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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15일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주최한 시국 대토론회에 참가해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언이라고 선언했다. (사진= 김태우 기자) |
[한국대학신문 이재·김태우 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을 제외하고 또 다른 선출된 권력인 국회와 정치인들이 주도적으로 이 사태를 풀어야 한다. 선출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집행부가 무력화됐고 이를 정밀하게 조율할 법제도도 부재했다. 그 역할은 국민의 또 다른 대표인 국회가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장집 교수는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15일 서울 관악구 아시아연구소에서 개최한 ‘헌정위기, 누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시국 대토론회에 참가해 이같이 주장했다. 서울대 교협은 이날 최장집 교수를 비롯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강애진 숙명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 박창규 고려대 구로병원교수회 의장, 서길수 연세대 교수평의원회 의장, 송석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영달 서울대 사범대 교수, , 한정숙 서울대 인문대 교수, 황상익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최우혁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등을 초청해 시국 토론회를 진행했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최장집 교수는 △관치경제에 의한 국가-재벌대기업 동맹 △노동자·노동운동의 산업적 시민권 부정 △사회의 다원적 구조 억제와 관의존성 강화 △지역적 권력분산 견제 △반공의식과 국가주의적 이념가치 강화교육 등으로 규정했다.
최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그 체제를 떠받쳤던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를 뜻한다. 1960년대 이래 반세기이상 한국정치와 사회를 떠받쳐왔던 이념적, 그리고 가치체계의 해체를 뜻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로인해 그것을 기반으로 했던 정당체제는 재편성 내지 재정렬될 수 있는 전환점에 섰다. 이 변화자체가 한국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을 기약하지는 않는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런 정치적 격변이 몰고 온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하는 내용과 방향에 의해 전환적 변화를 가져올수도 있고, 현상의 유지를 의미하는 새로운 형태의 구질서 복원이될 수도 있다. 이 상황의 핵심적 변수는 정당과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탄핵절차가 헌법상에 명시돼 있다.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법외적인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와 함께 국회는 헌법에 규정된 탄핵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대통령이 끝까지 퇴진하지 않는 경우도 가정해야 한다. 동시에 사법권력과 유리된 국민의 선출대표권력으로서 국회가 독자적인 청문회를 개최해 조사하는 절차도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박정희 패러다임의 극복도 주문했다. 최장집 교수는 “국가관료와 재벌대기업간의 역사적 동맹관계를 단절해 정치적으로 자립한 한국의 부르주아지로 거듭나는 것,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원리, 노조와 노동운동을 인정해 민주적 노사관계의 틀로 포섭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가치, 그리고 시장경제 영역에서 기업이 행위를 하는 온건하게 규제된 자율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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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삼성전자 등 재벌에 대한 외국인 주주의 배당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 김태우 기자) |
정운찬 전 총장은 ‘변혁의 시대, 한국 경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주제 강연에서 이번 사태에 연루된 삼성전자 등 재벌기업들이 조만간 공격적 외국인 투자자들에 이해 배당요구를 받아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운찬 전 총장은 “이번 사태에 연루된 재벌들은 불법적으로 기업의 공금을 쓴 것으로 주주소송의 가능성이 있다. 실제 주주소송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 같은 배임혐의 등에 따라 공격적 외국인 투자자들이 막대한 배당을 요구한다면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실제로 과거 한 때 앨리엇 등 외국계 기업이 삼성그룹을 공격할 당시 썼던 방법이다. 삼성전자는 지금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특혜를 지원한 혐의가 있지 않나”고 우려했다.
정 전 총장은 이번 사태로 인해 박근혜 정부가 사회를 40여년전 박정희 시대로 돌렸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몰아준 재벌들은 정치권력과 거래를 한 셈이라며 그 이면에서 그룹 오너의 사면복권과 세무조사 면제, 지배구조 문제까지 정권의 지원과 양해가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영혼 없는 공무원과 갑질하는 대기업, 이권을 추구하는 정치, 기득권에 안주하는 언론계와 학계, 정의에 눈 감은 사법부, 도그마에 빠진 종교계, 그리고 영리 추구의 온상으로 변한 교육계, 지금의 우리 사회 솔직한 단면이다. 부정부패는 거대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최순실 사태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공동체 정신과 질서 자체가 붕괴됐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부정과 부패의 구조를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 총장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보호무역의 파고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럼에도 위기를 극복해야 할 대통령은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렸다. 부패한 권력층은 정경유착과 기득권 지키기를 위해 불법과 탈법에 대한 죄의식도 없다. 심각한 재난상황에서 책임지는 정부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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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정운찬 전 총장의 모습. (사진= 이재 기자) |
