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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닥이가 귀농에 실패한 것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것이 그 원인의 단초가 되었다.
그 일로 하여금, 그 지역의 도농공동체에 약속된 실무자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성희네 밭 700평을 얻어서 억지로 농사를 지었다. 한 해를 농사지어 순수익은 겨우 30만 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농산물 가치가 그렇다는 거지 팔아서 쓸, 환금성은 한 푼어치도 없었다.
그때부터 귀농의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백연이나, 정경식이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칠닥이는 귀농 자금 1.3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기왕 촌에 사는 거, 소라도 몇 마리 키울 작정이다. 그러나 농협은 그 돈을 1차, 2차로 나누어 주는 바람에 돈의 힘은 분산돼서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이러기도 저러기도 못한 퍽이나 어설픈 상황에서 한 푼, 두 푼 줄어 든다.
그런 중에서도 도로 과부가 된 순창 댁이 칠닥이가 기거하는 농가를 다시 차지하는 바람에 소를 키우려던 계획도 무야, 유야 헛구멍에서 스르르 소멸한다.
목줄이 한창 당겨올 때 백연이의 권유로 격포항에 포장마차를 개업하였다. 다시 500만 원을 농협에서 대출을 낸 것이다.
"정책자금 대출한 것도 1,300만 원이고, 마이너스통장 한도도 300만 원 꽉 찼는데 이제, 신용대출은 어렵겠는데요?"
"하이고, 빈몸으로 귀농해 가 담보가 어데 있겠능교. 그렁게 있으면사 그거 팔아서 쓰제 이렇게 농협에 와 가 징 징 짜능교." 마을에 업무 보러 올 때는 그렇게 친절하던 직원이 대출 상담은 사뭇 냉정한 태도로 한껏 사람을 의심하려 대들었다.
"보증요? 아이, 내가 여 여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땅에 맨몸으로 귀농했는데 누가 보증을 서 준다 말이껴. 내 말이, 여 포장마차라도 열어서 돈을 벌어야, 거 정책자금이고 마이너스통장이고 갚는 기지…. 돈 안 되는 농사 지가 그 돈 못 갚으면 농협은 괜찮을 리 껴? 돈을 빌려주셔야 벌어서 빚을 갚을 거 아이 껴!" 칠닥이의는 귀농한 게 무슨 피해자인 양 대들어서 겨우 농협 직원에게 대출을 받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얻게 된 돈으로 포장마차를 꾸몄다. 기술 좋은 영철이가 나서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재료를 사서 제작하고는 품삯 한 푼을 받지 않았다. 포장마차는 격포항 어판장 주차장의 해안선에 자리를 힘겹게 잡았다. 개업은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개업해서도 만만치 않은 일이 산 넘어 산이었다. 포장마차 간판을 비. 풍. 초.라 정했다. 화투패 비 풍 초를 걸개그림으로 인쇄하여 정면에 나란히 걸어 묶고 안쪽에 페넌트 형으로 작게 만들어 만국기처럼 장식하였다.
"이거 보라이 잉, 오뎅 국물 맛이 요로코롬 해서야 암시런 안 사 먹겠네이 잉" 어판장 동네에서 무슨 사업을 한다는 사내는 매일 칠닥이네 포장마차에 붙어서 음식 맛 타박을 했다. 광주에서 분식집에서 일했다는 중국집에서 배달하는 총각이 떡볶이 조리기술을 조금씩 흘러 주었다. 조리 지도를 하고 나서는 녀석은 시식하면서 전시용 고급재료를 마구 주워 먹었다. 어쨌든 그 바람에 칠닥이의 요리 솜씨도 빠르게 발전하여 영업 전선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눈 많은 고장, 부안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아서야 포장마차 비 풍 초도 완벽한 형세를 갖추었다. 여름 성수기를 기다리며 칠닥이 가정에도 반전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 풍 초가 여름 성수기를 겨냥해서 부지런히 내공을 쌓아 가며 격포 어판장의 노른자 부위에 자리를 굳건히 잡아가고 있는 때를 맞춰서 부안은 핵폐기장사태로 온 군 郡이 소용돌이에 말리기 시작했다. 농민회를 주축으로 해서 핵폐기장 유치 반대 단체가 결성되고 도농공동체인 한울회 생산 농민이 단체를 이끌며 김종규 부안군수와 대립각을 세웠다. 군수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유치 결정으로 부안군민은 노도처럼 일어나서 연일 반대 시위를 했고 경찰의 백골 부대, 수천 명이 진압에 나섰다. 전 국민의 시선이 주목되고 김두관 행자부 장관은 격분에 찬 주민과 직접 대화를 못 하고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자제를 요청하는 방송을 해야만 했다. 위도를 제외한 부안 일부와 변산의 대부분 상인은 영업을 포기하고 핵폐기장유치반대위원회에 합류하여 투쟁에 앞장섰다. 현장에서 칠닥이는 80년대 광주의 5.18 상황을 유추하며 자신이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그 혼란 속에 칠닥이의 포장마차도 접어야만 했다.
<파랑새.>
이른 아침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때,
귓전을 때리는 요란한 새 소리는 파랑새였다.
꿈의 파랑새, 내 저놈을 잡기를 얼마나 염원했던가.
여즉 저놈을 소지하지 못한바, 불혹을 넘긴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험난한 세파에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기도 했드랬다.
오죽하면 죽마고우가
"야~야. 니 매치로 열심히 하고도 디기 안 풀리는 놈은 없을 끼라!"
그랬다. 난, 열심히 할수록 꼬여만 갔고 절박한 징검다리를 넘고 넘어도 끝이 없었다.
이제껏, 내 손아귀에는 꿈과 행운의 새……. 파랑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오늘 필히 저놈을 잡아서 내 몫의 행운을 찾아오리다.
황급히 그놈이 울어대는 감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막 감나무에 오르는 순간, 놈은 푸드득 날아가 버렸다.
꿈과 행운이 날아가는 순간이다.
다행히 놈은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저만치 뒷산에서 또다시 지저귀기 시작하였다.
차림새를 고치고 뒷산으로 향한다.
제발 그 자리에 있거라!
난, 니놈을 잡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팔 부 능선을 오를 즈음 놈은 휑하니 능선을 넘어가 버렸다.
허전하고도 원망스러웠다.
정상을 올라 보니 놈은 아득히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내려왔다.
허벅지가 찢기고 가시넝쿨에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신발 한 짝도 어디서 벗겨졌는지 없다.
절룩거리며 들판을 쫓을 때, 놈은 넓은 종암 호수를 날고 있다. 아! 아~이젠 절망이다.
산도 들판도 아닌, 호수 저쪽으로 사라지는 나의 행복을 그저 바라다볼 뿐이다.
문뜩, 이상의 "날개'가 생각났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다면……. 날개가 절실하다.
겨드랑 밑이 꿈틀거리더니 간지럽기 시작하였다. 날개가 솟은 것이었다.
비록 손바닥만 하기는 하지만, 열심히 날았다.
아직은 내 행복을 잡을 수 있다.
놈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놈은 격포 뜰 위에 있었고 나는 바짝 쫓고 있었다.
파랑새를 막 움켜쥘 듯한 이 순간에 온갖 만감이 교차되고 감격의 눈물까지 흩뿌려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그런데,
파랑새는 갑자기 방향을 해변 쪽으로 바꾸지 않는가. 뭔가 불안해진다.
