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일 문학의 시작
친일문학이란 1937년 5월 조선문예회(친일문예단체)의 결성에서 시작되어 학무국 사회 교육과가 주동하여
조선총독부와 함께 일제강점기의 일본 침략 전쟁이나,황민화 정책 등을 찬양하고 이를 격려하기 위해 시작한 문학이다.
▶ 친일 문학의 성격
첫째, 일본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일왕을 중심으로 국가조직을 격려하고 찬양하는것)
둘째, 스스로 일본 국민이라 긍지를 가지고 일본에 감사 하는것을 내용으로 한다.
셋째, 일본어로 창작한다.
1940년대 김억의 종군간호부의 노래/ 최남선의 김소좌를 생각함 /정의의 개 가 /방호단가 /
장성(長城)의 파수 등의 국민문학의 원시적 출발인 애국가요로 시작되었다.
▶ 조선 문인협회 결성
1939년 4월에는 임화, 최재서, 이태준이 주동하여 황군 위문 작가단을 결성/김동인,박영희, 임학수 등은 전선기행/전선시집 등을
발표한후 그해 10월 조선문인협회가 탄생.일본과의 내선일체를 부르짖는 목표하에 초대회장으로 이광수가 선출되었다
▶ 전시 체제와 친일 문학
일본은 만주사변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전시 체제에 돌입하여,한반도를 일제의 병참 기지로 삼고 친일 문학인들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친일을 강요,민족정신을 말살하려 노력하였다.당시 친일 가담은 단지 몇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많은 지식인 ,저명 인사들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 친일 문학인 42명 명단 발표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이상 시),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이상 소설ㆍ수필ㆍ희곡),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이상 평론) 등이다.
육당 최남선 1890 ~1957 와세다 대학 / 조선사편수회 위원
잡지<소년>을 창간,〈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고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
한명으로 일제에 체포되기도 했으나 곧 이어 동아일보를 거쳐 조선사편수회,총독부중추원 등에서 활동하는등 친일 활동을 하였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진보적정신이 청조를 구축하려는 전쟁이라는 성전론을 주장하면서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일본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 교수로 있으며 재일조선 유학생들의 일본전쟁 참여를 강연 독려하기도 하였다.
〈김소좌를 생각함>< 정의의 개선가>〈성전의 설문〉 〈아세아의 해방〉 등이 성전론을 피력한 작품들이다
노천명 1912 ~1957 이화여대 황해도 출생
시인. 조선일보.중앙일보 등의 기자를 지냈고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대동아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친일 작품, 싱가폴함락대.
부인근로대 ,님(일왕)의 부르심을 받고,군신송.....등등을 남겼다. 널리 애송된 대표작 《사슴》으로 인해 사슴의 시인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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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 1910 ~1990 함경도 원산 이화여대 경성제국대
1940년부터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임전대책협의회,조선교화단체연합회를 비롯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국민의용대 총사령부에서
활동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하자〉〈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함〉〈조선 학도여 성전에 참여하라〉는 등의 친일적인
내용의 글들을 신문에 연재하였다.광복뒤에도 문단과 정계에서 한국대표 문인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안서 김억 1896 ~?? 게이오대 문과 (김소월의 스승으로 오산학교 교사)
평북 정주 출생으로 교편을 잡으면서 동아일보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하며 국민총력조선연맹,조선문인보국회 등으로 지내면서
친일 활동을 하였다.매일신보 (1933,1944년)를 통해 시는 군가적으로 씩씩하고 우렁차야 한다/대동아 결전,미국과 영국을 격멸하자
< 님 따라 나서자 >에서는 가미카제 특공대로 전사한 조선인 가네하라 군조를 뒤따르자며 징병을 격려하는 시를 집필하였다.
이광수 1892∼1950 일본 메이지학원으로 유학
1940년 창씨개명 후 이광수는<의무교육과 우리의 각오> 등 많은 논설과<조선의 학도여><성전 3주년>의 수필을 썼으며
<반도민중의 애국운동>등의 평론,<자원병훈련소>등의 방문기 등 모든 문학 장르에서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발표하였으며,
1943년부턴 학병 권유의 글과 연설을 번갈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주요한 1900년 (평양)- 1979년 / 메이지 학원, 민주당 민의원
주요한은 시 〈성전찬가〉에서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며 격정적으로 일본을 찬양하는 시들을 창작하였다.
