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9코스(금강산콘도-화진포-거진항)
오늘은 산악회 에서 고성 해파랑길 49코스 트레킹을 한다.
‘해파랑길’은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져 있으며 이 길은 동해의 푸른 바다와
산을 길동무 삼아 함께 걸어볼 수 있는 트레킹코스로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를 가지고 있으며
거리는 총 770km 이다.
해파랑길 49코스는 금강산콘도→대진항 등대,대진항→초도항→화진포성(김일성 별장)→응봉산
→ 해돋이공원 →거진등대 →거진항 까지 11km로 바다,산,호수를 두루 구경 할수 있는 코스로
4시간30분 소요 된다.49코스는 해파랑길의 실질적인 마지막 구간이다.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50코스는 사전 신고한 차량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일행은 청사역을 07:30 출발 외곽 순환도로를 빠져 나와 남양주 IC에서 홍천, 인제, 원통을 거쳐
용대삼거리에서 진부령을 넘어 십이선녀탕 휴게소 에서 잠시 휴식후 쇠똥령 마을 앞을 지나 화진포
해양 박물관 주차장에 평상시 같으면 출발지 에서 4시간 이면 올수 있는 거리 임에도 징검다리 연후
로 차가 너무도 밀려 6시간 30분 걸려 오후 2시에 도착 하게 되어 당초 금강산 콘도 부터 트레킹 계획
이었으나 계획을 변경 이곳 해양 박물관 부터 트레킹을 시작 한다.우리 일행은 트레킹에 앞서 각자가
준비 해온 식사 부터 하고 트레킹을 하기로 한다.
금구도(金龜島, 거북섬)를 배경 으로 한컷
우리 일행은 식사후 금구도(金龜島, 거북섬)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한다.
금구도(金龜島, 거북섬)는 강원도 고성 동해의 최북단에 위치한 화진포해수욕장 바로 앞에 떠있는
거북이 모양의 작은섬 이다. 옛 지명은 초도(草島)인데, 지금의 지명으로는‘금구도(金龜島)혹은
거북섬’이라고 부른다.
금구도에는 몇 그루의 소나무와 대나무 뿐이다. 가을의 지는 해가 대나무 숲에 반사돼 거북
모양의 섬이 금빛으로 보여 금구도 라고 이름 지어졌다 한다.
거북이 형상의 금구도가 광개토대왕능 이라는 자료가 발견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
지고 있다. 고구려 연대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3년 (서기395년)8월경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릉(壽陵)축조를 시작 햇으며, 광개토대왕 18년 8월에 화진포의 수릉축조 현장을 대왕이
직접 방문하기도 햇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이 서거한 이듬해인 장수왕
2년(서기414년) 9월 29일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광개토대왕능 수비대가 왕릉을 지키고 있었고, 계림(신라)의 군사와 수비대의 잦은 분쟁이
잇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문자명왕 2년에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망제(望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있는 거북섬 성의 구조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섬의 정상부인 약45m 높이의 고지를 중심에
두고 해안선의 자연 지형을 따라 화강암을 이용하여 속축으로 축조하고, 성벽 상단은 삭토하여
환도를 개설한 흔적이 200 여m 가량 두렷이 남아 있으며, 산정부근의 와편과 주초석의 잔해는 사당
으로 추정하고 있다. 섬 북쪽의 암석 지지대는 잔돌끼움 쌓기의 협축법으로 석축한 보호벽(城)과
방파성(防波城)이 약60m, 높이 170~230cm, 3개 구간에 남아있다.
해양 박물관 에서 본 초도리 체험 마을 입구 와 초도항의 등대
구금도 옆으로는 초도리 체험 마을 입구 와 초도항의 등대가 한눈에 든다.
고성초도리 (高城草島里)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 있는 바다에 인접한 어촌마을이며 고려시대
에는 이 지역에 샘이 많아 일명 샘동래 또는 9개소에서 샘이 솟는다 하여 구룡물이라는 속칭이
있었다 한다. 이 마을 앞바다의 검에는 억새 종류의 새(草)와 수목이 많았으므로 초도(草島)라고
부르는 섬이 있었기에 새임리라고 칭하다가 진포(津浦)마을이므로 초진리(草津里)라고 불렀는데
후에 초도리(草島里)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초도항(草島港)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에 위치한 어항으로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아주 작은 항구로 지역 특산품인 성게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매년 성게 바다 축제가 열린다.