조흥식 서울대 교협회장은 “이번 사태 해결의 주체는 국회나 시민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 국회의 정당·정치인과 광장의 시민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주체를 형성하고 서울대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다양하게 대토론회를 진행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세력이 적당히 조정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파적 해결방안을 뛰어넘어 학계의 진지하고 치밀한 대안논의가 시급하다. 시민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의 분노와 하야요구를 책임 있게 담아낼 수 있는 합리적 대안 모색은 지식인의 과제다. 지금 사회전반의 민주화의 진전과 양극화 해소 등 국민경제 성숙을 이끌 정치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경제 혁명 성공이냐, 실패냐의 중대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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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토론회에는 최장집 교수와 정운찬 전 총장을 비롯해 9명의 발제자와 토론자가 참가했다. (사진= 김태우 기자) |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교수들도 시국에 대해 뼈있는 말을 보탰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는 “시국 대토론회에서 라스푸친으로 토론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앞서 위키리크스 폭로에 의해 유신정권 말 최태민 목사가 라스푸친 같은 역할이라고 미국대사관에 보고된 바 있다고 한다. 라스푸친이 활동한 당시의 제정 러시아는 황제가 매우 우유부단해 측근 인사들이 모두 정권비호를 위해 활동한 게 특징이다. 1905년부터 1916년까지 11년간 활동한 라스푸친은 특히 당시 다양한 사회변혁요구를 차단해 제정 러시아의 개혁을 막고 정권비호를 위해 활동했다는 점에서, 그로인해 구체제의 몰락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 시국에 주목해볼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조영달 서울대 교수는 국민지식포털을 제안했다. 조영달 교수는 “현재 상황은 질서 있는 국민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다. 국법을 지키려는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표상적 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에게 법질서를 준수한 가운데 사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태의 발단은 공사분별력이 결여되고 직접소통을 하지 않는 대통령과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그리고 이를 유효하게 해체시키지 못한 채 민의를 확보하지 않고 상대방의 취약구조에 기생한 무능한 야당에 있다. 특히 지금 각종 정치권의 논의과정에서 여야 모두 단죄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번 사태해결은 대학과 언론, 시민사회단체가 협력해 정치혁신 의제 중심의 국민지식포털을 구성하고 이를 토대로 중재권력을 구성해 나가는 것으로 전개돼야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박창규 고려대 구로병원교수회 의장은 즉각적인 대통령의 하야가 답이라고 강조했다. 박창규 의장은 “지금 대통령은 성장과정에서 각종 개인사적 비극을 겪고 심각한 심리적 불안상태에 놓여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종교나 약물에 의존했을 정황이 있다는 게 지금 나오는 언론보도다. 특히 최순실 씨가 프로포폴을 다량 처방받아 갔다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다. 이 같은 정황을 보면 지금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심신의 건강상태를 갖고 있고, 당장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치료를 받는 게 급선무다”고 말했다.
황상익 서울대 교수는 이번 사태와 유사하게 작동하는 사회의 각 분야의 권위적인 시스템을 고발했다. 특히 서울대병원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상익 교수는 “서울대병원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나 이사진 9명 가운데 적어도 5명은 정부측 인사가 임명된다. 이처럼 정부가 서울대의 인사를 장악하고 있는 결과 나타난 것이 최근 대통령 주치의에서 서울대병원장으로 임명된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다양한 문제가 있어 쉽사리 풀리지는 않겠으나 공적 역할을 담당한 기관의 장을 그 구성원과 무관한 사람들이 임의로 임명하는 부조리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석윤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번 사태가 사실상 헌법과 유리된 권력구조의 분점에서 나타났다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석윤 교수는 “헌법은 130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으나 헌법 어디에도 청와대나 비서진의 역할은 명시돼 있지 않다. 지금 국내 권력의 시스템상 정점에 서 있는 청와대 수석비서진 등은 헌법과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이는 실정법인 국회법과 정부조직법 등을 개정해 해결할 사항으로, 헌법개정 논의와는 완전히 별개다. 특히 현재 국내 헌법의 근간은 일본의 메이지유신, 그리고 19세기 독일제국의 법률을 토대로 한다. 이 체제는 신분제적 세습을 규정한 것으로 국내 법제도 등의 근대성을 되돌아봐야 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우혁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은 대학생들의 시국인식에 대해 설명했다. 최우혁 학생회장은 “학생들이 많이 모인 이유는 사회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대학생 누구나 치열하게 치렀던 입시를 정유라 씨는 불공정하게 치렀고, 우병우 전 수석의 아들은 코너링이 좋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운전병이 됐다. 사회 곳곳에서 공정성이 후퇴하고 있고, 이런 사회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대학생들의 참여가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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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교수들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발언하고 있는 조영달 서울대 교수의 모습. (사진= 김태우 기자) |
최씨 비선실세 의혹의 한복판에 섰던 이화여대의 사례도 나왔다.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은 “이화여대 학생들이 90여일간 농성을 한 게 이번 사태를 드러나게 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다소 과장이 있으나, 이 학생들이 90여일간 보여준 순수한 가치에 대한 추구는 우병우 전 수석 등 고위직 관료들이 자리를 차지한 뒤 반드시 지켜야 했을 직업윤리나 도덕성 등을 저버린 것과 비교해 큰 울림을 준다. 수단과 가치를 가리지 않고 물리적 부를 추구하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잘 살아 보세’가 지금의 상황을 낳았고, 이제 우리는 향후 어떤 삶을, 어떤 사회를 살아야 할 것인지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애진 숙명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은 이번 사태를 특권계층의 부도덕과 일반시민의 요구가 부딪힌 것으로 설명했다. 강애진 회장은 “현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의 불확실성 등 실존적 불안감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특권계층은 부패하고 부당한 방식으로 편안한 삶을 영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당한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게 확인됐다. 특히 대통령, 사회의 공적가치를 상징하는 대통령이 이 정점에 서 있었다는 데 큰 문제가 있고, 그래서 100만명 이상의 참여자가 나타났던 것이다”고 분석했다.
서길수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박정희 패러다임의 병폐는 뚜렷하다. 이번 정부의 일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며 공무원에게 골프를 치지 말라고 질타했더니, 공무원들이 여름휴가때는 쳐도 되느냐고 문의했다고 한다. 대답이 가관이다. 휴가에 한해서, 자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사람과 치고, 가급적이면 스크린 골프를 치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창의성이 나오고 혁신이 가능한가. 지금 고위직 공무원이 되려면 영혼을 팔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국내에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보장하는 인사제도가 혁신되지 않는한, 미래는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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