또한 〈적, 미국의 사상모략〉이라는 평론에서 미국을 백인 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지적하면서,대동아 단결을 이룩하여
조선의 청년들은 분연히 일어나 영국과 미국의 모략을 분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채만식 1902 ~ 1950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 와세다대 중퇴
채만식은 1940년대 후반기부터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풍자정신과 리얼리즘 방법론으로 식민지 한국사회의
현실성을 우리 역사의 굴절을 냉정한 묘사가의 시선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다 후에 친일을 하게 되고, 해방 후에 일제 말기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민족의 죄인>(1948)을 발표하였다.
김동인 1900 ~1951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원
1919년 3월과 1942년에는 아우 김동평의 3.1운동 격문을 써준 것이 발각되거나 일왕에 대한 불경죄로 투옥되거나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일제 말기에 친일행위를 시작,1939년 성전종군작가로 황군 위문을 떠나고 조선문인보국회(친일문학단체)간사를 지내는등
1944년엔 친일소설 <성암(聖岩)의 길>도 발표하였다.
미당 서정주 1915 ~2000 고창 한국예술원 원로
1942년 다츠시로 시즈오란 이름을 시작으로 친일작품들을 발표했으며,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항공일에〉 <최제부의 군속 지망><오장 마쓰이 송가> 따위의 친일 작품들을 발표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자체 조사하여 발표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자 1차 명단(708명)에 포함되었다
박영희 1901~ 납북 생사불명 서울태. 도쿄 세이소쿠학교
박영희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계열에서 친일을 한 대표적인 작가로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념이라는 말로
전향 논리를 폈지만,실제로 그의 전향은 단순한 부일(附日) 협력의 길로 걸음을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1938년 도쿄에서 시국 대응 전국 위원회에 참가하면서 친일활동을 시작.조선문인협회 간사로 활약하며
시국 대응 전선(全鮮)사상 보국 연맹의 간사 / 황군 위문 작가단의 일원으로 〈전선기행〉을 창작하였다.
임전체제하의 문(文)과 문학의 임전체제, 2천5백만 반도청년에게 격함이라는 평론을 발표하였다
김기진 1903 ~1985 청원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
1924년부터 매일신보.시대일보, 동아일보 등의 기자로 활동하며 1940년대부터 수필.시.평론 등으로 친일 작품들을 발표했다.
가장 강력한 친일문예조직인 조선언론보국회 이사로 있으며 징병제 실시 당일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라는 시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면서 친일 행적을 드러냈다.
이효석 1907 ~1942 36세 요절 (약간 애매한데??)
〈메밀꽃 필 무렵〉등 서정적인 소설을 많이 쓴 이효석은, 〈아자미의 장〉이라는 소설에서 일제가 민족 말살의 수단으로 권유했던
이른바 일선 통혼(한일간의 혼인으로 한민족의 핏줄을 말살 하려던 정책)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백철 1908 ~1985 평북. 도쿄 사범학교 영문과
유학시절 일본 문단 데뷔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광복 이후 대한민국 문단의 비평계를 주도하며 친일행각을 펼쳤다.
백철의 평론 〈낡음과 새로움〉은 국민 문학의 원칙을 밝힌 것으로,이 글을 통해 일본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유치진 1905 ~ 1974년 통영 일본 릿쿄대학
유치진은 국민 연극 이념의 수립에 기여하며 〈국민연극 수립에 대한 제언〉과 〈신체제하의 연극〉 등의 평론을 발표하였으며,
중일전쟁 발발후 현대극장을 발족시켜 총독부의 만주 이민 정책에 호응하는 친일 내용의 〈흑룡강〉, 친일의 선봉인 이용구를
찬양한 〈북진대〉의 희곡을 쓰고 공연하였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지식백과,위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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