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저울과 공평한 추
잠언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미움과 기쁨이라는 대조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모호하신 분이 아닙니다. 좋고 나쁜 것이 없는, 적당하게 얼렁뚱땅 모른 체 하며 넘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실상 예민하신 분이시요 선악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어정쩡한 중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빛이 아니면 어둠입니다. 어슴프레 한 영역은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1장 5절 말씀에,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에게는 조금도 어둠이 없습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을 섬기면서 만일 우리 안에 어둠을 품으면 그것은 불의한 것이요 거짓말하는 것이요 부정직한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하
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이 교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에야 어둠을 벗고 다시금 빛과 교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말과 행실이 그의 미워하시는 바가 없고 항상 기뻐하시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늘 분별력을 가지고 살펴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바가 있음을 깨달을 때는 우리는 그 즉시 주님 앞에 죄를 솔직하게 자백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의 은혜가 회복될 것입니다.
1절 말씀에서 다루는 것은 성전 안에서의 예배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심오하고 신령한 영적 은사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현장인 시장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혹은 이웃과의 사소한 거래 관계에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거래 관계에서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공평하게 거래하라는 것입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저울과 추는 무게를 다는 측량기구입니다. 말이나 되 같은 부피를 다는 측량 기구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거래에서 항상 눈속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례는 잠언 이전에 모세의 오경에서 강조된 계명이기도 합니다.
레위기 19:5,6 말씀에,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5장 13절 이하에서도 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신 25:13~1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 사회는 정직하고 공평한 거래 관계의 진실성이 실천되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공평과 정의를 삶의 현장인 시장에서나 모든 거래 관계에서 시행하는 것이 곧 진정한 영성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당연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과 반복된 계명에도 불구하고 부정직하고 거짓된 거래 관행을 발전시켰습니다. 사회 전반에 거짓된 거래 관계가 성행했습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였던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에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책망이 나옵니다.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암 8:5~7)
결국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 왕국을 앗수르 민족에게 팔아서 멸망케 하셨으니,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짓과 불의로 거래하며 공평과 공의를 저버린 사회 전반의 타락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정당하고 공정하고 정상적인 이득을 얻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당한 이익을 얻고 속임수를 사용하여 잘못된 이득을 얻으려는 것은 결국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속이는 저울 추를 가지고 이익을 더 얻은들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가증히 여길진대, 어찌 온전한 이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속이는 자는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잃어버리게 만들 것이요 부당한 이익을 취한 자의 거짓이 드러나 여러 배로 되갚게 하실 것입니다.
잠언 21:6 말씀에,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언 13:11 말씀에,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적은 이득이지만 정직하게 수고한 대로 모은 것, 수고한 대가로 정당하게 얻은 것만이 진정한 재산으로 쌓여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정직의 위기 시대입니다. 사회 도처에서 부정한 이익과 권력 추구를 위하여 부정직한 포장을 하기 일쑤입니다. 원산지 속이는 일, 쌀 포대 바꾸기, 겉과 속의 품질이 다르게 넣기, 과대 광고, 논문 표절, 학위 경력 부풀리기, 허위 공약 남발 등, 시장과 학계와 정치계, 노동계 할 것 없이 부정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를 얻는다면 거짓도 방법 중에 하나라는 풍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정직을 미워하시고 거짓과 술수를 가증히 여깁니다. 반드시 보응합시다. 반면에 정직과 정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가 최후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잘못된 풍조를 경계하고 결코 물들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속이는 방법으로 재산을 더 모으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복권 열풍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 문제에 있어서 땀 흘려 일한 대로 모으는 성실함을 가지고, 떳떳하고 양심적으로 재산을 모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단 물질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 있어서 항상 정직하고 참되고 성실하도록 자신을 닦아나가는 경건의 훈련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거리낌이 없고 평안할 것이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생활에 기름지고 풍성한 물질의 복도 더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물질적 탐욕에 사로잡힌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의 양심과 영적 안목이 어두워지지 않게 하옵소서. 정직의 길이 가장 안전하고 끝내 복받는 길임을 알고, 결코 흔들리지 않게 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