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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이영훈목사/삶의 전환점 (행 9:1-5)
할렐루야! 좌우 옆에 계신 분하고 한 번 더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오늘 저는 사도행전 9장 1절로 5절의 말씀을 가지고 ‘삶의 전환점’, ‘삶의 전환점’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삶의 전환점’ ‘삶의 전환점’
모든 사람들의 일생에 굴곡이 있습니다. 오르막길을 가다 내리막길을 가기도하고 곧게 펼쳐진 길을 가다가 굽어진 길을 가기도합니다. 한참 잘 나가다가 하루아침에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리고 절망의 자리로 떨어지는 그러한 어려움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절망이 다가오든지, 어떠한 문제가 다가오든지,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절대로 낙심해서는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에 닥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에 그들 앞에 홍해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저들은 절망했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니 그들은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갈수도 없고, 그들은 거기서 완전히 멸망당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절대절망의 자리를 절대 희망의 자리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저들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홍해를 갈라주심으로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게 되었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애굽의 모든 군사는 물이 합쳐짐으로 거기서 완전히 멸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절망을 변화시켜서 위대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희망으로 우리에게 바꾸어주십니다. 요즘 다들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기회인 것입니다. 절망의 때를 삶의 전환점으로 삼아서 큰 축복과 기적과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대적한 사울
첫째로 예수님을 대적한 사도 바울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대적한 사울’
당시 청년 사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아주 잘나가는 그런 청년입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었고 또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러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장차 이 청년은 유대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인정하는, 그렇게 장래를 보장받은, 그러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이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그 자리에 증인으로 서있으면서 저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단이니까. 하나님 앞에서 이단들은 다 저렇게 심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은 적극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서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절에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받아가지고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붙잡기 위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공문을 가지고 가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그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9장 3절로 5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자기 나름대로의 열심 갖고 하나님을 섬겼지만은 근본적으로 자기 열심에 치우쳐서 하나님을 섬기느라 하나님의 본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열심에 치우친 나머지 편견과 독선과 맹종의 노예가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것입니다. 붙잡아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그가 이와 같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빠지는 오류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에게만 오면 구원이 있다. 다른 데는 구원이 없다. 우리 교주의 말을 들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교회로 오라.’ 이런 교회는 다 이단입니다. 우리 교회만 와야 구원을 받는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고 하면 다른 모든 교회는 다 그러면, 사탄의 소굴입니까? 그 이단들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혼미케 해서 잘못된 교리를 집어넣고 거기에 빠져 꼼짝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로 고백되어지고 있는가? 예수님의 위치에 그 교주가 대신 앉아가지고 자기가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가? 우리가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료로 성경공부 한다는데 멋모르고 따라갔다가 나중에 한참 빠져 들어가 보니 거기는 교주를 보혜사 성령이라고 그럽니다. 어떻게 그가 보혜사 성령입니까? 그들은 사탄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국에 자칭 예수씨가 서른여덟명이나 된대요. 절대로 속으면 안됩니다. 이 사람들이 빠지게 된 오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옳다. 우리에게만 구원이 있다. 우리 교주만 참 진리를 전한다. 이것이 이단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 길을 갔어요. 나만 옳다. 내 생각이 내 판단이 옳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한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예수님을 박해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핍박한 모든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기 때문에 성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사소한 일로 다투고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어렵게 하는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교회 내에서는 사랑으로 화목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이해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밀고 당기면서 좋은 화목을 이루는 그것이 바로 교회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할렐루야!