특히 축제기간에 한해 초도항 앞 무인도인 금구도에 들어가 광개토대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성곽을 살펴보고 해변의 해양생물을 관찰해 보는 금구도 체험을 비롯해 가두리 낚시와 배낚시
체험, 어선 무료승선 체험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린다.
금구교(金龜橋) 를 넘어서
화진포 (花津浦)호수(좌) 와 화진포 해수욕장(우)
호수가에 세워진 이 여인상(이화진"이라는 집의 착한 며느리)
금구교(金龜橋) 를 넘어서니 화진포 해수 욕장과 화진포호가 한눈에 든다.
‘화진’의 지명유래가 전해져 오는 이야기 속의 화진포 호숫가의 여인상. 화진이라는 이름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화진포호 자리는 옛날 이화진이라는 부자의 땅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그의 집에 와서 시주를 청한다. 그러자 이화진은 시주 대신 똥을 퍼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며느리는 시아버지 몰래 쌀을 퍼다 주었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이곳에 있으면
화를 입을 것이니 자신을 따라 오라고 했다. 스님을 따르던 며느리가 송정리의 고청 고개에서
뒤 돌아보니 자신이 살던 집과 그 일대는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스님은 온데간데없었다. 절망한
며느리는 그곳에서 목을 매었다. 그렇게 생긴 호수는 이화진의 이름을 따 화진호가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바람이 자고 물결이 일지 않을 때는 물속에 담과 집이 보인다 한다.
화진포 (花津浦)는 ‘꽃 피는 나루’라는 뜻이다. 화진포는 호수 주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은 강과 바다의 합작품이다. 수만 년 동안 시나브로 부딪히기를
거듭한 결과다.호수와 바다 사이의 백사장이 화진포 해수욕장에 해당 되고 모래톱에 의해 바다
로부터 분리된 만이 호수가 된다. 화진포의 모래사장이 가두어 놓은 소호가 화진포호다.
화진포 석호, 화진호라 불리기도 한다. 화진포호는 중평천(仲坪川)과 월안천(月安川) 등이 흘러
드는 담수호로 둘레가 16㎞이고 면적은 2.39㎢ 나 되는 동해안 최대의 호수다.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여 많은 별장이 건설되었고 휴양지가 되었다. 특히 광복 후에는
김일성(金日成) 한국전쟁 후에는 이승만(李承晩)과 이기붕(李起鵬) 등이 별장을 지었다.이 건물들은
지금도 남아 있으나 군에서 관리하여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다.
화진포 해수욕장(花津浦海水浴場)
화진포 호 (花津浦湖)옆으로는 화진포 해수욕장이 시원스럽게 열린다.
1973년 개장된 화진포 해수욕장(花津浦海水浴場)은 수만년동안 조개껍질과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모나즈(monaz) 성분의 모래로 구성된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모래를 밟으면
소리가 나고 개마가 살지않은것이 특징인곳이며 백사장 길이는 약 1.7km이며, 수심 1~1.5m로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 기암괴석이 신비롭고 쉼터 정자 옆으로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 처럼
둘러쌓여 있다.송림으로 이어 가는 해변은 철조망 으로 쳐 있다.
우리 일행은 철조망 옆으로 돌아 콘도 앞 금강송 숲길 따라 트레킹을 이어 간다.
울창한 송림 으로 둘러 쌓여 주변 경관이 끝내주는 금강송 숲길이다.