놈은 채석강 꼭대기에 있는 팔각정을 훌쩍 넘더니 바다 위로 전속력으로 날아가 버린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내 작은 날개로는 바다를 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랑새는 수평선 저쪽으로 아득히 작아져만 간다.
하늘도, 바다도, 땅도 깜깜한 채석강 암벽 위에 나는 서 있다.
채석강 아래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고 바닷바람은 매섭게 몰아쳤다.
운명의 여신은 철저하게도 나를 농락했던 것이다.
차라리 이대로 돌 石이 될 수만 있다면…….
찬바람에 손이 시려왔다. 외투 속으로 손을 밀어 넣는다.
주머니 구석에 뭔가 말랑거리는 감촉이 좋은 생동감이 꿈틀거리고 있다.
"......."
- 오래전부터 놈은 거기에? 나만 몰랐었던가.
환상과 현상이 혼미한, 꿈과 현실 사이에 힘겨웠던 하루였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는 엄청난 이변이 발생하였다.
애당초 선거 판세는 이회창과 이인제의 대결로 이루어 지리라는데 의심하는 이가 없었지만, 민주당, 후보로는 놀랍게도 노무현으로 결정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에까지 당선됨으로써 15대 김대중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 오 년만 참자던 수구 진영의 희망이 여지없이 꺾이는 순간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에는 역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인 현상과 의미가 부여된다.
노무현은 미국에 한 번 가지 않고도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영남 출신의 후보를 호남에서 압도적으로 지지할 만큼 영호남의 벽을 허문 지역 통합적인 정권이 수립된 셈이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전래 속담의 현실화로서 서민,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었다. 군사 독재자와 명망가 중심의 권력자들만을 차지해 온 것을 서민과 청소년들에게 노력하고 올곧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갖게 하였다.
주류에게는 노무현의 등장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비주류의 상징인 노무현이 대권을 거머쥐자 해방 이후 한국을 지배해온 기득권 세력은 이성을 잃었고 굶주린 하이에나 무리처럼 그를 맹렬히 물어뜯었다.
그들은 민의를 마구 억누를 수 있는 폭압의 자유, 가난한 이들을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는 착취의 자유, 파렴치하고도 부도덕한 짓을 해도 비판받지 않을 자유, 대대손손 무위도식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 데 대한 분노를 모두 노무현에게 퍼부었다.
<자라지 않는 양파.>
일 많은 백연이가 늦게야 논을 다려 놓고 양파를 심겠단다. 모심기 전에 양파 한 번 뽑아 먹겠다는 계산이다. 시기가 꽤 늦은 편이다. 그래서겠지만 백연이는 칠닥이더러 제집 양파 심는 날, 만사를 제쳐 놓고 품앗이 와야 한다고 다짐해 둔 터이다.
그러나 추적추적 가을비가 자주 와서는 로터리 친 논을 떡으로 만들어 놓고는 했다. 고슬고슬 논바닥이 다시 마르면 백연이 쏜살같이 트랙터를 몰고는 논바닥을 헤맸다.
“하이고~ 비도 참말로 징 혀!”
“비니루는 낼, 깔면 안 될리껴?”
칠닥이는 당신 필요한 날, 꼭 일을 돕겠노라고 약속하는 한마디를 거든다.
그러나 다음 날 어김없이 비는 왔다.
그러면 또다시 논이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고 맘이 더 급해진 백연이는 논을 다려야 했으며 비는 또 왔다.
하우스에 양파 모는 웃자라서 줄기가 가늘어지면서 키만 훌쩍 커갔다. 시기가 더 늦어지면 양파 농사를 접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백연이가 중대한 작정을 하는 날, 역시 가느나마 비는 여전히 내렸고 동네 사람들이 그네 논바닥으로 다 집결을 했다.만성 천식에 쇳소리 나는 탄식을 하는 그의 노모며, 그 연세 그 또래의 활목댁, 대농가 종암댁, 재천이 어매를 비롯한 할머니들 총집합이요, 백연이처, 정현이 어매나 복연이 아내, 이장댁 형수나, 형석 형님댁 형수든 젊은 아낙네들 몽땅 이요, 칠닥이나 퇴비장에 홍대 등 귀농자에, 용만이 양반과 같이 노인네도 오시고 하여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나 할 것이다.
농땡이 상옥이도 궁금했던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빠끔이 들여다보고 날건달 명주도 새참에 막걸리 한 잔 거들고 갔다. 질퍽한 논바닥에 까만 멀칭비닐이 깔리고 남정네들이 덧 흙을 한 삽씩 퍼서 얹는 게, 물 먹어서 무겁기가 역기 드는 듯하다. 아예 지대가 낮은 물꼬 쪽에는 물 반, 흙 반으로 철퍼덕하면서 내려앉았고 그러면 여자들이 어김없이 쫓아 와서는 양파 모를 꽂았다. 칠닥이는 질퍽한 논바닥에 발이 빠져서는 도무지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강하 아빠는 아그들 핵교 보냈는가? 하이고~ 애통 터져~ 애통 터진당 께~”
어매들이 칠닥이 걱정에 백연이 안타까움에 함께하는 위로를 건넨다.
“꼭, 이차대전 때, 물 찬 참호에서 전쟁하는 독일군의 영화 속 같니더.”
칠닥이는 자신이 살아 온 역경이 그렇지만 갑장인 백연이 조차도 운이 참 안 따른다는 생각을 혼자서 한다. 닭띠는 일 만 저질러 놓지 이루는 게 없다는 소리를, 일을 치를 때마다 주변에서 곧잘 듣고는 했다.
점점 짧아지는 낮 햇살이 기울어지면서 그래도, 그렇게 그 넓은 논바닥이 까만 비닐 위에 새파란 새싹이 일제히 살아 있는 장관을 이루고 말았다.
저마다 덕지덕지 흙덩이를 주렁주렁 달아서는 논두렁에서 주저앉아 삼겹살을 굽는 것으로 그 전쟁은 끝이 났다.
도청들판에 이내 겨울이 닥쳤다.
그런가. 했더니 햇살이 점점 길어지면서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칠닥이는 이런저런, 들판에 나가게 되면 백연이 양파밭을 꼭 들러 보고는 하는데, 이맘때가 되어도 양파가 심은 때나 지금이나 도무지 자라지를 않는 것이다. 양파는 설전에 뒷거름을 주는 거로 아는데 거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백연이가 그 작업을 하는 것도 목격한 바이다. 파종 시기가 너무나 늦었음이라. 동네에서는 백연이 양파 농사를 배려 버렸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쯤이었다. 어떻게 심어 놓은 양파이었던가.
칠닥이는 그해 겨우내 백연이를 몇 번이나 만났는지 모르지만 한 번도 양파 이야기는 꺼낼 수가 없었고 누구도 그것을 화두로 잡는 이를 보지 못했으며 애써 피하고들 하였다.
닥아 온 듯한 봄은 빠르게 여름을 불러왔고 여기저기 모내기가 시작되어 들판은 분주하고 바빠졌다. 여전히 백연이 논에는 자라지 않는 양파가 버티고 있었다.