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오십년 역사가운데 한 번도 나뉘지 아니하고 이렇게 은혜가운데 부흥되고 발전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조 용기 목사님을 통해서 시간, 시간 주시는 말씀이 우리 모두를 변화시키고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주님 오실 날까지 계속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주님 오실 날까지 더욱더 확장되어지고, 더욱더 널리 전하여져서 한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주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 모두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구역에서 하나 되게 하옵시고 각 교회 기관, 기관이 하나 되게 하옵시고 모든 성도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절대로 믿는 성도들끼리는 큰소리 내는 일이 없게 하여주시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 다투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늘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며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은혜에 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2. 빛으로 오신 예수님
둘째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빛으로 오신 예수님’
이렇게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했지만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울을 긍휼히 보시고 그에게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울을 친히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그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고 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목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니라. 지금도 주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주님이 오십니다. 극한 슬픔에 처한 사람들, 문제를 만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죄 가운데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죄 용서 받을 수 없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삶은 첫째도 감사, 둘째도 감사, 마지막도 감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 빛으로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 9장 3절에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말할 수 없이 강력한 빛으로 다가오셔서 사울에게 빛을 비추실 때에 얼마나 빛이 강한지 그 순간 눈이 멀어버리고 말에서 떨어져 버렸어요. 주님은 지금도 흑암에 처한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주의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실 때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그 순간 혼돈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 빛이 비춰 주었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있으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빛이 비치어주는 그 순간 모든 어두움은 사라져 버립니다. 모든 절망은 사라져버립니다. 모든 슬픔은 사라져버립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생명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절망의 어두움, 슬픔과 염려와 고통과 괴로움의 어두움, 근심 걱정의 어두움, 부정적인 생각의 어두움에 갇혀있는 우리들을 구원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주의 사랑의 빛이 비춰지게 되면 우리는 치료받고 용서받고 새 힘을 얻고 변화 받아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14장을 보면 이런 고백이 있어요. ‘주의 사랑 비췰 때에 기쁨 오네 근심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것 물리쳐 주의 사랑 비췰 때 기쁨 오네’ 할렐루야! 그 사랑의 빛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비춰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삶속의 모든 어두움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주의 은혜로 축복으로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9장 4절로 5절에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주여 누구시니이까? 사울은 그 순간 빛으로 오신 분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할렐루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예수님을 박해한 적이 없습니까?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여러분! 혹시 아침에 부부싸움 하고 오신 분 계세요? 그럼 예수님을 박해한 거예요. 혹시 동생하고 다투고 오신 분 있습니까? 예수님을 박해한 것입니다. 혹시 교회 와서 누구에게 신경질 부린 적이 있습니까? 뒤에서 민다고. 그것이 박해, 예수님을 박해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후로 예수님을 박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꼭 눈에 띠게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예수님을 박해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성도에게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 모든 것이 예수님을 박해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정말 내 형제자매로 알고 뜨겁게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할렐루야! 예수님의 빛이 비춰질 때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주님은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할렐루야!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22장 끝 절까지 이 모든 말씀에 예수님의 피가 방울방울 적셔져 있어서 이 말씀을 읽을 때 예수의 피가 우리 마음에 뿌린 바 되어 우리가 치료받고 용서받고 새 힘을 얻고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고 악한 영력이 떠나가고 우리 마음에 평안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생명의 빛이 비춰 들어와서 우리의 기쁨이, 평안함이, 치료가, 용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들어오신 예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3. 사울의 변화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 번째로 사울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9장 8절에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그랬습니다. 