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제6강 7. 불국토(佛國土) 자, 이제 ‘불국토(佛國土)’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진정한 ‘불국토’란 무언가! 진짜 우리 ‘불국토’! 이 법당에 처음 내가 참배하러 왔을 때 ‘불국토’를 참 잘 건설했구나 ! 아마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법당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본 것으로서는 그렇습니다. 법당 안만 우리가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법당이 있을까? 외형적으로는 일단 잘했다! (대중웃음)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좋은 법당에서 좋은 ‘불국토’에서 살면은 우리마음도 역시 ‘불국토’가 되겠죠. 아 이제 진정한 ‘불국토’란 무엇인가 ! 이런 내용입니다 . 爾時에 長者子寶積이 說此偈已하고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이시 장자자보적 설차게이 백불언 세존 是五百長者子가 皆已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하며 願聞得佛國 시오백장자자 개이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원문득불국 土淸淨하나이다唯願世尊은 設諸菩薩淨土之行하소서 토청정 유원세존 설제보살정토지행 때 장자의 아들 보적이 이 게송을 설해 마치고 세존이시여 오백장자의 아들들이 몸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습니다. 그랬으니 원컨대‘불국토’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불국토’ 청정, 불국토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을 듣고 싶어합니다. ‘불국토’의 훌륭함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합니다. 오직 원 하옵나니 보살의 정토의 행을 설해주십시오. 정토의 행! 정토나 ‘불국토’나 다를 바는 없습니다. 우리가 ‘불국토’를 수용하려면 수용할 만한 인격이 돼야 돼. 수용할만한 인격이 되면 어디서든 ‘불국토’고 어디서든 정토다. 말하자면 이런 뜻이 되겠네요.
佛言善哉라 寶積아 乃能諸菩薩하야 問於如來淨土之行하니 불언선재 보적 내능위제보살 문어여래정토지행 諦廳諦廳하야 善思念之하라 當爲汝設하니라 於是에 寶積이 제청제청 선사념지 당위여설 어시 보적 乃五百長者子로 受敎而廳하니라 내오백장자자 수교이청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 훌륭하다 보적이여! 능히 모든보살을 위해서 여래의 정토의 행은 여래의 정토! 불국토죠. ‘불국토’ 에 나아갈 수 있는 그 수행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물었으니 제청(諦廳) 제청(諦廳)하라 ! 잘 듣고 잘 들으라! 그리고 선사념지(善思念之)하라, 잘 생각하라! 사유하라! 문(聞).사(思).수(修), 아닙니까? 당연히 그건 따라다니는 것이죠. 사유를 깊이 해야 돼요. 어떤 한 구절도, 어떤 한 구절도 우리가 마음속에 새겨! 화장실에도 그냥 가지 마. 한 구절 딱 기억하고 그것을 사유하면서가. 잠들 때도 그 구절을 하나 머리에 하나 떠올리면서 진정한 뜻이 무엇일까? 불국토가 그렇잖아요? 진짜 ‘불국토’가 무엇일까? 그래 생각하고 잠들면 잠도 잘 오고 잠잘 때도 편안하고 그렇습니다. 당위여설(當爲汝設)하리라. 어떤 때 보적과 그리고 오백장자의 아들과 수교이청(수교이청)하니라 하니라. 아들과 더불어 함께 가르침을 받아서 듣더라. 佛言하사되 寶積아 衆生之類가 是菩薩佛土니라 所以者何오 불언 보적 중생지류 시보살불토 소이자하 菩薩이 隨所化衆生하야 而取佛土하야 隨所調伏衆生하야 보살이 수소화중생 이취불토 수소조복중생 佛土하며 隨諸衆生이 應以何國으로 入佛智慧하야 而取佛土 불토 수제중생 응이하국 입불지혜 이취불토 隨諸衆生이 應以何國으로 起菩薩根하여 而取佛土하니라 수제중생 응이하국 기보살근 이취불토 所以者何오 菩薩이 取於淨國은 皆爲饒益諸衆生故니 譬如有人 소이자하 보살 취어정국 개위요익제중생고 비여유인 이 欲於空地에 造立宮室이면 隨意無礙어니와 若於虛空이면 욕어공지 조립궁실 수의무애 약어허공 終不能成하나니 菩薩도 如是하야 爲成就衆生故로 願取佛國하 종불능성 보살도 여시 위성취중생고 원취불국 나니 願取佛國者는 非於空也니라 원취불국자 비어공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사대 보적이여! 아~~처음부터 아주 내가 별을 아주 몇 개 쳐 놨네! 중생지류(衆生之類)가 시보살불토(是菩薩佛土)니라! 중생지류(衆生之類)가 시보살불토(是菩薩佛土)다! 중생이 보살, 불토다 말이야 중생이 불토다. 유마경의 종지는 뭐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우리 한번 같이 할까요?