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손자 형련아
전남 순천시 조곡동 황영실
입춘이 지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내일을 앞두어선지 봄이 완연해 따뜻한 날씨구나. 외할머니 사는 순천은 홍매화, 청매가 여기저기 피어나 봄바람에 향기를 전해오고 있다.
먼저 나의 첫 손자 형련이의 수시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자랑스럽게,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단다.
형련아! 이처럼 세월은 엊그제 할머니 첫 손자로 태어난 것 같은데 곧 대학입학을 하게 되었구나. 아직도 강원도 쪽엔 눈 소식이 요란하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세상만사가 아니, 인간사가 요지경 속이고 수능점수로 인해 적당한 학교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너 또래 청소년을 위해 할미는 기도를 쉴 수 없구나. 광주에 계시는 네 할머님도 같은 마음일 줄 안다.
형련아! 네가 태어나던 18년 전 단오날! 엄마아빠는 중매로 1년간 교제하다 결혼하여 신혼여행지에서 허니문 베이비로 무엇이 그리 바빠 9삭둥이로 너를 낳았다. 겨우 2.5Kg이여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고 사흘만에 퇴원하여 집에 와 너는 낮과 밤이 바뀌어 백일이 될 때까지 부모님을 힘들게 했단다.
첫아이 키우기가 힘드는데 넌 까실거려 업는 것도 안는 것도 안되고 꼭 어깨에 높이 들쳐 메야만 잠들었다. 직장에서 피곤해 돌아온 아빠, 레슨(피아노)하는 엄마는 밤새 너를 교대로 어깨에 들쳐메고 집안을 서성거려야만 잠들곤 했어. 이 할미는 멀리 떨어져 사느라 도울 수도 없고 딸의 고생이 말이 아니여 순간 너를 욱박지르기도 했단다. 손가락도 심히 빨아 뼈가 다 보여 입원까지 했었단다. 광주 계신 할머니도 도와주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렸지….
신혼재미도 모른 채 너를 임신하고 낳아 엄마가 빨리 되어버린 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잘했다는 마음인데 그 당시는 좋은 지를 모르고 살았단다. 이 할미도 쉰이 막 지나 할머니가 되어 참 많이도 어색해고 얼떨떨 했었다.
그러던 우리 형련이가 돌 지나고 3살 7살 때 어찌나 책을 좋아하고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밤새도록 밖에만 서 있는 전봇대는 아무 간섭받지 않고 밖에 있을 수 있으니 부럽다는 동시를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읊조렸다. 해가지면 부모님이 씻고 밥 먹게 들어오라는 게 싫어서 말이다.
초등6년 내내 영재로 자라더니 국제중학 3년간도 전교 3등 밖을 넘어가지 않았고 과학고를 들어가 2년 마치고 이렇게 좋은 대학(수시 3군데 합격)을 정하고 입학식만 기다리고 있구나.
형련아! 넌 초등학교 시절에도 12시안에 잔 적이 없었고 중.고 때도 새벽 2~3시에 자야만 한 고단한 생활에 네 엄마도 너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니.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너 스스로 그렇게 공부를 하니 엄마인들 제대로 잘 수가 있었겠니. 한참 성장기에 호르몬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네 동생(여중3) 유빈이는 키가 170cm나 되는데 남자인 너는 2cm 더 크니 앞으로 5~6cm는 더 커야겠지. 아빠와 엄마도 작은 키가 아니니까. 남자는 군대 가서도 큰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오죽 스트레스 받았으면 머리가 그리 빠지더니 합격 소식 이후 멈추었다지. 엄마 역시 그 날씬했던 몸매가 살이 쪄 고민했는데 이제 운동시작하고 좋아져간다는 소식에 고3을 둔 우리네 실정이 세계적으로 무서운 것 중에 제일인 것만 같구나.
형련아! 네 엄마 초,중,고 다닐 때 올백에 각종 상장이 이루 셀 수 없이 많았고 반장도 10년 이상, 600여명 입학식 날 수석 합격으로 구령대에 올라 선서를 했던 30여 년 전 이 할미도 자식 땜에 어깨가 으쓱하고 어머니 회장도 했었다. 네 엄마도 형련이 때문에 고생 끝에 나날이 행복하겠지.
형련아! 넌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날도 무거운 책가방 메고 와 장례식 한 쪽에서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부모님이 극성부리지도 않는데 너 스스로가 그랬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네가 다녔던 학원에서 보조 강사로 시간당 만원씩 5~6시간 아르바이트로 한다는 소문 들었다. 대단하다. 훌륭하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형련아! 공부보다 더, 더, 크고 중요한 것. 양가가 3대째 기독교 집안이니 신앙생활 잘하는 일과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만은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네 부모님처럼 성실하게 화목한 가정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18년 결혼생활에 네 부모님은 위기라는 걸 모르고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을 본보인 분이시다. 꼭 이런 좋은 환경 속에 키워 준 부모님 공경 잘하면 너 역시 대를 이어 복에 복을 받고 만사형통 될 줄 믿는다.
노인네 잔소리로 들리니? 이제 그만 총총 끝낼게.
다시 한번 형련이 합격과 입학을 눈물나게 축하한다.
(이번 1학기 마친 손자가 전과목 만점이여 장학생이 되었답니다.)
2014. 2. 18
순천에서 할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