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도 잠든 밤, 왼쪽 엄지 발가락이 한숨을 내쉰다..
며칠전부터 엄지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주인님은 병원에 가보지도않고 무좀약만 대충 발라주고 더군다나 술마시는 자리를 거른적도 없다.
이날은 주인님의 술자리가 길어져 엄지발가락이 신호를 보내도 도무지 일어나지 않더니
집에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무좀약도 못바르고 내팽겨져 있었다.
-- 왜 많이 아프니?
역쉬 같은 아픔을 겪어본 적있는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슬그머니 물어본다.
-- 으응.. 너도 피곤할텐데, 왜 안자구...
걱정해주는 동지가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오른쪽 엄지 발가락도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주인님이 컨디션이 안 좋을때면
이러한 증세가 생기는 것이라, 치료한번 제대로 못받은 둘이는 마냥 불안할 뿐이다.
-- 그래도 우리 주인님은 약이라도 발라주잖니, 어떤 애들은 주인이 오히려 짜증부리고 후벼파놓아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고 다른 네식구들(나머지 발가락)이 절뚝이며 고생이 이만저만..
-- 그만해, 나도 떠나버리고 싶어!
-- 쉿! 다른 식구들 깰라!!
오른쪽 엄지 발가락도 알고 있다. 주인한테 보살핌 잘 받아 뽀얗게 매끈한 모습을 자랑하던 다른 엄지발가락들.
그 분홍빛 투명한 발톱이 어찌나 눈부시던지.. 아무리 왼쪽 엄지 발가락을 달래주고 싶어도
그렇다고 때가 낀 것처럼 푸석푸석한 발톱색이 과연 제빛을 찾을 수 있을지도 알수 없다.
둘은 서먹하게 잠시 꼼지락거린다.
왼쪽 엄지 발가락도 다른 식구들이 깰까봐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한층 조용하게
-- 하긴 다른데로 가버리면 난, 엄지발가락이 아닌거지..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힘주어 대답한다.
-- 그럼그럼!
-- 가긴 어딜가 답답하니 해본 소리지, 이런 내심정 다른 식구들이 알기나 할까?
-- 알았으면 좋겠니?
-- ....
왼쪽 엄지 발가락은 주인님께 계속 보살펴 달라고 신호를 보냈건만 번번히 무시당했다.
식구들도 왜 치료받아 오지 않느냐며 그만한 대접도 못받는 엄지를 은근히 무시하는 것 같았다.
-- 내 자신이 불.쌍.해...
한편으로는 식구들이 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또한편으로는 멀쩡하고 꿋꿋한 왼쪽엄지 발가락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아슬아슬하던 균형선이 이밤 무너져내리고 훌쩍훌쩍 들릴락말락 울먹이고 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가까이 다가가 껴안아주고 싶은데도
왼쪽 엄지 발가락의 슬픔이 너무 깊은지라 머뭇거려져 조용하게 귀기울이고 있었다..
(녀석 울음도 시원치 못하게.. 실컷 울어버리지...)
오른쪽 엄지 발가락의 가슴에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다.
주인님의 코고는 소리는 높아만 가고
발톱이 파고드는 통증에 잠 못 이루던 왼쪽 엄지 발가락은
끝내 마음의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울다지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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