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대중후창) 이게 유마경의 종지고 불교의 근본정신 입니다. 무슨 견성성불 아니에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주 현학적인 그런 내용도 아니에요.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 언제나 아플지! 우리는 저 세상에는 아픈 사람도 많고, 정말 불행한사람도 많고 고통 받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지금. 언제나 우리가 아플지! 특~히 서울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기 저~기차타고 올라오신 분들은 서울 역에 노숙자들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 거지들보다요 거지숫자가 50~60년대보다 한 천배 더 거지가, 한 천배 쯤 더 불어났어요. 숫자가 그렇게 많아졌습니다. 그 얼마나 우리가 어렵게 살던 때입니까? 새마을 운동 할 때 60년 초 그때 거지들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거지가 그때보다도 한 천배쯤 더 불어났다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이번 추석에 어떤 기자가 그 사람들 하고 같이 2박3일 을 생활하면서 취재를 했는데 내가 샅샅이 다 읽어 봤어요. 처참해서 이루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그런 상황이 그 속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이 손도 못 미치고 정부의 행정이 손도 못 미치고 아무것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그런 사람들이 서울시내에 수 만 명이 깔려 있습니다. 역, 역이란 역, 곳곳에 지방을 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따뜻한 손길이 너무 필요 합니다. 佛言하사대 寶積아 衆生之類가 是菩薩佛土니라 불언 보적 중생지류 시보살불토 중생지류가 보살의 불토다! 내가 참 이 말을 읽고는 정말 불교가 이 것이구나 ! 고통 받고 힘들고 어두운데서 힘들게 사는 그 중생들 그들에게서 우리가 ‘불국토’를 발견해야 되고 보살의 불토를 발견해야 됩니다. 所以者何오 菩薩이 隨所化衆生하야 而取佛土하며 소이자하 보살 수소화중생 이취불토 소이지하오 왜 그러냐? 왜 중생지류가 불토보살이냐? 隨所調伏衆生하야 而取佛土하며 수소조복중생 이취불토 보살이 수소화중생하야 보살이 사람을 위해서 말하자면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불토를 만든다, 취한다, 한다는 것은 불토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절을 세운다. 도량을 세우고 집을 짓는다. 다른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사람이 곧 불토죠. 사람이 곧 법당이야! 사람을 위한 법당이기 때문에! 隨諸衆生이 應以何國으로 入佛智慧하야 而取佛土하며 수제중생 응이하국 입불지혜 이취불토 수소조복중생 하야, 조복할 중생들을 따라서 불토를 만든다, 불토를 취한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이 응당히 어느 나라로 부터 부처의 지혜 불지에 들어가서 불토를 취한다. 隨諸衆生이 應以何國으로 起菩薩根하여 而取佛土하니라 수제중생 응이하국 기보살근 이취불토 어느 나라로부터, 자기들이 맞는 어떤 가르침을 통해서 모든 중생이 응당히 어느 나라로서 보살의 근원을 일으키며 불토를 취한다, 그러니까 전부 중생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거기에 따라서 보살이 거기에 중생을 위한 노력, 중생을 위한정진 그것으로서 불토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所以者何오 菩薩이 取於淨國은 皆爲饒益諸衆生故니 소이자하 보살 취어정국 개위요익제중생고 왜냐하면 보살이 취어정국은 청정한 불토 정국, 이것을 취하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것은 건설하는 것은 다 요익제중생고 입니다. 모든 중생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지 다른 거 아무것도 없다. 불교는 중생을 위한 것이지 그 이외에 다른 거 아무것도 없다. 불교수행을 위한 근본은 중생을 위한 자비심, 바로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譬如有人이 欲於空地에 造立宮室이면 隨意無碍어니와 비여유인 욕어공지 조립궁실 수의무애 여기 비유가 나오죠.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허공에다가 공지에다가 빈터에다가 궁전을 세울 것 같으면 수의무애라 맘대로 아무 장애를 받지 않고 짓거니와 若於虛空이면 終不能成하나니 야어허공 종불능성 만일 허공에 지을 것 같으면 지을 수가 없다. 菩薩도 如是하야 보살도 여시 보살도 이와 같아서 爲成就衆生故로 願取佛國하나니 위성취중생고 원취불국 중생들을 성취하고자 하는 까닭에 성취라고 하는 것은 제도, 보살핌, 구고구난, 이 모든 것이 성취라는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성숙시킨다. 중생들을 위해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불토 취하기를 원한다. 불토 갖기를 원한다, 절 짓기를 원한다 이거죠. 願取佛國者는 非於空也니라 원취불국자 비어공야