강한 빛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눈은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현대인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서 하늘나라의 신비한 것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고집 때문에, 편견 때문에, 죄악 때문에, 방종 때문에, 불신앙 때문에 눈뜬 맹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주님을 보지 못해요.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도단에 있을 때에 아람 왕이 군대를 풀어 그를 잡으러 왔습니다. 사환이 아침에 일어나서 성위에서 내려다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람군대가 온 성을 둘러싸고 창과 칼을 높이 들고 엘리사 선지를 잡으려고 저들이 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급히 달려 와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보고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아람군대가 우리를 둘러서 우리는 붙잡혀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이와 같이 말을 합니다. 열왕기하 6장 16절 17절에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할렐루야! 영의 눈을 떠서 보니, 하나님께서 이미 천군천사를 보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의 눈을 떠서 보면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군천사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영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가 2009년도 축복의 해를 살면서 영의 눈을 뜨게 하옵시고, 믿음의 눈을 뜨게 하옵시고, 기적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 절대로 절망적인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재벌 가운데 하워드 휴즈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하워드 휴즈 이분은 영화사도 갖고 있었고, 영화감독도 하고, 비행기도 만들어서 자기가 직접 그 비행기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그리고 TWA라고 하는 항공사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비행기의 모형이 오늘날 우리들이 타고 다니는 보잉747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워드 휴즈가 큰 재벌이었지만은 그는 늘 죽음의 공포 속에 두려워 떨며 살았습니다. 그 마지막 그의 죽음이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경호원을 데리고 바하마, 니카라과, 캐나다, 영국, 라스베가스, 멕시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닙니다. 그 곳에 가서는 제일 비싼 호텔,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 층을 빌려서 모든 창문을 닫아 커튼을 다 내리고 불을 끄고 그 안에 혼자 있습니다. 밖엔 경호원이 지키고 있습니다. 무엇을 갖다줘도 잘 먹지를 않습니다. 독약이 들어 자기를 죽일까봐. 멕시코 갔을 때 일주일이 되도 안에서 아무 연락이 없어 문을 뜯고 들어가 보니 그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보니까 얼마나 불쌍한지, 머리는 다 풀어헤치고, 손톱은 이렇게 길고, 바짝 말라서 그냥 웅크리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와서 그가 치료받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 비행기 안에서 죽었어요. 사망원인이 뭔지 아십니까? 영양실조. 그가 남긴 재산이 이십억 불, 이조 팔천억 원 입니다. 그런데 영양실조와 약물과다로 과다복용으로 죽었어요.
야! 이조 팔천억. 우리교회에다 십일조만 가져와도 이천 팔백억 인데. 거기서 돈 십 만원만 꺼내서 뷔페 집 가면 실컷 먹고도 또 돈도 거슬러주고 헉헉거리며 나올텐데. 그래 영양실조로 죽었어요. 참 그 인생이 얼마나 불쌍한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뜬 사람은 그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되었어요.
그 대표적인 이가 강 영우 박사님입니다. 저희 교회에도 여러 번 와서 간증도 하셨는데요, 열세 살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서 두 눈이 멀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부모님이 다 돌아갔어요. 고아가 되었어요. 그의 삶 자체가 절망이었지만은 예수를 믿고 나서 영의 눈을 떴습니다. 그것이 바로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 날마다 나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광동에 천막을 치고 어느 젊은 주의 종이 말씀을 전하는데 그 곳에 가면 병을 고친다더라 해서 그곳에 가서 열심히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조 용기 목사님이 그때 말씀 하시더라구요. 여러 번 나한테 와서 기도받았다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눈을 뜨게 해 주셨어요. 평생 그의 반려자가 된 석은옥 여사를 만나게 해주셔서 그와 함께 힘을 합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 모든 절망을 극복하고, 연세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미국의 피츠버그 대학에 가서 교육학 박사를 받고, 그다음에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가 되고, 그다음 유엔 장애인 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가 2001년 부시 행정부 국가 장애인 위원회 정책 차관보라는 높은 위치에서 미국에 가서 장애인들을 섬기게 되었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신문을 보니까, 이번엔 그의 둘째아들인 강 진영이, 크리스토퍼 강이 오바마 대통령의 입법보좌관이 되어서 백악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이 집안이 참 믿음이 좋은 집안이고 예수를 믿고 아주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는 큰 복을 받은 가정이에요. 왜! 그 아버지는 공화당에서 고위 관직을 지내고, 또 아들은 민주당에서 정반대인데, 민주당에서 이제 백악관에 들어가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아들 진영군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위원실에서 일하다가 2001년 변호사 29세 최연소 미국 상원의원 수석법률 보좌관이 되었고 지금 이제 새로운 정부에 들어가서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큰아들 강 진석 박사는 안과 의사로 조지타운 대학에 의과 대학 교수로 있습니다. 그 큰아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앞을 못 봐도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긍정적인 믿음으로 아버지가 저희들에게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를 믿으니까 눈이 멀어도 그의 삶을 변화시켜주셔서 이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영광된 자리에 그를 높여주시고 그 아들도 높여주셔서 이와 같은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영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영의 눈을 뜰 때 하나님의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삶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면 그 시간이 바로 삶이 변화되는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9장 4절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그는 꼬꾸라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으려면 엎드러져야 되는 것입니다.