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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제 : 2015년 12월20일
누구와 : 산악회 회원들
어디로 : 광덕산(충남 698.4m)
며칠 전 CJ에 다니는 막내(딸)가 퇴근하여 아내와 식탁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들으니 고맙기 짝이 없다. 내용인즉 “이번 주말 엄마 뭐해?” “그냥 집에 있지 왜?” ”아빠 등산 좋아하니 시간되면 영화 히말라야 보러 가지” 티켓 나왔다며. 그렇게 하여 19일 오전 아내와 CGV에서 상영하는 산사나이들의 우정을 그린 감동의 휴먼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2004년 계명대 히말라야 원정대에서 정상에 오른 후 하산 중 동료와 같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 길로 떠난 산악인 박무택, 장민, 백준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떠나는 휴먼 원정대의 도전을 그린 영화다. 원정대 대장을 맡은 실존인물 엄홍길과 그들의 만남부터 수년간 같이 등반하며 지내 온 지난날을 시작으로 영화화면은 이어간다. 등반하는 모습을 보면은 그렇지 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때론 가슴 뭉클한 장면이 나오면 아내가 옆에 있기에 표시 안 나게 눈물만 주룩주룩…… 억센 산사나이들의 인간미를 그려낸 영화라 오래 기억이 될듯하다. 팔천 미터라는 높이는 인간이 범절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 표현하는 곳이다. 그곳에 오르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 훈련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나? 그들은 타고난 꾼(?)들로 표현하고 싶다. 글쓴이도 수도 없이 가고 싶어하는 그래서 전화번호 끝자리도 8848이기도 한 지구에서 우주와 제일 가까운 곳, 이제는 오를래야 오르지 못하는 로망에 지나지 않는 곳으로 생각해야 되지 않나 싶고 그 근처에서 바라다 볼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하여 든 이 영화를 계기로 원정 또는 국내에서 산에 오르다 먼저 간 산악인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 싶다.
올 마지막 정기산행은 충남 천안시 광덕면과 아산시 송악면의 경계를 이룬 광덕산이다. 강원도의 광덕산처럼 넓을 광(廣)자와 큰 덕(德)자를 사용하는 산으로 넓고 덕이 있는 유순한 전형적인 육산으로 예로부터 난리가 나거나 불길한 큰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있으며, 주변 산세가 낮다 보니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내포지방(당진, 서산, 아산)과 천안 심지어는 평택까지 조망이 되는 산으로 북으로 망경산이 이어지며 남으로는 금북정맥까지 연결되어 넓은 품을 형성하고 있다. 덕이 많은 산으로 연초가 되면 여러 산악회에서 시산제 지내는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우리 산악회에서도 2007년 강당골에서 그리고 2009년 서울시산악연맹에서 부용묘가 있는 은골에서 시산제를 지낸 기억이 난다. 산행코스로는 천안방향에 광덕사를 기점으로 3개코스가 있고 아산방향에서도 강당사을 기점으로 3개코스가 있으며 길게는 망경산 또는 설화산에서 출발 능선종주 코스도 있다. 산행시간은 광덕사 및 강당사 모두 4시간 정도 소요되며 능선종주도 5~6시간이면 족하다. 천안의 명물 호도과자를 만든 호두나무의 전래비가 있는 백제시대의 절 광덕사와 조선여류시인(?) 부용의 묘가 있으며 인근에 외암민속마을이 있어 산행과 같이 문학도 느끼고 우리나라의 고유문화도 즐기고 산행 후 인근 온양에 가서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어 가족 산행에 적극 추천이다.
