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술이라고 하면 시원한 맥주, 차가운 보드카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들게 된 이후 술에 얼음을 타서 차갑게 먹는 음주문화는 보편적이 됐다. 뜨거운 칵테일을 내놓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2층의 칵테일바 ‘뭄바’의 박성민씨는 “따뜻한 칵테일은 찬 칵테일에 비하면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음료”라고 말했다. 취하려고 여러 잔 마시는 게 아니라 원기 회복을 위해 한 잔 정도 마시는 칵테일이라는 것이다.
모주
숟가락으로 떠먹는 술이 있다. 전주에서 만든 전통주, 모주이다.
모주는 양조장에서 남은 술지게미를 꽉 짜서 나오는 술과 계피, 생강을 함께 넣어 팔팔 끓여 먹는 달착지근하고 향긋한 전통주다. 걸쭉하고 향이 강하다. 전주 콩나물국밥 집에 가면 연탄불 위에 노란 주전자가 삑삑 소리를 내며 끓고 있다. 계피향이 향긋한 따끈한 모주를 잔에 담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콩나물국밥을 기다리는 것이 전주지방에서 국밥을 먹는 법이다.
모주는 텁텁했던 입맛을 돌아오게 하고, 시원한 콩나물국밥과도 잘 어울린다. 해장술로도 유명하다. 요즘은 생강, 대추 등 각종 한약재를 넣어 만들어 ‘웰빙 약주’라고도 불린다.
뱅 쇼
Vin chaud
감기에 걸리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라는 옛날 어른의 말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우아하게 뱅 쇼(Vin chaud)는 어떨까? 뱅 쇼는 ‘뜨거운 포도주’라는 뜻이다.
냄비에 포도주를 붓고 레몬이나 말린 과일, 계피 등을 취향대로 넣은 후 뭉근한 불로 데운다. 먹다 남은 김 빠진 포도주도 상관없다. 특히 스키장에서 따끈한 뱅 쇼를 음미하면 몸이 훈훈해지면서 피로가 싹 달아난다.
포도주 포털 사이트 포도주21의 최성순 대표는 “브랜디를 넣어 도수를 높일 수도 있고, 오렌지를 넣어 달콤하게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뱅 쇼를 끓이는 동안 집 안 가득 포도주와 계피향이 퍼지면서 기분을 들뜨게 한다. 뱅 쇼에는 꿀과 과일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타민C가 풍부하고 당이 많아 피로 회복에 효과가 있다.
뱅 쇼 한 잔을 마시고 푹 자고 나면 감기 때문에 골골대던 몸이 개운해진다.
사케
쌀을 주원료로 한 일본 정통 청주이다. 원료, 도수, 정미율, 누룩 비율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따뜻하게 데워먹는 사케는 ‘아즈캉(あつ-かん, 熱爛)’이라고 불린다. 호프집에서 치킨을 뜯으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따뜻한 술잔을 들고 운치 있게 사케를 음미하며 눈 내리는 겨울풍경처럼 마음을 정화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신흥대학 최병호 교수(호텔경영학)는 “따뜻하게 데우면 사케의 맛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술을 따뜻하게 하면 천천히 마시게 되고, 적게 마시게 됩니다. 그래서 숙취가 덜하게 되지요. 또 일본음식은 해산물이 많은데, 따뜻한 사케와 잘 어울립니다.”
아이리시 커피
Caife Gaelach
아침마다 커피전문점에 눈도장을 찍는 커피매니아라면 아이리시커피를 음미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아이리시커피는 아일랜드 더블린공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추운 겨울 항공여행에 지친 승객을 위해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위스키를 섞어 제공했다. 후에 아이리시커피의 맛이 입소문을 타고 미국 공항에도 전해지게 됐다. 아이리시커피가 담긴 잔을 보면 너무 예뻐서 계속 쳐다보게 된다. 몽글몽글한 하얀 거품과 함께 유리잔 주위에 묻힌 갈색 설탕이 반짝반짝 빛난다.
아이리시커피는 진한 아메리카노에 위스키와 설탕을 넣고 크림에 거품을 낸 뒤 거품과 함께 천천히 음미한다. 20여종의 위스키 중 패디(Paddy)라는 위스키를 넣을 때 가장 맛이 좋다. 차가운 크림과 따뜻한 커피, 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알코올 향이 어우러져 풍미가 대단하다. 아이리시커피 위에 구름처럼 떠 있는 거품은 아무렇게나 얹어져 있는 것 같지만 작은 스푼으로 크림을 미끄러지게 하여 잔으로 넣어주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핫 버터드럼
Hot Buttered Rum
‘혹시 해리포터에 나오는 버터 맥주 같은 것 없나요? 고소하고 달달한 그런 맥주.’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주류(酒類)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이다. ‘버터맥주’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주인공들이 좋아하는 음료로 설정되어 나오는데,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맥주다. 하지만 실제 그와 가장 흡사한 음료로 ‘핫 버터드 럼’이 있다. 핫 버터드 럼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든 칵테일이다.
럼(rum)과 버터의 농후한 향기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럼 때문에 취기가 살짝 오르며 몸이 나른해진다. 이탈리아인은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럼과 버터 한 조각, 설탕과 레몬을 넣어 마셨다. 뜨거운 물 대신 우유를 넣으면 ‘핫 버터드 럼 카우’라고 부르는데, 한층 더 고소하고 감칠맛이 난다. 알코올의 맛이 강렬할 수도 있는 럼을 좀 더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 뜨거운 위스키, 핫토디
핫 토디
Hot Toddy
프랑스에선 뱅 쇼, 이탈리아에선 핫 버터드 럼을 마신다면 스코틀랜드에선 위스키를 넣은 핫 토디를 마신다.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칵테일이다. 몸살이 있을 때 마시는, 스코틀랜드 민간요법 중 하나다.
위스키에 뜨거운 물과 꿀을 넣고 잘 섞는다. 꿀에 들어있는 풍부한 미네랄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통증이 있는 인후조직에 항균작용을 한다. 코 막힘과 부은 목,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장작불이 타고 있는 숲속 산장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후후 불면서 뜨거운 핫 토디를 마신다면 훈훈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