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교만을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울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꼬꾸라졌습니다. 사도행전 9장 9절에 ‘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9장 11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사울이 삼일동안 금식하며 주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사 그에게 안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면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 부재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긴 그런 분 한 분도 없지만, 저 쪽 가면 쫌 있어요. 밥 먹을 때 빼놓고는 평생 기도안하는 분. 그러니까 하루 기도하는 시간 다 짜도 일분이 안 돼, 왜냐하면 눈 감았다가 ‘예수님‘ 하고 뜨니까. 그렇게 해서는 신앙생활에 어떠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요. 늘 상처받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그러한 인생을 살아요. 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 무기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의 삶이 기도의 삶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감사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새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아나니아에게 기도를 받을 때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9장 17절에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절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기도 받을 때에 성령이 충만하여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집니다. 눈을 덮고 있던 모든 흑암의 세력이 떨어져 버리고 영의 눈이 밝아져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가 성령 충만 받았을 때 하나님이 사명을 주시고 그를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소아시아와 유렵을 세 차례나 다니면서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마지막 네 번째는 로마로 가서 네로황제 시대에 참수형을 당해 순교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너무나 아름다운 일생, 너무나 귀한 일생, 너무나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일생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가 한 육십 세를 살았다고 보는데 삼십 세는 자기중심의 삶을 살았고 삼십 세, 그 때에 예수님을 만나고 난 나머지 삼십년은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서,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서 그는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며 복음을 전하며 살다가 황제에게 네로황제에게 붙잡혀서 참수형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순교의 피가 온 땅을 적셔서 그 후로 삼백년이 지나기 전에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와 같은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운명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제가 최 국일 목사님 간증을 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분은 ‘천둥 속에 나를 던지다’ 라고 하는 책을 쓰셨는데요, 그 부모님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당해 북한에서 죽임을 당하고 홀로 그는 월남해 내려와서 참으로 힘들게 어렵게 삽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요.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가족도 없는 사람이 전과1범이니 어디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또 죄를 짓고 감옥에 가고, 또 죄를 짓고 감옥에 가고, 몇 번 감옥에 들어갔냐, 19번을 감옥에 들어갔어요. 들어갔다 나오고 들어갔다 나오고 그는 완전히 버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폐결핵까지 걸렸어요. 피를 토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를 마산에 있는 요양소에 보냅니다. 그런데 이 마산에 있는 요양소에 크리스천들이 와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돌보아 주었는데 한 자매가 와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병간호를 해줍니다. 처음에는 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거 다 거짓말하고 저거 다 가식적인 모습으로 와서 우리를 위해주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은 차츰차츰 그 사랑에 감동되었습니다. 도대체 나같이 전과 19범에 폐결핵으로 피토하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와서 병간호해주는 그 저사람 마음속에 있는 예수가 누구신가!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그 삶에 놀라운 기적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나서 그 순간 변화를 받아서 그 뒤로부터 그가 몸이 건강해지게 되었고, 그리고 그는 모범수가 되어서 일찍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고, 그리고 자기에게 전도한 그 분과 결혼을 해서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었고, 지금 팔십 세가 넘는 나이에도 감옥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메섹 선교회를 만들어서 계속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갱생의 길을 열어주고 선교의 재정을 충당하려고 붓글씨로 글을 써서 그것을 통해서 수입을 가지고 저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이런 기적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삶의 전환점이 예수 믿는 그 순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에 모시고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면 주님이 여러분의 일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주여 내 마음 가운데 오시옵소서. 빛으로 오시옵소서. 말씀으로 오시옵소서. 내 남은여생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드리고 주님 영광 위해 살아가게 될 때에 이 전에 보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 받아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울이 예수 믿고 성령 받아서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성령 충만하여 주님의 귀한 종으로 우리 남은 삶 주님께 드리는 귀한 일꾼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