칠닥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식전에 농지 시찰을 나가다가 흠칫 하고야 만다. 밤새 백연이가 양파 논에 물을 대고는 로터리를 쳐 놓은 것이다. 드넓은 물논에 채 자라다 만 양파가 허옇게 둥둥 떠다녔다. 작게는 메추리알만 것에서 기껏, 큰 것이 달걀만 할 뿐이었다.
양파를 포기하고 벼농사를 결심한 백연이의 심정이 울컥 칠닥이의 콧날을 시큼하게 밀어붙이는 순간이다. 칠닥이는 그제야 자신의 눈시울이 젖어 있음을 느낀다.
변산면 소재지를 지나, 보다 항구가 가까운 금구원조각공원이 있는 골짜기에는 소격마을과 도청리, 이렇게 두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소격포에 비해 도청마을은 좀 더 사람 왕래가 잦다. 김명수 이장의 부인이 주인인 농업용 하우스를 개조한 막걸릿집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옆 마을에 사람들도 빈번히 찾았다. 술과 안줏값이 싸기 때문이다. 동네 주점을 독점해 오던 이장 사모님에게 어느 날 강력한 경쟁자가 생겨 버렸다.
<병준이 각시.>
그저, 통속적으로 계산해 보자면 병준이는 얼른 각시가 붙지 않을, 여러모로 지닌 형편이 탐탁지 않은 그런 위인이다.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데다 사십을 이미 넘어선 나이라던가, 사는 집도 제집이 아니라 도시로 떠난 제 형의 소유이다. 촌에서 흔해 빠진 농사 거리조차 없어서 전주나, 광주로 해서 도시를 맴돌며 막노동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그러다 지치면 마을에 들어와 한참을 쉬었다가, 어느새 또 떠나고 없는 것이다.
하루는 비어 있다시피 하던 동네 구판장이 분주해지더니 내부를 수리하며 식당 겸 슈퍼로 꾸며지고 있더란 말이지. 이 전에는 구판장 주인 할머니가, 칙칙하니 막걸리나 라면, 새우깡 따위나 팔던 곳이 화려한 벽지가 발라지고 번들거리는 식탁도 몇 개 들이는가 하면, 한쪽 구석으로는 꾸며진 작은 마루방도 생겨나 언뜻 보자면 색시가 있는 유흥 집 같은 느낌도 들더라는 이야기다. 이미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총각 병준이가 객지를 떠돌다가는 젊고 곱살한 각시를 어디선가 얻어 왔는데, 그 각시가 구판장을 인수해서는 식료나 일용잡화 같은 것을 팔면서 주막 장사도 한다고 하더란 말이다. 그 각시에게는 그런 것은 이미 경험이 있는 일인 듯 보였다. 동네 꼬맹이 과자 나부랭이부터 아낙네들의 식용유 간장, 라면 화장지 등등의 일용품은 물론이거니와 일철에는 새참으로 쓸 변산 탁주까지 얼렁뚱땅 준비해 내는 행동이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재빠르게 일을 치러 낸다. 끼리끼리 놉을 맺어 하루 일을 마친 농군들의 저녁 회포 푸는 자리에서도 간단히는 조갯국에 매운 고추 풀어 넣은 것이 나오는가 하면 돼지족 무침이나 심지어 옻을 넣은 닭백숙까지 못 만들어 내는 것이 없다. 마치 읍내 여느 음식점 못잖은 여러 구색이 갖추어서는 다 나왔다. 또한, 그 여러 음식값도 비싼 게 하나 없는 어디 시내 나가서 먹는 데에 비해 그저 절반 정도 좀 넘는 데에 그친다. 그러하니 동네 남정네들이야 싼 맛에 입을 다양하게 호강시키는 새로운 분위기가 구판장으로 하여금, 동네에 형성되었다.
"구판장에 가서 한잔할 꺼나?" 어느새 동에 사람들 사이에는 일상적으로 건네는 말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오래지 않아서 입소문도 번져서는 이 동네고 저 동네나, 먼 동네인 격포고 원포며 사방팔방에 뱃사람들까지 와서는 술 회포도 풀고 윷 놀음도 하고 그런다.
단장한 지 얼마 안 되는 구판장은 날로 번창해 가는 것이, 저러다가 병준네는 금방 부자가 될 듯하였다. 사실, 격포야 명색이 관광지라, 어디서 간단히 한잔하더라도 적잖은 게 꼭 바가지 쓰이는 느낌이 드는 것이 이쪽 사람들의 속으로 삭이는 드러내지 않는 정서였다. 이장댁 부인이 하는 동네 한복판에다 비닐하우스를 친 포장마차는 위기로 몰릴 지경이다.
그런데,
그렇게 맡은 구판장에서 각시가 장사 잘하고 그러면 즐거워해야 할 병준이 표정이 그렇지만은 못하게도 날로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부부가 티격태격하기까지 하더란다.
병준이 생각에는 장사가 급격히 잘 되는 것이 아무래도 각시의 용모가 촌스럽지 않은 데다가 범상치 않은 수단에 이놈 저놈들이 막연한, 어떤 기대를 품고 드나드는 듯하고 젊고 늙고 간에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들이 똬리를 친 뱀 같아서들 영 언짢았다.
심지어는 똥오줌도 못 가린다는 노인네 종규 양반조차도 막걸리 한 병을 탁자에 턱 하니 바쳐 놓고는 그것을 아깝다는 듯이 홀짝거리며 각시의 치마 섶에서 맴돌며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않는 모양새이고 보니, 심사가 하루하루 틀어져 가기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동네에서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못 말리는 망나니, 영수는 차라리 구판장에 각시가 자기 애인이라며 웃통을 훌렁 벗고는 수시로 유리창을 깨지를 않나, 그릇을 던지고 땡깡을 부리기도 하고 도무지 안심이 안 된다. 이러다가는 어렵사리 얻어 놓은 각시가 동네 각시가 될 판이다. 그러던 와중에도 칠닥이 친구 영철이조차 각시가 참 귀엽게 생겼다며 여간 좋아하질 않는다. 본디, 영철이의 단골집인 유동 삼거리의 길가의 점포인, 성진 네 구멍가게에서 먹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앉아서는 안주 없이 깡 소주를, 그것도 종이컵에 한 잔 가득 부어 마시는, 술 습관이 그러하였었다. 칠닥이 동네에는 딱히 볼 일이 없는 영철이가 병준이 각시, 장사를 시작하고부터는 무슨 핑계로 삼아 그네 동네로 술 거래처를 확실히 옮겨 버렸다. 그 바람에 칠닥은 예의 영철이 술버릇인 큰 잔으로 안주 없이 단숨에 삼키고 하는 상대를 자주 하느라 술 실력이 날로 늘어만 갔다.
"있는 가아? 워찌…. 구판장에서 한잔할 꺼나?"
영철이가 불러내면 둘이서 구판장으로 가고는 한다. 그는 올 때마다 오토바이 뒤에 무엇이든 꼬깃꼬깃 매달 고는 왔다.
"전어하고 소라 좀 갔고 왔시라우~" 하며 각시에게 건넨다거나,
"오다가 애호박 몇 개 따 왔서라 우."
슬그머니 내놓고는 하여 미리 각시의 인심을 얻어 놓는다.
영철이가 황급히 불러서 칠닥이가 제집으로 쫓아 가 보면 밭에서 금방 딴 수박을 큰 바구니에 실어주면서 병준이 각시 갖다주라고 하는 어쭙잖은 심부름까지 시키곤 하였다.
