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대
주위 큰 돌을 둥글게 쌓아 올려 한길 넘는 높이다. 큰 소나무가 가장자리에 자라나 높다랗게 커서 고목으로 섰다. 옆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따라가 펑퍼져 앉으면 반반한 바닥 돌이 시원하다. 소나무 그늘이 일품이다. 한여름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앞 논의 벼 자라는 것을 내려보면 제일 아래 우리 집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옆 걸이네 집과 태원이, 그 위 언덕 밤나무 밑에 선정이, 그 옆 성진이, 학순이, 저 위 대나무 숲 집이 끝이다. 다닥다닥 붙지 않고 띄엄띄엄 늘어선 초가집이 좀 어색해 보인다. 그래도 칼국수 하는 저녁나절은 구수한 밀가루 냄새가 솔가지 담을 한 바로 옆 걸이 집이어서 날아 들어온다. 떨어진 태원의 혹부리 아버지는 목소리가 커서 작은 동산 아래 여기까지 들린다.
밤알이 떨어질 때는 새벽에 올라가 한 바퀴 돌면 아래위 주머니마다 가득 철철 넘쳐난다. 그러다 앞가슴에 넣어 배와 옆구리가 불룩불룩하다. 주인인 서리 아주머니가 올라와 학순네 집에 머물며 저쪽에서 소리치며 쫓아온다. 얼른 집으로 들어오곤 하는데 안 보일 땐 다시 올라가 돌멩이를 던져 잘 익은 것을 맞춰 떨어뜨린다. 하도 많이 해서 매번 정확히 맞아 우수수 떨어진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거리를 하면서 보름쯤 뜸했다. 수십 그루 그 무서운 밤나무 주인이 찾아와 어머니와 얘길 나눈다. “댁의 아들이 요즘 안 보여요. 공부하느라 그런가. 참 착해졌어요.” 그 뒤부턴 여동생들과 경란이가 세간살이 소꿉장난하는 이곳 사오대에 함께 놀면서 걸이와 선정이, 학순이를 불러 진탕 놀았다. 아랜 넓은 바위가 여러 개 포개져 있다.
그곳에서도 나뒹굴었다. 앞 작은 못 둘레에 높다란 나무가 여러 그루 그늘을 만들어 휘파람새가 울고 바람 불 땐 닿아 부딪는 소리가 난다. 가끔 뜸북뜸북 하고 고요한 들판과 마을을 일깨워주는 뜸부기 소리가 들려온다. 숨바꼭질도 하며 그러다 앞 내성천 봇물에 들어가 풍덩풍덩 멱을 감고 천엽도 해댄다. 겨울엔 건넛마을 불기 아이들도 몰려나와 도끼로 얼음을 깨 타고 다닌다. 마른 나무를 모아 불을 지펴 젖은 옷과 손발을 말리고 쬐며 덜덜 떨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는데 어언 수십 년이 지났다. 팔순이 다 돼 어떤가 싶어 그곳을 찾아갔다. 예바위를 지나 불기 가운데를 터덜터덜 걸어서 덕고개 가는 다리를 건너내려 송장기로 들어섰다. 마당에 감나무가 우뚝하고 뒤꼍엔 대나무가 가득한 집은 문이 닫힌 채 비어있다. 그 밑에 상동에서 이곳으로 이사와 곁방살이하던 성진의 집은 뜯겨 밭이 됐다. 학순이와 선정의 집은 아직 남아 누군가 사는 것 같다.
꽤 큰 ㄱ자 태원이 집과 걸이 집은 오래도록 비워졌는가 무너져내려 지붕이 일그러져 있다. 내가 살던 산 아래 집은 흔적도 없다. 풀만 무성하게 자라 여기 내 살던 집터 맞나 싶다. 학교 다니던 논두렁길은 차도로 바뀌었다. 길 아래 샘물은 매워져 어디쯤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사오대와 못은 그대로다.
