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를 들으며
이야기 나누었던 것들 >
낭독의 즐거움 중 하나는 평소에는 내가 절대로 손도 대지 않을 책을 다른 사람의 낭독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새해 첫 낭독으로 즐긴 책은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작가가 너무 유명한 시인이라서 그런지 평소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이었다.
낭독을 기다리는 설렘이 여기 있다. 이번 낭독자는 어떤 책을 선정해서 올 것인가 기다리는 것이다.
낭독자는 책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이 책을 선정한 이유를 이야기하고 지금의, 또는 그 책을 만났던 때의 삶의 인연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처음 만났거나 약간 서먹한 사이의 청자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을 수 있는 이유가 마련되는 것이다.
먼저 읽어주신 글은 <망고쥬스>에 얽힌 이야기이다. 작가는 긴 인도 여행 중에 많은 글을 남겼다. 그 여행으로 작가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잃어가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망고주스 가게의 늙은 주인이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서둘러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서두르다간 오히려 잃기 마련이야." 뭐 이런 선문답 같은 것들이다. 열대 지방에서는 따가운 태양열에 갈증을 식히기 위해서 여러가지 과일 주스를 즐기는데 여행자는 기차가 잠시 정차한 간이역에서 망고주스를 사러 간다. 곧 떠날 기차 시간에 조마조마하며 주문한 망고 쥬스를 기다리는 성질급한 한국 여행객의 태도에 인더스 강에서 두세개의 문명이 발생하고도 남을 긴 시간을 들여가며 쥬스를 만들고 거스름돈을 건네주는 쥬스 가게주인의 사이에 정말 그렇지 나 같아도 그랬겠다하는 한탄의 추임이 절로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늘 그렇듯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가 책을 읽는 간접체험의 이유일 것이다.
"요즘 수영장을 다니는데 수영을 다 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다 입고 나오려는데 보니까 오리발을 수영장에서 안 가지고 나온 거야. 그래서 어떻게 수영장에 옷을 입고는 못들어가거든. 빨가벗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또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거야." "그렇겠다. 그 젖은 수영복을 다시 입어야 하잖아. 어휴 어떻게" 안타까운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게다가 내가 입는 수영복이 반바지라서 그냥 안들어간다 말이야. 비누칠을 해야 겨우 들어가는데 어떻게 그렇다고 오리발을 그냥 두고가. 버려두고 가면 다시 사야하고." 뭐 이런 자신의 비슷한 경험들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영혼을 위한 음식>에서는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는 필자에게 식당 주인이 건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식욕을 잃는 법!" "사람이 메뉴를 먹을 순 없는 일이오. 아무리 메뉴를 들여다 본다 해도 배가 부를 리 없소. 세상의 책이 다 그런 것처럼." 이런 놀리는 듯한 투의 명언.
다른 나라의 음식점에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어럽사리 주문을 한 필자에게 그날은 종업원이 휴가를 갔기 때문에 이것저것 주문을 해봤자 그림의 떡이라고 열을 채우는 주인의 설교에 어떤 걸 주문해야 하냐고 하니까 그걸 구분하는 게 삶의 지혜라고 하는데 거기에 별 불평도 없이 명상하는 셈 치고 기다리는 필자.
외국인 여행자들이 모여서 서로 자신이 여행했던 나라를 자랑삼아 늘어놓는 자리 옆을 지나며 "인도에서는 인도만 생각하고, 네팔에선 네팔만 생각할 것!"이라는 명언을 슬쩍 흘리며 지나는 주인의 말을 듣고 아침 식사로 나온 마살라 도사를 먹으면서 오로지 마살라 도사만을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필자.
주문한 탈리가 짜다고 지적하자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요!"라는 명언으로 응수하는 주인.
우리가 인도인들은 모두가 철학자인 것 같다고 하자 인도 여행을 한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인도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바가지 쓰기를 우려해서 깍아달라고 조르자 상인이 깍아주면서 "Are you happy?"하더란다. 어찌보면 그냥 좋냐라는 물음 같지만 그것은 너 같이 부자나라 사람이 이렇게 싼 물건을 사면서도 꼭 그걸 깍아야겠냐는 비아냥일 수도 있고, 내가 깍아주니까 그래서 좋냐 뭐 이런 것일 수도 있는 다각적이고 중의적인 물음이라고 보여진다. 인도인들이 던지는 그 물음들이 늘 삶의 근본에 던지는 철학적 물음인 것이다.
<내 영혼의 여인숙>에서는 낡은 여인숙에 든 필자가 방이 너무 더럽다고 불평을 하자 "Never mind 신경쓰지 마라"고 답한다거나 방값을 깎아달라고 요구하자 "숙박비를 깎는다고 방이 새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당신이 어느 한 가지에 만족할 수 있다면,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가르침을 준다거나 밤 사이 쥐가 들어와 가방과 옷을 갉아먹었다고 불평을 하자 "신이 준 성스런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그 대신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일"이라고 현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라고 하는 것을 보며 인도 사회의 엄청난 계급 차이와 사회 불평등이 이런 받아들이고 만족하라는 이런 인도 사회의 윤리의식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 섞인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였다.
낭독을 들으며 여행자가 언제나 길을 떠나고 길에서 배움을 얻으며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세에서 듣는 나에게 지구별에 여행 나온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아직도 내 삶에서 덜어내야 할 집착은 무엇인가를 묻는 사막의 바람이 휭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내가 아는 두 여행자가 지구별을 떠났다. 떠나보내고나서 들은 바로는 그 벗이 삶의 한 시절동안 다녔던 제약회사의 같은 부서 세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는 침샘암으로 1년간 투병 끝에 고통없는 세상으로 갈 수 있었다. 사람을 너무도 좋아했고 바람처럼 유유히 떠나 살았던 선배는 아름다운 섬 울릉도까지 가서 생을 마감했다. 채워지지 않는 사랑이 그리움으로 그를 그렇게 앓게 하지 않았을까.
장례식장에서 "죽고나서 친구들을 많이 오게 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하는 우스개 문제를 내기도 하였다. 반백년을 살았으니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죽음에 허둥지둥 대처하는 것보다는 능숙하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욕심이고 황망히 남겨진 사람에게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다는 그 이유이다.
조만간 엇비슷한 동무들과 유서 쓰기를 기획해보고 싶다. 10년마다 새로 갱신하는 유서 쓰기 프로젝트 말이다.
첫댓글 제24회 '아름다운 낭독'후기입니다.감사해요.그날 아주 민주적으로다가 사다리를 타서 올해 낭독순서를 정했다는 후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