"여름에 구판장 손님들 안주로 말임 시, 얼른 쓰기에는 좋을 거야!"
제 여동생 장사 챙기듯 하는 영철이는 오토바이 짐칸에 얹어 주는 바구니 꼭대기에 별 볼품 없는 칠닥이 몫을 두어 개 더 얹어 주는 건 잊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심부름하기를, 파지 난 마늘, 쫄뚜기양파나 양배추에, 고구마 찌시래기 등등 한여름 내내에 가을까지 이어졌다. 그의 처가 철마다 생산되는 채소로 김치라도 맛 깔 나게 담으면 남편 친구인 칠닥이에게 특별히 큰 통으로 하나 따로 준비한다.
" 가실 때, 이 김치통 가져가시라우~ 강하네 꺼 따로 담았응께~" 할라치면,
"여보 소! 도청에 작은 각시 꺼도 한 통 더 담으소!" 하면서 영철이는 시커멓게 잘생긴 큰 눈을 끔벅이며 태연스레 내뱉는다.
"헛따~ 그 넘의 작은 각시가 울메나 이쁜지 내가 한 번 가서 봐야겠어~ 이…."
그의 처는 또 다른 통에다 김치를 꾸억꾸억 눌러 담으며 더 이상의 질투나 시비가 없는 것이 영철이의 처 또한 마치 친정 식구에게 무엇을 싸서 보내는 형상이다.
영철이네 부부는 내외간에 스스럼이 없는 정서가 있었다.
영철이가 자신의 집에는 성당에 교인들이 예배 보러 왔다며, 믿지 않는 자기는 칠닥이네 집에서 신도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와 있었다.
"은순 아빠~ 예배는 끝났고, 영자가 당신 보고 싶다네. 어여 와서 만나 보시게~"
그의 처가 부르러 오니 영철이는 히죽거리며 따라나섰다.
그의 처 은순 엄마 친구 중에 특별히 영철이를 마음에 있어 하는 아낙이 있는데, 온 김에 부탁해서 영철이 얼굴을 꼭 보고는 간다는 것이다.
"뭣이라…. 그저 얼굴 한 번 본다는 것이제, 딴 거야 뭣이 있겠는가…?"
당연한 듯한 영철이에 비해,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은순 엄마의 처신은 차라리 그녀가 남동생 챙기는 영철이의 누나로 보였다.
하이고, 저러다 저 엉큼한 녀석이 그 여인의 젖꼭지라도 만지작거리고, 사리마다 안쪽의 어두운 곳도 보여 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영철이나, 또는 뭇 사내들과 마찬가지로 칠닥이도 점차 그녀가 좋아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각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 먹었으라 우?" , "암시렁 않다니 께~", "산내에 간당 께~" 뭐 이런 그저 일상적인 말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좀, 사회적으로 됨직한 말이 통하는 구석이 그 각시에게는 있더란 것이었다. 놀랍게도 구판장 각시는 여러 분야에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가한 시간의 구판장이다.
영철이와 함께 한 자리에서 병준이 각시와 칠닥이, 둘이서 대충 그쪽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영어를 배워 본 적이 없어서는 "M, R, I 사진" 발음이 되질 않아 "에밀레 사진"하던 어둔한 영철이는 돌아앉아 콧방귀를 뀌거나, 엉뚱한 화제를 몰고 와서 대화의 맥을 끊어 훼방을 놓곤 하였다.
"아따~ 뭔 소리데? 격포 앞바다에서는 지금, 전어가 쏟아진다는 디~ 무신 문화는 문화고 교육은 교육이당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귀농 교육을 같이 받았던 허영자 씨 부부가 찾아오게 되면 칠닥이는 주로 구판장으로 모시게 된다. 각시를 좋아하기로는 그들 부부조차도 마찬가지이다. 각시가 늘 책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 괜찮아 보였고, 또 문학을 하고 싶다며 노트에 뭔가를 끌쩍거리는 모습을 애처롭고도 이쁘게 생각하였다. 그들 부부는 다음 방문 때는 필기할 수 있는 노트와 연필을 사다 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병준이 각시를 좋아하는 그녀의 팬은 주변에서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구판장도 온전히 가게 한 칸이던 것이 발전하여 앞마당에 차양도 처지고 술 회사에서 제공되는 파라솔도 설치되고 하는 날로 번창하였다.
칠닥이가 늦은 저녁에 구판장에 뭘 사러 갔다가 흠칫했던 것은, 탁자에 웅크린 병준이 혼자서 어두운 표정으로 소주를 마시고 있어서였다. 한동안 객지를 떠도는가 했던 그를 갑자기 봐서이기도 하지만 순간적으로 며칠 전에 영철이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네! 말 임세, 도청마을에 소문 아는가…? 음, 병준이 각시의 애인이 사방에 수두룩한데 첫째가 배 공장에 곽 사장이고, 둘째가 영수. 그다음이 나랴~ 그리고 자네는……. 일곱 번짼가~ 여덟 번짼가 한디야…."
"뭐? 나도 거기에 끼였어? 푸~하하!! 영광이네 영광이여~ 그 많은 애인 중에 나를 빠트리지 않아서."
"아, 이 사람아, 웃을 일만은 아니랑 께~우리는 병준이 돌아오면 맞아 죽게 생겼네~나는, 세 번째로 죽고 자네는 여덟 번째로 죽는단 말임시~"
소문은 뻔할 일이다.
술만 마시면 속옷에 똥을 지리곤 하여 마누라는 물론이거니와 동네에서조차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종규 영감의 짓이다.
"우리 영감 술, 주지 말어 이~ 징그럽당 께~ 똥 찌리고…." 그의 아내가 늘 병준이 각시에게 술 팔지 말라고 언질을 주어 다짐을 받아 놓는 터이다.
영감은 젊은 사람 술자리에 꼭 끼여서는 벌벌 떠는 손을 내밀면서
"요기에도 한 잔 부어 보드라고~" 하면서 빈 사발을 들이댄다. 술 마시던 젊은이들도 타박을 주기도 하지만, 각시가 손님 보기에 민망하니깐, 잔소리하여 쫓겨내기가 일쑤인데, 그 서러웠던 질투의 화풀이로 지어낸 말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당시에는 동네에서 구판장 각시가 처신이 조신하지 못하다는 말이 좀 돌기는 하였으나 이내 잠잠해지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재미있어 호기롭게 웃었지만, 막상 병준이를 마주치니 칠닥이 기분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취기가 있는 병준이는 볼일 보고 가려는 그를 불러 세워 굳이 술잔을 권했고 그는 알 수 없는 위압과 긴장감으로 병준이의 맞은편에 앉아야 했다.
병준이는 자기가 광주에 나가서 철근 노가다한지가 벌써 오래됐다는 것과 하루 일당이 12만 원인데 한 달에 스무날만 일하더라도 200만 원이 넘어가니 적잖이 괜찮은 노동임을 강조하였다. 농사보다야 훨씬 나은 일이라 굳이 농사하려 않는다는 것과 형도 생각이 있거들랑 자신이 십장에게 얘기는 해 주겠노라고……. 자신의 위치가 그 바닥에서는 웬만함을 힘주어 주절대는 것이 일종의 칠닥이에 대한 과시인 셈이다.