반가워서 가까이 다가갔다. 전엔 보이지 않던 글자가 사각 벽바위에 새겨졌다. 여태껏 사오대라 불렀는데 사우대(四友臺)이다. 예전에 이 고을 선비 넷이서 모여 놀던 곳이란다. 위에 올라 어릴 때 지났던 걸 생각해 본다. 그때 소나무가 아직 그대로다. 고목이었는데 지금도 대 위 넓적 바위에 엉덩이를 붙인 채 꼿꼿하다.
뿌리는 가운데로 내렸어도 태풍 거센 바람을 어찌 감당하고 지났을까 걱정이다. 쓰러지거나 엎어지지 않고 견뎌낸 게 신기하다. 선비들이 시 짓고 읊을 때는 연못에 물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메우지 않고 있다. 석재로 쓰기 위해 건넛산 아래 예바위 윗돌이며 우리 논 큰 바위는 벌써 어디론가 다 가져갔다.
아래 너럭바위는 그대로 남은 걸 보니 관청에서 지켜준 것으로 여겨진다. 옆에 무덤이 있는 걸 보니 개인이 사들인 땅인가 보다. 바로 바위 옆에다 큼직한 비석을 세워 봉분 두 개 무덤이 써졌다. 안으로 저적저적 걸어서 살던 집에 이르렀다. 풀이 길길이 우거졌다. 뱀 밟을까 두렵다. 길도 없고 들어서니 집터가 손바닥만 하다.
방 둘에 부엌과 외양간도 있었으며 마당에선 타작도 했다. 그런데 왜 이리 작아졌나. 걸핏하면 무너지던 담벼락은 넝쿨이 뒷간 가던 길까지 뒤덮어 버렸다. 그런 가운데도 구석구석에 머위가 지천이다. 작대기로 우우 소리치며 풀밭을 두들겼다. 뱀이 있으면 물러가라 외쳐댔다. 아내는 신났다. 낫으로 베어 자루에 담으며 다녔다.
대 위에 올라 단소를 불려다 말고 같이 머위를 꺾었다. 탑차가 스르르 바위 옆에 대더니 운전자가 내려 슴벅슴벅 가까이 다가온다. 대에 오르려나 했는데 웬걸 눈을 부라리며 나물을 왜 뜯느냐 무덤 앞에 차를 세웠느냐 나무랐다. 이 주위 땅을 사들인 사람인 것 같다. 미안하단 말과 차를 곧 빼 떠나겠다고 했다.
돌아 나오면서 못내 씁쓰레하다. 이 세상에 무주공산이 어딨나. 다 주인이 있는데 그냥 풀밭인 줄 알고 들앉아 설쳤으니 야단맞을 만하다. 그나저나 이젠 갈 수 없는 고향이 되고 말았다. 건너 큰 도롯가에 세워두고 배골마을을 올라 내려와야 한다. 전엔 봇둑길 징검다리를 건넜는데 강바닥이 깊어 쉽게 건널 수 없다.
얕은 바닥의 바위와 자갈 모래는 다 어디로 갔는가 그리 저 아래까지 움푹 패었다. 강물에 흔하던 피리와 쏘가리, 뱀장어, 꺾지, 미꾸라지, 모래무지, 가재는 있을까. 하도 깊어 봇물 막는 건 엄두도 못 낸다. 대나무에 무명실을 매어 달았다. 반짇고리 바늘을 불에 달궈 굽힌 뒤 꿰어 소금쟁이 휘젓던 물에 던져 낚시하던 그 고인 물은 이젠 보이지 않는다. 물이 바닥을 질질 흐른다.
알던 사람은 외지로 떠나거나 다 돌아가고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다. 사우대 글자도 고향 무정으로 세월에 닳아 희미해져만 간다.
첫댓글 고향 다녀오셔서 예 추억을 그려 셨어요
세월 많이 흘러 고향도 옛날 고향 모습이 아니예요
옛 사람 다 어디 가고 낫 선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요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과 나이 차이로 낯섭니다.
우릴 알 턱이 없어 외지 사람으로 대합니다.
그냥 지나면서 봐야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