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8.火. 맑음
아포카토와 내포內浦의 불 짬뽕.
아포카토Affogato는 이탈리아어로 ‘끼얹다, 빠지다’ 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디저트로,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거나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끼얹어 만드는 커피메뉴이다. 마트에서 파는 호두 아이스크림이나 바닐라라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 2샷을 살짝 붓기만 하면 훌륭한 맛의 아포카토가 된다. 아포카토를 처음 먹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다. 먹을 때는 에스프레소와 아이스크림을 같이 떠먹어야한다. 쌉싸래한 에스프레소 맛을 아이스크림 맛이 슬쩍 안아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에 살짝 뿌린 견과류는 고소한 맛과 톡톡 깨지는 재미를 더해 계속 생각나는 메뉴라 하겠다.
- 바리스타의 비밀수첩. -
소품小品처럼 예쁘게 잘라놓은 과일을 담은 접시가 다탁茶卓 위 몇 군데 놓여있었고, 저 안쪽 탁자에는 넓은 도자기 그릇에 백련차白蓮茶가 담겨있었다. 옅은 밤색과 고운 회색이 엉킨 도자기 그릇 안에 하얀 연꽃이 은은한 물속에서 활짝 피어나 청춘을 되찾은 뱀처럼 노란 꽃술을 휘두르며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넓지 않은 차실茶室 안에 스무 명 가까운 사람이 들어앉으니 답답할 법도한데 좁다는 생각보다는 아늑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열어놓은 차실문으로는 담 너머의 키 큰 소나무가 창공蒼空을 배경으로 보이고, 뒤창窓으로는 밤새 별빛을 흠모하던 진초록津草綠이 가는 여름을 시샘하는 풀숲 속으로 들여다보였다. 세심사洗心寺는 인법당이라 차실은 법당과 나란히 있지만 복도에서 차실문을 열고 한 단 아래로 내려딛고 들어 가야했다. 낮은 천장과 좁은 폭으로 그 안에 한 대여섯 명가량 들어앉으면 딱 보기 좋을 크기이지만 홀로 앉아 있다면 유유자적悠悠自適해서 모양이 좋겠고, 스무 명 남짓이 앉더라도 다복多福하게 보여 은근히 그림이 좋아보였다. 우리 천장암 순례단이 일요법회 후 사찰순례를 해오면서 세심사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때는 지난 12월 초경으로 겨울의 시작이었고, 이번 방문은 8월 중순으로 여름의 끝물자리였다. 사람사이의 관계關係라는 것이 첫 번째 만나는 것은 인사人事이고, 두 번째 만남은 구면舊面이고, 세 번째 만남은 친구親舊라고 했다. 세심사를 둘러싼 넓은 공간과 하늘빛은 겨울의 하양과 냉철함을 버리고 여름의 파랑과 무성茂盛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육통이란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면 얻게 되는 여섯 가지의 신통력, 즉 육신통六神通을 말한다. 마침 세심사 주지스님의 법명法名이 육통스님이라 지난 겨울 처음 만나 뵈었을 때, 스님 법명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않을 듯합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었다. “스님, 비구니스님으로는 상당히 대찬 법명인데, 어떻습니까? 스님의 이름 때문에 시달린 일은 없었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두 손을 흔들면서 말을 해주었다. “아유, 말도 마세요. 육통, 칠통, 팔통 스님이라고 별명도 많았지요.” 역시 두 번째 만나는 구면이라 친근감이 더 했고 육통스님께서는 또 나를 그냥 알아봐주셨다. 지난 겨울만해도 우리 천장암 사찰순례가 다소 실험적인 분위기가 강했지만 이제는 밑바탕에 든든한 뿌리가 박힌 실다운 사찰순례단이 되었음을 우리를 맞는 육통스님의 눈빛에서도 읽어낼 수가 있었다. 우리일행들은 육통스님의 안내로 차실로 몰려 들어갔다. 모두 자리에 앉자 탁자 위에 백련차가 단정하게 준비되어있었으나 스님께서는 새로 개발한 차실 메뉴를 또 선보이셨다. “날이 더운데 아이스크림 커피는 어떠세요?” 그러고 나서는 갈아서 내린 커피를 담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띄우고, 또 그 위에 견과류를 살짝 뿌려 올린 도자기 찻잔을 일행들에게 하나하나씩 돌렸다. 커피의 쌉싸름한 맛에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본래 명칭이 아포카토인 아이스크림 커피를 다 마시고나서 이제 백련차를 마실 차례가 되었다. 그러자 강렬한 아포카토 뒤에 음미하는 은은한 백련차白蓮茶의 맛이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그때 육통스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커피잔에 그대로 백련차를 담아 먹어도 또 그대로 맛이나 운치가 있거든요.” 이 말씀을 알기 쉽게 간단히 통역을 하면 커피잔으로 쓰던 도자기 찻잔을 계속 사용하라는 문학적인 표현이었지만 나는 잠깐 망설여졌다. 마치 공양을 드린 발우 헹군 물을 먹는 경우와 약간 유사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저렇게 태연하고 평안한 얼굴로 기존 찻잔 사용하기를 권유하는 배짱은 육통스님이라는 법명法名의 온전한 힘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도자기 잔에 백련차를 담아 먹어보았는데 백련차의 향이 커피 향과 어우러져 새로운 미감未感을 자극해댔다. 그렇게 표주박으로 떠 담아먹는 백련차도 좋았지만 우리스님을 모신 일행들과 육통스님과의 대화는 더욱 좋았다. 자신을 다혈질이라고 밝히신 그대로 솔직하고 걸림 없는 말투와 온화하면서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가 우리 모두를 편안하고 즐겁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저녁공양시간이 되자 거침없는 태도로 우리를 세심사 신도가 운영하는 그집으로 안내를 했다.
신도시 내포內浦 중심부로 아직 상가가 완전히 조성되지 않아 여기저기 나대지가 펼쳐진 곳이었지만 저녁시간이 되자 연거푸 음식점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걸로 봐서 음식을 잘하는 곳인가 보다고 생각을 했다. 잠시 후에 일행들이 주문한 짬뽕과 순두부짬뽕밥이 하나씩 식탁으로 나왔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운데 양이 푸짐한데다가 붉은 국물의 얼큰한 매운 맛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 오늘 천장암에서 큰스님의 생일상을 받아 지나치게 많이 먹었던 점심공양만 아니었다면 뚝딱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비워낼 맛난 음식이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야 한 그릇을 쓱싹 다 먹었으나 여자신도님들은 조금씩 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육통스님께 우리들의 사찰 방문에 대한 융숭한 접대接待와 저녁공양까지 신경을 써주신 후대厚待에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음식점을 나와 작별인사를 드리면서 스님 앞에서 합장을 하며 스님, 오늘 고마웠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다.
(- 아포카토와 내포內浦의 불 짬뽕. -)
첫댓글 꽃향 백리 술향 천리 인향 만리 !!!
이상 주지스님의 건배제안 이었습니다. ㅋ
세심사 주지스님께서 특별히 내주신 아이스크림커피 자주 생각날듯 합니다.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