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겸손(빌2:5-11)
2020.7.12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유대인의 지혜의 책 탈무드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겸손은 하나님의 진리의 깊은 곳을 깨닫게 해주는 열쇠이다”
국어사전에 보면 겸손(謙遜)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겸손은 이러한 일반적인 사람과의 관계 수준에서만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까지 연결된다. 다시 말해서 나의 낮아짐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성경적인 겸손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며, 이는 철저한 자기부정(自己否定)과 직결된다.
이러한 성경적인 겸손의 최고 모델링은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최고의 겸손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도 항상 모든 초점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두셨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늘 전부였고, 우선이셨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죽음은 그 자체가 예수님의 자기부인이며, 겸손의 극치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을 모든 성도들이 품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품는다’는 것은 인격적이고, 의도적으로 배우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빌2:5-9).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이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참된 겸손의 모습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각자 살았던 시대와 환경이 다르지만 그들은 애굽의 바로왕이나 느브갓네살왕 앞에서 꿈을 해석해 주면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고백을 했다. 자신은 숨기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이 배워야할 성경적인 겸손의 모습이다.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5-16)
“26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하니 …….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단2:26-28)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쳐주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다. 그때 사도 베드로가 외쳤던 말이 성경적인 겸손의 의미와 일치한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의 관심을 자신들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집중 시켰다.
“1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행3:12-13)

세계에서 최고의 오라토리오(Oratorio)로 꼽히는 세 곡(曲)이 있다. 그것은 헨델의 “메시야”, 멘델스존의 “엘리야” 그리고 하이든의 “천지창조”다. 이 중에서 “천지창조(The Creation)”는 하이든(J. Haydn 1732~1809)이 헨델을 추모하는 음악회에서 “메시야”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작곡했다. 1798년 4월29일 슈바르첸바르크 궁전에서 “천지창조”가 초연되었을 때, 수많은 청중들은 엄청난 감동에 물결에 빠져들었다.
연주가 끝난 후, 사회자는 이 곡을 작곡한 하이든이 이 자리에 참석하였다고 소개했다.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이든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때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천지창조”를 작곡했을 때보다 더 경건한 때는 결코 없었습니다. 나는 매일같이 무릎을 꿇고 그 작품을 작곡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더 큰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이든의 이 한 마디가 바로 성경적인 겸손의 의미다.
***(링크) 국립합창단 : 천지창조 The Creation (하이든 Joseph Haydn) 공연 실황 -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천지창조 1부 - https://www.youtube.com/watch?v=iCq6qb_T9sk&t=1060s
천지창조 2부 - https://www.youtube.com/watch?v=lopxxY2zZTc
천지창조 3부 - https://www.youtube.com/watch?v=_DTi-EljFJc&t=197s
예수님의 생애나 요셉과 다니엘과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적인 말 그리고 하이든의 모습은 이 시대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유혹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성경적인 겸손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반대로 교만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데서 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는 특징을 보인다. 대화중에도 대부분 자기 말만 한다. 그러다 보면 쉽게 분쟁과 말다툼이 일어난다. 신앙에 대해 아는 척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기도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회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3:34)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바로 이러한 참된 겸손의 의미와 축복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그렇다면 오늘 주신 말씀들에 비춰 볼 때, 지금 우리는 나를 드러내고,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초점이 있는가, 하나님께 초점이 있는가? 혹시 나의 이익이나 사람에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눈을 떼고 있지는 않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또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만 높이며 살겠다고 작정하자.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자.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우리들이 사는 이 지역, 나의 모든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온도계가 아닌,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자. 기둥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기둥 혼자 집이 될 수는 없고 서로 연결해야 하듯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서로 연결하고 합력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작정하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