병준이는 바짝 마른 몸매에 머리통에 살점이라고는 붙어 있는 곳이 없어 턱뼈가 유난히 불거져 보이는데, 그의 목줄기가 하도 가늘어서 그 작은 머리통조차도 무거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센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힘없어 보이는 모가지가 마른 나뭇가지 부러질듯해서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형편없는 위인 앞에서 웬일인지 칠닥이는 선생님 앞에 어린 학생처럼 잔뜩 위축되어서는 침 튀기는 그의 말씀에 경청은 물론이고, 탄성까지 지르며 다소 과장 된 표정으로 위대한 병준이를 칭찬에 칭송을 거듭하고 있어야 했다. 술 바람에 새는 그의 말씀이 적당히 맥이 끊어질 즈음에, 칠닥이는 그 훌륭한 노가다에 은혜를 입어 동참하고 싶으나 딸린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니 객지로 나다니는 일은 할 수 없음을 정중히 설명 올리고야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이튿날, 구판장 주변에 병준이 모습이 보이지 않음은 그가 새벽 일찍 광주로 막노동 일을 떠났음이라….
그리곤 꼭 잊을 만할 때, 하루 저녁 반짝, 그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주로 객지 생활을 하는 병준이는 한 공사가 끝나고 다음 공사 들어가지 전 막간에 하루 이틀 다녀가는데, 그가 떠난 뒤로는 구판장이 더 활기를 띠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어두웠던 병준이 표정이 밝아져서 떠나고는 하는 모습을 보고는 병준이 각시의 알 수 없는 깊고도 넓어 짐작이 어려운 어떤 저력이 있어 보였다.
햇볕이 쨍 한 어느 날이다.
구판장의 높지 않은 담장 너머에 화사한 옷 썰 미가 얼핏 하였다. 누구인가? 궁금한 김에 심삼아 막걸리 사려 구판장에 들려본다. 병준이 각시가 수돗가에 배추를 헹구는 과년한 처자를 가리키면서 하는 말인, 즉.
"우리 딸이라 요~ 이쁘죠?" 하질 않는가……?
그냥 보기에는 막내쯤 되는 동생이던가? 아니 조카이려니 싶었다.
그리고는 각시의 그 딸이 돌아가고 얼마 후에, 딸에 대한 내막을 직접 그녀에게서 듣게 되었다. 각시가 아직은 철이 없는 어린 청춘일 때 유원지에 놀러 갔다가 초면의 남정네로부터 사고로 잉태한 씨앗이 그 딸년이라 하였다. 아니길 바랐지만, 날이 갈수록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 올라왔고 황당해하는 각시의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친구, 친척 등 주변에서들 찢어 없앨 것을 강력히 회유했지만, 당시엔 무슨 오기인지 모르게도 모든 강압을 마다하고는 살아 있는 자기의 피붙이가 강하게 확인하고 싶었단다. 결국에는 기어코 핏덩이를 낳고야 말았는데, 어린 생명을 부여안고서 역시, 어린 어미는 조선천지 사방팔방을 헤매며 안 가 본 곳이 없고 안 해 본 것 없이 산 넘고 강 건너 홀로 키워온 딸년이 이제는, 익산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하며 당당히 말하고 있는 거다. 그 순간, 칠닥이의 콧등이 시큰했다.
아, 아~ 그랬었구나…….
칠닥이는 자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면서 엄마, 엄마! 하면서 연신 제 어미를 부르며 각시의 일을 돕던 홀쭉하게 키 큰 그녀의 딸애 모습이 어른거려 상념에 잠기게 된다.
생긴 씨앗도 딸린 애가 여럿이거나 유희로 잘못 들어섰다면 사람이 다 되어도 수술해 찢어버리는 게 세상인심인데 더구나 사고로 원치 않는 씨앗이라면 가차 없이 지워버려 버리지 않고, 그녀는 왜 그토록 핏덩어리를 버리지 못하고서 가시밭을 헤매는 고생을 샀을까?
모성애일까……? 모성애라....
병준이가 낮 선 각시를 대려고 올 때만 하더라도 세상 살기가 힘든 과수댁이려니 하고 다들 동네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처녀가 아닌 처녀로서 잘난 위인 병준이에게 스스로 몸값을 낮추었으랴 하는 생각이 들자 더욱 그녀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니 그녀가 동네로 오고 나서 그녀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이 사뭇 속 깊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다.
부랑아 영수와 칠닥이의 첫인사를 튼 것도 구판장에서였는데 대낮인 당시에 벌겋게 술이 오른 그는 엊저녁을 구판장 각시와 함께 잤다며 허스레를 떨었지만, 각시는 묵묵히 용수의 탁자 위에 팔 한쪽을 들어 흘린 막걸리를 대꾸 없이 닦아 낼 뿐이다.
어머니가 지니는 대범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항상 젊은이에게 밀린다고 못마땅해 헛소문을 내기까지 하던 종규 영감도 막걸리 몇 잔에 목을 축였나 싶으면 똥 싸게 된다며 추슬러 집으로 돌려보낼 때도 영감을 철부지 아이를 다루는 어머니 모습이었다. 영철이가 찌끄래기 농산물이라도 모아서 보내는 것도 어쩌면 고생하는 안쓰러운, 각시가 아닌 어머님을 향한 측은지심 어린 일종의 효심과 같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행동과 입이 험한 뱃사람들이 구판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윷 놀음을 벌리고 떠들고 춤추고 하는 것은 어머니 앞에서 보이는 유희와 재롱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수가 아무 남자들에게나 친절하다는 이유로 구판장 유리문을 박살 내고 집기를 부실 때도 각시는 눈 하나 꿈쩍도 안 하고 오히려 과감히 꾸짖고 대드는 모습 또한, 엄숙한 어머니의 형상이었다. 영수는 그 대담함에 움찔거리곤 했었다. 한 번은 영수의 아내가 대체 둘 사이가 어떤 사이냐고 전화가 왔었는데 그때도 각시는 그저 동네 아저씨로 생각한다며 차근차근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도 며느리 앞에서의 자상한 시어머니가 훈시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칠닥이가 옆에서 목격하기란 경이롭다고 할 광경이다.
대체, 많지도 않은 그녀의 나이에서 그만한 배짱과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친구에게 공기총을 발사해서 옥살이까지 할 정도로 성질 사나운 복연이도 구판장에 각시가 잘 잘못을 짚어 줄 때는 눈만 끔벅거리고 듣기만 해서 신기했었다. 그녀에서는 어떤 웅장한 힘을 내재 있는 듯하였다.
정월 보름이고, 백중날에 구판장에서 온 동네잔치가 열리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많은 동네 사람들 대접하는 그녀의 행동거지나 일 치르는 모습 또한, 대갓집의 맏며느리 그 모습이었다.
헛소문이라 하더라도, 허접한 소리를 이미 들음 직한 떠돌이 병준이가 칠닥이에게 뭔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던 그가, 두말없이 다음날 건설 현장으로 말없이 되돌아간 것은 푸근한 어머님 품에서 하룻밤의 안위와 안심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망나니 영수나, 영철이, 멀고 가까운 포구마다 뱃사람들이나 종규 영감은 물론이고 다혈질 복연이, 엄포쟁이 기성이나 구판장을 드나드는 모든 남정네, 이 모두는 오래전에 어머니 뱃속에서 떠나 험난한 풍랑의 바다에서나, 손해만 반복되는 힘겨운 농사에서나 혹은 노가다판에서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세파에 시달리다 못해 귀향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자궁으로 되돌아가고 안기고 싶었을 것이다. 아득한,
그곳으로…….