‘불국토’ 취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허공에다가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없이 공허하게 목적도 없이 소의응신해서 아무리 참선해봐야 그것은 성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불의 기본은요 불교의 기본은 여기비유 에서도 밝혔듯이 중생들을 위한 연민심, 자비심 이것이 근본입니다. 비유하자면 절을 짓고 궁전을 짓고 아니면 농사를 짓고 과일나무를 심고 할려면 무엇이 기본이죠? 땅이 기본입니다. 땅이 기본 이듯이 땅에 건물을 지을 수 있고 땅에 다가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그와 같이 무슨 뭐 절을 세운다, 정진을 한다, 참선을 한다, 염불을 한다, 기도를 한다, 성불을 한다 온갖 불교적인 그런 그 뛰어난 일을 하는데 그 가장 기본 되는 것 , 왜 하느냐? 왜하느냐? 그 기본은 중생을 위해서 한다가 돼야 돼. 중생을 위해서, 그것이 땅과 같습니다. 건물 짓는데 땅과 같습니다. 자비심이 없고 연민심이 없으면 아픈 중생, 앓고 있는 중생, 고통 받는 중생에게 연민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고 정말 모래위에 집 짓는 거예요. 아무리 여래 해 동안 참선을 한다, 염불을 한다, 경을 본다 해도 사상누각이에요. 그거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자비심, 연민심 없이 수 십 년 공부해도 아무것도 이룬바가 없죠. 아무 것도 이룬 바가 없습니다. 이거 아주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우리는 지금 불교를 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 않는지 사실 의심스럽죠. 왜냐? 중생에 대한 자비심과 연민심이 없으니까! 땅이 없는데 우리가 건물을 지으려고 하죠. 끊임없이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 거예요. 사상누각은 그래도 모래밭이라도 있지 이건 그런 모래밭도 없는 거예요. 모래밭도 없이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비유가요 아주 귀한 거예요. 이대목이 ,중생이 ‘불국토’다 말이야! 여기 그다음에 이제 보살의 정토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보살의 삶, 보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이에요. 정말 우리가 보살하면 이상적인 인물 아닙니까? 불교에사 정말 끊임없이 자기정진 열심히 하고 끊임없이 또 정진한 만큼 자기능력을 중생들에게 베풀고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에 언필칭 말하죠. 끊임없이 남을 위해서 베풀고 끊임없이 자기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게 이제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그 이상적인 인물의 아주 물론 차원이 높습니다만 그들의 인생이란 어떤가!
8.보살의 정토(淨土) 寶積아 當知하라 直心이 是菩薩淨土니 보적 당지 직심 시보살정토 보적아 마땅히 알아라. 직심이 시보살정토야! 곧은 마음 ,쭉~ 곧은 마음, 구부러지지 않고 거기에 무슨 뭐 머리 굴리지 않고 본심대로, 본심대로 사는 그 사람이 보살정토야! 菩薩이 成佛時에 不諂衆生이 來生其國하며 深心이 是菩薩淨土니 보살 성불시 불첨중생 내생기국 심심 시보살정토 寶積아 當知하라 直心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不諂보적 보적 당지 직심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불첨 衆生이 來生其國하며 중생 내생기국 보살이 성불할 때 불첨중생이 내생기국이라 그랬어요. 보살이 성불했을 때 속임이 없고 아첨이 없고 머리 굴리지 않는 그런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이거예요. 조금이라도 머리 굴리고 무슨, 자기 무슨 이해관계를 저울질하고 계산하고 하는 그런 사람은 ‘불국토’에 태어날 수가 없어요. 불첨중생이라고 얘기했어요. 정말로 머리 굴리거나 속이거나 어떤 거기에 무슨 삿된 욕심을 개입시키거나 하는 그런 일이 없는 중생이 그런 나라에 태어난다.