매년 종산에는 가능하면 아내와 동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갑자기 대상포진 증상이 나타나는 바람에 토요일 오전 총무에게 혼자만 참석한다고 연락 후 마침 갑철이 형님이 좌석 있는지 연락이 온다. 며칠 전에 갈까 말까 망설이더니 결정을 하셨나 보다. 탁월한 선택.ㅋㅋ 이른 새벽 출발이라 미리 배낭에 준비물을 챙기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니 아내는 벌써 일어나 과메기 손질을 한다. 지난번 포항에서 보내 온 것이 좀 남아있어 이번에도 준비, 정종을 못 사서 아쉽지만 지난번 팔영산 산행 때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이번에는 그보다 배를 준비하여 배낭에 넣고 메어보니 묵직한 느낌으로 어깨에 희열을 느끼며 강변 역으로 출발이다. 새벽하늘에 뭉게구름이 때 아니게 나타나 오늘의 기상을 말해주나 보다. 날씨는 좋겠다 생각하며 탑승장소에 가면서 참석인원이 얼마 안 된다고 했던 문미영 총무의 메시지를 생각하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연말이고 설상가상으로 KT가 인사이동이 있었다고 하니 하는 수 없겠지만 일년 내내 산에서 흐른 땀을 씻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년을 임한다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텅 빈 차량이라고 느낄 수 없는 산악회에서 중요시하는 회원들이 자리에 앉으니 몇 명이 안되지만 꽉 찬 느낌으로 강동에서 강숙선씨를 추가 탑승 그리고 죽전에서 마지막으로 김연관 후배가 탑승하고 중간에 한번 휴식 할 줄 알고 뒷좌석으로 가서 잠들었는데 잠결에 흔들림이 있어 눈을 뜨니 어느덧 광덕산 입구가 아닌가? 부랴부랴 원래 앉아 있던 제자리로 가 등산화 단속 및 배낭 단속하니 버스는 어느덧 주차장에 진입한다. 생각 없이 배낭만 가지고 하차 결국 핸드폰을 버스 뒷좌석에 놓고 산행에 임한다. 산 주변이 설산으로 변해있으니 겨울 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오늘 우리가 산행할 코스는 계획에는 장군바위 쪽 그러니까 광덕사 방향 코스로는 2코스였지만 글쓰는이는 은근히 부용묘 방향(3코스)으로 진행했으면 하나 일주 문 앞 등산안내판에서 회장님 설명이 1코스로 해서 정상에 오른 후 장군바위에서 강당사로 하산이란다.ㅠㅠ 조선시대의 3대 여류시인(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인 부용(김운초)이 잠들어 있는 곳을 보고 싶었는데…… 포기는 빠르게.ㅋㅋ 장작 타는 냄새가 정감스럽게 코끝을 스치는 상가를 지나 우측 개울엔 요즘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들이 왔다갔다하는 와중에 물속에 텅 빈 어항이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먹이가 없고 설사 고기가 그곳으로 들어간다 해도 다시 나올 수 있는 주둥이가 커다란 어항이기에 무엇을 잡기 위해 설치한 것은 아닌 듯 이곳 사람들의 순한 마음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입구에『이 뭣 고』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있으니 산에 오르는 이들에게 머리를 아프게 하려는지 아님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데 세 글자의 화두 앞에서 잠시 머물다가 하산해서도 문제의 화두가 생각나면 다시 오리라 다짐하고 호두나무 전래비를 지나 회장님이 등산안내도 앞에서 회원들에게 오늘 진행 할 코스 안내를 한다. 1코스로 산행이 이루어진다며…… 그리고 출발이다. 이곳 광덕사는 일주문이 태화산 일주문으로 되어 있다. 고개를 갸웃 둥 해본다. 아산시 방향으로 태학산(태화산:455.3m)이 있는데 위치상으로 그 산이 이 주변의 주산으로 봐서 그런지 아님 공주 태화산에 위치한 마곡사의 말사라 그런지 하여 든 일주문 현판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인터넷으로 알아 볼까나?? 좌측의 연혁에 눈길이 닫는다. 광덕사의 역사는 백제(무왕640년)시대의 사찰로 전해지지만 연혁에는 신라 선덕여왕(637년)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한다.