울창한 송림을 벗어 나니 구금도의 상징인 거북이 상 포토존과 화진포 해수욕장이 시원스럽게
펼쳐 지고 오름길 언덕에 화진포의 성이 송림 속에 모습을 드러 낸다
김일성 별장 옥상 에서본 화진포 해수욕장의 쪽빛 바다
김일성의 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의 城"은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켯으며 당초 독일 건축가인 H.Weber(베버)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 하였는데 해안 절벽위 송림속에 우하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城)”으로 불리워 졌다.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별장”
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후 6.25 전쟁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별장 에서는 해변과 금구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금강산과 해금강이 살짝 모습을 비추는 최고의
전망이다.이곳에는 옛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를 비롯해 김일성 가족들이 사용했던 가구와 집기 등
각종 유품들이 모형물로 전시되었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화진포해변의 전망이 일품이다.
응봉(鷹蜂)전망대 에서 본 화진포 호수 와 해수욕장
김일성 별장을 3층 까지 돌아 나와 응봉산 트레킹을 이어 간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위치한 응봉(鷹蜂, 122m)은 옛날부터 화진포 호수 동쪽에 위치한
높은 산이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고 하여 매 "鷹'자를 써서 응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상 오름길은 높이에 비해 거리가 상당 하다.솔 숲길을 오르 내리며 한참 오르고 오르니
오름길 전망대 부터는 조망이 너무도 멋스럽고 한폭의 동양화 이다.
응봉 정상에 서니 ‘좌 화진, 우 동해’라 언뜻 보기엔 어느 것이 호수이고 어느 것이 바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시원하게 트인 경관이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건 그대로 작품이 된다.
앞으로 펼쳐지는 동해바다의 풍광이 절경이다. 파란 바다는 하늘과 희미한 지평선을 그어놓고
일렁이고 있다.
거진 등대(무인등대)주변을 해맞이공원으로 단장/해맞이교 에서 이곳으로 하산 했어야 되는데??
거진 등대 해맞이공원 오름 입구 계단
우리 일행은 정상 에서 지그 자그 길 따라 거진항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하산길 해맞이 공원 이정표 따라 내고 내리니 해맞이교에 도착 한다.해맞이 교(橋)를 지나
등로는 얽힌다.마을이 가까워 지는 길 따라 내리다 보니 해맞이 등대고원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마을 뒷길로 내린다.한참을 내리니 동화사이다.전통 시장을 지나 거진항 등대
방향으로 이동 한다.
거진항(巨津港)은 5백여년전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꼭 클 '거(巨)'자와 같이 생겨 큰나루 즉 거진이라 불리고 있다는 전설이 뒷받침하듯
태백산맥 줄기의 구름이 해안을 에워싸고 있어 오래전부터 천혜의 어항으로 발달해왔다.
거진항의 최대인구는 오징어가 가장 호황하던 1970년대 당시 인구는 2만5천명이었으며
1981년 소도읍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초가집의 초라한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거진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태 어장으로 명태축제가 열리는데 명태의 변신을 알아보면...
북어 명태 황태 코다리 생태 동태로 동태는 얼려 있고 생태는 축 늘어져 있고 코다리는
4마리가 코에 꿰어서 약간 꾸덕하게 말려 있고 북어는 패기 좋게 방망이 처럼 꼿꼿이 서 있다
따라서 먹거리로는 “동태찜” “동태전” “동태튀김” “동태찌개” “동태순대”와 생선가스에
비타민이 풍부한 명란젖으로 다양하게 변신한단다.
우리 일행은 거진 무인등대 해맞이 공원 진입 입구 에서 단체 사진을 찌고 대기중인 버스에
승차 식당 으로 이동 한다.
우리 일행은 제비호 식당에 들려 명태 지리탕에 하산주 겸 식사를 하고 귀가길을 재촉 한다.
6시가 넘으면 송지호 타워를 오를수 없다네요
우리 일행은 버스에 승차 후 귀가 길 송지호 해변 타워 부근 과 울산바위 휴게소 에서 잠시
휴식후 귀가길을 재촉 한다.
송지호해변은 화진포해변과 같은 모나즈 성분의 백사장이 길이 2㎞, 폭 100m에 펼쳐져
있는 곳으로 물이 맑고 수심이 낮고 깨끗한 백사장 전면으로 주위의 경관이 수려한
죽도(竹島)가 동해바다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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