深心이 是菩薩淨土니 심심 시보살정토 그 다음에 심심(深心)! 했어요. 깊은 마음. 심심이 시보살정토야 왜냐?
菩薩이 成佛時에 具足功德衆生이 來生其國하며 菩提心이 是 보살 성불시 구족공덕중생 내생기국 보리심 시 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大乘衆生이 來生其國하며 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대승중생 내생기국
보살이 성불할 때 공덕을 구족한 중생이 거기에 태어난다. 공덕을 구족한, 모든 중생을 다 갖춘 중생들이 다 거기에 태어나게 되어 있어요. 이건 이제 다른 뜻으로 표현하면은요 내가 성불하면 모든 사람이 다 성불한 사람으로 보인다. <능엄경>에도 그런 말이 있어요. 一人(일인)이 發眞歸元(발진귀원)하면 十方虛空(시방허공)이 悉皆銷殞(실개소운)이라. 그리고 <선요>에도 보면은 進云, 此事(차사)는 且止(차지)하고 只如西峰(지여서봉)은 今日(금일)에 十方聚會(시방취회)하야 選佛場開(선불장괘)하시니 畢竟(필경)에 有何祥瑞(유하상서)닛고, 오늘 고봉스님께서 이렇게 개당 보설(開堂普說)을 하시는데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하니까 山河大地(산하대지)와 萬像森羅(만상삼라)와 情與無情(정여무정)이 悉皆成佛(실개성불)이니라. 시방 중생들이 실개성불이니라! 아니, 유정무정까지도 실개성불이니라. 다 성불이다! 예를 들면, 사실은 그게 다 맞는 말이라. 성불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부처님 도 성불 못한 상태예요. 성불 못한 안목으로 보면 부처님도 성불 못했어요. 성불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저 강아지까지도 다 성불했어요. 그런 이치입니다. 알고 보면 아주 빤한 것이에요. 크게 어려운 내용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進云 旣皆成佛(기개성불)인댄 因甚(인심)하야 學人(학인)은 不成佛(불성불)이닛고 그런데 학인은 왜 성불하지 못했습니까? 이렇게 이제 따지죠. 그것도 전부 같은 내용으로 풀어나가는데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菩提心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大乘衆生이 來生其國하며 보리심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대승중생 내생기국하며 보리심이 시보살정토야. 보살이 성불했을 때 대승중생이 내생기국이라! 여기에 이제 대승이란 말이 비로소 이제 나오기 시작합니다.이 유마경을 탄하교(彈訶敎)라 배척하고 꾸짖는 교, 교상판석(敎相判釋) 오시교(五時敎)에 그렇게 이제 표현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승을 아주 여지없이 배척하고 꾸짖는 그런 내용이 좀 많아요. 대승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이겁니다. 우리나라는 요행히 정말 불교가, 대승불교가 전래되어가지고 대승경전을 무한히 볼 수가 있고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도 아직 대승경전이 들어가지 아니한 나라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 불교가 최상의 불교라고 그래요. 참, 우리가 보면 참 안타깝죠. 우리는 얼마나 그런 입장에서 다행인지 몰라요. 부처님께서 유언으로 열반경에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요의경(了義經)을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을 의지하지 말라! 그랬어요. 불요의경(不了義經)! 소승경전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거 볼 겨를이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유언 상으로 말씀하신 게 요의경(了義經)을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을 의지하지 말라 유언으로 하신 말씀이에요. 그게 오죽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겠어요? 布施가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一切能捨衆生이 來生其國하며 보시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일체능사중생 내생기국
모든 것을 능히 보시 할줄 아는 사람, 버리듯이, 버리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보시를 왜 버릴사(捨) 를 썼겠어요? 못 쓰는 물건, 쓰레기통에 버리는 마음으로, 전혀 미련 없이, 아무 조건 없이 , 못쓰는 물건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무슨 조건이 있겠어요? 그와 같은 마음으로 내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는 그런 마음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 희사 아닙니까? 기쁜 마음으로 버리듯이 주라는 말이야! 내 마음에 얼마 주었는데, 얼마 주었는데, 자꾸 그렇게 마음에 미련을 두면은 그건 보시한 게 아니에요. 그런 마음을 항복 받아야 돼죠.
