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스타’가 된다는 것을 어느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치부하거나 ‘딴따라’라며 고개돌리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요즘 젊은이들에게 ‘스타’는 단순히 부와 명성을 함께 얻을 수 있는 유망 직종일 뿐이다.
지난 5월 케이블TV 애니메이션 채널인 ‘투니버스’가 만14세 이하 어린이 39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 희망직업’ 설문조사에서 ‘연예인’(20%)은 ‘선생님 및 학자’ (17%), ‘의사 및 간호사’(10%)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연예인뿐 아니라 스포츠 스타, 프로게이머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가 되기 위해 젊음을 아낌없이 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이처럼 ‘스타’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과)는 “10대 말에서 20대에 이르는 시기는 꿈이 많고 가치관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은 시기라, 대중의 환호를 받는 사람들을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를 따르고 싶어한다”고 했다.
송 교수는 “매체의 발달로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스타가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스타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러나 이면에 내재한 어려움은 보지 못하고 찬란함에만 경도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꿈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3일 밤 11시. 한 대형 연예기획사가 주최하는 공개 오디션과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의 채팅방에 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오디션 예정일은 이달 말. 노래, 외모, 연기, 춤, 모델 등 총 8개 부문에서 모두 17명의 ‘짱’을 뽑는 오디션에 “노래짱 3865명, 외모짱 3530명, 연기짱 2490명, 댄스짱 2430명, 모델짱 1900명, 작사짱 100명 가량이 지원했다”고 채팅방에 모인 이들은 말했다. 이 카페의 회원 수는 7000명이 넘었다.
▲ 학생들이 오디션을 보고 있는 장면 (영화 6개의 시선 중)
임보라(11)양은 이번 오디션 ‘댄스짱’ 부문에 지원할 계획이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는 임양은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합격할 때까지 오디션을 보려고 한다”며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 왔다는 정다솔(14)양은 “얼마 전 운세를 봤더니 연예인이 될 거라고 하더라”며 한껏 희망에 차 있었다. 정양은 “부모님은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연예인이 될 때까지 끝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연예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한다고 해서 바로 가수나 연기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지혜(17)양은 최근 연예전문 케이블 채널인 ETN의 예비스타 발굴프로그램인 ‘스타 오디션’에서 ‘짱’으로 뽑혔다. ETN측은 김양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그러나 김양에게 주어진 것은 그뿐, 상금도, 고정적인 방송출연 기회도 없다.
“연예인 되기가 어디 쉬운가요?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해요. 이번 기회로 재능을 인정받았으니 앞으로 다른 곳 오디션도 계속 지원하면서 노력할 거예요.” 가수를 꿈꾼다는 김양은 경기도 평택의 집에서 매일 서울까지 왕래한다. 연기학원에 다니기 위해서다. “지금 제 나이에 가수가 돼 봤자 ‘반짝’하고 사라질 것이 뻔하잖아요. 일단 MC나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후 앨범을 내는 게 수순인 것 같아서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부지런히 오디션을 봤죠. 차근차근 노력해서 적어도 3년 후에는 꼭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김지혜양
이처럼 연예인 지망생들이 많다보니 이들을 노리는 각종 사기극도 횡행한다. 하루 평균 10개 정도의 오디션 공지가 게시되는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오디션 관련 카페 게시판에는 최근 “최근 ‘○○에이전시’의 ‘XX’라는 에이전트에게 사기를 당한 회원이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곧 카페는 “이 에이전시가 확실한 곳이냐, 내게도 오디션 보라는 전화가 걸려왔는데 가도 괜찮겠느냐”는 글들로 후끈 달아올랐다. 연예기획사들에 대한 각종 뒷소문도 무성하다. 김지혜양은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닌 대형 연예기획사 오디션에는 지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김양은 “대형 기획사는 자신들 마음대로 연습생들을 성형수술을 시키기 위해 신체포기각서까지 쓰게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어쩐지 꺼려진다”고 말했다.