(백제가 전쟁에서 패한 년도가 660년이니 백제시대 창건이 맞을 듯)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충청도에서 규모가 제일 켰던 절로 그 당시 모두 불에 전소되고 후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며 문화재로는 묘법연화경(보물269, 270호)과 고려사경(390호)이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과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감역교지(보물1246호), 조선사경(보물1247호), 노사나불 괘불탱(보물1261호)등은 광덕사 경내에 있으며 그 외 천연기념물로 호두나무(398호)가 지정되어 있으며 도 문화재 등 다수가 있는 사찰로 문화재 가치가 높다 하겠다. 도로 바닥을 보니 차량바퀴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모습으로 이른 아침이라 다행이다 싶다. 포장도로가 아니라서 날이 풀리면 엄청 질퍽거릴 것 같은 길을 지나며 너도나도 좌측에 위치한 화장실로 달려간다.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를 안 들린 이유겠지.ㅋㅋ 이 몸은 우측 태화교 건너 운초(雲楚) 김부용(芙蓉) 묘가 가리키는 시탑 앞에 도착 부용묘가 있을법한 위쪽을 올려다 본다. 지난 해 1월 아내와 방문했을 당시는 가고 싶어도 눈치가 있어서 못 갔는데.ㅋㅋ 기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난 그녀는 기녀시절 평양 감사 김이양(金履陽:1761~1852]과 인연이 되어 한양으로 돌아간 그를 잊지 못하고 죽어서도 그의 묘 옆에 묻혀 달라고 하여 이곳 천안 광덕산에 묻혀져 있다. 그는 살아서『운초당시고(雲楚堂詩稿)』와 『오강루 문집(五江樓文集)』 등의 시문집을 남겼으며 사모시인 층시가 유명하다. 시탑에서 돌아 나와 회원들과 합류 사찰 좌측 주택가 쪽 등산로 화살표가 있지만 극락교 다리를 지나 광덕사 경내 방향으로 진행 사천왕문 계단 옆에 400여년이 되었다는 호두나무 앞에 선다.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호두나무로서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되었으며 안내판을 보면 호두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전래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9월 영밀공 유청신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어린 호두나무와 열매를 가지고 와 나무는 광덕사 경내에 심고 열매는 고향집 뜰에 심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천안 광덕면 지역이 호도가 처음으로 생산된 곳이며 이곳을 시배지로 부른다고 되어 있다. 호도인지 호두인지 어릴 때부터 궁금했는데 한자로 보면 호도로 되어 있으며 시대적 변천으로 호두라고도 부른다. 『호』는 오랑캐를 통칭하는 용어로서 원나라의 열매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지 않았나 싶고 그 당시에 원나라에 대한 한이 서린 것으로 글쓴이는 추정하고 싶으며 호래자식, 호떡 등이 한 예로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계단 위로 대웅전 뜰이 올려다 보이며 중년의 한 남성이 마당을 청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며 정겨움에 다가가 합장으로 인사를 나눈다. 불가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인사로 알고 있기에……^^ 뒤돌아서 나오며 우측의 침엽수가 하얀 옷을 입고 반긴다. 먼발치로 회원들이 앞서가며 부리나케 잰 걸음으로 따라가 개울을 건너 장군바위와 헬기장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장군바위 방향으로 가면 2코스로 조금은 완경사지만 헬기장 방향은 초반부터 계단으로 하체 단련으로 으뜸이다.^^ 갑철형님이 백하여 2코스로 가잖다. 