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샘터』와의 인연
- 월간『샘터』폐간 기사를 읽고 옛 추억이 떠올라
윤승원(수필문학인, 前 대전수필문학회장,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저자)
『월간 샘터』가 12월호를 끝으로 폐간될 예정이라는 조선일보(10. 21일자)기사를 읽었다.
피천득·법정·최인호·이해인 등 ‘스타 필자’들로 사랑받은 교양지였는데, 연간 3억 원 적자 누적으로 무기휴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내년 창간 50주년을 목전에 두고 사실상 ‘폐간’과 다름없는 결정이어서 국내 출판 잡지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한다.

▲ 나의 편지글이 실린『샘터』간행물『엄마에게 쓴 짧은 편지』(1995)
나 역시『월간 샘터』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기에 이런 기사를 접하고 안타까움이 남달리 크다. 나의 글이 처음『월간 샘터』에 실린 것은 1975년이다. 20대 초반 ‘농촌청년 시절’이었다. 그 해 3월호에 이 글이 실리고, 9월에 군에 입대했으니, 새파란 청년 시절이었다.
음력설을 양성화하느냐 마느냐 논란이 뜨거웠던 시절에 찬성 쪽 의견을 보냈더니, 가장 앞자리 지면에 비중 있게 반영해 주었다. 이 글이 실릴 당시에는 필자 주소까지 상세히 게재돼 있어 전국에서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성원의 편지를 받았던 기억도 난다.

▲ 내 글이 처음 실린『월간 샘터』1975년 3월호
■ 찬반양론 / 음력(陰曆)설
<찬성> 시골엔 역시 음력설
윤승원
해마다 음력 섣달그믐께만 되면 귀향인파 몇 만 명이 서울역을 빠져 나갔다느니, 고속버스 터미널에 암표상이 득실거린다느니, 하는 일들이 대단한 뉴스거리로 보도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음력설을 지킨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시골 사람들은 음력 정월 초하루를 기점(起點)으로 절기를 따지고, 거기에 맞춰 일 년 농사 계획표를 짜고 있다. 따라서 농사일의 시작이 되는 설을 큰 명절로 삼아 조상께 차례를 드리고, 서로 일 년의 행운을 빈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나는 이중과세란 도시인에게만 국한된다고 믿는다. 시골에서는 양력설을 쇠고 음력설을 또 쇠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양력설엔 지나친 인사치레에 급급하다가 음력설은 예전처럼 지키려는 일부 도시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동네에 스스로 개명했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양력설을 주장하고 그렇게 실천했다. 그러나 그 이웃집조차 그 집에서 양력설을 쇠는 것을 몰랐으니 세배객이 한 명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음력설날, 그 집의 노인을 찾아뵈려는 세배객이 예년처럼 몰려들어, 없는 술을 대접하느라 혼이 났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이처럼 ‘독불장군’ 노릇을 할 수 없다. 제발 시골 사람만이라도 음력설을 그대로 쇠도록 양성화 시켜 주었으면 한다. (301-34 충남 청양군 적곡면 중추리 가래울45)
그 후『월간 샘터』에서 공모한 <어머니에게 쓴 짧은 편지>(‘한국에서 가장 짧은 편지’ / 100자 이내) 글이 채택돼 기념품으로 <실금 반지>도 받았고, 내 편지글이 실린 <단행본>도 선물로 받았다.

▲ 샘터사에서 보내온 기념품 <실금반지>
이 <짧은 편지 글>과 <실금 반지>선물은 지금도 거실 진열장에 가보(家寶)처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금반지 선물 속 메모 쪽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님이 그리운 어머니에게 띄운, 한국에서 가장 짧은 편지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엄마에게 쓴 짧은 편지>.
자식의 편지를 받고 기쁨에 겨워 함박웃음 지으실, 아니 저세상에서 눈물 글썽이실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저희도 코끝이 찡해 옵니다. 편지에 실은 그 동심, 어머니를 향한 그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품고 평생을 사시길 빌겠습니다.
보내 드리는 이 반지는 어머니를 통해 님과 샘터가 맺은 <사랑의 증표>입니다.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이 쪽지 글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보내 드리는 이 반지는 어머니를 통해 님과 샘터가 맺은 <사랑의 증표>입니다.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증표>인데 어찌 소홀히 다루겠는가.

▲『월간 샘터』사에서 보내온 단행본과 금반지 선물에는 <금반지를 보내주는 이유>가 편지글 메모 형식으로 적혀 있다.
※ 나의 편지글 내용
<엄마에게 쓴 짧은 편지>
열 손가락 모두 갈라져
반창고 붙이고 다니신 어머니.
돈도 세지 못하셨지요.
제가 휴가 오면 ‘농협 아가씨 상냥하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셨는데,
그 아가씨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도 다
어머니 덕이 아니겠어요?
― 윤승원(43세, 대전 서구)

▲『월간 샘터』단행본 <엄마에게 쓴 짧은 편지>에 실린 나의 편지글 내용(163쪽)

▲ 조선일보 기사(1994.11.20일자)

▲ <엄마에게 쓴 짧은 편지> 샘터 단행본(조선일보 광고)
바라건대,『월간 샘터』를 폐간 시키지 말고 누군가가 인수하여 좋은 잡지로서 명맥을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
어느 계층,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두루 독자들에게 좋은 잡지로 각인된 잡지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랑스러운 한 나라의 ‘명품 잡지’ 역사로 이어지길 바란다. ■
2019. 10. 21.
첫댓글 우 리 출판문화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책은 저도 까끔 철도여행을 하면 사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출판문화의 지각변동은 저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기백교수가 "한국사시민강좌"를 출간하다가 중단됨을 보고
제가 "역사시민강좌"라는 책을 내자고 제안을 했으나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붕괴로 이루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사보지 않는 상황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런지요, 모든 사람이 책보다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풍토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닐 가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계속 출판이 어려우면 e-book으로라도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대중적인 교양 잡지마저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나 봅니다. 문학 전문지도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구책으로 회원제를 도입, 회비로 출판비를 충당하는 문예지도 많습니다. 문예진흥기금이라고 해서 국가 보조금도 받고 있습니다. 샘터 같은 수준 높은 교양지는 어느 재력가가 인수하여 살려 봤으면 합니다. 정 박사님의 고견도 참고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