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그락딸그락' 돗자리 엮는 소리가 풍경소리처럼 온 집안을 휘감았다. 평화롭게 들려오던 유년의 기억 저편, 아버지는 바쁜 일상 중에도 틈틈이 돗자리며 멍석을 만드시곤 했다. 진득하게 앉아 세월을 낚듯 한땀 한땀 엮어나가는 작업, 백 가지 잡념을 접고 기다림을 체득한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에 젖어 돗자리를 만드셨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참이 지난 어느 해였다. 친정에 들렀다가 발견한 돗자리 만들던 도구들, 담벼락 아래 여기저기 흩어진 채 먼지를 먹고 박혀있었다. 그중 두 개를 골라 가져왔다. 아버지의 손길이 수없이 닿아 바닷가 곱돌처럼 보드랍고 고운 결이 생겨있다. 맑고 투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던 그 물건은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양 대할 때마다 뭉클하다. 깨끗이 씻어 눈길이 잘 가는 책장에 올려놓았다. 드디어 주인을 찾은 걸까.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든든하고 힘이 된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돌 두 개를 꺼내 두드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그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다.
사랑채에 있던 아버지의 방에는 조그만 탁상이 있고 그 위에 몇 권 안 되는 책이 놓여 있었다. 낡고 퇴색해서 누렇게 변한 책은 손때로 반질거리고 겉장은 찢어지기도 했다. 겨우 한글을 해득한 아버지는 나름 책을 좋아하신 것 같다. 가끔 소리 내어 읽으셨는데 곡조가 있었다. 생각하며 읽으신 건지 끊어지는 듯하다 늘어지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시조창 같기도 했다. 지금도 '조웅전'이라 쓰여있던 빛바랜 책 표지가 또렷하게 생각난다.
뭐니 뭐니 해도 유년의 추억은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이다. 확 트인 바깥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서 별 헤던 밤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던가.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가득했고 별똥별이 떨어질 때면 재빨리 소원을 빌곤 했다. 누가 들으면 천기가 누설될 세라 비밀로 하던 그 소원은 어떤 것이었나 기억이 없다.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며 여름밤의 정취에 빠져들 때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모기떼, 저만치 아버지가 지펴놓은 모깃불의 매캐한 연기에 눈물범벅이 되곤 했다. 어느새 모깃불이 소리 없이 사그라들 때쯤이면 멍석 위에 누워 이야기꽃을 피우던 목소리가 점점 속도를 늦추고 별을 세던 눈빛도 깜빡깜빡 잠 속에 빠져들곤 했다.
은박돗자리를 펴고 뜰안에 누워본다. 별자리가 보일락말락 하다. 여전히 모기는 기승이다. 모기향을 피우고 별을 찾아본다. 방향을 잃은 도시의 여행자에게 별자리는 이제 더 이상 나침반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날짜에 맞춰 변하는 달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 시대, 밤은 점점 깊어만 간다.
바람결에 처마 끝 풍경이 살랑대며 울려 퍼진다. 아버지의 돗자리 만드시던 소리가 풍경 소리가 되어 온 집 안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아버지, 오랜만에 마음으로 불러본다. 그리운 이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