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두려움을 물리칩시다.
본문: 시 27:1-6
피터팬 신드롬,모라토니엄 신드롬이 있습니다.
피터팬은 동화의 주인공입니다.
피터팬 신드롬은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것,
계속 철부지 어린아이로 머물고 싶은 심리를 말합니다.
어른 되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행동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실수를 해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어린아이만의 특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피터팬 신드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라토리엄신드롬은 사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요즘 대학을 일부러 늦게 졸업한다고 합니다.
졸업해봐야 취직도 진로가 명확하지도 않고 직장이 보장되지도 않기 때문에,
일부러 휴학을 해서 졸업을 늦추거나, 졸업을 해도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
가 많습니다.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는 어느 의사의 체험담입니다.
이 중독자는 마약 때문에 가정과 자신이 망가진 사람입니다.
의사에게 세 차례나 치료를 반복해서 받고 있습니다. 하도 안타까워서
의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무엇 때문에 마약을 이렇게 좋아하는가?
마약 때문에 가정이 망가지고 많은 사람이 망하고 자네도 망가지는데
그래도 마약이 좋으냐?"
그때 이 마약중독자는 "박사님, 모르시는 말씀 마십시요.
내가 마약이 좋아서 하는 줄 압니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내 마음에 밀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마약을 찾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런 위험한 상황가운데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그런 상황가운데서도 이렇게 노래한다. / 본문 3절에.........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다윗은 과거에도 태연했고, 현재도 태연하고, 앞으로도 태연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1절을 속에 3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이 나의 빛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빛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맨 처음 창조한 것이 “빛”입니다.
빛이 있어야 모든 생물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처럼 빛을 받지 못할 때에, 여러가지 불편함이 많듯이,
영적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하면, 영적인 건강에 이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엡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했는데,
빛이 없으면 이러한 빛의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대신 미움이 자리잡게 되고, 감사와 기쁨대신 짜증과 불평으로
가득차게 되며,
화해와 관용과 용서 대신에 분쟁과 갈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고, 정의와 평화는
사라지고, 각종 불의와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온갖 불평등과 착취와 억압이
일상화 되게 됩니다.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은 사라지고,
온갖 “악함과 불의함과 거짓”만 생겨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밤이 아무리 캄캄해도, 아침이 되어 태양이 뜨면 자연적으로 어두움은 물러가듯이,
우리에게 여호와의 빛이 비취게 될 때, 우리 삶의 모든 어두움은 다 물러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런 경험을 하고,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하루 하루의 삶이 - 캄캄한 흑암의 먹구름으로 덮여 있는 삶이었습니다.
사울왕이 군대를 보내어 늘 다윗을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인생의 캄캄함도 다윗을 넘어뜨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빛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앞길을 밝히 비추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앞길을 밝게
비추어 주심으로, 어둠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온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고백하기를,
시 18:28에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했고,
본문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참 빛입니다.
요한일서 1:5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 8:12에는 주님께서 친히 “나는 세상의 빛이다” 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여호와의 빛이 비취게 되면, 인생의 모든 어두움이 캄캄함이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일 뿐 아니라, 나의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본문 3절에,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다윗은 이제 수많은 군대가 자기를 추격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기를 포위하고 에워싸도 무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틀림없이 구원해 주실테니,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셋째,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의 능력이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절 하반절에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했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능력”은 “인생의 요새, 생명의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적의 공격을 대비하여 방어하기 가장 좋은 곳에 가장 튼튼한
요새를 짖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튼튼한 요새는 없습니다.
여리고성이 튼튼한 요새라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함성속에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진정한 요새, 진정한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다윗에게 “생명의 요새, 피난처”가 되어 주셔서,
다윗이 바로 코앞에 숨어있어도 다윗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치고 있는 요새는 아무도 넘지 못합니다.
이 하나님의 요새를 넘으려다가 모두 실족하여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능력, 생명의 요새,
생명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때,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무서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다윗에게 빛, 구원, 요새가 되어 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전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직 성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빛이 되어 주시고, 구원이 되어 주시고, 요새”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의 성전을 사랑하는 신앙,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진사람에게
결코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윗같이 성전을 사랑하고,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이 빛이 되고, 구원이 되고, 요새가 되어 주셔서,
돌맹이 하나로도 넉넉히 이기고 남는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보다 주님이 피로 값주고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고,
그 교회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는 가운데,
어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난다 해도,
나의 빛이요, 구원이며, 요새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
넉넉히 승리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가운데 -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