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와 농민의저항
김상악, 33세. 김영목, 37세. 김영철, 37세. 김재창, 35세.
김상휴, 33세. 김낙수, 33세. 김재전, 35세.
순조가 즉위한 이후 철종 때까지 3대 60여 년간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가 실시되었다.
세도정치는 왕실의 권력을 왜척이 독차지 함으로,
왕권의 약화를 가져와서 조선 사회는 큰 혼란을 겪었다.
순조 때는 김조순이 국구로서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를 기회로 그 일가인 안동 김씨들이
중요한 관직을 독점하는 세도정치를 보였다.
현종 때는 임금이 8세의 어린나이에 등극하자,
왕의 외조부인 조만영이 실권을 잡아 풍양조씨가 세도를 부렸다.
강화도령이었던 철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김문근의 딸로 ,
다시 세도가 안동김씨로 돌아갔다.
세도 정치가 가장큰 피해를 가저 온 때도 이무렵이다.
세도가의 독주를 견제할 세력이 없어져 정치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타락 할 수 밖에 없었다.
세도가는 관직을 매매로 재물을 모으는 수단으로 삼아
공공연히 부정을 져질렀다. 대부분의 관리들은
세도가에 뇌물을 바치고 아첨을 함으로 그 지위를 유지 할 수 있었다.
뇌물을 주고산 관리들은 백성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사복을 채웠다.
세도정치가 계속 됨으로 각종 부정부패는 늘어만가고,
탐관오리의 행포는 점점 심해져갔다.
탐관오리들이 온갖 수단을 다해 재물을 모으는데만 열중하니,
삼정(왕조 국가의 3대 재정의 수입: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이
문란해지고 농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김상악(相岳, 33세)는
관악산에 들어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근세의 역학을 총망라한 저서로 산천역설 12권과 위암시록 3권을 편찬했다.
정조의 명을 받아 참봉, 첨지중추부사, 동지중추부사(종2품)을 엮임했다.
김영목(永穆, 37세)은
철종조 급제, 이조판서를지내고 문장과 덕행이 뛰어남.
김영철(永哲, 37세)은
형조, 예조, 이조판서를 엮임.
기로소에 들어갔고, 한일 합방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작위를 받았다.
김재창(在昌, 35세)은 순조조에 이조판서 엮임.
김상휴(相休, 33세)는
순조조에 급제, 이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을 거쳐 좌찬성 엮임. 기로소에 들어갔다.
김낙수(樂壽 33세)는 순조조에 급제, 이조참판 엮임.
김재전(在田, 35세)는
순조조에 장원급제, 외직을 거치고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을 엮임.
광산김씨약사
. 2023년. 7월. 편집, 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