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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담당하는 자의 삶 겔4:4-8
주신 말씀 에스겔 4:4-8절을 중심으로 [종말을 담당하는 자의 삶]이란 제목으로 주님 주시는 은혜 받도록 하겠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특이한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그 시대가 하나님 앞에서 처한 상황을 증거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1-3절은 예루살렘이 포위 당하는 것을 상징하는 토판(tail)제작명령입니다.
본문 4-8절은 선민의 범죄기간과 심판 기간을 상징하는 좌우편 모로 눕기 명령입니다.
이러한 상징적 행위의 증거로 390일 동안 좌편으로만 돌아누워 지냈고, 계속해서 그 후 40일 동안은 오른편으로 돌아누워 지냈습니다.
390일과 40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기본적인 성경해석법으로 하루는 일년 원칙을 적용하면 좌측으로 누워 얼굴을 북 이스라엘을 향하고 390년동안 지은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며, 이어서 남유다가 40년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지은 죄가 무겁되 북이스라엘이 지은 390년간의 죄는 더 중한 죄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여로보암이 반역하여 북왕조를 세우고 예루살렘외에 다른 곳에서 송아지 우상을 섬기며 음란하게 행한 BC930-BC539년 완전멸망때까지를 말한다고 주장하며, 남유다의 40년은 한세대를 대표하는 기간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BC589년부터 해방의 기틀이 마련된 BC539년까지를 말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 둘을 합한 430년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한 기간이며 동시에 2차포로로 잡혀간 BC589년부터 마카비 반란이 일어난 BC167년까지의 430년을 말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이러한 이상한 행동을 선민이 목도하고 관심을 집중하여 왜 이럴까? 이러한 행동의 의미가 무엇일까?궁금증을 유발하여 선민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에스겔의 상징적인 행위를 통하여 그 시대가 처한 상황을 일깨운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을 통해 죄악과 어두움에 침몰해가는 이 시대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일깨워야 될 줄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의하여 죄와 어두움에 찌든 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 같은 참된 성도의 삶을 살아 그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한지, 종말이 얼마나 임박했는지를 세상과 성도들에게 알리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종말을 담당하는 자의 삶이 죄로 어두워진 세상, 불의와 거짓이 난무하며 욕심과 집착과 애착으로 죄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는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의 빛 되심을 전하며 그분의 심판과 종말의 임박함을 전하는 신선한 충격과 일깨움을 주는 삶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심판과 종말을 담당하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4-6)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왼편은 북쪽을 오른쪽은 남편을 말하는데 왜냐하면 머리를 서쪽으로 하고 동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성전방향)
에스겔이 이렇게 오랫동안 한쪽으로만 누워 있었던 것은 자기 동족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4절에서 [죄악을 짊어지되]라는 말은 ‘그리고 너는 죄악을 그 위에 두라’는 말로 좌편으로 누워있는 에스겔의 몸 위를 지칭하는 것이므로, 에스겔이 동족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장차 메시야가 인류의 죄를 대신지고 대속고난을 당할 것을 예표하는 행위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집중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토판의 비밀은 죄로 말미암아 져야할 고통 고난 형벌을 390일과 40일 동안 에스겔의 몸 위에 올려놓고 영적 지도자이므로 그들의 죄악을 직접 경험해 보고 그들의 죄악을 그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드러내 주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께서는 대리적 고난과 대리적 고백을 해 주십니다.
대리적 고백이란 막1:9-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너는 내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하시는 메시야 대관식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대신 고백해 주신 말씀입니다.
대리적 고난은 막15:33-41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고 , 다 이루었다 하시므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류의 죄과를 용서하신 것으로 지난 1500년 간의 신학의 결정체를 말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백성의 죄를 대신 감당하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 을 말합니다.
특히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는 말씀에서 [그 죄악]은 그들의 죄악이란 의미로 특정한 하나의 죄악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저지른 완악하고 패역한 모든 죄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이전에도 에스겔 시대에도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며 심판을 예언하게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거듭하여 심판을 예고하신 것은 위협하고 겁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 심판의 임박함을 알리는 한편,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목적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 예고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더 잘 증거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고하시는 진정한 목적은 심판보다는 구원에 더 큰 목적이 있는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요나가 자신의 심판 예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회개를 보고 심판을 유보하신데 대하여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 명이며....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4:11) 하신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선민에게 심판을 예고 하셨다는 것은 그들을 그만큼 더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심판 예언은 협박이 아니라 인생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공의를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생들을 더 크게 높이 깊게 사랑하기 때문임을 분명히 깨닫고 , 회개의 자리 구원의 자리에 세우기 위해 회개치 않은 비참한 상황을 진리에 입각해서 정확하게 알리고 하나님의 영혼 사랑의 간절함을 알려 속히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이 사랑인줄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회개를 망설이지 않고 즉각 회개하여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성도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심판과 종말을 담당하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까요?
둘째로 구원의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5-6)
앞에서 설명한대로 북이스라엘 몫으로 좌편으로 누워 390일을 남유다쪽으로얼굴을 향하고 40일을 모로 누워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범한 죄 값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이라도 그들이 범죄하였을 때는 그에 합당한 형벌을 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보응하시되 그 보응의 기간을 한정 하셨습니다.