◆ “제2의 임요환을 꿈꾸며”
유인봉(15·고1)군은 지난해 8월 프로게임구단인 ‘한빛 스타즈’ 소속 연습생이 됐다. 재미로 스타 크래프트를 시작했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연습생 테스트를 보게 됐다. 방학을 맞아 고향인 광주를 떠나 서울의 구단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군은 “부모님이 이해하고 밀어주시기는 하지만 집에서 떨어져 있다는 게 힘들고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했다.
유 군의 게임 연습시간은 하루 10시간. 그는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잘하게 되니 승부욕이 생겼고 프로게이머의 꿈까지 꾸게 됐다”고 했다. “게임이 잘 되지 않을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TV에 출연하는 프로 게이머들을 볼 때면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죠. 앞날을 생각하면 솔직히 걱정도 많이 되죠. 프로가 된 후 23~24세까지 게이머로 뛰다가 군대를 다녀와서 재기가 안 되면 컴퓨터 계통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프로 게임팀 P.O.S. 소속 연습생 이성덕(16·중3)군은 연습생이 된 두달 전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대신 연습실로 나간다. 이군은 “담임 선생님이 이해해 주셔서 학교에는 시험때만 나가고 수업은 조퇴로 처리했다”고 했다. 내년에 프로게이머로 등록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지금 당장 게임이 좋아서 연습생이 됐지만 아직 먼 미래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연습생으로 시작해 연습생으로만 끝나는 사람들을 보면 두려워요. 연습생이 되기 전에는 연습생이 되면 게임 실력이 좀 많이 늘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실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지도 않아요.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만 하죠. 프로게이머가 되면 팬클럽이 생기곤 하는데 그 정도의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프로게임이 e-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가 탄생하자 젊은이들에게 프로게이머는 새로운 ‘꿈’으로 떠올랐다. 한국 e-sports협회에 등록한 국내 프로게임단은 현재 14개, 프로게이머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한빛 스타즈 측은 “1년 전 홍보도 하지 않은 채 연습생 1명을 뽑았는데 300~400명 정도가 지원했다”고 밝혔다.
프로게임팀인 P.O.S.에는 프로게이머 7명, 아마추어 2명과 함께 연습생이 6명 소속돼 있다. 연습생은 월급을 받지 않고 팀에서 유명 선수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높이는 기회를 얻는다. P.O.S. 하태기 감독은 “지난 봄에 전국에서 64명이 예선을 봐서 그 중 6명이 연습생으로 들어왔다. 실제 토너먼트에는 그에 3배에 해당하는 게이머들이 참가했다”고 했다.
연습생들은 대개 프로로 데뷔하기 위해 고단한 길을 거친다. 큰 대회에서 바로 우승하면 빨리 데뷔할 수 있지만 실력이 없으면 5~6년까지 연습생으로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빛스타즈 홍보팀의 정수영씨는 “게임은 결코 오래한다고 잘할 수 있는게 아니다”며 “실력이 없고 발전 가능성이 없으면 감독 재량으로 판단해 다른 길을 권유하곤 한다”고 했다.
연습생 중에서도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프로게임단에서 돈을 받기도 한다. 한빛스타즈 연습생 김선기(21)씨가 한 예다. 김씨는 지난달 17일 열린 2004 스카이배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를 이기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게임을 시작한지 4년, 연습생이 된지 1년 반만이었다. 김씨는 현재 프로게이머 등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 곧 프로 게이머가 되는 한빛스타즈의 김선기연습생이 연습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되면 팬클럽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지만 “게임에 인생 전부를 걸지는 않았다. 프로가 된 후 1년 안에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빛스타즈의 이재균 감독은 “연습생이 되고 싶다는 이메일이 하루에 2~3통씩 온다”고 했다. 이 감독은 “연습생들 100명 중 60명은 연습생으로 끝나면서 사장되는 사람들이고 그 나머지 40명 중에서도 30명은 그냥 프로게이머라는 이름만 달고 있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다들 임요환이나 이윤열을 바라보며 억대의 연봉과 인기를 꿈꾸지만 사실 프로게이머의 연봉도 최고 2억원부터 최하 1200만원까지 다양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게임에 목숨걸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졸업하고도 충분히 할 수도 있으니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극단적인 생각들은 제발 버렸으면 합니다.”
