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23) 중 「씬짜오, 씬짜오」를 읽고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애쓰지 않아도』, 장편소설 『밝은 밤』이 있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소설을 써 왔다는 평을 받는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물음에 정직하게 마주한 최은영 작가의 질문으로 읽힌다는 설명을 봤다.
독일 플라우엔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곳에 다시 온 지 석 달 만에 식사 초대를 받는다. 엄마는 연습했던 베트남 인사말인 “씬짜오”라고 인사한다. 이 집엔 베트남 사람의 집이기 때문이다. 아빠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호 아저씨’네 집이다. 아저씨의 아들 ‘투이’와 같은 반이 된 것을 알고 가족 초대를 한 것이다.
“투이네 식구 모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던 일, 그 환대에 기뻐하던 엄마의 모습, 어떤 조건도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따뜻한 기분과 우리 두 식구가 같은 공간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던 공기를 기억한다. 어떻게 그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이 호의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고작 한 명의 타인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어른이 된 나로서는 그때의 일들이 기이하게까지 느껴진다.” - p69에서
독일에서의 기억을 묘사하는 작가의 말이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며, 소통과 공감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투이네 가족과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저녁을 먹었다. 투이네 가족도 주인공이 가족도 서로의 가족 이외에는 딱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없었다. 번갈아 집을 오가며 함께 있는 동안, 평소에 늘 소원했으며 말을 섞지 않고 서로 투명 인간 취급하며 지냈던 엄마 아빠도 사이 좋은 척 말을 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무심결에 툭 건드리기도 했다. 서로 미워하는 부모의 모습에 상처가 컷던 주인공은 그런 풍경을 좋았다.
투이네 집에는 제단이 모셔진 서재가 있었는데 주인공은 우연히 그곳에 들어가게 된다. 사진들을 보고 무서움을 느끼는데 그 사람들이 응웬 아줌마의 친척들로 한국 사람한테 죽은 사람들이었다.
소통이 부재한 두 사람. 엄마는 독일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친구 하나 없이 지내며 살다가 응웬 아줌마와 친하게 지낸다. 응웬 아줌마는 엄마의 장점을 늘 칭찬해 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저적 능력으로 이해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주인공도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주인공은 투이와 순수하고 맑은 우정을 쌓아갔다. 함께 밥을 먹고 책도 읽으며 평생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소중한 추억들이 쌓여가는 서사가 참 좋았다.
어느 날, 주인공은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 칭찬받고 싶어서 일본의 식민치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어요.”라는 말을 한다. 투이가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라고 말한다.
엄마는 곧바로 사과하고, 아빠는 자기도 그 전쟁을 통해 형이 죽었고,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며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일로 인해 두 가족은 왕래가 끊기게 된다.
엄마는 귀국하면서 응웬 아줌마네 가족들에게 선물로 목도리, 털모자, 털장갑 세트 세 벌을 선물한다. 응웬 아줌마가 그곳의 겨울을 유난히 추워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가을부터 뜬 목도리였다. 엄마의 선물이 차갑게 얼었던 투이네 가족의 마음을 다 녹일 것만 같았다.
주인공은 세월이 흘러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독일에 간다. 마지막 문장에서 “씬짜오. 씬짜오. 우리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다른 말은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이라고 끝을 맺는다.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씬짜오”는 사뭇 다른 뜻과 정서를 보여준다.
하필이면 독일에서, 하필이면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친구가 되었다가 상처가 드러나고 멀어지는 이야기가 응웬 아줌마로서도 크나큰 보상을 바란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였으면 되었을 텐데 아빠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다시 혹독한 겨울처럼 추운 관계로 끝나고, 어떠한 이별의 말도 없이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의 응어리가 아프게 남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마음 속에 소중한 추억이 되었던 공간과 그곳에 남겨진 사랑스런 아이와 떠다니는 말들은 내 마음에도 잔잔한 울림으로 남았다.
슬픔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행복도 슬픔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최은영 작가의 낮고 담담한 문체,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아서 밑줄이 많이 그어졌다. 전쟁이라는 큰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인 문제처럼 숨겨 놓은 장치 이면에 말하지 않고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사과’를 통해 소통과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첫댓글 “씬짜오”라는 말이 베트남 인사말이란 걸 알았네요.
좋은 작품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작가 소개를 처음에 해 놓고 가운데 부분에 또 해 놓았는데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인지 궁금하네요.
똑같은 글이 두 번 적힌 것을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