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로 만발했던 매화는 언제 그랬는지 자취도 없다.
바야흐로 벚꽃세상이다.
한참을 바라보게 하는 허공에 흩어지는 꽃잎은
꽃잎이 아니라 지난 연인의 웃음이다.
멍하니 바라보는 그 웃음의 여운은 잔인하다.
주말이라고 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게다.
(내게 주말이라는 말은 꼭 2년 동안의 군대생활어였다)
엇저녁에 이끌려 가긴 했지만 몇 년 만에 영화를 한 편 봤다.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영화였다.
왜 그 우울한 삶은 죽지도 않는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슬픔은 잊혀질 영화일 뿐이었겠지만
그런 삶은 아니 우리 삶은 죽지도 않는다.
지독히 '우아한' 삶을 들여다본 뒤끝이 내내 궁상스럽다.
암튼 그렇게 영화를 보고 맥주 꼭 한 잔 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나는 술을 먹으면 이상하게도 새벽에 일어난다.
이것도 병일까. 그렇다고 속이 아프거나 한 것도 아니다.
단지 더 자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는 게 고통이라면 고통이다.
오늘도 간밤의 꼭 한 캔의 맥주 때문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난 아침.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내가 하는 일은 학교가는 일 밖에 없다.
그렇게 너무 이르게 학교에 올라 동료는 한 명도 없는
연구실 베란다에서 커피와 담배로 먼 곳도 가까운 곳도 본다.
유난히 캠퍼스는 북적인다.
젊은이들은 모두 안고 안긴 무리고
꼬맹이가 끼인 무리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다.
모두들 벚꽃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데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외면하고 싶어진다.
오전 내내 고픈 배를 부여잡고 밥을 거부했다.
혼자 식당을 가는 거야 일상이지만
벚꽃길을 통과하기가 두려웠다.
왈칵 울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낭패니까.
담배까지는 결국 참을 수 없는 나.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연구실엔 하나둘 나같은 녀석들이 와 있다.
반가워 웃었지만 그들은 나를 원래 그런 놈쯤으로 알았을까?
지독한 하루였다.
그 하루가 갔다.
울산을 벗어나면서 꾸었던 꿈은 꿈이었을 뿐이다.
이제 이 아름다운 풍경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할텐데...
시험이라고 우리 회원들은 바쁜가보다.
언제부터 시험 기간에 모임 안했느냐고 말하면 후배들은 욕하겠지.
그래서 이렇게 일주일이 주말인 사람이 이렇게라도 모임을 이어가야지.
모두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잃지 않기를..
비 반 꽃 반으로 세상이 어수선해도 마음은 평온하시길...
첫댓글 3.4.5 째줄 표현이 와닿네. 근데 나무 발로 찼삼? 바람불어서 그 정돈 아닐텐데^^;;
힘내요.
"왈칵 울어버리가라도 한다면 낭패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