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집 센 성씨의 유래
'최(崔)씨 무덤에 풀이 안난다'
'강(姜)씨 앉은 자리에 풀이 안난다.'
'안(安)씨 스쳐 지나간 자리에 풀이 안난다'
우리는 흔히들 하기 좋은 말로 안(安)씨, 강(姜)씨, 최(崔)씨가 소문난 고집쟁이라고 한다. 직장 내 '근무 시간 변경의 건' 등을 처리할 때, 상사로부터 '역시 소문대로 안씨, 강씨, 최씨로구만' 이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앞에서 나열한 성씨들이 '고집(固執)의 대가(大家)' 라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성격을 고집불통이라고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정의파라고 생각했고, 그런 고집이 있는 사람을 의리(義理)의 사나이라 부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따라서 고집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누어, 이런 성씨들이 어느 고집에 해당되나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고집불통 (융통성이 없이 자기 주장만 계속 내세우는 사람)
-쇠고집 (몹시 센 고집을 갖고 있는 사람, 황소고집)
-옹고집 (억지가 매우 심하며 자기 의견만 우기는 사람)
-외고집 (융통성이 없이 외곬으로 고집 부리는 사람)
-황고집 (고집이 몹시 센 사람. 평양 황고집에서 유래한 말)
안씨, 강씨, 최씨의 고집은 위에 나열한 것과는 달리 고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시류에 따르는 기회주의자가 아닌, 올곧은 충절과 절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 또 고집이 센 것은 나쁜 것일까? 따라서 이 세 성씨의 고집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고집' 하면 최(崔)씨가 제일 센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고려말의 명장 최영 장군의 행적에서 나온 것이다. 최영 장군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汝當見金如石)’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한평생 재물을 탐하지 않았으며, 당시 도처에서 출몰하던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러 많은 전공을 세웠다. 지금의 국무총리 격인 문하시중이 되어서는 꺼져가는 고려 사직을 끝까지 지키다가 이성계 세력에 의해 처형 당하게 된다.
그가 죽음에 임하면서 ‘내가 생전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일을 했더라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의 무덤에 정말로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의 무덤(경기도 고양)은 수백년이 지나 조선이 다 망하고 난 다음에야 후손들이 잔디를 입혔다고 한다. 그래서 '최(崔)씨 무덤엔 풀도 안난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한술 더 떠서 강(姜), 안(安)씨는 더 대단하다는 것이다. 무관을 많이 배출한 강(姜)씨는 고구려시대 강이식 도원수의 후손으로 고려조에 대한 충성심과 절개가 대단하다. 조선이 건국되자 문중 전체가 벼슬을 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강(姜)씨 앉은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한편 고려초부터 귀족 세력이었던 안(安)씨는 고려 개국 공신 안방걸의 후손으로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성계의 역성 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자, 문중 전체가 벼슬을 버리고 1대부터 10대까지 조상의 무덤까지 이장해서 경남 함안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세상에서는 '안(安)씨 스쳐 지나간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최씨는 일부 후손들이 벼슬을 했지만, 강씨와 안씨는 더 강직했기 때문에 이를 비유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최(崔)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안난다'고 하지만, 대신 강씨와 안씨는 훨씬 강한 표현을 쓴다. 즉 '강(姜)씨는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풀이 안난다.' '안(安)씨 생각만 해도 풀이 안난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또 한가지 재미난 얘기로, 어느 동네에 안씨, 강씨, 최씨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집의 아들들도 아주 절친하게 지내던 중, 어느 날 집에서 전답 문서를 몰래 똑같이 가지고 나와서 한양 땅에 가서 큰 사업을 하기로 했다. 마침내 일을 저질렀지만 사기꾼을 만나 모두 망하고 거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최(崔)씨네 아들은 집에 들어가 석고대죄 하고 아버지께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강(姜)씨네 아들은 집에 들어가 석고대죄 하였지만 끝까지 용서받지 못하여 뒷산에 목을 메었다고 한다. 그 후에야 그의 아버지는 시신을 거두어 수습하고 용서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안(安)씨네 아들은 석고대죄를 해도 안되니까 강씨네 아들처럼 목을 멨지만 그의 아버지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놈' 이라고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 외에도 세 성씨를 표기한 한자 모양을 풀이한 것이 있다. 안(安)씨는 뿔이 한개라 한번 먹은 마음은 절대 변치않고, 그 다음으로 강(姜)씨는 뿔이 두개라 한번 먹은 마음도 두번까지는 여유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崔)씨는 뿔이 세개이기 때문에 안씨나 강씨보다는 훨씬 부드럽다는 얘기도 있다.
결국 고집 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올곧은 충절이나 절개는 가문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경우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바른 고집이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고집은 결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 주관도 없이 거수기 노릇만 하는 사람들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적당한 타협과 주관이 어우러질 때 건설적인 의견이 도출될 수 있으며 양보와 베품이 자리 잡을 것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경우는 중시하되 명분없는 무리한 고집은 부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될 것 같다.
*참고 : 안광승의블로그(http://cafe.daum.net/akse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