칠닥이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지 못한 귀농생활에서 애 키우면서 서서히 지쳐 가는 중에 잠시, 그녀의 품 한구석에서 한숨을 돌려보고 싶었을 게다.
아련한 심정으로…….
-어쩌면 칠닥이는 그녀에게 사실보다도 다소 과도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민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심한 상업주의 메마른 세태에 살면서 그녀가 좀 사실 그대로이기보다도 더 좋게 생각된다 해도 괜찮을 일이다.-
변산의 유기농 생산단체인 "한울 공동체"의 실무자로 내정되어 빈몸으로 귀농한 칠닥이에게 숨도 돌릴 틈도 없이 닥친 위기는, 그가 음주운전 혐의로 면허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고정수입이 보장된 자리는 물거품이 되었다. 고민 중에 세운 계획이 한우 사육이었다. 송아지 몇 마리 들여서 그놈들이 성우가 될 때까지 품도 팔면서 어떻게 먹고 살다 보면 큰 소가 된 송아지는 꼭, 지 닮은 새끼를 낳을 테다. 그러면서 또 어떻게, 어떻게 버텨 나가면 그 송아지가 제 엄마만큼 커서 또다시 지닮은 송아지를 낳지 않겠는가? 그런데 처음들인 소는 그러는 사이에 일 년에 한 번씩 두 번의 후손을 생산하는 중이다. 결산은 몇 년 사이에 송아지 한 마리가 소 다섯 마리가 된 셈이다. 시작을 한 마리가 아닌 서너 마리쯤으로 했다면 칠닥이는 소 부자가 되고야 말 터이다. 그러나 한우 입식 자금으로 대출받은 천삼백 만원은 목돈으로 한꺼번에 받지 못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가한 과부, 순창 댁이 도로 과부가 되어 칠닥이의 생활 근거지를 주인으로서 몰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출금 1,300만 원은 생활비와 새 터전으로 이전하는 비용으로 쓰여 고스란히 빛이 되었다. 두 번째 위기를 맞은 것이고 고민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궁전횟집 알지라아? 그 사장이 구 년 전에 격포항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했어라. 아"
이백연은 안타까운 칠닥이에게 농사보다 장사를 권한다.
포장마차 비. 풍. 초가 격포항 어판장 주차장의 바닷물이 일렁대고 등대가 직선으로 보이며 부두노조 크레인이 있는 노른자 장소를 점유하기에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만큼이나 비 풍 초의 성공은 절실했다.
<신 대수 노인.>
노인 신 대수는 평생을 바다에서 살았다.
반 톤의 통통배가 그를 평생 먹여 살렸다. 지금에 와서야 한 층 노인네가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내가 포구에 있는 회 센터의 가게 한 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도 다 커서 아들은 짝을 묶어 주고 딸은 여의고 해서 그네들로부터 이제는 되돌려 받을 일만 남은 데다가, 바다에서 그저 잡히는 데로 건져다가 그의 아내에게 넘기면 그것을 총총히 회 쳐서 팔아오는 값이 공판장에 경매를 부치는 것보다야 곱절은 벌어서 온다.
노인 신 대수는 요즘에 와서 젊은 어부들이 못내 걱정스럽다.
대게는 객지에서 흘러들어 왔거나 토박이라 하더라도 도시 생활에서 실패나 염증을 느끼고서는 해 본 건더기라고 다시 부여잡은 경우이다. 신 대수 노인처럼 평생을 어부로 늙어 가는 경우는 격포 바닥에도 그리 흔치는 않다.
젊은이들은 시작부터가 웅장하다. 서로가 톤수를 경쟁하듯이 규모를 늘려서 갔고 해상레이다에 어군 탐지기 등 값비싼 장비들이 날로 새로워져서는 노인으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평생을 고기 낚아도 노인의 배는 목선에서 FRP 선체로, 디젤엔진에서 일제 선외기로 바뀐 거 외에는 늘 그 규모였다. 그것으로 넓은 서해 앞바다를 한 이랑, 한 이랑 밭 갈 듯이 여러 남매를 공부시켜 독립시켰으며 노부부가 여생을 보낼 새집을 지었다. 어촌계에서 포구에 회 센터를 건립하고 가게를 분양할 때, 그제사 한 칸 맡은 것조차가 품 팔러 다니는 그의 아내의 작은 욕심일 뿐이었다.
포구에 가득한 일렁거리는 신식 어선들의 대부분, 주인은 사실상 농협이나 수협 또는 축협 같은 금융기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로들 이중으로 삼중으로 보증서고 얽히고, 설키면서 대출에 대출, 그 자본들이 온 포구에 일렁거리고 있다. 빛을 제하면 죄다 거지라는 것이다. 비단, 어선뿐 아니라 300명 홀을 갖춘 대형 횟집이나 식당, 궁궐 같은 모텔이나, 화려한 유흥업소 등 대부분이 외지인이나 자본가에 의하여 장악된 상태이고 지역민은 그 밑에서 품이나 파는, 엄밀히 말하자면 머슴 사는 셈이다.
신 대수 노인에게 작지만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여유와 의젓함을 읽는다.
물때에 맞춰서 바다에서 돌아온 노인은 어획물을 아내의 가게에 넘겨주면 곧바로 포장마차 (비. 풍. 초)로 온다. 맥주 컵에 소주를 한잔하고는 어묵이나 떡볶이 몇 점을 안 주로 한다. 그도 아니면 비풍초 주인은 노인에게 봉지 커피를 대접하고는 한다.
화투패 비(雨), 풍(楓), 초(草)의 현수막이 나부끼는 걸 재미있어하고 멀리 경상도에서 농사하러 왔다가 포장마차까지 하게 된 연유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늘 온화한 표정의 노인은 바쁘거나 서두르는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바다에서의 수확이 적다고 아쉬워하거나 많았다고 특별히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날씨가 맑으면 자주 바다에 나가서 수입을 더 하고 날씨가 험하면 그래서 쉴 수 있는 시간으로 마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노인의 부인 횟집 어항에 고기를 채우고 남는 것이 있으면 깨끗이 칼질하고 장만하여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서 가져온다. 요리하는 방법을 소상히 일러 주고는 시 티 100 빨간색,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는 돌아간다. 아마 내일 물때를 기다려 그동안 휴식할 것이다.
바다의 노인은 곱게도 늙어 가고 있구나.
어부, 신 대수와 같은 형상으로 농사를 하였으면 좋겠다.
노인이 고기를 낚으며 늙듯이 한이랑 두 이랑, 농사지으며 곱게 늙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 대수 노인은 여름 한 철 장사가 괜찮다며 부디 포장마차가 성업하여 자립의 기반을 잡으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나, 그해 여름이 오기도 전에 격포항은 <부안 핵 폐기 반대 운동>으로 큰 혼란에 빠져들었고 포장마차는 방치되고 녹슬어, 아무도 없는 야밤에 황망히 철거하였다. 그 후, 사방으로 막노동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신 대수와 같은 소박한 꿈을 뒤로한 채 경기도 안산에서 마을버스 운전수가 되고 말았다.)