持戒가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行十善道滿願衆生이 지계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행십선도만원중생 來生其國하며 忍辱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三十二 내생기국 인욕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삼십이상 相莊嚴衆生이 來生其國하며 精進이 是菩薩淨土니菩薩이 成佛 상장엄중생 내생기국 정진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 時에勤修一切功德衆生이 來生其國하며 시 근수일절공덕중생 내생기국 그 다음에 지계가 육바라밀이 전부 이제 보살의 정토라고 포현하고 있습니다. 지계가 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십선을, 십선도를 행해서 중생들의 원을, 만족하는 원을 만족하는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또 인욕이 보살의 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 삼십이상을 장엄하는 중생들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그렇죠. 우리는 참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린다든지 화난 모습을 하면은 세상에 가장 몹쓸 얼굴이죠. 그런데 생긴 건 어떻게 생겼든지 간에 상관없습니다. 늘 미소를 품고 너그러운 마음, 너그러운 어떤 얼굴표정을 떠~억 지으면 그게 32상이죠. 그게 32상이죠. 여기서 32상이라고 하는 것, 또는 80종호라고 하는 것은 아주 원만한 얼굴, 조금도 불평불만이 남아 있지 않은 얼굴, 그늘이 전혀 없는 얼굴, 인욕을 통해서, 인욕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살면 왜 화날 일이 없겠어요? 왜 얼굴 찌푸릴 일이 왜 없겠습니까? 부처님도 얼마든지 있었을 거예요. 외도 들이 찾아와서 별별 모함을 다 하고 별별 시비를 다 걸었을 때 왜 얼굴 찌푸리지 않았겠어요? 그렇지만 다 받아들이고 참고 속으로 다 소화하고 그러니까 온화하고 평화로운 얼굴을 항상 유지할 수 있었던 거죠. 정진이 시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일체 공덕을 부지런히, 부지런히 닦은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禪定이 時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攝心不亂衆生이 來生 선정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섭심불난중생 내생 其國하며 智慧가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正定衆生이 기국 지혜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정정중생 來生其國하며 내생기국 선정이 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섭심(攝心)이 불란(不亂)이다 마음을 잘 거둬들여 가지고 조금도 산란함이 없는 그런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지혜가 보살의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정정중생, 정정취라고 하죠. 반드시 성불하게 돼있는 그런 중생이 반드시 그 나라에 태어난다. 지혜가 있어야 그게 가능한 거예요. 지혜가 없으면요 다른 길로 헤맵니다. 다른 길로, 그리고 또 삿된 생각을 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정말 꼭히 성불한다 라고, 불자라고 꼭히 불교에서 퇴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지혜가 참 중요하죠. 四無量心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成就慈悲喜捨衆 사무량심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성취자비희사중 生이 來生其國하며 생 내생기국 그 다음에 사무량심이 보살 정토니 보살이 성불 할 때에 자.비.희.사를 성취한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사무량심(四無量心)! 참~ 불교의 여러 가지 낱말 중에서 아주 고급스럽고 좋은 낱말입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이건 전부 남을 위한 말입니다. 자기를 위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연민의 마음, 남을 기쁘게 해주는 마음, 그리고 남에게 끝없이 베푸는 마음. 四攝法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解脫所攝衆生이 來 사섭법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해탈소섭중생 내 生其國하며 생기국 사섭법(四攝法)이 보살정토(菩薩淨土)니, 보살들이 성불할 때 해탈소섭중생(解脫所攝衆生)이 해탈로서 거둬들여 준, 거둬 준 바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그렇죠. 뭐 사섭법이란게 다 중생을 위한 것 이죠. 方便이 是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於一切法에 方便無閡衆生이 來生基國하며 방편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어일체법 방편무애중 방편이 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 일체법이 방편무애중생이 일체법에 대해서 방편으로서 조금도 걸림이 없는, 닫힌 데가 없고 막힌 데가 없는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방편을 또 잘 써야 돼. 방편을, 너무 성질이 곧고 융통성이 없어가지고는 참 곤란하죠. 대중생활을 하다보면 그런 사람을 많이 보잖아요. 원칙주의자! 원칙주의자! 너무 원칙만 그렇게 내새워도 그것도 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방편을 잘~ 쓸 줄 알아야 돼죠. 여기에 이제 “방편무애”라고 했지 않습니까? 꽉 닫힐 애(閡) 자입니다. 그 성질이, 저 사람이 마음이 꽉 닫혔어, 갑갑해, 이런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보살이 성불할 때는 그런 중생은 한사람도 태어나지 않는다.