농담이시겠지~ 삼거리에서 조금씩 오름이 시작되며 5분 진행 드디어 계단 앞에 도착한다. 이제부터 계단 오백 개 이상을 올라야 하는 고난이 시작될 듯 들머리에 세워 놨던 『이 뭣 고』의 글귀가 떠오른다. 선두는 이미 저만치 오름이 시작되었지만 후미는 망설이다 어차피 가야 할 길 마음을 다잡고 한 계단 두 계단 오름이 시작된다. 도대체 이 계단이 몇 개이던가 숫자를 헤아린다. 등산객들의 지나간 흔적으로 계단에 엉겨 붙어있는 얼음덩어리는 오름에는 다행으로 별 지장은 없겠지만 하산에는 분명 안전에 주의해야 될 듯 까마득한 계단 오르는 이들에게 고됨을 달래려고 주변엔 노란 솔잎이 바닥을 수놓고 이른 아침에나 볼 수 있는 바닥에 핀 눈꽃의 아름다움이 그나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모두들 대단하다 11분 571(?)개의 계단을 쉼 없이 올라 팔각정에 당도한다. 작년 1월 아내와 왔을 때 하산을 이곳으로 했기에 내리막이라 못 느꼈지만 모두들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하다. 정상이 1.3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우리가 지나온 길보다 가깝게 표시되어 있으니 그래도 헉헉거리고 올라온 보람을 느끼며 휴식장소에는 이은상 시인의 산악인 선서 탑이 어느 산악회에서 세워놨다. 대부분 산 입구에 있는 것으로 기억이 나며 여기까지 무겁게 올라와 세운 그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들만의 뭔가가 있을 듯 이마의 땀을 씻은 후 만우의 퀴즈가 발표된다. 이 탑에서 뭐 느끼는 것이 있는지??? 누군가 모자가 카우보이모자처럼 생겼다고 하고 누구는 뫼 산(山)자라고 한다. 결론은 산악인과 관련된 것이니 후자가 맞는단다. 그래 맞다.ㅋ
얼마간의 휴식 후 출발, 잘 가꾸어 놓은 묘를 지나 다시 급경사 한 곳을 오른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점점 길어지며 위치표시 목 7번을 지나 3개의 벤치가 있으니 쉴 만도 하지만 그냥 바로 오름이 진행되며 통나무 계단을 올라 비상약품 보관함이 세워져 있는 헬기장에 도착 과일을 나눠 먹는다. 벤치에 배낭을 내려 놓고 작년 1월 아내와 올랐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건 여기까지 힘들게 왔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 계곡 1코스와 2코스 중간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희미한 등산로를 오르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 속된말로 개 고생했으며 당신은 나와 같이오면 왜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다음부터는 둘이 산에 안 온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도 참 희한하다. 꼭 아내와 산행을 하면 이상한 길로 가게 되니 말이다. 잘하려고 해서 그런지 아님 뭐에 홀려서 그런지 하여 든 기억해보면 그런 일이 다반사이다.ㅋ 매번 다음에는 확실한 등산로 따라 다녀야지 다짐만 수도 없이 해보지만 매번 실수다. 그래도 서울에서 전철 타고 버스 타고 광덕산까지 오기가 그리 녹녹한 건 아니니 아날로그 형 산행으로 단 둘이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후담.ㅋㅋ 휴식이 길어지며 이정표에 표시된 숫자를 바라다 본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600m라 힘들게 했던 산행도 얼마 남지 안 했다며 출발이다. 바로 앞은 빙판이 도사리고 있는 내리막이라 아이젠 착용하는 회원들이 있다. 안전이 최고이니까. 그렇게 바로 내려서니 나무에 정상 0.5Km라는 안내 화살표가 달려있다. 고작 30m나 왔을까 축지법이 이런 때 사용되는 건지 모르지만 이러다간 금방 정상이겠다 싶고 하여 든 강의실 의자처럼 나란히 아래를 향하여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마지막 급경사에 도전(?)한다. 너덜과 바위주변을 돌아 오르는 정상은 쉽게 내어주질 않으려는지 마지막 오름에 힘겨워하며 좌측 언저리에 비닐하우스로 바람막이를 해 놓고 막걸리 파는 주막이 보이고 선두들이 기다리는 정상에 다가선다.