<정미소 윤 사장.>
칠닥이가 몇 며칠을 객지로 떠돌다가 고속도로 부안 진입로로 들어서면서 다소 긴장감과 함께 민망함을 느끼는 것은 터미널 매표소에서부터 경찰의 삼엄한 검문과 도로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많은 전경의 검은 제복의 무리 때문이다.
부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국이 주목하는 속에서 핵폐기장 반대 시위를 하는 중이고 칠닥이는 그 와중에서 타지에서 한 떼기의 막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신태인 나들목에서 부안까지의 도로나 소재지 또는 부락마다 황색의 현수막이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시내에 들어서면 그 정도가 한층 더 할 뿐 아니라 멀리 어디선지 웅 웅 거리는 앰프에는 핵 반대 격려방송이나 운동가나 행진곡 같은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관공서나 공공의 건물 입구에는 조를 짠 방패든 전경들의 도열과 군데군데 정차된 닭장차의 공포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가슴을 눌렀다. 이제 동네에 다 달아 청년들을 만나게 되면 함께 하지 못한 죗값에 민망스러울 따름이다. 고속도로를 나오면서 곧장 황색 깃발을 화물차 꽁무니에 매어 달고는 난리 통의 부안 시내를 가로질러 여전히 분위기가 연속되는 해변 도로를 달려 동네 어귀에 들어섰을 때, 낯익은 화물차, 그보다 더 낯익은 운전자는 영철이 조카 정기였다.
"정기! 니 정미소 다니냐?"
그 화물차는 김 공장과 정미소를 하는 격포의 덕섭이 양반네 소유로 칠닥이가 제 작년에 김 공장 일을 해 봤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예……. 헤헤"
"그래? 음…. 얼마나 받고?"
"몰라요. 그냥 해 달라고 해서~ 헤 헤"
"정미소, 한 해 가을 일 하믄 한 오백 된다카던데?"
"글쎄요…. 헤 헤"
아무리 심각한 물음을 하여도 그저 새근거리며 웃는 것이 정기 특유의 버릇이다. 그러는 정기를 그의 삼촌 영철이는 똑 부러지지 않는 답답한 녀석이라고 하곤 그랬다.
"새끼야~ 나도, 일 좀 할 수 없냐?"
"아저씨가요…?"
"아저씨는~ 새끼가 형아 보고…."
"헤 헤 말해 볼까요? 안 그래도 마침, 철수 아저씨가 치질로 병원에 입원했거든요……."
"치질? 거~ 잘됐네."
이튿날 새벽에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 저쪽에서 모기만 한 속삭임이 들린다.
정미소 윤 사장이었다. 칠닥이가 김 공장에서도 일해 봤지만, 윤 사장은 언제나 입안에 물고 우물우물 작은 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귀를 세워서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를 오랫동안 겪어 본 사람은 숫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입 모양을 보고 의사를 해독하고는 할 정도였다. 군의원인 그가 군 회의에서 발언하는 풍경을 연상해 보면 여간 재미있지가 않다.
"뭐 하는가?"
"예. 그저 추수 끝나고 노가다 좀 하다가……."
"좀 도와주게. 얼마나 받을라는 고?"
"아이고~ 얼마는 요 정미소 일 안 해 봐서, 어르신네가 알아서…."
칠닥는 그 길로 차 바닥이 뚫어져 도로 사정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화물차를 몰아서 격포 정미소로 내 달았다. 일금 오백만 원이 손에 잡히는 듯하였다.
익히 들어서 잘 안다.
정미소라는 게 시골 토박이 누구도 덤벼들지 않는 일이 험한 곳이다.
색시 같은 정기가 일하고 있기에 덜컥 자원했지만 거리가 짧은 출근길은 두려움으로 한 편 후회스럽다.
속이 깊은 모자에 수건 목도리, 두꺼운 양말과 긴 장화, 코팅 목장갑과 또 하나의 예비 장갑, 먼지가 스미지 않도록 아래, 윗도리…….
여러 번 정미소에서 방아는 찧으러 와 봤지만, 막상 직원으로 채용되어 보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며시 정기에게 물었다.
"새끼야~ 뭘 해야 하냐?"
"알아서 하세요."
"알아서? 어떻게~?"
"눈치껏 요!"
"눈치껏…??"
사실은 눈치껏 할 필요도 없었다. 이내, 부르는 데로 쫓아가기도 몸이 모자란다.
"어~이! 저 나락 내려야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못마땅한가? 윤 사장의 지시가 시작된다.
"저, 화물차 꺼요?"
"아~ 그럼, 방아 찧으러 온 놈, 안 내릴치여?"
<제기~ 누가 안 내린다 했나…?>
엉겁결에 나락 한 가마를 들쳐 메고는 정미소 안으로 들어서니 어디다 내려야 하는지 미처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낑낑대며 안쪽의 정기가 일하는 곳으로 가서는,
"정기야 이거 어디다 부려야 하냐?"
"왜, 이까지 메고 오세요? 입구의 흡입구에 쌓으세요."
이런~…. 다시, 정미소 입구의 흡입구 앞에 딱! 하니 메다 꼬운다.
한 포대, 두 포대…….
실금, 실금~ 목에 낀 먼지를 가래침으로 뱉어내면서 그저 할 만할 즈음에,
"이 사람아! 쌀 안 받을 겨?"
"쌀 요?"
"그려, 쌀! 저기 꽉 찼잖아!"
농사지으며 정미한 경험이 있어 다 찧은 쌀을 받아 본 경험은 있는지라 배기구에 쌀을 부대에 받아 꼬투리를 단단히 묶고는 나락을 싣고 온 화물차에 실었다.
이제, 일이 늘어난 것이다.
칠닥이의 몫은 나락을 붓고 나락이 쌀이 되면 나락을 싣고 온 화물차에 쌀을 실어주는 일이다. 금세 정미소 일의 한 공정을 가뿐히 익힌 것이다.
방아를 찧을 농민들의 나락 가마는 꾸역꾸역 끝없이 밀려들었고 정미소에는 나와 정기 그리고 윤 사장이 일한다. 윤 사장은 지역에 내로라하는 유지로서 군의원을 지냈다. 오랫동안 정미 사업과 해태사업을 하는데, 가을에 정미소 일이 끝나면,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김 가공에 들어간다.
칠닥이가 시골로 오던 첫해 겨울에, 그동안 격포에 가서 회도 사 주고 하며 친절을 베풀던 옆집 성희가 김 공장 취직을 권해서 윤 사장 공장에서 얼마큼 일 한 적이 있다. 김 공장은 윤 사장의 형수뻘인 젊은 할머니가 사무실을 지키며 경리를 보았고 24시간 근무하는 기술자가 둘, 김을 실어다 나르는 운전기사는 하 기사, 김을 받아 내어 포장하는 아줌마 두 팀이 하루 삼 교대로 돌아가고 성희와 칠닥이가 잡부 역으로 교대를 하는 것이다. 칠닥이는 오전 8시에 출근하여 밤 12시까지 18시간을 일하고 성희가 이어서 다음 날 아침까지 8시간을 야간 근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그는 성희가 야간 일을 하니 그보다 일 시간이 짧은가 하고 말았는데, 그 바닥에 잡부들이란 어느 공장이나 12시간을 맞교대하는 게 통례였으나 실상을 잘 모르는 칠닥이를 상대로 성희는 임의로 제 맘대로 시간을 정했고 공장에 경리 할머니나 기사, 아줌마 어느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하여 귀띔해 주지 않았다.