그 기간이 다 채워지면 그들을 다시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경우 남유다에 비해 135년 먼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로보암 이후 단 한 명의 선한 왕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 남 유다가 담당할 40년동안의 형벌은 므낫세왕의 극악한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이 있었지만 히스기야 요시야 왕등의 극단적인 종교개혁과 의로운 왕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이 있은 BC586년부터 포로 석방조서가 발표된 BC539년 까지 한세대즉 40년을 말합니다.
6절에서 “ 담당하라 (웨나사타ונשאת)”는 ‘그리고 너는 둘 것이다’ 는 의미로 그가 유다족속의 죄를 대신 담당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스겔의 그러한 행위를 통해 유다족속이 형벌을 면할 수 없는 것이지만, 40일 동안 모로 누워 지냄으로 장차 유다가 당한 고난을 예언하며 그들의 고난을 더불어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이 다윗 왕가로부터 분리되어 나간지 390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지 185년 만에 비로소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회복될 것이란 꿈도 꾸지 못하던 때에 그들이 기대조차 못하던 회복을 정한 70년의 기간이 차자 그대로 이루어 주신줄 믿습니다.
6절에서 [그 수가 차거든(웨킬리타:וכלית )]이란 말은 모든 일이 다 마쳐진 상태를 말하며 애굽에 7년 풍년이 마쳐진 것((창41:53)이나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완공(왕상6:38)한 것등을 나타낼때 쓰던 말로 하나님의 예정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390일 40일의 고통스런 모로눕기예언인 상징적 행위 수행을 완료함을 통해 조소와 멸시 빈정거림을 당하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예표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개독교라 비난을 받고 감히 기독교신자라 말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일 전 미국 오리건주 한 대학 (엄프라 커무니티 칼리지)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10명이 죽고 7명이 다쳤는데, 놀라운 것은 너 종교가 무엇이냐 묻고 기독교인이라 하면 너 곧 하나님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머리에 사격하고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발에 쏘았다는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오일달러를 앞세워 이슬람이 인천을 필두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고, IS는 돈으로 용병을 사서 우리나라 김군도 공습으로 죽은 것 같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듯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핵개발 야욕을 버리지 않고 미국과 모든 방법의 전쟁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위협합니다.
객관적인 사실만 보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평화적인 통일이 어려울 뿐 아니라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리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즉 부르심을 받고 분연히 일어서서 우리에게 맡겨주심 즉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때가 차면 이 조국을 통일시켜 주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어 다 함께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할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850만 성도가 가가호호 전도에 힘쓰고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며, 700만 한민족디아스포라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간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선물로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택하셨기 때문인 줄 믿고 구원의 소망을 잃지 않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심판과 종말을 담당하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까요?
셋째로 신실한 종이 되어 순종하라 (7-8)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선민의 대표로 고난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7-8절은 40일 동안 예루살렘의 심판 기간이 불가항력적인 심판이 될 것 이라는 또 다른 상징적 행동예언입니다.
[네 얼굴을 ...향하고]라는 말은 ‘너는 얼굴을 견고하게 세울 것이다’는 말입니다. 얼굴을 똑바로 세운다는 것은 목을 곧게 세우고 상대방을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것이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가차 없는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긍휼의 대상이었지만, 죄악이 충만하여 그의 심판을 당하기로 예정된 순간부터는 재판관이 죄인을 심문하듯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심문하며 캐묻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팔을 걷어 부친다는 것 은 고대근동에서는 용사가 전쟁에 참여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언하라는 것은 의로운 용사이신 여호와께서 적대적 태도로 예루살렘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잘 묘사하여 심판의 임박을 경고 하는 것입니다.
3:26절에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에스겔이 예루살렘 토판을 향하여 팔을 걷어 부치고 그것을 곧 공격할 듯 서 있는 자세로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심판이 임박했음을 예언하라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바벨론 세력을 통해 완전히 함락시켜 그들이 옴짝 달싹 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실질적으로 에스겔 주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를 줄로 묶었든지 아니면 에스겔 스스로 줄로 묶인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든지 에스겔의 행동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지자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리저리(밋칫테가 엘 칫데카 מצדך אל צךך)]는 ‘너의 측면으로부터 너희 측면까지’ 라는 말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라는 의미로써 에스겔은 390일과 40일 즉 고난과 더 중한 고난이 다 지나가기 까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에서 정하신 자세로 온전히 순종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선민의 죄를 담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민족 지도자로써 민족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신실한 종인 동시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에스겔이 보인 희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분이 계신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말한 세례요한의 말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본래 성자 하나님으로써 완전한 인자(The SON)이시며,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죄 없으신 의로운 분으로 죽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분이십니다.여기서 인자는 에스겔에게 쓰인 인자(a son)과 확연히 다륿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셔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님 오시기 700년전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감당시켰도다”(사53:4-6)이라 말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천년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바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으로 인하여 우리는 멸망의 형벌로부터구원을 받았으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큰 은혜와 놀라운 사랑을 입은 자들로써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생명을 드린들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땅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다 갚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 은혜와 사랑을 한 순간도 잊지말고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바쳐 충성하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심판과 종말을 담당하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4-6)
둘째로 구원의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5-6)
셋째로 신실한 종이 되어 순종하라 (7-8)
왼쪽으로 누워 북녘동포 특히 지하교회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과 40이라는 무거운 짐을 잘 감당하되 더 더 무겁고 힘든 390이라는 짐도 짊어지고 아픔과 고통을 감당할 만한 지도자가 되어 내가 나아갈 길을 위해 힘차게 달려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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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