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甲骨文)에 보이는 춘(春)은 태양(日), 풀(艸), 그리고 막 지표를 뚫고 올라온 어린 싹(屯) 등 세 요소가 어우러진 형태였다.
따뜻한 햇살을 받은 대지에 어린 싹이 돋아나고 풀이 자라는 시기를 봄(春)이라 했던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의 복사(卜辭)에는 어린 싹을 본뜬 둔(屯)이 춘(春)의 세 요소를 대표하여 봄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예도 있었다.
금문(金文)에 이르러 위에서 아래로 풀(艸), 어린 싹(屯), 태양(日)이 순서대로 정돈되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였다.
‘오랑캐의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을 테지’[胡地無花草/春來不似春] 당대(唐代)의 동방규(東方*)가 노래한 소군원(昭君怨)의 일부이다.
봄이 와도 정작 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왕소군(王昭君)뿐만 아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소위 삼팔선(三八線)이다 이태백(二太白)이다 하여 실업(失業)의 칼바람은 아직도 차기만 하고 취업의 한파(寒波)에 여전히 산 너머 춘풍(春風)인 청춘(靑春)들이 많다.
봄은 기어이 왔건만 겨울바람이 봄바람보고 춥다고 했던가 그들에게는 언제쯤 만면춘풍(滿面春風)일지.
어제는 일 년 24절기(節氣) 중 첫째인 입춘(立春)이었다.
동풍이 불어와 언 땅을 녹여 새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가 깨어나며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오신채(五辛菜)를 먹고 아홉차리를 하며 입춘수(立春水)로 봄을 마신다.
또 대문마다 입춘축(立春祝)을 써 붙이고 봄을 맞이한다.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도 많으리라’[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 추수할 때 후회한다[春不耕種秋後悔]고 하였다.
마냥 춘풍(春風)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대사(人生大事) 일장춘몽(一場春夢)에 그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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