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은 누이에 대한 애절한 노래 였는데
용공의 노래라고 색깔을 입혀 금지 되었지만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입에서 입으로 불려졌다
박기동은 모진 탄압으로 뉴질랜드로 떠나 갔고
기약 없는 귀양살이 한 맺힌 세월은 흘러 갔지만
東君이 얼음을 녹이듯 명예회복이 되어지고
선생의 노래비는 벌교 부용산에 세워 져서
生民들은 잊혀진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되었다
부용산 산 허리에 잔디만 프르러 푸르러
蓉花 같던 너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산 속 솔밭 사이로 회오리 바람만 부누나
부용산 오리 길에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난다
容裕한 너의 모습은 꿈 속에서 미소 짓는데
산 위 흰 구름도 아쉬워 머물다 흐르누나
* 東君동군-태양
*生民생민-백성.일반 사람들
* 蓉花용화-연꽃
* 容裕용유-너그러움
부용산 박기동 시/안성현 곡
부용산 오리 길엔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사 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릴움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채
나 외로이 예 섰으니
부용산 저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작사가 박기동은 벌교 출신으로
목포 항도 여중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는데
박영애라는 여 동생이 24세로 요절 하였다.
그의 누이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시로 담았는데,
같은 중학교 안성현이라는음악 선생이
그의 천재 여 제자가 16세로 요절하자
그에대한 안타까움이 박기동 선생의 시와 같아 곡을 만들게 되었다.
안성현은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작곡가 이다.
안성현은 6.25가 나자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권유로 월북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 이었는데 주로 이북에서 활동 하였다고 한다.
부용산의 노래는 안치환 이동원 한영애 등 이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