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폰이 뭐길래
류 근 만
지난 금요일 오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날이다. 나이가 든 탓인지 친구들 만날 약속이 있으면 기다려진다.
버스를 탈까? 걸을까? 결정이 쉽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도 날씨에 따라 다르고, 시간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오늘은 날씨도 화창하고 시간도 넉넉하여 운동 삼아 걷기로 했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이~곳 저~곳 눈망울을 돌리면서 주변의 변화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끔 걷는 길이지만 세월의 무상함과 변화의 속도도 나와 무관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낯선 모습을 대하면서 내 눈을 의심할 때도 있다.
부담 없이 걷는 발걸음이지만 평소에 숙달된 탓인지 생각보다 빨리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어르신 무임교통카드’를 꺼내려다 ‘아차’ 하면서 멈칫했다. 스마트폰이 호주머니에서 빠졌는지? 아니면 집에서 나올 때 놓고 나왔는지? 분간이 안 된다. 애꿎게 호주머니만 자꾸 뒤져보지만 허사다.
집에 스마트 폰 없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친구에게 늦겠다고 전화를 할 수도 없다. 현찰도 없고 교통카드도 없다. 현금처럼 꺼내쓰는 체크카드까지도 모두 거기에 끼워져 있다. 나에 관한 정보나 내 수중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을 품은 창고다. 비상금도 그 안에 보관한다. 아무리 급해도 자식들 전화번호 하나 알아낼 수가 없다. 이쯤 되니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한심하다. 참으로 무지한 인간 같아 안타깝고, 남이 알까 부끄럽다.
지하철 역무원한테 사정을 이야기하고 차비를 꾸어볼까? 생각하다가 이내 접었다. 설령 서대전역까지는 갈 수 있지만, 식당 이름이나 위치도 카톡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궁리하고 후회한들 대책이 없다. 잰걸음으로 뛰다 걷다를 반복하지만, 발목에 쇠붙이를 매달은 양 천근만근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왜 그리 먼지 진땀이 난다. 헐레벌떡 집안에 들어서니 아내가 왜 돌아왔느냐고 묻는다. 무슨 큰일이나 해결한 듯 ‘후~유’ 한숨을 내쉬면서, 아내의 묻는 말에 대꾸는 고사하고, 스마트 폰을 챙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 승차장을 향해 급히 뛰었다.
‘대전 버스 앱’을 확인하고 버스 도착 시각에 맞추면 될 것을 마음만 급했다. 허겁지겁 뛰다가 발을 헛디디는 우를 범할까 봐 조심조심하면서 서둘렀다.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탔다.
판암행 지하철 좌석에 앉아 생각하니 참으로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승객이 스마트 폰에 정신을 팔고 있다. 내가 지하철 속에 있는 것인지, 손에든 핸드폰 속에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잠깐 사이에 열 번째 역인 서대전역에 도착했다.
내가 가는 목적지인 식당 이름을 알아냈지만 막연했다. 처음 들어보는 식당 이름에 거리도 낯설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 폰에 물었다. ‘네이버 지도’를 열고 시키는 대로 했다. 어린애 뒤따라가듯 졸랑졸랑 따라만 가면 된다. 남은 거리도 알려준다. 우로 좌로 몇 미터가 남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참으로 희한한 물건이다.
좀 늦기는 했지만, 친구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뽐내듯, 늦은 이유와 한동안 쇼를 벌인 사연을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친구 중에는 ’디지털 세계에 한발 앞선 나를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그것을 이제야 알았느냐?’고 하여 나를 멋쩍게 하기도 했다.
그렇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안 다는 것 참으로 소중하다. 배움에도 때가 있고 장소가 있다. 언제나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건이 맞아야 한다. 혼자서 배우려 해도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제일 손쉬운 것이 자식이나 손자들이다. 그놈들만 있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것도 해결방법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모두 멀리서 살고 있으니 그림 속의 떡이다.
나는 여러 궁리 끝에 하는 수 없이 ‘노인복지센터’ 회원으로 등록하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노인센터에 가는 것이 빠른 나이도 아닌데 멋쩍다. 하지만 스마트 폰을 배울 욕심에 발을 디뎠다.
자칫하면 너무 빠르게 변하는 일상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특히나 병원 출입이 잦은 우리 부부는 답답할 때가 많다. 병원 문을 들어설 때부터 나올 때까지 수없이 많은 과정을 거친다. ‘실시간 병원 예약 앱’을 알면 편한데 방법을 모르니 답답하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터미널, 기차역을 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여행도 돈이 없어 못 가는 것이 아니라 겁이 나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즈음 어디를 가나 ‘키오스크’가 대세다. 심지어 ‘키오스크 앞에 서면 --- 노인을 울고 싶다’라고 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다 보니 알아야 살 수 있다는 현실을 피부로 느낀다.
그렇다고 배운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원망스럽고 답답하다. 복지센터에서 컴퓨터 수강을 하는데 가끔 꿀 조언으로 스마트 폰 사용법도 알려준다. 매주 수요일에 강의를 듣는데 가끔은 바쁘다는 핑계로 결석을 하니 따라가기도 버겁다.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강사가 들었는지 깜짝 놀라면서
“왜 한숨을 쉬세요? 이해가 안 되세요” 하면서 안쓰러워하는 표정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 죄송합니다.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실력이 늘지 않아서 선생님 뵙기가 민망하네요!”
하면서 답답해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다 보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해요, 공부 처음 하세요? 다 아시면서! 배운 것을 모조리 저장하면 머리가 터지던지 쥐가 나요”
강사는 걱정하는 나를 위로 해 준다.
그렇다. 스마트 폰이 뭐길래, 이렇게 한숨을 몰아쉬면서 배우려 하는지 모르겠다. 알아도 살고 몰라도 사는 것을 왜 배우려 하는가? 자문자답도 해봤다. 결론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알면 편하고 편하면 즐겁다. 그래서 젊어서나 늙어서나 기를 쓰고 배우는 것이다. 신체 운동도 중요하지만 ‘스마트 폰 사용법을 배우는 것’도 뇌 운동이라 생각하면 긍정의 엔도르핀이 생길 것 같다. 처음엔 힘들지만, 자꾸 하다 보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배운 것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