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깊어지자 몸이 기분 좋게 마비되는 느낌이 든다. 몸이 마치 고기 덩어리 같은데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서서히 몸과 바깥 공간의 경계막이 희미해지고 부연 덩어리 안에서 휘몰아치는 강력한 에너지가 밖을 향해 꿈틀대기 시작한다.
서서히 실타래가 풀려나가듯이 움직임 충동이 온몸에서 일어난다. 구르고 뒤집고 휘감고 돌리고 비틀고 .. 몸의 중심에서부터 말단으로 이어지는 부드럽고도 강인한 움직임을 하다보니, 오랜 시간 동굴 안에서 웅크리고 살았던 늙은 문어 여인의 이미지가 내 안에 들어와 있다. 그녀는 아주 오랫 동안 어둠 속에서 힘을 키워왔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온 문어 여인은 뭍을 향해, 빛을 향해 수많은 팔다리를 꿈틀대며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움직임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깊은 소리들은 포효하는 암사자의 울부짖음으로 바뀐다. 으르렁대면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과 대적하는 상황이 된다. 소리와 함께 힘을 안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낮은 진동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무겁게 공간 안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뱃속 깊은 곳에서도 울려 나오는 그 진동을 바깥 공간과 맞추면서도 휩쓸려 가지 않고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그 에너지를 걷어내야 겠다. 밀어내고 걷어내고 물리치고 털어내는 움직임을 한참 동안 하니 몸 안의 힘도, 내 의지도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항복... 그저 존재하는 것 외에 애써 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고요히 침묵 안에서 힘과 싸우기를 멈추고 내려놓는다. 어둡고 무거웠던 기운이 내 주변에서 서서히 물러나는 듯, 빠져나가는 듯 가볍게 다시 높은 진동 속에서 평화로운 상태에 머물러본다.
갑자기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처럼 좀 더 안정감 있는 엄마였을 때 이 친구를 키웠더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존재하지도 않는 관념이 만들어낸 과거라는 허상의 세계임을 문득 깨닫는다. 지금 여기 생생하게 나와 함께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따듯하게 달래준다. 아기가 무척 가볍다. 나또한 너무도 가볍다. 몸이 없는 것 같은 투명한 상태로 사랑을 속삭인다. 아기는 아들에서 나로, 또 세상 모든 이들의 모습으로 바뀐다. 아가야, 울지 마렴. 몸이라는 환상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속지 말자. 슬픔 분노 두려움의 세상 모두 우리가 만든 상상일 뿐이란다.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란다.
어느순간 감사의 마음이 물밀 듯이 몰려오면서 눈물이 솟구쳐 나온다. 고마워!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동안 쌓아 왔던 내 안의 깊은 소리가 우렁찬 울부짖음으로 바뀐다. 태어나 한 번도 내질러보지 못 한 엄청난 소리다. 모성의 힘으로 포효하는 암사자의 강력한 호통이다. 감히 누가 우리 새끼들을 울리느냐. 무엇이 우리 귀한 생명의 존재들을 울게 하느냐. 이 세상에 태어남을 환영받아 마땅한 존재들이여, 울음을 멈추고 눌러놨던 우리들 안의 힘을 되찾을지어다!
메시지는 온몸이 감전된 것 같은 초강력 에너지가 되어 내 온 몸을 휘몰아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새롭고도 엄청나게 큰 힘을 한참 동안 온몸으로 받아낸다. 굳건하게 발로 땅을 지지하는 힘이 하늘의 힘과 이어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손끝에서 팔 전체를 타고 가슴과 머리로 이어지는 뜨거운 전기 에너지가 한동안 몸 전체를 부르르 떨게 한다. 강력한 진동이 멈춰지지 않으면서, 몸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내 뒤를 조심스럽게 지지해주던 도반에게 기대어 숨을 고르고 도반과 함께 축하의 춤을 춘다. 우리에게서 세상으로 기쁨을 쏘아 올린다. 작은 몸에게서 영원으로 끝없이 돌고 돌며 삶의 실을 자아내는 물레가 된다. 삐거덕거리며 실패라 생각했던 우리의 모든 경험들이 아귀가 딱 맞는 완벽한 수레바퀴가 되어 삶을 굴려낸다. 나와 너, 안과 밖, 중심과 둘레, 아래와 위, 하늘과 땅, 찰나와 영원, 빛과 어둠, 탄생과 죽음, 파도 파도 끝없이 건져 올려질 무한한 자원을 품은 우리의 무의식과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영광. 트숨과 우리의 기적. 몰라와 아리와 우리 모두의 끝없는 사랑.
한참을 하나가 되어 빛의 춤을 추다가 홀로 남아 신께 경배를 하고 바닥에 죽은 듯 가만히 눕는다.
늘 그랬듯이 마지막은 심상으로 하는 기도다. 육신의 몸으로 살아 있는 동안 꾸게 될 아름다운 그 꿈. 불필요한 에너지가 걷혀진 맑은 그 도화지에, 강력히 원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한없이 한없이 펼쳐 그려본다.
첫댓글 릴리트, 그동안 트숨에서 애쓴 보람이 열매를 맺었군요~! 축하합니다!
몰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