三十七道品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念處.正勤.神.足.根.力.覺.道衆生 삼십칠도품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념처,정근,신,족.근.력.각.동중생 이 來生其國하며 내생기국하며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이 보살정토(菩薩淨土)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사념처, 사정근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처. 팔정도 이러한 것을 갖춘 중생들이 부처님 나라에 태어난다. 廻向心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得一切具足功德國土하며 회향심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득일체구족공덕국토 회향심이 보살불토의정토이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일체를 구족한 ,일체공덕을 구족한, 일체를 구족한 공덕국토, 그러니까 그 국토는 아주 뛰어난 국토야. 모든 것을 다 구족한 그런 공덕국토야, 그 공덕을 갖춘 국토야 ,그런 것이 있는 국토이기도 하고 그런 것을 얻은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設除八難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國土에 無有三惡 설제팔난 시보살정토 보살 성불시 국토 무유삼악 八難하며 팔난 그래서 설제팔난이 시 보살정토다. 팔난을 설 하여 제거한다.팔난은 다 나와 있습니다.사전에! 일일이 뭐 이거 해석하려면 다 벌써~앞에 금방 나온 법수만 다 해석하려해도 끝이 없으니까 그것은 이제 사전에서 잘 참조하시기 바라고요 팔난을 설하여 제거한 중생들이 제거한것 이곳이 정토니 보살이성불 할 때에 국토에 사무팔난이 없으면 自守戒行하고 不譏彼闕이 是菩薩淨土니 자수계행 불기피궐 시보살정토 자수계행(自守戒行)하고,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不譏彼闕(불기피궐)이 是菩薩淨土(시보살정토)니 다른 사람의 잘못 된 것을 놀리지 아니한 사람이 보살의 정토다. 이 참 중요한 말입니다. “자수계행(自守戒行)하고 불기피궐(不譏彼闕)이라” 자기는 계행을 잘 지켜! 규칙 잘 지켜! 공부를 잘해! 아주 잘해! 딴 사람에 대해서는 좀 말하지 않아야 돼. 자기 좀 잘한다고 딴사람이 부족한 것, 피궐(彼闕), 다른 사람이 좀 부족한 것을 가지고 일일이 흠잡고 놀리고 흉보고 이렇게 하는 것 같으면 그건 차라리 자기가 좀 못하게 남 흉 안보는 게 났습니다. 자기가 못하고 남 흉 안 보는 게 났지 자기 잘하고 남 흉 보아버리면 이건 마이너스 예요. 더 못한 거예요. 결국은 ! 남 흉보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불기피궐(不譏彼闕)!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흠잡지 말라.흠 잡지 않는 것이 그런 그것이 보살 정토다. 그럼 그거 하나만 해도 돼요. “자수계행(自守戒行)하고 불기피궐(不譏彼闕)이라”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보살 정토다 이 말이에요. 菩薩이 成佛時에 보살이 성불시에 보살이 성불할 때에 國土에 無有犯禁之名하며 十善이 是菩薩淨土니 국토 무유범금지명 십선 시보살정토 菩薩이 成佛時에 命不中夭하고 大富梵行하며 所言이 誠諦하고 보살 성불시 명불중요 대부범행 소언 성제 常以軟語하며 眷屬이 不離하고 善和諍訟하며 言必饒益하고 상이연어 권속 불이 선화쟁송 언필요익 不嫉不恚하는 正見衆生이 來生其國 하나니라 부질부에 정견중생 내생기국 무유범금지명( 無有犯禁之名)이라 .범금이라는 것은 파계 했다는 소리입니다. 파계했다고 하는 이름이 없다, 말이야 그 마음이 범했다! 파계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보살이 성불했는데 그런 소리가 들리고 그런 소문이 들리면은 어디 한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다면 참, 보살의 정토라고 할 수가 없죠. 그 다음에 십선! 십선이 보살의 정토니 보살이 성불 할때에 중간에 요절하지 않는 사람, 중요 하죠. 우리가 계행을 실천을 잘 닦으면은 정말 천수를 누리고 삽니다. 천수를 누린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명불중요(命不中夭)” 라고 하는 말이 여기에 나오죠. 목숨이 중간에 요절하지 않고 대부하고 범행하며 크게 부자로 살고 또 청정한 행은 범행을 가지고, 가지게 되며 소언이 성제요,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실하고 믿을 만해. 아, 그 사람 말이면 틀림없다, 이렇게 믿어주는 거죠. 이게 이제 성제(誠諦)죠. 所言이 誠諦하고 常以軟語하며 소언 성제 상이연어 眷屬이 不離하고 善和諍訟하며 言必饒益하고 권속 불이 선화쟁송 언필요익 소언이 성제하고 상이연어하며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하며 그리고 권속이 불리(不離)해, 아이고 ~ 우리 스님들 보면 같이 살기 싫다고 떠나 버리는 그런 일이 많죠. 우리 사형사제고 뭐 형제고 뭐 은사고 하지만 아이고 ~ 살기 싫다고 그거다 우리 반성해야 돼는 거죠. 권속이 불리라고 했잖아요. 권속이 떠나지 않는다. 자꾸 와서 살려고 하고 따른다, 이 말이에요. 善和諍訟하며 言必饒益하고 선화쟁송 언필요익