◆“‘프로’ 선수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4일 오후 서울 잠실 야구장. 6시 반으로 예정된 두산-기아 전에 대비해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이날 선발 투수인 레스(31)와 불펜 캐치(bull pen catch:시합 전 준비운동)를 하고 있는 김대진(20)씨는 두산 베어스의 2년차 신고 선수(연습생:전반기인 6월30일까지는 정식 선수로 등록할 수 없고, 구단이 필요하면 그해 7월1일부터 1군에서 뛸 수 있는 선수)다.
▲ 두산 베어스 홍성흔 선수(가운데) 옆에서 연습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김대진 선수(왼쪽)./ 박민제 조선일보 인턴기자
경기 시간이 되자 김씨는 조금 쉴만도 하지만 양손에 짐을 가득 든 채 연습 도구를 치우더니 다시 벤치로 달려와 선수들의 경기를 꼼꼼이 체크했다. 게임 간간이 불펜에서 구원투수들이 몸을 풀 때 나가서 공을 받아 주던 김씨는 경기가 끝나자 연습도구를 다시 챙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수들이 모두 집으로 간 후 텅 빈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그는 하루 일과를 마감하며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교 시절 5번 타자에 주전 포수로 활약했던 그는 2003년 졸업과 함께 프로 야구단에 입단했다. “집안 형편때문에 대학 진학이 어려웠거든요. 고교 시절 눈에 띄게 활약한 것도 아니고 해서 프로구단의 지명은 못 받고 일단 연습생으로 입단했어요. 미국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배라’와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신고선수의 역할은 주로 선수들의 연습 파트너. 김씨의 경우 포지션이 포수라 투수들이 몸을 풀 때 공을 받아주는 역할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는 “신고 선수라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잘 못하니까 지금의 처지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텅 빈 그라운드를 보면 당장에라도 방망이를 들고 나가 홈런을 펑펑 날리고 싶다”고 했다.
▲ 선수들 경기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김대진 선수./ 박민제 조선일보 인턴기자
신고선수인 김씨의 일과는 일반 선수들보다 4시간 이른 10시 반에 구단에 나오는 것으로 시작 된다. 그는 “신고선수는 개인 연습시간이 없어서 이른 시간이 아니면 개인훈련을 하지 못한다”며 “이렇게 연습을 해도 연습생 중 정식 선수로 계약을 맺고 활약하게 되는 사람은 전체의 신고선수의 1%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야구를 계속 할 것”이라고 했다. “요기배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어요. 힘들고 어려울 때는 늘 그말을 생각하죠. 내가 야구를 그만 두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구요. 군 입대 등 미래를 생각 할 때면 막막하기도 하고 그만두고 싶지만 돌아서면 다시 하고 싶은 게 야구니까요.”
2004년 8월 현재 전체 프로구단의 신고선수 수는 SK 와이번스 5명, 기아 타이거즈 4명, 두산 베어스 3명, 삼성 라이온즈 4명, 롯데 자이언츠 2명, 현대 유니콘스 5명 등으로 총 23명이다.
두산 베어스 운영팀 이복훈 과장은 “프로야구의 경우 한해 3~4명의 선수를 스카우터가 물색해 테스트 한 후 신고선수로 등록받는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예전에는 선수 인원이 적어서 신고선수로 들어와도 스타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각 구단별로 인적 구성이 풍부해져서 신고 선수가 활약할 기회가 드물다”며 “많아야 한해에 1~2명의 신고 선수가 1군 경기에 나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