들려서 들을 때 취하는 시늉으로 붙이는가 하면 교통정리 하는 헌병처럼 절도 있게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부르르 떠는 손바닥을 한참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구호도 가지가지였다. 단결, 충성, 멸공, 군기, 통일, 격추. 대한민국 전역에서 모인 사병들이었다. 노래 일발 장전, 발사! 노래 일발 불출, 기장! 노래 일발 한 삽, 펴! 노래 일발 시동, 출발! 그래서 나오는 곡조는 「비 내리는 고모령」 「삼팔선의 봄」 「홍도야 울지 마라」 「굳세어라 금순아」 「오빠가 있다」 등이었다. 노래 부르는 목청들도 각각이었다. 음계를 잡지 못해 막판에는 돼야지 멱따는 소리로 절규하듯 노래를 끝맺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은 한결같이 노래를 마치고 나서 심사위원을 흘끔 본 척 했지만 실은 심사위원 줄에 자리한 누님들을 안 본 듯이 보구 나서 단상을 내려왔다. 부인들은 그만큼 환자들의 시선을 받았고 구 사실을 그녀들도 알고 있었다. 시멘트 대리석 바닥에 고무 신발 두 개를 깔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들은 수시로 부인들 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선수들이 웃길 때, 슬픈 가락을 띄울 때 그 기회를 이용해서 웃음이나 자세를 흩뜨리는 동작을 취하면서 그녀들을 안 본 듯이 보는 것이었다. 부인들은 쪼그
리고 앉은 우리들에게 시선을 받았고 그 사실을 그녀들도 느꼈다. 그러나 그녀들은 우아하고 아름답고 자상한 누님처럼 자세를 허물지 않고 오로지 시선을 단상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처음 우리들은 우리들의 눈을 의심했다. 정신과 병동의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환자가 손을 들었던 것이었다. 선수가 단상을 내려가고 사회자가 다음 선수를 호명하려던 참이었다. 사회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적십자회에서 통합병원 근무로 파견을 나온, 육덕* 좋은 삼십 대의 여성으로 평소 그녀는 대한민국 표준말과 병원장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 민간인의 신분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환자들을 어린아이쯤으로 만들고 있었다.
“왜 손을 들었지요?”
환자의 얼굴은 핏기가 없이 창백했다. 몹시 수척한 얼굴은 누구에겐가 쫓기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우거지상이었다. 아니, 저 자식은 바로 염산을 마셨던 하사가 아닌가. 저렇게 변할 수도 있나. 우리들은 아연 긴장한 체 그를 주시했다. 그러나 막상 손을 들고도 하사는 심사위원석을 불안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말해봐요. 왜 손을 들었어요?”
하사는 이제 자신의 주위를 겁먹은 얼굴로 살피고 있었다. 사회자가 순서를 진행치 않고 엉뚱한 정신과 환자와 붙들고 늘어지자 청중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새꺄?”
“뭐 하는 짓거리여?”
성질 급한 욕설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자는 여전히 침착하게 미소를 잃지 않으며 환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아주 가늘고 떠는 소리였다.
“노래를요?”
“네……”
사회자가 다시 확인하듯 되물었고 하사가 국민학생처럼 대답했다.
“그렇지만 명단에 들어 있지 않은데, 어떡하지?”
환자의 쫓기는 눈길이 사회자의 시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부르고 싶어요…….”
핏기 없는 안색, 애원하는 눈길. 하사의 육체는 가느다란 묘목을 연상시켰다. 갑자기 사회자의 가슴에 찡 하고 파문이 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다른 병동의 환자였다면, 장한 체구였다면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정신과의 환자는 몹시도 가느다란 육체였고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결심이 선 듯싶었다. 오늘의 이 노래잔치가 가장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면 이 환자를 노래 부르게 한 것일 거야. 그녀는 괜히 뜨거워오는 눈시울로 심사위원석으로 걸어갔다. 장교 부인들은 자기들 끼리끼리 소곤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고 심사위원들과 사회자는 꽤나 긴 시간을 상의했다. 군의관 심사위원들은 이따금 하사를 돌아보면서 흡사 쓰레기나 병든 짐승을 바라보듯 눈길을 보내왔다.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일순 어수선하던 강당이 조용해졌다.
“여러분 환자 한 분이 꼭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힘찬 박수로 성 원해주세요!”
그녀가 환자의 소속 병동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관객들은 환자가 선 줄을 보고 정신과 소속임을 너나없이 알고 있었다. 하사는 지금까지 등단했던 어느 선수보다 더 큰 박수 세례를 받으면서 단상에 섰다. 우리는 멍한 눈으로 하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군대에선 가끔 엉뚱한 때가 있는 법이다. 방금 전까지 욕설을 뱉어놓고는 다시 박수였다. 그 우습고 엉뚱한 출현을 위한 박수. 사회자는 자신이 올려 보낸 인간 부품을 축축한 눈시울로 성 원하면서 곡목을 소개했다.
“곡명은 「자메이카여 안녕」 !”