(제 카메라에 이 사진이 없어 밴드에서 빌려왔습니다.^^)
기껏해야 한 시간 반이라는 산행에 더 오를 수 없는 곳에 도착 그래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는다.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이 으뜸인데 오늘은 운무가 자욱하니 조금은 덜 보인다. 그래도 주변 사방의 산세가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다른 어느 산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상 인증사진과 단체(?) 사진을 찍자 하니 이미 찍었단다. 하기 사 후미가 좀 늦게 도착했으니 이해가 간다. 정상 한쪽에는 천안에서 세운 광덕산 유래 석이 있어 읽어 보면 『이 지방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난리가 나거나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있어 신라시대(?)에 광덕사를 세웠고 주변에 호도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우쒸~ 글쓰는이만의 생각인가?? 그 시대(광덕사 세운)에는 이 곳 땅이 분명 백제의 통치권에 있던 지역인데 어떻게 해서 신라인들이 와서 절을 세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때 불교는 성역이 없었나??? 애라 모르겠다. 그냥 장군바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응달이라 아이젠은 필수다 하지만 요즘 산에 안 다녀서 하체 근육을 단련(?)시킨다는 마음으로 스틱에 의존 내려간다. 약간은 불안한 자세가 이러다 실수하겠다 생각 차라리 우측 눈 속으로 들어가 진행한다. 장군바위까지는 정상에서 1.3Km이니 금방이다. 마주 오는 등산객들이 많아지며 철 계단과 특징 없는 등산로를 25분 지나 장군바위의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가 가로 막고 있는 곳에 도착 우측으로 가면 부용묘 방향으로 하산이 이루어지는 광덕사 2코스며 좌측으로는 강당사 방향 하산로이다. 우리는 바위를 끼고 설화산 방향으로 올라 점심식사 자리를 차리고 오순도순 지난 일년간 산행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오늘 이렇게 좋은 날씨를 우리에게 선사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정종백 자문위원님이 고마움을 표한다. 가지고 온 음식을 서로 나눠 먹으며 거나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백하여 장군바위 앞에 선다. 이 바위가 장군바위라고 이름 지어진 전설이 있으니 기록해 본다. 아주 옛날 허약한 젊은이가 깊은 산속을 헤매다 허기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는데 어느 곳에서인지 물소리가 들려와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가보았더니 큰 바위 밑에 물이 뚝뚝 떨어져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물을 받아 마셨더니 얼마 안돼서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변하였다 하여 장군바위라 칭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마침 우리가 하산하는 부근에 약수터가 있으니 그곳에 가서 한잔 받아 마시고 젊어져야겠다 다짐한다.ㅋㅋ
강당사 방향은 응달지역이라 가능하면 아이젠을 착용하기를 너도나도 한마디씩 배낭에 두벌의 아이젠이 있으니 혹시 필요하신 회원을 찾아보니 모두들 지참하고 있단다. 그럼 출발이다. 등산로에 눈이 쾌 많이 있어 발을 옮길 때마다 느끼는 촉감이 좋다. 바로 앞에 광덕사에서 오를 때와 비슷한 계단이 길게 도사리고 있으니 하산에 주의해야 할 듯 길게 이어지는 계단 따라 내려서니 장군바위에 안내되어 있는 약수터가 우측에 안내되어 있다. 한잔 받아 마시려니 물방울이 멈추어 있다. 약수는 가뭄이 길어도 나와야 약수라던데…… 바가지가 있고 바위에 물기가 있으니 나오기는 나오는 것 같은데 받아 마실 량이 아닌 듯 마침 승호와 만우가 배낭을 내려 놓고 점심 먹은 무게를 버린다고 숲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주인 없는 배낭을 놔 두고 갈 수는 없어 두리번, 연관이가 지키고 있다.ㅋㅋ 안심하고 너덜 따라 눈길을 걸어 임도에 도착 사각탁자가 있으니 잠시 휴식한다. 여기가 장군바위와 강당골 거리가 중간으로 양방향 모두 1.2Km의 지점으로 후미가 도착하니 임도를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어간다. 10여분 진행 다시 더크계단을 내려서 계곡에 흐르는 물길과 나란히 올 마지막(?) 산행이 마무리 될 듯 위치표시 목 02-01이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나 12시40분 경 음식점이 시작되는 도로에 도착한다.
