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다고 해도 하겠느냐?”
사람이 물 위를 걸을 가능성은 0%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라” 하신다고, 베드로는 물 위로 내려섰습니다.
100% 실패할 일에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할 때,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 가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주님 기뻐하시는 대로 했다면 성공이 아니겠습니까?
존 웨슬리 목사가 회심한 후 일기를 보면 고난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월 5일 주일 아침 성 엔 교회에서 설교했다. 그들은 내게 “다시는 오지 마시오”라고 이야기 했다.
5월 5일 주일 오후 성 존 교회에서 설교했다. 집사들이 “당장 나가서 절대 다시 오지 마시오” 라고 말했다.
5월 12일 주일 아침 성 주드 교회에서 설교했다. 이곳 역시 다시 갈 수 없게 되었다.
5월 12일 주일 오후 성 조지 교회에서 설교했다. 여기서도 쫓겨났다.
5월 19일 주일 아침 설교했던 교회에서는 집사들이 특별 회의를 소집했고, 나더러 발도 붙이지 말라고 했다.
5월 19일 주일 오후 거리에서 설교했다. 거리에서도 쫓겨났다.
5월 26일 주일 오전 목초지에서 설교했다. 그런데 황소 고삐가 풀리는 바람에 도망쳐 나왔다.
6월 2일 주일 오전 마을 경계 지역에서 설교했다. 마을 밖으로 쫓겨났다.
6월 2일 주일 오후 목장에서 설교했다. 만 명이 설교를 들으러 왔다.”
그는 실패의 길을 자초하여 갔었습니다.
그의 설교가 교회에서 배척받을 것을 알았지만 주님은 기뻐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 빌립은 계산 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짜피 안될 일을 왜 합니까?
그러나 안드레는 한 아이의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안드레도 그것이 쓸데없는 일인지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님께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주님은 안드레를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제가 16년 전, 선한목자교회로 부임해 왔을 때, 주위 사람들이 다 말렸습니다.
실패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교회의 여러 어려운 문제들, 특히 중단된 예배당 건축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다고 안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문제는 ‘힘드냐, 어려우냐’ 가 아니라 주님이 ‘가라’ 하시느냐 여부라 생각했습니다.
실패의 길이라도 주님께 순종해야 종이기에 순종한 것입니다.
주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미련한 일입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전도가 주님이 기뻐하실 일인가?’ 질문하면 언제나 “아멘”입니다. 그러면 전도하는 것입니다.
중동 오만에 나가 있는 선교사 한 분이 무스카트에 있는 외국인 무덤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토마스 샘 선교사의 무덤이 있는데, 그는 영국 성공회에서 파송받은 선교사로 파키스탄에서 사역하다 은퇴하게 되어,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당시 중동의 선교 사역을 대표하는 사무엘 쯔웨머의 사역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구에 무스카트로 왔다가 이곳 더위와 풍토를 이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선교사님이 그 무덤 앞에서 ‘그는 왜 노구를 이끌고 이곳에 오셔서 죽었을까?’ ‘특별한 열매도 없었는데 주님은 왜 이 분을 이곳에 보내셨을까?’ 생각하는데, 한가지 큰 열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나님의 눈을 이곳으로 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토마스 샘 선교사의 마지막 기도 때문에 자신이 오만에 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토마스 샘 선교사는 실패한 선교사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의 종된 자들이 실패할 가능성이 큰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면 주님의 일은 누가 감당하겠으며, 주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 동행 일기 사역을 시작하고 2년 째 되던 해, 기도 중에 ‘너는 실패할 것이다’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아, 결국 안되는 일인가?’ 생각하였을 때, 주님은 다시 물으셨습니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계속 이 일을 하겠느냐?”
혼란스러웠습니다. ‘실패할 것이라면 왜 해야 하나요?’ 묻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24 시간 주님을 바라봅시다’. ‘예수 동행 일기를 써 보세요’ 외치는 일이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하나님은 왜 힘을 빼시는 것인가? 답답했습니다.
그 때, 깨달아 지는 것이 ‘그것이 나의 실패일지는 몰라도 주님의 실패는 아닐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100년에 걸쳐 이루시고, 200년 걸려 이루신다면 제게는 실패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실 주님께는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면 실패라도 합니다. 실패하겠지만 저는 계속 하겠습니다.” 고백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다시 예수동행 일기를 쓰자고 호소한지 9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깜짝 놀랄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9년을 계속 예수 동행 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성공할 것이라,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건 아닌가 봐” 하며 벌써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하겠지만 계속 하겠다고 약속하였으니 어려워도, 안되는 것 같아도 그만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실패할지라도 하겠다는 결단 때문에 온갖 난관과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 2019년 11월 13일 국민일보 유기성목사 [예수동행] 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