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의 역사
▶일본의 야구는 아마추어 스포츠, 특히 학생 스포츠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야구 선구자들의 뜻으로 1920년 말
도쿄에 일본운동협회를 조직하고 1922년 가을에는 일본 최초의 프로팀으로 등장하여 와세다대학팀과의 경기를 가졌으나 이 프로팀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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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는 미국에서 일류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초청, 도쿄 6대학 리그 팀과 경기를 갖기도 했으나, 이듬해
문부성에서 야구 통제령을 내려 프로와의 시합을 금지한 이유로 1934년 가을에 일본에 온 베이브 루스(Babe Ruth), 헨리 게릭(Henry
Gehrig) 등의 대 선수들로 짜여진 미국 올스타팀과 대전하기 위해 사회인야구팀 선수들을 선발, 전 일본 팀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이 경기가 끝난 뒤 1934년 12월에 그 멤버 그대로 대 일본 야구구락부, 즉 오늘날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결성하였는데, 당시 일본 안에는 상대할 수 있는 직업구단이 없어 1935년 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야구기술을 연마하여
1936년에는 오사카·타이거즈·세네터스·한큐(阪急)·긴코(金瓆)·다이도쿄(大東京)·나고야 등 7팀이 탄생하여 일본직업야구연맹을
조직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
종전이 된 다음 1945년 11월, 직업야구연맹이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도록 일본 제일의 프로스포츠로 각광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는데, 1949년에 1팀이 더 생겨 8팀이 되었으며, 이를 4팀씩 나누어 2개 리그, 즉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를
중심으로 한 센트럴리그와 난카이 호크스, 한큐 브레이브스를 중심으로 한 퍼시픽리그를 만들었고 이어 1951년에는 커미셔너를 결정하고 통일계약서를
만들어 미국 프로야구와 똑같은 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각 팀은 별도의 2군을 두고 2군 팀끼리의 리그전을 벌이는데 이 역시 마이너리그 제도를
본뜬 것인데, 센트럴리그의 인기에 비해 퍼시픽리그의 인기가 너무 떨어지는 점, 12개 구단 중 8개 구단이 도쿄·오사카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점등을 문제로 꼽을 수 있다고 한다. (출처;두산대백과)
일본의 베이비 루스, 왕정치 [1940. 5. 20~]
▶ 일본 도쿄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화교 가정에서 태어나 와세다 실업고를 졸업하고 195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구단에 입단하여 ‘미스터 자이언츠’인 나가시마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와 함께 이름을 날리며 9년 연속 일본시리즈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1962년~1972년 11년 연속 통산 13차례 센트럴리그 홈런 왕을 차지하였고, 1973년과 1974년 센트럴리그 3관왕이
되었다.
198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 되었고, 1995년부터 1999년 현재 퍼시픽리그 다이에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데 한해 55개로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고, 통산 863개로 미국의 최다 홈런 왕 행크 아론(755개)보다 훨씬 많은 홈런 수를
기록하였으나 미국에서는 일본의 야구 실력을 대등하게 인정하고 있지 않아 세계 최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두산대백과)
3. 미츠이 골든 글러브 시상식
▶우리나라도 한 해의 정규리그가 끝이 나면 게임에 참가했던 모든 선수들이 모여 시상식을 한다.
바로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 그것.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우리 나라와 일본 모두
선수들의 각 포지션(예를 들어 1루수, 2루수 등의 수비 형태)별로 골든 글러브를 수여하지만 수비를 보는 각 선수들의 타격 성적을 전적으로
반영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타격 성적은 전혀 상관없이 오직 수비율에만 중점을 두고 센트럴, 퍼시픽 양대 리그에서 이 상을 수여한다고 한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프로야구 원년에는 이러한 형태로 수비만 고려해서 골든 글러브를 수여했지만 다음 연도인 83년도부터 지금과 같이
타격을 우선하여 베스트 나인을 선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 프로야구의 골든 글러브 시상식은 '미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는 미츠이 라는 회사에서
협찬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또 정규 리그 절반이 지난 뒤에 하는 올스타전 역시 산요에서 스폰을 대는 까닭에 '산요올스타전'이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한다. 그렇게 행사에 이름이 붙는 것을 보고 역시 광고성이 철저한 일본다운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나 올스타전 등에 분명 협찬을 해 주는 회사가 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그 성격이 어떻건 상을 받는 선수나 그렇지 못한 선수 모두 그 날만큼은 그들만의 축제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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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프로팀 NUK
▶일본 최초의 프로야구팀 NUK. 무슨 방송국 이름 같지만 사실은 일본운동협회 즉 Nippon Undo
Kyokai의 영어 약칭이라고 한다.
1921년 와세다대 야구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하였으며 그 배경에는 와세다-게이오 대항전(早慶戰)의 대중적
인기가 밑바탕에 깔려있었는데 NUK는 철저히 야구를 직업으로 삼음으로써 '일본의 야구 실력을 한 단계 높여보고자' 하여 도쿄 시바하라(芝浦)
매립지에 연습, 시합용 야구장과 클럽하우스를 갖추는 등 적어도 외형상으로 '프로페셔널'의 냄새를 풍기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 상 '프로야구'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엔 시기적으로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았고,
설상가상 1923년 9월의 이른바 간토대지진(關東大震災)으로 경기장 시설물이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NUK는 창단 이듬해 해산의 했다고
한다. 그후 한큐전철(阪急電鐵)에서 NUK 출신들을 흡수해 '호츠카교카이(寶塚協會.혹은 다카라츠카교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였으나
이 마저도 1929년을 끝으로 종료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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