포장도로 따라 얼마를 지나 좌측으로 광덕산 정상에서 마리골을 경유 바로 이곳으로 하산하는 안내 이정표가 있다. 강당골 청정계곡 쉼터마을의 먹거리며 사찰 등 안내판에 빼곡히 안내되어 있는 광경이 여름이면 찾는 이가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다가오며 강숙선씨 지인이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니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가자는 의견이 나오며 다리건너 잠시 도로에 멈췄다가 겨울엔 운영을 안 한다며(?)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여기까지 왔으니 식당운영을 안 하더라도 찾아가 안부라도 전하고 시골 김장김치로 안주 삼아 차디찬 막걸리 한잔했으면 간절한 마음을 뒤로 강당사 앞을 지났다 이 사찰은 특이하게도 원래는 조선 영조 때 관직에 있던 이간(李柬)선생과 그의 지기 윤혼(尹焝)선생이 학문을 강론하던 서원이었다고 한다. 허나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있자 이를 모면하기 위해 마곡사에서 불상을 모셔다 봉안한 계기로 사찰이 되었으니 유교와 불교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다만 한동안 방치(?)되었던 곳으로 근대에 와서 (1995년~2002년)대웅전 보수와 중창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당사 앞 우측에 화장실을 끼고 설화산 삼거리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가 안내되어 있지만 2015년11월23일부터 2016년2월까지는 등산로 정비관계로 입산금지가 되어 있다.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짜증나려고 할쯤 좌측으로 구름다리가 있으니 경험도 할 겸 그곳으로 지나 오후 1시15분 주차장에 도착 2015년 산행이 마무리되고 1년동안 산에서 흘린 땀과 피로를 온양온천에서 말끔히 씻어낸다.
(나의 스마트폰은 버스에서 하루 종일 주무신 관계로 김연관 후배의 기록을 빌림)
※하산이 일찍 이루어진 관계로 외암민속마을을 관람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모두들 한 두 번씩 왔다 갔다며 동네를 지나치며 눈으로 관람하랜다.ㅋ 온양시내로 들어와 온천 앞에서 버스 주차관계로 다른 회원들보다 조금 늦게 온천탕에 도착하니 이곳 온양온천이 강숙선회원의 고향이라 하여 온천 입장료를 지불했단다. 우잉~ 아침엔 문미영총무가 참석하지 못한다며 떡과 음료수를 주고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온양호텔을 나와 좌측으로 대나무가 무성하게 살아가는 곳에 비석루가 있어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세조가 온양에 머물고 있을 때 온천(溫泉) 곁에서 차갑게 나오는 우물을 발견하고 이를 신정(神井)이라 칭하여 후에(성종7년) 기념하고 비를 건립했단다. 지금은 지붕으로 보호가 잘되어 있지만 대부분 글자가 닳아 없어져 상당부분이 판독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문화재자료229호로 지정되어 관리하니 지금이라도 다행이다 싶고 우리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갈려면 지름길이라 정사각형 대리석으로 조성해 놓은 우물인 신정을 끼고 온천천의 발원지 안내 따라 버스에 도착 회원들이 주변의 식당을 알아보다 포기하고 상경하면서 도로주변의 맛 집을 이용하자 하여 천안 부근에서 개업한지 며칠 안된 식당에서 일탈의 조짐이 싹트며 올라오는 버스에서 생전처음 일탈을 해본다. 김영주감사님, 장용숙사무국장님, 문미영총무님, 강숙선회원님, 그리고 차내에서 재능기부(?) 및 찬조에 감사 드리고 산악회 회원님들 얼마 남지 않은 2015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는 좀 더 건강을 다지며 산에서 보기를 소원합니다. 밝아오는 201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첫댓글 현장감이 생생한 리얼한 산행기 자~알 봤고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
올해는 산에 적게 다녀서...
2016년에는 새로운 도전의 해로 생각 열심히 다녀야 되겠지.
아우님도 올 마무리 잘하시고 2016년도는 신나는 해가 되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