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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에서 7월 21일 새벽 6시 10분에 떠나는 아스타나 비행기를 탔습니다. 새벽 4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겠기에, 아예 전날 밤에 잠을 안 자고 2시까지 노우트북으로 작업하다, 콜택시를 불러 2500텡게(우리돈 2만원 정도)를 주고 탔습니다. 전에는 집주인이 나와 배웅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나와 2년 6개월간 배운 러시아어 실력으로 기사에게 요금도 확인해 주어 한결 흐뭇했습니다.
새벽이라 하나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출국장이 1층인지 2층인지도 몰라 헤맸으나, 이번에는 제대로 2층 출국장 앞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자꾸만 졸음이 밀려와, 눕고도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큰일날 것 같아, 아예 서성거리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여 잠을 쫓았습니다. 처음에는 외국인만 보이더니, 4시쯤 되자, 인천행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인지 한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말이 들리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따라 왔던 공연팀 10여명이 떼를 지어 나타났습니다. 여러 기자재까지 싸들고 와서 금세 눈에 띄었습니다. 그 사람들 뒤에 서서 짐도 부치고 비행기도 탔습니다. 길눈이 어두워서 그런지, 아직도 외국 공항을 나 혼자 이용하는 데는 영 낯설기만 합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자다가 눈을 떴습니다. 창문 커텐을 올리고 밖을 내려다 보니, 끝없는 사막과 농토가 펼쳐진 곳을 자꾸만 자꾸만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있는 알마티에서 아득히 멀어져 간다는 생각에, 체통도 없이 그만 눈물을 지었습니다. 옆자리에 있는 일본인 노신사가 눈치챌까 봐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아침 기내식을 먹고 한숨 또 자고 나자, <우리들 생애의 최고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번 개봉했을 때 다른 가족은 다함께 보았으나 나는 무슨 일인지로 못 본 영화라, 열심히 보았습니다. 아줌마들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스포츠맨들의 숨겨진 슬픔도 알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운동에서도 인간 하나 하나를 사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일깨워주는 영화였습니다. 남자 감독 안승필은 여자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생리가 무엇인지, 아이를 가진 선수가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스포츠의 결국도 인간 사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회였습니다.
인천공항에 무사히 비행기가 착지했습니다. 아니 착륜(着輪)했습니다. 그냥 서지 않고 한참을 마구 달립니다. 마치 이제 막 서기 시작한 아이가, 그게 너무 기뻐서, 남들 보고 자랑하며 달리는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비행기 탈 때마다 느끼는 약간의 긴장감이 해소되는 이 순간, 자랑스러워하는 비행기처럼 나도 안심하면서 그 달리기를 즐깁니다. 출국장으로 빠져나오면서도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곳, 내 나라 내 땅, 참 좋습니다. 이 내 나라 내 땅이 없어, 1937년에 대책없이 강제이주당해 그 서러운 세월을 살아온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 생각이 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이 나라 사랑해야 합니다.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핸드폰을 꺼내 아내한테 도착 사실을 알리고, 공항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고국은 태풍도 그치고 한결 견딜 만한 날씨였습니다. 굴레방다리 정류장에 아내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영종도 부근 섬마을 모습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