군악대가 반주를 시작하자 장난으로 박수를 치던 청중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이상하게 올라온 아이가 선택한 곡명 치고는 그럴듯했기 때문이었다. 「두만강 푸른 물」을 부른다거나, 「불효자는 웁니다」라든가 뭐 그런 국산 노래와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단상에 선 모습은 지금까지 출전했던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씩씩한 기상이라거나, 우람하다거나, 코믹하다거나, 능글맞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 대문 앞에 구걸 온 저 1950년대의 전쟁터 아사리판* 배고픈 거지처럼 진실로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역시 이상한 아이로군. 그런 관심으로 청중들은 노래를 기다렸다. 그러나 반주가 한 소절을 마치도록 그의 입은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인상이 험악하고 후리후리하게 키가 큰 군악대의 고참 병장 지휘자는 뭐 이런 게 있어 하고 곁눈질하면서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는 군악대원을 지휘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는 장교 부인들 앞에서 그의 온갖 절도 있는 솜씨를 드러내 보이려고 매번 선수가 교체될 때마다 장교 부인석을 안 본 듯이 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그의 입은 닫혀 있었다. 이 자식, 너 지금 장난하는 거야? 지휘자는 곧 욕설을 패맡을 것 같은 얼귤을 잔뜩 구기고서도 지휘봉만은 멈추지 않고 흔들고 있었다. 청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뮈 저런 물건이 있어?”
“인물 자랑하러 나왔나?”
“야! 아예 제대하고 불러라!”
야유의 언성이 높아지면서 강당은 다시 술렁였다. 반주는 세 번째로 되돌아왔다. 그때였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굳게 입을 다문 채 우리들을 노려보고 섰던 하사가 마이크를 치켜들었다.
“우리들은…… 우리들은……”
그러나 하사의 목소리는 소음 속에 금방 파묻히고 말았다. 우리들은 하사의 발언에 온천히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다만 우리들은 잠시 후 미친 듯이 웃어젖히며 자신의 옷을 쥐어뜯는 장면을 보았을 따름이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정문 위병초에 백차가 멈춰 섰다. 근처 철책선 근처 배수로를 손보던 기간병이 삽자루를 지팡이 삼아 허리를 펴면서 물끄러미 헌병대의 지프차를 구경하다가 다시 하늘을 올려보고 있는 모습도 창문으로 들어왔다.
강 하사는 그가 고안한 옷걸이에 정성스럽게 빨래를 널고 있었고 김 병장도 침대에 발랑 나자빠져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수감자는 골똘히 무슨 상념에 빠져 있었다. 어젯밤 점호를 취할 때 그는 병동에서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었다. 그는 침대를 박차고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창문 쪽으로 치달았다.
“오메! 비여!”
뒤미처 화들짝 놀라 달려온 헌병이 사정없이 그를 구타했다.
그러나 토도독 마른 땅을 적시는 소리, 그 소리는 영락없이 비가 이 땅에 쏟아지는 소리였다. 침대에 앉아 있던 우리들은 너나없이 병동의 창으로 몰려갔다. 서로 먼저 손을 내밀어 떨어지는 빗방울의 촉감을 확인하고 있을 때 병원의 전 병동에서도 환희의 함성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비가 온다―!”
“비다―”
“비야―! 원 없이 쏟아져라―!”
정말 거짓말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는 소리만이 아니라 냄새로도 오는 것 이었다.
파바바박!
땅이 튀면서 솟은 물의 먼지가 하늘로 올라갔다. 마치 부활하는 대지의 메시지를 하늘에 전하는 것처럼.
정문의 위병소에서 나온 위병 이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아니, 저기, 뒤에 앉은 게 하사 아뉴!?”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훈병이 우리들을 불렀다.
훈병이 손가락질한 백차의 뒷좌석에 하사는 실비를 맞으며 침울하게 앉아 있었다. 위병은 서류를 넘겨주고 다시 위병소 건물로 들어갔다. 차가 다시 시동을 결었다. 그때 하사가 고개를 돌렀다. 그는 하얀 건물들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차가 미끄러지듯 정문을 빠져나갈 때도 그는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저 하사, 무슨 죄 졌을까유?”
훈병이 그렇게 물었으나 거기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강 하사는 빨래를 널고 있었고 김 병장은 입맛을 찍찍 다시며 성경을 넘기고 있었다. 다만 『허무집』이란 시집을 읽던 우 상병이 혼잣말을 흘렀을 따름이었다.
“이 땅엔 세상을 어렵게 살려는 사람들이 꼭 있지·…‥”
하사가 탄 차는 이제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는 다시 거센 바람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는 아카시아의 숲으로 채워졌다.
그때 훈병 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자메이카여 안녕 一
『문예중앙』 (1986년 여름호) ; 『어메이징 그라스』 (문학과지성사 1993)
김유택(金裕澤)
1950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시창작 실습기」 가 당선되어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광주항쟁의 아픈 상처를 이겨내는 겁 많고 섬약하고 자의식이 강한 한 개인의 삶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했다.
소설집 『목부 이야기』 『어메이징 그라스』, 장편소설 『보라색 커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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