선화쟁송(善和諍訟)이니, 혹 다투는 사람이 있으면 잘 교화를 시켜. 잘 융화를 시켜. “언필요익(言必饒益)” 말만했다하면 전부 이익 되는 말만 해줘. “언필요익(言必饒益)”이야! 말만했다 하면 그냥문제 일으키고 말만했다하면 그냥 조용한 집안에 그냥 불집 쑤셔놓고 가는 사람도 있지요. 대중생활을 하다보면은. 언필요익(言必饒益)이 돼야 돼! 말을 꺼내면 전부 이익이 되는, 이익만 되는 그런 말을 해야 돼. 不嫉不恚하는 正見衆生이 來生其國 하나니라 부질부에 정견중생 내생기국
부질부에(不嫉不恚)라! 질투하지도 아니하고 섬기지도 아니하고 “정견중생(正見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이다 그랬어요. 정견! 많은 소견을 가진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정견! 우리 팔정도에도 정견이 있고 정견이라는 말을 참 잘 씁니다. 바른 소견! 이런 뜻입니다. 무엇이 과연 바른 소견일까?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손을 이렇게 위로 든 것이 바른 것 같기도 하죠. 능엄경에도 밝힌 이야기 이긴 합니다만 들어야 할 때는 드는 게 바른 것입니다. 내려야 할 때는 내리는 것이 바른 거예요. 정견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도적 안목, 중도적 견해를 ‘정견(正見)’ 이라고 해요. 바르게 보자면 참 이게 어렵습니다. 팔정도 우리가 쉽게 말 하지만 팔정도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
정견 (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 (正業) 정명 (正命) 정근, 정정진 (正勤, 正精進) 정념 (正念) 정정 (正定)
정명(正命), 정업(正業), 그러면 뭐가 정명(正命)이고 뭐가 정업(正業)입니까? 보통 바른 직업을 가져야 된다. 예를 들어서 화살을 만드는 직업보다는 방패를 만드는 직업이 정업이고 정명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더라고요. 아닙니다. 화살을 만들 수도 있고 방패를 만들 수도 있어요. 상황 따라서 어디에 치우치면은 그것은 정(正)이 아닙니다. 정정 (正定)도 마찬가지예요. 정(正) 자가 전부 그런 뜻이에요. 선한 일을 해가지고 이 목숨을 살려간다, ‘정명(正命)’그러거든요 . 절대 그거 아니에요. 세속에서 선한 일만 하라고 하는 것. 다 선한 일만 하면 선한일 만치 악한 일도 있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일은 누가 합니까? 누군가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선악이 불교가 아니거든요 사실. 선악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은 사실은 선악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불교 아닙니다. 그래서 육조스님께서 뭐라고?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첫 법문 아닙니까? 첫 법문!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진정한 불교는 불교의 궁극적 차원은 선과 악을 떠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선도 할 수가 있고, 악도 할수가 있어 도명존자가 악한 마음으로 발우대[鉢盂]를 뺏으러 왔지만 당장에 육조 노 행자! 노 행자이지만 뭡니까? 그 법력에 얹어놓은 바위 위에다가 얹혀놓은 발우대때[鉢盂]를 감히 잡을 엄두를 못내는 거야 .떨려서! 가슴이 떨려서, 무슨 뭐 붙어 가지고 안 떨어진다, 말도 안돼는 소리야. (대중웃음) 감동해서 감히 잡을 수가 없어. 그냥 가져 가라고한 발우를 육조 혜능 스님 비록 노 행자지만 그분의 법력과 그분의 위엄에 도저히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는 거야. 장군이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아무리 장군이라도 거기엔 힘이 싹 빠지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 비로소 이제 첫 법문을 한 것이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악한 마음으로 왔어요. 