그 일을 두고 용석이는 그랬다.
"아~ 세상에 돌려먹을 게 없어서 시간을 돌려먹어? 어이구, 성희야~ 성희야~"
성희는 어디서나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망나니 같은 인물이다. 제 어머니에게조차도…….
그런 연유로 해서 윤 사장과 칠닥은 낯설지 아니하였고 그 양반의 성품을 대충은 꿰고 있었다. 중얼중얼 혼잣말로 흘러 버리는 말 같아도 그것이 지시 사항인 만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잘 들리지 않으면 쳐다보아 입 모양을 지켜보고는 내용을 짐작하고 잽싸게 움직여야 불호령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욕 문화가 익어 있는 곳이라 까딱하면 씨 팔 좃 팔 하지만 윤 사장은 뒤끝이 없다. 때로 온화함에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김 공장이나 정미소나 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신병 훈련소의 각개전투와 같았지만 칠닥에게는 덧붙여지는 압박은 기계 조작에 대한 스트레스였다.
김 공장에서도 추위와 오랜 노동시간보다도 더 괴로운 일은 그가 손만 대면 고장 나는 기계들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두려워해야만 했다.
그런, 징크스는 여기 정미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꽈대기를 하고 깔때기에 돌아와 보니 하얗게 쌀이 쏟아져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아~ 씨발 뭘 한 거야?" 윤 사장의 욕설이 터졌다. 어찌해야 할지 당황 중에 정기는 오삽을 가져와서는 흩어진 쌀을 떠서는 흡입구로 갖다 부었다.
<음~ 처음의 공정으로 되돌아가서는 다시 찧게 되는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실수에 대하여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이제는 쌀부대를 멜 때마다 새로 받아둔 부대가 넘어가지 않는가를 확인해야 하고 그보다도 쌀부대를 고정할 때 넘어가지 않도록 안정을 시켜야 한다.
매사는 그렇게 신경 써야만 하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쌀을 받고 그것을 필요한 곳에 꽈대기 하는 일이 익숙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쌀은 또 쏟아졌다. 깔때기 밑에 흩어진 쌀은 멍석을 펴놓은 것처럼 넓었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쌀부대는 맥없는 모습으로 조롱하는 표정이었다. 나락 주인은 혀를 차고 있고…….
윤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 깔때기 밑에 쌀부대를 고정하는 방법을 시범 보였다. 쌀이 담기고 난 후 부대 아가리를 잡고는 좌우로 흔들어 아래 면을 넓게 하여 약간 경사지게 기대어 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쌀이 왜 엎어지겠느냐가 윤 사장의 타박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방법대로 이미 하고 있었다.
윤 사장의 지시로 하우스에 보관된 나락을 실으러 갔다. 나락은 까맣게 재어져 있었다.
"그래도 아저씨는 힘든 거 다 지난 다음에 오신 거예요. 이 나락을 나와 철수 아저씨, 둘이서 집 집마다 실어다 나른 거예요!" 정기는 다소 우쭐대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야이~ 새끼야 철수보고는 아저씨라 하고 나보고는 <형아> 라고 불러라."
"<형아>요? 헤 헤…."
정기의 웃는 모습은 마치 소녀 같아서 그나마 시름이 가신다. 녀석의 작은 아버지가 칠닥이 친구 영철이니, 조카뻘이지만 난, 늘 <형아>를 강조하여 나중에야 형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바닥에 쌀부대를 둘이서 마주 잡고는 반동을 주어서, 들어 올리는 순간에 한쪽 어깨를 약간 낮추어 밀어 대면 부대는 아래 면이 어깨에, 중간 부분이 머리에 떡 하니 밀착되어야 무게의 균형이 맞아서 무겁지 않은데 그 부분이 조금이라도 틀어 지면은 나락의 하중이 여지없이 어깨며 허리로 내려앉게 되는 것이다. 칠닥이로서는 나락 메는 방법은 첫해 가을부터 콤바인 따라다니면서 익힌 것이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문제는 콤바인 부대에 담긴 것보다는 80킬로 나락 부대의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균형 잡아매기만 하면 콤바인 부대이건, 나락 부대이건 거의 무게를 못 느낄 정도로 발걸음이 가볍지만 익숙지가 않은 80킬로짜리는 열 번을 메어 한 두 번이나 제대로 맬까 도무지 적응되지를 않는다. 더구나 노인네들이 부대 값 아낀다고 손톱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팽팽하게 다져 넣은 부대는 손을 잡을 아귀마저 틈이 없어서 마치 거대한 축구공을 들쳐 메는 것 같았다. 억지로 손톱을 세워서 아귀다툼하다 보니 어깨, 허리, 손이나 종아리 하며 고통이 스미지 않는 곳이 없고 땀은 비 오듯이 얼굴에서 안경을 타고 흘러 앞조차도 혼미하였다. 목구멍에 가래가 끓고 끌어서 입술 주위로 번졌고 그것들을 혀로 핥아서 멀리 뱉어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
"야~ 참, 존나게 힘들다! 그치?"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한숨 쉬는 정기는 조용한 어투로 말한다.
"야~이 새끼야! 욕하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너도 한번 해 봐라. 응?"
"욕하면 안 되지요~오"
정기는 강 건너 일인 듯 무심하게 대꾸한다. 칠닥이는 그러는 정기가 귀엽기도 하였고 재미있기도 하여 수시로 농을 걸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배실 배실 웃기를 잘한다.
가끔씩 벌어지는 일은,
칠닥이가 만지는 쌀부대는 깔때기 밑에서 다이빙하는 일이다.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작업을 하여도 결과는 반드시 같지만은 않았다.
서울, 도봉동에서 우유배달 할 때가 생각이 난다.
오토바이에 잔뜩 우유를 싣고 배달할 집 앞에 가서는 핸들을 한쪽으로 돌려 기역자로 균형을 잡고 지팡이 같은 쇠막대로 지지를 하면 오토바이는 넘어가지 않는 법인데 칠닥이의 오토바이는 넘어갔다. 우유를 넣고 돌아와 보면 바닥에 대자로 퍼져서는 하얀 우유를 아스팔트에 패대기를 쳐 놓고는 하였다. 하도 잘 넘어가서 흔들어 보고는 안심하여 갔다 오면 마치 조롱하듯이 사고를 치고는 하였다. 동료들은 그렇게 하는데, 왜 넘어가느냐고 모르는 소리를 하고는 했던…….
이 기이한 현상은 매몰찬 운명의 여신이 아직도 그에게 연정을 거두지 않은 탓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빙하의 공화국에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늘 그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다.
운명의 여신인 것을.
변산반도에서조차 운명의 여신에게 여지없이 농락당하고 또 당하고 하던 칠닥이에게 전라도에서 생활하면서 매력적인 것 하나가 몸으로 배는 것이 있었다. 욕설이었다.
남도 사람들의 일상 언어에 걸쭉하게 반죽이 되어있는 욕 문화.
"씨~이 벌!"
"조~오~또."
"씨발, 좃도!"
그네들의 정감 어린 다양한 욕설이 하나하나 칠닥이의 입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19쪽, 274매.
(현대사- 노무현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