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마도 현재 포항역에서 마지막으로 타는 기차라는 생각에 승차 전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포항을 떠나 서울, 옥천으로 가는 길이다.
2교시 마치고 급하게 역까지 와서 삶은 계란 3개와 생수 한 병을 사서 기차에 올랐다 11:25 포항 출발 기차는 생각보다 승객이 자리를 많이 채웠다. 13:18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서울로 가는 KTX 환승 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 대합실로 나갔다가 코레일 라운지로 올라가서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빼먹고 시간에 맞추어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서울가는 KTX산천은 제 시간에 정해진 위치에 섰다.
아~ 그런데, 8호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머리에 번쩍! 내 자전거!!
순간 판단을 해야했다. 포항에서 동대구로 오는 무궁화호 1756 열차에 두고온 자전거를 가지러 갈 것인가, 아니면 자전거는 일단 포기하고 서울 가는 KTX산천 408호를 탈 것이냐. 자전거는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 서울행 KTX-산천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부터 해야하나?
1. 나는 자전거를 무궁화호 1756에 두고 왔다.
2. 나는 지금 서울로 가는 KTX-산천을 타고 상경 중이다
3. 2박 3일 일정으로 짜여진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4. 자전거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소중한 것이기에 반드시 찾아야 한다.
13:42 정시에 KTX-산천이 출발한다.
13:43 숨을 돌리고 해결방안을 궁리하는데 카드회사 전화가 걸려온다. 어제 통화하다가 오늘 다시 걸기로 했던 것다. KTX-산천 여승무원에게 동대구역 유실물센터 전화번호를 물어봐야겠는데, 카드회사 상담직원은 왜 그리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용건 외에 면피할 여러 조항을 알려주느라 시간만 자꾸 흐른다.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으로 전화번호 검색. 동대구역 유실물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유실물이 들어온 게 있는지 물어보아야겠다.
13:48 그런데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전화번호가 맞지 않다. 054-940-2222는 잘못된 번호다. 다른 번호를 찾아서 걸어보니 없는 번호라고 한다. 나중에 보니 마음이 급하다보니 지역번호를 잘못 눌렀다. 대구는 053, 내가 사는 경북은 054. 한 쪽 머리로는 대구가 053이라고 알고 있는데 허둥대며 누르다보니 손은 다르게 작동했던 것이다.
053-954-7788, 053-955-7667 이런 전화는 소용이 없다. 1544-7788 역시 유실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괜히 ARS 음성메시지 듣는다고 시간만 흐른다.
053-940-2222이 동대구역 유실물센터 전화번호다.
13:53 신호가 가고 상대방이 받으면서 뭐라고 하다가 끊어진다.
13:54 다시 전화를 걸었다. 동대구역 유실물센터 남자 직원은 "자전거요?" 하면서 놀래면서 신고 들어온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청소 중일 테니 한 번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13:56 유실물센터에서는 무궁화호 1756에는 자전거가 없다고 하고, 유실물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심쩍다. 내 자전거는 한 이십년은 된 고물 자전거인데 일부러 기차 안에 둔 것을 들고갈 정도로 탐을 낼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14:16 유실물센터 다른 번호로 내게 연락이 왔다. 분실물 신고를 접수한 직원과는 다른 아마도 상사인 듯했다. 자기들이 찾아보았지만 무궁화호 기차 안에는 자전거는 없다고 한다. 내가 플랫폼 CCTV를 보면 혹시 자전거를 들고 간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CCTV를 보려면 경찰에 신고를 접수하라고 한다. 유실물 신고가 없고 기차 안에도 없다면 누군가 들고간 것이리라.
14:25 054-112로 분실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려면 직접 가서 조서를 작성해야 하고, 내가 현장에 있어야 출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지금 서울로 가는 KTX-산천에 탑승하고 있고, 동대구역으로 다시 갈 상황은 아니다. 서울역에 내려서 경찰에 가거나 대구로 가서 정식 접수를 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철도경찰에 의뢰하라고 알려준다.
그렇군~ 철도경찰대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KTX-산천 여승무원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았더니, 잠시 후 쪽지에 적어서 번호를 알려준다.
14:32 053-955-6602로 전화를 걸었다. 철도경찰에서는 일단 알아보겠다고 한다. 이후 철도경찰과 네 번의 통화를 했다. 마지막 15:07 통화에서 철도경찰이 무궁화호 1756 열차 안에 얌전히 누워있는 내 자전거를 찾아냈다는 연락이 왔다. 그보다 조금 일찍 15:06 문자로 내 자전거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본인 자전거 맞으신가요???"
사건 발생 한 시간 남짓 자전거 사건은 끝났다. 동대구역 철도경찰은 30분 안에 사건을 간단히 해결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정식 명칭은 부산지방철도 특별사법경찰대 동대구센터. 053-955-6602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자전거는 서울역유실물센터에서 찾기로 했다.
15:10 동대구역유실물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자전거를 찾았다고...그리고 서울역으로 보내겠다고...(뒷북이당~)
KTX-산천 408은 조금 연착. 서울역에 내려 유실물센터 위치를 확인하고 들어갔다. 동대구역유실물센터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섯 시 이후에 서울역에 도착한다고 하고, 유실물센터는 밤 11시 30분까지 문을 열어둔다고 한다. 나는 안심하고 연수 장소로 향했다. 연수 마치고 밤 9시 넘어 서울역유실문센터로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 유실문센터 사무실 구석에 자전거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직원은 자전거를 들고 오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렇군~ 음료수라도 사들고 갈 걸 빈손으로 갔네...
자전거에 요런 딱지가 붙어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숙소까지 돌아왔다. 숙소인 바비엥2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없는 모양이다.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숙소 안에 가지고 들어가도 된다고 한다. 내 침대 옆에 고이 모셔놓았다. 한나절 떨어져 있으면서 더욱 애정이 깊어졌다.
누군가 내게 자전거 가격을 물어보았다. 실제 이 자전거는 2007년 1월에 캄보디아 씨엠이럽에서 12만 리엘(30달러)를 주고 아들을 위해 산 것이다.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는 일본 高井戶 경시청에서 사용했다. 우리 돈으로 3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이 자전거는 내게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닌 보물이다. 게다가 잃어버렸다 찾았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첫댓글 ㅎㅎ 뭔 일이래요. 세상에. 놀래라.
나도 오랫동안 보았던 자전거네~
소중한 자전거를 찾았으니 다행!~
관련 직원들의 수고는 당연하지만,
작은 감사표시 아쉬움~^^
조만간 어떤 표시를 하려고 합니다. 수요일 시간 되시면 예술마당 솔 '첫술회' 강좌에 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