하지만 이런 훌륭한 내가 감히 발우대[鉢盂]를 가져갈 수 없는 이런 위엄에 여기서 내가 뭔가 건져가야 되겠다, 뭔가 얻을 것이 있어야 되겠다 하고 법을 청하는 거죠. 딱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법문 불사선 불사악, 선도 아니야! 악도 아니야! 선도 할 수 있고 악도 할 수 있는 너의 근본 궁극적 차원 거기에 눈을 떠라. 이런 말이야. 때로는 선도 할 수 있고 악을 행 할 수도 있는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그 사실, 그 사실이 바로 너다 손을 들을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 것! 이 사실이 바로 이것이 정견 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에 치우치면은 그것은 정(正)이 안 됩니다. 소를 잡아서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소를 살려가면서 생명을 유지 할 수도 있습니다. 다 정명인거예요. 꼭 뭐 살생하나도 안하고 풀도 하나도 안 뜯고 그것이 정명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그건 정말 꼭 막힌 불교고 정말 올 데 갈 데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는, 여기도 이제 중도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는데 어떤 중도적인 견해를 가진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 如是하야 寶積아 菩薩이 隨其直心하야 則能發行하고 隨其發 여시 보적 보살 수기직심 즉능발행 수기발 行하야 則得深心하고 隨其深心하야 則意調伏하고 隨其調伏하야 행 즉득심심 수기심심 즉의조복 수기조복 則如設行하며 隨如說行하야 則能廻向하고 隨其廻向하야 즉여설행 수여설행 즉능회향 수기회향 則有方便하며 隨其方便하야 則成就衆生하고 隨成就衆生하야 즉유방편 수기방편 즉성취중생 수설법정 則智慧淨하며 隨智慧淨하여 則其心淨하고 隨其心淨하야 즉지혜정 수지혜정 즉기심정 수기심정 則一切功德이 淨하나니 是故로 寶積아 즉일체공덕 정 시고 보적 若菩薩이 欲得淨土인댄 當淨其心이니 隨其心淨하야 則佛 약보살 욕득정토 당정기심 수기심정 즉불 土淨이니라 토정 이와 같이 보적아! 보살이 그 곧은 마음을 따라서 능히 행동에 옮겨 간다. 발행(發行)! 실천을 하고 그 실천을 따라서 깊은 마음을 얻고 그 깊은 마음을 따라서 뜻을 조복하고 그 조복함을 따라서 여설을 행하며 설한바대로 행하며 여설행을 따라서 능히 회향을 하고 그 회향을 따라서 방편을 있게 되며 그 다음에 그 방편을 따라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성숙시키고 중생을 제도 하며 중생 성취시킴을 따라서 불토가 청정해지고 불토가 청정해짐을 따라서 설법이 청정해지고 설법이 청정해짐을 따라서 지혜가 청정해지고 지혜가 청정해짐을 따라서 그 마음이 청정해지고 그 마음이 청정해짐을 따라서 일체 공덕이 청정해 지나니 이러한 까닭으로 보적아 若菩薩이 欲得淨土인댄 當淨其心이니 隨其心淨하야 則佛 약보살 욕득정토 당정기심 수기심정 즉불 土淨이니라 토정 만약에 보살이 “欲得淨土(욕득정토)인댄 當淨其心(당정기심)이니”, 줄, 석줄 그어요. 밑줄 쫙~이야 유명한 말이죠. 저 앞에서 ‘불청지우(不請之友) ’ 라는 하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정말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절들이 이 유마경에는 아주 꽉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조사스님들이 이러한 뛰어난 구절들을 무수히 인용하고 있습니다. 많이 써먹어야 돼요. 활용해야 돼요. “欲得淨土(욕득정토)인댄 當淨其心(당정기심)이니” 정토를 얻고자한다 바로 너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수기심정하면 즉불토정이니라! 거기까지예요. 거기까지 줄그어야 돼요. 그 마음의 청정함을 따를 것 같으면 곧 ‘불국토’가 청정해진다. 그 마음이 청정하면 그대로 불토야! 장소가 아니라고요, 장소가 아니라고요. 무슨 저 서방에 뭐 십만 팔 천 억 국토를 지나서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그 나라가 아니에요. 그러나 아무튼 이렇게 법당 을 ‘불국토’를 장엄하니까 너무 좋습니다.(대중웃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고 내가 명명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